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수진은 상훈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갈곳이 있다며 성화를 해댄다. 지금 바로 집으로 찾아갈테니 목욕재개하고 양복정장으로 차려입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수진은 전화를 끊는다.
추리닝 바람으로 무료하게 오전시간을 보내고 있던 상훈은 갑작스런 수진의 성화가 어리둥절하고 귀찮게 여겨진다. 어차피 씻지않은 몸으로 그냥 시간을 보내기엔 기분이 찝찝했기에 일단 목욕은 한다. 다 씻고 나올 무렵 수진이 집에 도착해 있었다.
" 뭐하고 있어 ? 어서 준비하고 서둘러. "
수진의 호들갑이 상훈은 마냥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도대체 무슨일이길래 아침부터 갑자기 찾아와서 저러는건지. 상훈은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집에 있는 마의로 대충 옷을 챙겨입고 거실로 나오는데 수진이 그 모습을 보고는 답답해한다.
" 그게 뭐야 ? 다른 옷 없어 ? 넥타이도 안 맺잖아 ? "
그러면서 수진은 상훈의 방으로 들어가 직접 옷장을 살피면서 옷을 골라본다. 짙은 청색 계통의 양복과 와이셔츠를 직접 자신이 꺼낸다.
" 이거...이게 좋겠다. 어서 이걸로 입어 ? "
" 아니 도대체 어딜 가길래 그러는거에요 ? "
" 설명할 시간 없어 !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 ! "
수진은 상훈의 손에 직접 옷을 쥐어주기까지하며 채근을 한다.
" 알았어요...갈아 입을테니까 나가있어요. "
수진은 빨리 갈아입으라고 다시한번 닥달을 해대고는 밖으로 나간다. 상훈은 수진이 꺼내어준 옷으로 갈아입는다. 넥타이는 매지 않은채 거실로 나오자 수진은 다시 얼굴을 찌푸려보인다.
" 뭐야 그게 ? 넥타이는 안 매 ? "
" ...저어...그게...넥타이 맬 줄을 몰라요. "
상훈은 주저하다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을 한다. 수진은 그런 상훈을 잠시 어이없이 바라보고는 허공을 바라보고 한숨을 내쉰다. 머리에 손을 짚어보고 잠시 생각을 해 보다가 상훈의 손을 잡아끌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 하는수없지. 일단 내가 매줄게. 너 그대신 내일까지 넥타이 매는법 반드시 익혀둬야돼 알았지 ? "
" 아니, 누나 ? 도대체... "
도대체 무슨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수진은 질문을 할 틈새도 주지않고 다시 수진을 방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상훈의 옷 매무새를 다시한번 살펴보고는 넥타이를 매준다.
" 뭐하느라고 여태 넥타이 매는법도 안 배워두고 있었어 ? 어쨌거나 이건 내일까지 꼭 익혀둬야해 ! "
"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 어딜 갈데가 있다고... "
" 조용히 해 ! 가면서 내가 차근차근 이야기해줄게. "
넥타이를 매주고서 수진은 상훈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소연이 집앞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준다. 집 앞에는 수진의 것으로 보이는 자가용 한 대가 서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새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아니, 누나 ? 운전면허는 언제 땄어요 ? 그리고 차는 또 언제사구 ? "
상훈은 놀라움과 어리둥절함에 수진에게 묻는다. 수진은 그 말에는 대답없이 운전석에 타면서 상훈에게도 어서 타라고 독촉을 한다. 계속되는 어리둥절하기만한 수진의 호들갑과 성화. 상훈은 차에 탑승을 한다. 수진의 자가용은 아파트 단지를 서서히 빠져나간다.
" 도대체 어딜 가길래 그러는거에요 ? "
상훈은 모처럼만에 입어본 양복정장이 어색하기만 한지 자신의 옷차림새를 몇번이고 살펴 본다. 수진은 차를 운전하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 북한인권 시민연합 사무실로 가는길이야 ! "
서울 중심가. 경복궁 앞길을 지나 안국동 방향으로 가는 길목의 한 작은 빌딩 건물앞 주차장에 수진의 차가 선다. 수진은 상훈을 데리고 그 빌딩안으로 들어간다. 4층에 있는 한 사무실 문을 수진이 노크를 한다.
" 누구세요 ? "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 국장님 ! 저 서수진인데요. "
사무실 문이 열리고 40대 초반쯤으로 되어보이는 여성 하나가 나온다. 수진은 우선 그녀에게 깎듯이 인사를 하고 상훈도 덩달아 함께 인사를 한다.
" 국장님, 그때 제가 말한 그 학생입니다. "
수진이 국장이라고 부른 여인은 상훈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본다. 그리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며 두 사람과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사무실안에는 한쪽에 큰 책상 하나와 그 앞으로 그것보다 약간 작은 책상 하나가 놓여있었고. 좌우 양쪽으로 또다른 책상이 두 개씩 놓여있었다.
작은책상 뒤쪽으로는 나무와 유리로 만들어진 책장 하나와 또다른 책장 하나가 놓여있었고. 사무실 한가운데는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져있다. 40대 여성은 작은책장에 놓여있는 서류철 하나를 집어들고는 테이블 앞에 놓여있는 소파 하나에 털썩 앉는다.
여성은 상훈과 수진에게 일단 앉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상훈을 마치 노려보는듯한 눈빛으로 쭉 훑어본다.
" 이 학생이라구요 ? "
" 네. "
여성의 말에 수진이 대답한다. 여성은 서류철을 두어장 뒤적거리며 훑어보는 듯 하더니 천장을 잠시 우러러보고는 ' 후~! '하고 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상훈의 얼굴을 다시한번 바라다본다.
" 근데...전공이 방송연예과라구요 ? "
" 네..."
수진은 대답을 하려다가 상훈의 옆구리를 손으로 툭 친다. 네가 대답해야 한다는듯한 의미인 듯. 그 동작에 상훈도 엉겁결에 ' 네. '하고 짤막하게 대답을 한다.
" 그러니까...서울예전 방송연예과 ? "
" 네. "
상훈의 대답이다. 여성은 다시한번 천장을 우러르고는 한숨을 내쉬어본다.
" 우선 내소개부터 하지. 내 이름은 김영자라고 하고 오늘부터 여기서 사무장일을 맡아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국장님이라고 부르면 될거야. "
" 네...네. 안녕하세요 국장님 ? "
상훈은 어떻게 해야할지 주저하다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인사를 한다. 김영자 사무국장은 그런 상훈을 잠시 바라다본다.
" 군대는 다녀왔어요 ? "
" 저어...그게...실은 면제인데요...2대독자라서... ? "
" 그래 ? 수진양 왜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 "
" 그냥...깜빡... "
영자는 다소 의외라는 듯 안경테를 한번 매만져보며 수진에게 묻는다. 말꼬리를 흐리듯이 수진은 대답을 한다. 영자는 상훈의 얼굴을 다시한번 쳐다본다.
" 통일연구반이 구체적으로 뭘하는데였어요 ? 좀 자세히 이야기해봐요. "
" 저어...그게...그러니까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바로알고 다가오는 통일의 시대를 대비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써클이었는데요. 주로 북한에 관한 책자나 비디오등을 보면서 서로 토론을 하거나 웅변대회,글짓기대회같은걸 주관하고 했던 곳인데요... "
" 수진양 말로는 거기서 무슨 출판물같은걸 만들었다던데...맞아요 ? "
" 네. 거기서 두세달마다 한번씩 회보같은걸 만들었었거든요. "
" 그래요...그게 그럼 이건가 ? "
영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위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책자하나를 집어서 상훈에게 보여 준다. 바로 상훈이 고등학교때 통일연구반에서 직접 만들어 발행하던 책자다. 상훈은 그것이 여기 와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수진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 거기 보니까 무슨...' 북한청소년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제목의 글이 있던데 그거 상훈군이 직접 쓴거에요 ? "
" ...네... "
상훈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 어떤 취지에서 그런 글을 쓰게된건지 말해봐요 ? "
" 저어...그러니까 그게...우선 평소에 학교수업시간이나 이런저런 북한관련 TV를 보다보면 통일후에 남과북의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많은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고요. 그래서 북한 청소년들은 어떤 가치관이나 정서를 가지고 있을지 우리가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할거란 생각에 지금부터 그때를 준비하는게 좋지 않을까하는 취지에서 쓰게 된 겁니다. "
" 그래요. "
상훈의 말을 듣고는 영자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보인다. 상훈의 표정엔 여전히 긴장감이 역력하다.
" 저거 혹시 다룰줄 알아요 ? "
영자는 오른쪽에 있는 책상 하나를 가리치며 묻는다. 책상위엔 컴퓨터 한 대가 놓여져있었다.
" 예 ! "
상훈의 대답이다. 영자는 고개를 끄덕여보고는 자신의 책상으로 간다. 그리고 서랍에서 20여장쯤 되어보이는 종이뭉치를 꺼낸다. 그리고 상훈의 앞에 툭 던진다.
" 그러면...이것 좀 한번 작성해봐요. "
상훈은 종이뭉치를 살펴본다. 사인펜과 볼펜으로 빽빽이 적어내려간 문서나 도표등이 가득채워져있다. 영자는 시민연합 업무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관계자료들과 구상안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상훈은 종이뭉치를 들고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을 켠다. 수진은 영자에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 몇마디를 더 나눈 뒤 사무실에서 나간다. 상훈은 묵묵히 그리고 제법 진지한 자세로 서류를 작성한다.
소연은 집에서 하이텔에 접속하고 있었다. 오늘 아주모 대화방지기는 소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긴 하지만. 소연도 어느새 pc통신을 하루라도 접속하지 않으면 웬지 허전함이 느껴지는 그런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채팅실에 들어가보았다. 아주모 채팅실에선 오늘 대화 방지기인 진영이 다른 네티즌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소연은 다른 채팅실을 무의미하게 몇번 훑어본뒤 동호회 서비스쪽으로 옮겨갔다.
소연은 먼저 직장인 동호회에 마련된 아주모 게시판에 낙서형식의 글 하나를 올린 뒤. 다른 동호회들을 몇군데 더 둘러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하이텔 경력도 6개월을 넘고 있었지만. 아주모 게시판 때문에 가입한 직장인 동호회외에는 가입해있는곳은 없었다. 동호회를 여기저기 가입하는게 소연은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웬만하면 가입을 잘 하지 않는 그녀였다.
그나마 소연이 직장인동호회외에 유일하게 가입되어있는곳은 '시뮬동'이란 약칭으로 불리우는 시뮬레이션 동호회였다. 한달여전쯤 소연이 그곳에 가입하게 된 동기는 그 모임내 있다는 '삼국지 클럽' 소모임에 관심이 끌린 까닭이었다.
소연은 하이텔 게시판의 글들을 살펴보다가 삼국지를 게임으로 만든 시뮬레이션 형식의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연은 호기심에 자료실에서 '삼국지2'와 '삼국지3'게임을 다운받아보았었다.
하지만 삼국지에 대한 지식은 어릴적에 읽은 소년삼국지가 전부였던 그녀는 게임을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졸지에 이문열 삼국지까지 새삼 사서 읽어보면서 게임을 몇번 해본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하이텔에 '삼국지클럽'이란 소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게시판을 통해 알게되었고. 그 모임 게시판이 있다는 시뮬레이션 동호회를 접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게시판은 비회원들에겐 읽기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었기에 어쩔수없이 동호회에까지 가입하게 된 것이다.
모임은 소설 삼국지와 게임 삼국지의 형식을 그대로 옮긴것만 같은 형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국가형식의 조직이 있었고 온라인 게임을 통한 소위 '전투'라는것도 벌이는 곳 이었다.
좀 어이없게도 그들이 온라인상에서 벌이는 전투시합은 '오목'이었다. 그리고 삼국지퀴즈를 서로 출제해서 맞추고 틀리게 하는 형식의 전투도 있었다. 한마디로 게임공간을 pc통신상에서 다시 재현하고있는 형식의 모임이라고나 할까.
하이텔 이용자들이 대개는 이름보다 자신의 아이디를 앞서 밝히는 문화를 소연도 그동안
종종 지켜보았지만. 삼국지클럽은 조금 더 특이하게 별도로 '닉네임'이란 제도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삼국지의 실제 등장인물들을 가입을 하면서 자신의 고유닉네임으로 사용하며 활동을 하는 형식이었다.
소연은 지난 몇주간 종종 삼국지클럽 게시판을 살펴보고가곤 했었기에 대충 모임 분위기를 파악해가고 있었다. 원래 삼국지클럽을 처음 만들었던 초대 대표시삽이기도 한 현재의 대표시삽이 군입대 문제로 어쩔수없이 대삽을 사퇴해야만 하기에 새로운 대표시삽을 선출하는 선거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정도의 연령으로 추정이 되는 회원 두어명이 출마를 준비중이라는것도 알 수가 있었다. '방통'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편승훈'이란 실명의 회원과 '순욱'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김재호'란 회원이 차기 대표시삽에 출마를 준비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소연은 흥미롭게 선거분위기가 펼쳐지고 있는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게시판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데 동호회 대화방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초청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무슨 우연인지 화면에 뜬 메시지의 아이디는 바로 편승훈이란 회원의 아이디였다. 소연은 호기심에 대화방에 들어가보았다.
" 안녕하세요 ? "
대화방에는 승훈과 또다른 회원 두명정도가 이미 먼저 들어와 있었다. 소연은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
" 소교님 ? "
실은 소연도 며칠전에 삼국지클럽에도 가입신청서를 냈었다. '소교'라는 인물로 닉네임신청을 했고 가입이 허가가 되었다. 소연은 일단 반갑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 ...... "
" 그 의견을 듣고 싶어서 부른겁니다. "
" 저야 뭐...아직 신입회원이라 잘 모르겠네요. "
" 그래도 대충...게시판을 보면서 느끼셨던바랄까... "
" 후후...글쎄요... "
좀 갑작스러운 질문이라서일까. 소연은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승훈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만약 순우기님이 대표시삽이 되면... "
" 순우기님 ? 김재호님 말씀하시는거죠 ? "
" 네 맞습니다. 아무튼 그분이 대표시삽이 되면...삼클은 곧 시뮬동 운영진의 가혹한 탄압을 받게될것이란건 불을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
" ??? 왜 그렇죠 ??? "
" 순우기가 워낙 그동안 시뮬동 운영진에 단단히 찍힌 사람인지라... "
" 후후...이거 상대후보에 대한 비난이 되는건가요 ? "
" 허걱~! 비...비난은 아니고...전 다만 삼클을 아끼고 사랑하는 창립멤버중 한사람으로써... "
" 후후...그래서 삼클의 미래가 염려되어 출사표를 던지셨다 그 말씀이신거군요. "
승훈은 소연에게 김재호라는 인물의 대표시삽으로써의 부족함과 자신에게 한표를 호소하는 이야기를 제법 간곡하게 전했다. 소연은 승훈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대화방을 나왔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하이텔 소모임의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열기가 느껴지는것만 같다.
김영자 사무국장은 상훈이 작업을 마친 서류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검토해보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는 상훈은 긴장감이 다소 풀린다. 그런대로 합격점을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 오늘은 첫날이니까 이정도로만 하지. 하지만 내일부터는 오전 아홉시 출근에 오후 다섯시 퇴근이야. 그리고 모래는 남북나눔운동본부 사무실에 들러야 해. 거기 사무간사로 있는 이효리간사로부터 13인의 탈북자 사건에 관한 비디오와 자료를 받아와야 하거든. "
상훈과 함께 사무실에서 나오며 영자는 시민연합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한다.
" 상훈인 13인의 탈북자사건에 관한 보도를 혹시 봤는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그런 사건이 있었거든. 조선족교회에 은신중이던 탈북자 13명을 베트남 대사관으로 보내 한국으로 망명하게 하려고했던 사건이. 일이 잘못되어 다섯명만 귀국을 하게되고 여덟명이 실종이 되었지. 그중 나머지 세명이 나중에 추가로 입국을 하긴 했지만 아직 임산부를 포함한 다섯명의 생사를 몰라. 이 사건에 대한 설명회를 이달 중순경 시민단체와 관계기관 인사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들의 구명운동에 대한 설명회를 가지려고 해. "
상훈은 진지하게 영자의 말을 듣고 있다.
" 고등학교때는 통일연구반에서 회보를 만들어본적이 있다구 ? "
" 네. "
영자의 물음에 상훈은 또렷하게 대답을 한다.
" 시민연합에서도 앞으로 한달에 한번 소식지를 발행해서 각 시민단체,각계인사,회원등에게 발송할 예정으로 있지만. 시민연합 소식지는 학교써클에서 회보만드는 일과는 달라. 모든게 철두철미하고 정확해야 돼. "
" 네, 국장님. "
그냥 '네'라고만 대답하는게 단순해보일것만 같아서 상훈은 '국장님'이란 호칭을 뒤에 붙인다. 영자는 그런 상훈을 다시한번 바라보고는 쩝하고 입맛을 다셔본다.
이틀후 상훈은 김영자 사무국장이 지시한대로 남북나눔운동본부 사무실을 찾아갔다. 효리는 한달전부터 나눔선교회에서 이곳으로 근무처를 옮겨 일하고 있었다. 사무실안에 들어선 상훈은 효리와 눈이 마주친다.
" 생각같아선 전 설명회 날짜를 좀 앞당기고 싶은데...상황이 너무 심각하거든요. 뭐 위에서 어른들이 결정하시는 일이니까 저야 어쩔수 없는거지만... "
안타까움이 역력한 얼굴로 효리가 말한다. 상훈은 그런 효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참...그런데 우리 언젠가 한번 본거같지 않아요 ? 낯이 익은데... "
공적인 대화가 끝나고 효리가 상훈에게 묻는다.
" 가만...그러고보니 그때 왜 전철역에서... "
" 아, 맞다 ! "
상훈은 몇 달전 전철역에서 표를 끊지 못 해 안절부절하던 효리의 얼굴을 얼른 기억을 해내지 못 했다. 하지만 효리가 그때의 일을 기억해낸다.
" 아니...어떻게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지 ? 그땐 정말 고마웠어요... "
" 하하...고맙기는요...어려운일에 처해있을 때 도와드리는거야 당연한 일이죠. "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효리에게 상훈은 그렇게 화답한다. 상훈은 엊그제부터 시민연합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가까운곳에 살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 상훈에게 효리가 악수를 청한다. 두 사람은 가볍게 손을 잡고 악수를 해 보고는 상훈은 사무실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