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스런 빛이 발하는 곳, 영광(靈光)
우리나라의 땅 이름 가운데 영(靈)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는 곳은 과문의 탓인지 모르지만, 거의 없다. 제주도의 한라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영실(靈室) 정도가 기억될 뿐이다. 그 영실에는 국태민안을 비는 국가적 제사였던 국성제단이 있고, 또 남방불교의 최초 도래지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땅 이름을 갖고 있는 영광은 이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였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필자가 70년대 말 지하운동 시절에 광주의 광천동 야학에서 만났던 박관현 군의 생가가 영광이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영광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에서였다. 마침 지난 주에 영광종합병원의 정장오 이사장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러 들렀다.
박관현 군의 동상은 광주에서 영광으로 들어가는 큰 길가에 우뚝 서 있었다. 지역유지들과 국민들의 정성으로 세워졌다는 해룡고교의 서민종 선생의 설명을 듣고 더욱 그 뜻이 깊었다. 박관현 군은 80년 봄의 정세에서 전남도청 앞의 민주화 촛불집회 당시 전남대 학생회장으로서 사자후를 토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옥중 단식으로 사망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더해주었다. 그는 5.18 이후 살벌함 속에서 신중론이 우세하던 지역의 분위기를 적극적인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입장을 취해 후배와 동료들을 설득시켰고, 당시 필자가 추진했던 윤상원 노동자대학의 첫 입교생이 될 뻔했다. 박관현 군에 대한 추억은 윤상원 동지와 불가분의 관계였다.
광천동 야학의 윤상원 동지를 중심으로 박관현, 전용호 등의 강학들이 있었다. 그 좁은 야학 방에서 밤새 토론을 하면, 새벽 3~4시를 넘겼고, 새벽버스를 타고 전주나 부산으로 향했는데, 그때마다 박관현 군은 매우 놀라운 태도를 보였다. 필자가 잠시 눈을 붙인 뒤 세수하러 부엌으로 나가면, 박관현 군이 어느새 따뜻한 수건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잠을 자지 않고, 연탄불에 물을 데웠던 것이다. "이런 행동은 봉건적이어서 좋지 않다"고 지적했지만, 그는 "존경하는 선배에게 이렇게라도 해드리고 싶다"는 거였다. 춥고 배고픈 시절에 그의 정성에 나는 감동했다. "그래, 너의 정성이 헛되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마"하고 다짐했었다.
그런 그가 광주 교도소에서 옥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주가막소에 갇혀있는 동안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옥중사망의 진상을 요구하는 단식을 했지만, 박관현은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수 없었다. 이제 망월동 묘지에는 그의 시신이, 고향에는 동상만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동상 주변에는 동네사람들의 차량들이 그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차해 있었다.
신령스런 빛을 발한다는 영광에는 오랫동안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증거들이 곳곳에 있었다. 영광군의 상징인 굴비는 특유의 전통기법으로 염장하여 자연해풍에 말려서 저장된다. 그곳이 바로 법성포이다. 그런데 법성포에는 굴비 이전에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가 있었다. 법성포라는 지명도 마라난타 스님의 불법 전래를 기념하는 지명이었다. 그런데 이 신령스런 땅은 근래에 들어와 원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원불교도이면 반드시 순례하는 핵심성지였고, 성역화사업도 진행되었다. 문제는 영광의 오늘이 어떠하냐는 것이다.
많은 농어촌이 그런 것처럼 영광도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65세 이상 노인이 20%에 가까왔다. 원자력에 젊은이들이 수천명 집단적으로 거주해서 그렇지 실제 노인인구는 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전국의 농가가 123만 가구, 350만명 정도의 농업인구가 있지만, 수년 내에 100만 가구에 23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농가소득도 도시의 평균소득보다 1/4정도 수입격차가 나고 있다. 앞으로 더 벌어질 게 틀림없다. 그러면 도대체 정부의 농림정책과 막대한 정부예산은 어떻게 사용되길래 우리의 농촌은 희망을 잃고 기력을 잃어가고 있을까.
농림부의 수조원의 예산발표도 지난 몇년 동안에만 농촌에 쏟아부은 돈이 50조를 넘는다. 앞으로도 119조원을 몇년 동안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농정에 관련된 사람들은 친환경농업, 농업의 규모화, 전문화, 관광농어촌, 유통개혁, 농산물 안전관리강화 등의 비전을 거론하지만 농어촌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우선 친환경 농업문제는 유기농 생산 비중을 높여가자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적어도 유기농을 할 수 있는 농가는 4, 50대를 넘지 않아야 하는데, 농어촌에서 드물다. 도대체 누가 유기농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규모화 작업은 경지정리작업이 상당부분 진행된 반면, 기업화가 가능한 1만평 경작사업은 농지가격이 워낙 가파르게 급등하고, 전국이 투기장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지지부진하다. 품목별 전업농 육성작업은 기초데이타 조차 정확치 않고, 시행착오가 되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관광농촌사업은 현재 300여개의 관광마을이 조성되고 있지만, 정부의 선전만큼 실효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주5일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촌은 체험과 휴양의 공간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식품안전관리강화는 외국산 농산물의 검역 강화뿐 아니라 정부차원의 통일적 관리와 평가시스템이 시급히 필요한데도 부처간 관할권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UR협상 당시에 나온 농민단체의 주장이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고, 정부의 논리도 동어반복이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제자리 뛰기만 한 것이다. 농림부와 해수부의 업무보고를 듣고 있으면, 참으로 답답해진다. 농어촌은 언제가야 희망의 무지개가 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