"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 입니다."(히브 11,1)
보통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의 감각이나 속도를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는 어르신들의 푸념 섞인 넋두리를 쉽게 들을 수 있지요. 그런데 그 똑소리나고 빠릿빠릿한 청춘들이 오히려 어르신께 맥을 못 추는 영역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철석같은 믿음 영역 아닐까요. 여기 참으로 지고지순한 한 어머니의 믿음을 맛깔나게 그려낸 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음 묵상 가족들과 나눠 봅니다.
십몇 년 전이니 벌써 케케묵은 이야기다. 중3동 성당 옆에 작은 우체국이 있고 우체국 옆은 빈땅으로 버려져 있었다. (....) 흉물로 변해가는 땅을 보다 못해 시(市)에서 주민들에게 텃밭으로 나누어 주었다.
열댓 명이 그 땅을 나누어 가졌는데 우리도 한 몫 끼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돌을 골라내는 등 다들 열심이었다. 멀쩡한 밭으로 면모했음은 물론이다. 시에서는 소똥 썩힌 것을 거름으로 나누어 주는 친절 까지 베풀었다.(...)
봄이 되자(...) 경쟁이나 하듯이 열심히 가꾸었다. 집집마다 뿌린 씨앗이 달라 백화점 채소코너를 방불케 했다.(...)
우리는 (...) 다른 집보다 소똥거름을 넉넉히 넣어서 그런지 여느 농사꾼 못지않은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밭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배춧잎에 달팽이들이 달라 붙어 사정없이 갉아대고 있는게 아닌가.(...) 다른 집 배추는 멀쩡한데 우리 집만 유난인 것을 보니 소똥거름이 원인인 것 같았다. 욕심이 화를 부른 게다.
잡아도 잡아도 다음날 보면 또 그만한 숫자가 생겨났다. (...) 그날도 배추밭에 들러붙어 달팽이와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마침 아들네 집들을 순방 중이신 어머니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텃밭에 나타나셨다. (...) 손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나는(...) 어서 소주병이 내 손으로 넘어오기를 기다렸다. 한데 어머니는(...) 그 아까운 소주를 배추밭에 뿌리시는게 아닌가.(...)
"어머니,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한참 후에야 어머니는 성수를 뿌리면 달팽이들이 도망을 가지 않겠나 싶어 성당에 가서 떠왔다" 고 대답하셨다.(...)
다음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달팽이들이 없어진 게다. 나는 내가 목격한 이 신기한 광경을 교우들에게 떠벌렸다. 교우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어떤 교우는 성수는 소금을 쓰는데 달팽이가 소금을 싫어한 때문이 아닐까하고 해설을 내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어떤 것도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믿음을 믿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성체를 받아 모신 손으로 아픈배를 문지르면 배가 낫는다고 믿으셨다. 귀신을 쫓는 데는 성수가 특효라고 믿으셨던 어머니가 그깟 달팽이쯤이야.
내가 가게를 낼 때였다. 젊은 사람이 가게를 하다 두 사람이 연달아 죽어 나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내가 꺼림칙해하고 있을때 어머니는 성수병을 들고 앞장을 서시었다. 그래 그런지 내가 그가게를 운영하면서 아들딸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낼때까지 무사했다.(...) 믿음은 알량한 지식이 아니라는 걸 어머니는 몸소 보여주셨다. (이달수 글, 인터넷 네이버 카페 '상1동 미카엘 성당' 참조)
출처 - 차동엽신부의 신나는 복음 묵상 중에서 (다해 연중 19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