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포동 도살장
1959년 3월 30일 경상남도부산시의회에서는 ‘전포동 관내 도살장 설치 반대
청원’에 대한 시 의원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그 당시 부산시 농림과장의
답변을 옮겨본다.
“도수장 설치를 계획하게 된 경위와 지금까지의 개략을 참고로서 말씀드겠습
니다. 대개 이 경위를 말씀드리면 현재 여러 의원님들이 잘 아시다시피 범일동과
동래에 시영 도수장을 두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제시대에 부산시 인구를
약 30만으로 잡아서 이런 것이 되어 나왔는데, 이것이 6․25사변을 맞이해서 인구가
폭주되어서 이 도수장을 가지고는 시민의 식생활의 문제를 충족할 수 없는 시설
이므로 그래서 그 당시에 약 6년 전에 충무동에다 사설 도수장을…, 그때 이것을
상당히 시영(市營)을 하려고 노력을 한 일이 있는데 그것이 도저히 완전한 시설을
할 경비가 되지 못해 가지고 사설 도수장 하나가 신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합해서 세 개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아주 형식적이고 구식이 되어서 대단히
비위생적이어서 늘 시민의 보건위생상 대단히 염려스러웠던 것을 그대로 해나오던
끝에 시장님으로부터 농림부나 도에 어떻게 하더라도 이것은 위생시설을 갖추
새로운 시설을 설치해야 되겠다고 해서 중앙 요로에 진언해서 나온 결과에 지난
9월 2일자로 본 도지사로부터 농림부 장관으로부터의 지시라고 해서 현대적으로
가장 위생시설이 구비된 도수장을 건립하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미화가 3만 불입
니다.“ 그 이듬해인 1960년 8월 5일, 제68회 부산시의회에서는 ‘전포동 소재 도살장
이전 건의’ 건이 다루어졌다.
‘김기오’ 시의원의 제안 설명, “과거에 일제시대에 범일동에 있던 우시장을 전포동에
가지고 올적에는 그때는 인가가 없어서 혼란한 때이니까 그 자리에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와 같은 10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부산시로서 앞으로의 도시
발전은 어디까지나 서면일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도살장은 적지를 택해서 이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일전에 동래에 우시장이 있는 그것도 부근에 학교가 있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
옮겨야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 의회에서 심의한 바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래 우시장도 다른 데로 이전 하는 것을 의결을 했는데 하물며 서면의 중심지인
전포동에다가 한복판에다가 도살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조경태’ 의원의 반박. “같은 의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김기오'
의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 건은 근본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작년 10월부터 공사가 착공이 되어서 중앙의 보조가 4천만 환, 시비
부담이 2천만 환, 모두 6천만 환이라는 거대한 재원을 들여서 근대식의 철근
콘크리트로 해서 지금 이 사람이 알고 있는 바는 8할 정도의 공사가 진행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민이 데모를 한다고 해서 지금
와서 다른 장소를 물색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60년대 초, 전포동 164번지에 도축장이 들어섰고
그 인근에 ‘소막(도축장에서 도살될 소의 대기소)’이 생겼다. 평소 온순하기만
한 소가 도축장 입구에만 가면 앞다리를 뻗대며 반항을 했고 더러는 눈물까지
흘렸는데 그런 소를 끌어 들이려고 인부들이 애를 먹었다. 주변 사람들은 소
내장이나 소 피를 싼 값에 사먹었다.
그 자리에는 1971년 3월 성전초등학교가 들어섰는데 초창기 어린 학생들이
“복도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죽은 소들의 혼령이 학교에 떠돈다.”는 등
소문을 만들어내어 아이들이 겁에 질리기도 했다.
[도살장의 소, 눈망울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