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찬 지음, 『옛글의 풍경에 취하다』, 역사공간, 2019.
1. 남의 평가가 아인 내 눈으로 판단하라
금강산을 보는 방법 「송종제금상산서」, 「담헌서」, 홍대용
금강산은 우리나라의 장관이지만
중국 태로의 경관에 지나지 않는다.
돌을 좋아했던 미불처럼
금강산의 기기묘묘한 바위를 보고
절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터무니없게도
금강산을 봉래라 부르며 그곳에 신선이 산다고 한다.
내가 일찍이 정양사에 올라
중향성의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니
촘촘히 들어선 것이 창을 모아 세운 듯했다.
또 영원과 원통의 여러 골짜기는
위태롭고 궁벽하며 험하고 좁아서
보는 사람의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만약 신선이 있다면 이것은 항간에서 이르는
김신선(연암의 ‘김신선전’의 주인공) 정도일 것이다.
동방에는 안목을 갖춘 자가 적다.
한갓 남의 말만 믿고 “봉래산은 신선의 산이므로
온 천하의 명산을 제압할 것이다”하니, 이는 동방의 천박한 습관이다.
나는 금강산을 보고 나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사람 노릇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또 안문을 나와서 효령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는 장관에 망연자실하였다.
나의 아우가 장차 금강산 놀이를 하게 되므로
나는 이 글을 적어서 주고 그의 관점이 어떤가를 묻는다.
<해설>
소동파가 했다고 전해지는 “고려국에서 태어나 한 번이라도 금강산을 보는 게 소원[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라는 말은 금강산 신화 만들기의 최고봉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동파집』 등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도교의 삼신(三神) 사상이 퍼지면서 금강산은 영주산(한라산)‧방장산(지리산)과 함께 봉래산으로 불렀다.
(중략) 연암 박지원은 금강산을 보고 감탄이 아닌 탄식을 했다. 그러면서 서울의 도봉산이나 북한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말한다. 북한산의 노을이 비친 모습이나 아지랑이가 서린 풍치는 금강산이 결코 따를 수 없는 장관이라면서.(31~35쪽)
2. 리더십 일깨우는 표류기의 백미
최부의 표해록 『표해록』, 최부
한 배를 탔다면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하물며 우리들은 모두 한 나라 백성으로
정이 육친과 같음에랴.
살게 되면 모두 같이 살 것이요,
죽게 되면 모두 한시에 함께 죽을 것이다.
이 엄혹한 상황에서
이 밀감과 술 한방울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잘 관리하여 허투루 쓰지 말고
사람들의 급한 갈증을 고르게 구해야 한다.
<해설>
우리 옛 문헌 중에서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것은 무엇일까. 『왕오천축국전』, 『직지심체요절』, 『조선왕조신록』, 『승정원일기』 등 여러 문헌을 들 수 있겠지만, 많은 문헌학자들은 최부의 『표해록漂海錄』을 꼽는다.
약 530년 전인 1488년 쓰여진 이 책은 제주에서 전라도로 항해하다 표류한 최부 일행 43명이 중국 저장성 해안에 표착해 베이징을 거쳐 149일 만에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에 이미 중국어‧일본어로 번역될 정도로 널리 읽혔다. 오늘날에는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힌다.
「표해록」은 최부 일행이 겪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중국의 문화와 풍물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표류기의 백미이다. 무엇보다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5개월 동안 난민들을 추스르며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귀국시킨 최부 리더십이다.
표류를 시작한 지 10일째 되는 날, 풍랑에 흔들리는 배는 언제 난파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최부는 그때까지 배 안에 남아있는 음식을 모두 거두었다. 밀감 50개와 술 두 동이가 전부. 그는 “같이 죽고 같이 살자”며 음식을 고르게 나누어주었다. 노련한 선장을 떠올리겠지만, 당시 최부는 34세의 청년 선비에 지나지 않았다.(138~140쪽)
3. 노자의 도덕경 관련 <해설>
무위(無爲)는 사람ㅇ리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천도와 천리의 운행을 붇돋아준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시스템으로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시스템 정치, 시스템 경영이 바로 ‘무위’이다.(153쪽)
4. 무하유지향,
책 향기에 취하다
「묵취향서」, 『이옥전집』, 이옥
이상하다.
먹은 누룩이 아니고,
책에는 술그릇이 담겨 있지 않은데
글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는가.
장차 장독 덮개가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글을 읽고 또 다시 읽어,
읽기를 사흘 동안 오래 했더니,
꽃이 눈에서 생겨나고
향기가 입에서 풍겨나와
위장 속에 있는 비릿한 피를 밝게 하고,
마음속의 쌓인 때를 씻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즐겁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여,
자신도 모르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가게 한다.
<해설>
책은 아름답고 성스럽다. “나는 그 깊숙한 곳에서 보았다/ 우주의 조각조각 흩어진 것이/ 한 권의 책 속에 사랑으로 묶인 것을”(「신곡」천국편 33곡)이라고 노래한 사람은 단테였다. 또 시인 김수영은 “덮어놓은 책冊은 기도祈禱와 같은 것/ 이 책冊에는 신神밖에는 아무도 손을 대어서는 아니 된다”(「서책」)고 썼다.
책는 달콤하고 향기롭다 중세 프랑스 작가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여성, 아이 가릴 것 없이 누구든지 책에서 나오는 감로甘露를 맛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나라 한유는 책을 읽는 때에는 “술 향기에 푹 빠지듯, 꽃을 머금고 씹듯”하라고 충고한다. 출판‧인쇄를 뜻하는 ‘프레스’가 포도주를 만들던 압착기press에서 유래한 것은 의심심장하다.
조선 후기 문체반정의 한 가운데 있던 이옥에게 책은 천상으로 인도하는 천사와 같은 존재다. 그는 천사의 향기, 천사의 노래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무하유지향으로 향한다. 『장자』에 나오는 무하유지향은 어디에도 있지 않는 곳, 즉 이상향이다.(243~245쪽)
5. 문맥을 살피다,
옛글 읽기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 『난중일기』, 이순신
삼가 생각건대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장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어제 한산도에 나아가 진을 쳐
바닷길을 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난리 중에도 옛 정의를 잊지 않고
멀어서 위문편지를 보내시고 아울러 각종 물품을 받게 되니,
진중陣中에서는 귀한 물건이 아닌 게 없어
깊이 감격하여 마지않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에야 더러운 적을 소탕하여 없애고
예전의 종유從遊하던 회포를 실컷 풀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대하니 슬픈 마음만이 간절할 뿐입니다.
<해설>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구절은 전라도 사람들이 즐겨 인용한다. 전라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한때 대통령 선거 철이 되면 후보자들이 이 말을 쓰곤 했다. 선거를 앞두고 호남 지역의 표심을 얻으려고 내미는 일종의 밀어蜜語였다.
그러나 400여 년 전, 충무공 이순신이 진중에서 처음 사용한 이 말은 호남예찬론이 아니요, 호남에 대한 밀어는 더더욱 아니다. 호남을 사수하지 않으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간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말이었다.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천하의 안위는 틀 요동의 넓은 들판에 달려 있었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국은 파죽의 기세로 경상도‧충청도‧강원도를 유린하고 도성마저 함락시켰다.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이때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은 마지막 남은 호남을 국가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국가의 군량이 모두 호남에 의지하고 있으니, 호남이 없어진다면 국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옛글은 문맥 속에서 이해할 때 제 뜻이 살아난다. 한두 구절만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멋대로 사용한다면 뜻이 왜곡될 뿐 아니라 선현의 정신마저 훼손된다. 글을 읽을 때에는 문장 전체의 대의(大義)를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46~248쪽)
6. 더 치밀하게 더 치열하게,
전투하듯 글 쓰기
「소단적치인」, 『연암집』, 박지원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아마 병법을 알 것이다.
비유하지면 글자는 군사요, 글뜻은 장수이다.
제목은 적국이요,
고사를 인용하는 것은
전장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여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편성하여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다.
앞뒤의 조응(照應)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는 기병(騎兵)이 기습공격하는 것이다.
억양반복(抑揚反復)이란 맞붙어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 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해설>
김남주 시인은 “시인은 전사(戰士)”라고 했다. 문학은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투쟁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암은 글쓰기 자체가 전투라고 말한다. 좋은 전략전술이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듯, 글쓰기 방법을 터득한 자만이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 방법은 책상머리에서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광범위한 독서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계속되는 습작을 통해 아름다운 문장을 빚내어야 한다.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수없이 붓방아를 찧어야 한다.
……글쓰기가 전쟁이라면, 작가는 전장의 장수이다.(249~251 쪽)
7. 문장은 언어의 정화,
문학예찬
파한집, 『우리 겨레의 미학 사상』, 이인로
이 세상 모든 사물 가운데 귀천과 빈부를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정하지 않은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훌륭한 문장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과 같아서,
구름이 허공에서 흩어지거나 모이는 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지 못할 리 없으므로 감출 수 없다.
그리하여 가난한 선비라도
무지개같이 아름다운 빛을 후세에 드리울 수 있으며,
아무리 부귀하고 세력 있는 자라도
문장에서는 모멸당할 수 있다.(265쪽)
<해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문학의 힘을 강조한 말이지만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그러나 선인들의 문학예찬은 은근하고 고상하다. 이게 우리 겨레의 미학이다.(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