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준비는 해놓고 볼일이니까 그대로 우비와 산행에 필요한 장구들를 챙겨 5시쯤에 이상훈소나무산악회장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런데 비가와도 계획대로 산행을 한다는대답이었다
그러니까
5:50에 집을 떠나면서 우산을 받고 청전동주민센타앞까지 가서 기다리었다
천둥번개까지치면서 비는 그치지않았다
그리고 오고가는 차들이 아스발트위에 쏟아져흐르는 빗물로 온통 물보라를 둥글게 펼쳐그리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와 맞부디치는 호각지세를 이루고있는모양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하나의 도전과 결의에 찬 의지를 나타내보이려고 끝없이 상충되는 현실극복이라는 대쟁투의 갈등을 체험하였다
아무래도 이렇게 계속비가 내린다면 골란할것만같아서 차가올때를 기다리는중에 이번에는 회장님에게서 조금 늦을것이라는 통보가 오므로 계속기다리겠노라고 대답하고 그냥 그곳에서 무작정기다리고있었다
꼭 한시간이 지체된 다음에야 진양관광최천재기사가 차를 갖다대는것이었다
이렇게도 그때까지 기다린효과가있다는 감사함으로 차에올랐다
오늘 산행인원은 31명이 참여하고 또 진고개마루까지가서 직접산으로 올라가는데는 매우 신중을 기한것은 오늘산행코스가 여간길지아니하고 또 비가 언제그칠것인지도 알수가 없는터이라 산에 자신이 있는사람만 올라가고 남어지는 버스에서 강릉쪽으로 가서기다리라는것이었다 그런데도 단8명만 차에 처지고 23명이 산행에 동참하는것은 그만큼 여자들까지 산행에는 자신만만한사람들로 구성된 정예부대임을 말해주는것이었다
진고개에서 노인봉까지 올라가는코스는 그렇게멀지않지만 내려가는코스가 엄청멀다는이야기였다
아무턴 나는 합류하는것으로 처음부터 마음을 굳힌터이라 앞장서지는 않겠지만 선두구릅에 참여할것을 마음속에 다짐하면서
언제나 맨나중에 올라가는 이상훈산악회장을 따라서 합류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 어느사이엔가 나는 선두구릅에 서게되었고 또 노인봉에 다다를때에는 오늘도 제1착으로 오르게되었다
날씨가 이렇게 비가오고 천둥번개까지치는날임에도 오늘노인봉을 오르는 전국에 산악인들은 대단히 많았다
우선 우리일행과 함께 올라간 시발점에서 인천의 8884산악회원40명이합류하였고
그외에 안양,부여,안동등지에서도 참여해
이 뜻있는 광복65주년기념을 산에서 체험하는 극기와 도전으로 선열의 그 위대한 광복정신을 계승하려는 깊고도 높은 의연한 민족정기를 우리몸속에 단련시킴으로써 다시는 국권의 상실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지는 않으리라는 고결한 뜻으로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을 서로사귀게되었다
인천산악회에서오신분은 그곳산악회원은 500명이넘는다는것이었고 내가 산악회이름이 아주 팔팔해서 좋다고하였더니 그의 대답이 에레베스트산높이의 이름이라고하였다
거기서온 김경섭(金京燮)씨를 알게되었고
또 공주에서 오신분으로는 유학상(劉鶴相)이라는 분을 알게돼
작년에 내가 부여갔다온 백마강기행문을 보낼것이라면서 그의 이메일까지 받게된것은 매우 인상적인 교류의 문을 열게된것이었다
노인봉정상은 정점에서 바로넘어가는것이 아니라 정점을 올라 멀리동해에서 불어오는 세차고 시원스러운 바람을 온몸으로 서늘한느낌을 만끽한후에 올라가던길로 다시내려온후에 강릉쪽으로 넘어가게돼있는것이었다
노인봉에서 사진들을 찍은후에 조금내려와서 점심을 펴놓고먹게되었다 고준복부부에게함께먹기를 권장해보았으나 더좋은 장소를 찾노라고 그 아래로 내려갔었지만 이상훈회장과 7~8명일행이 나와 점심좌석을 함께하게된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나도 이번에는 저번에 알아차린대로 엇저녁에 롯데수퍼에서 오늘갖고갈 여러가지 반찬을 준비해가지고간덕으로 아주 당당해진것이다 그래서 함께 나누어주고 또 다른분이 갖어온것도 고루맛을보게되는 기쁨은 힘겨운 산행의 왕성한 식욕을 충족시키고도 남을만하였다
11:30쯤에 점심을 시작하여 12:00쯤에 끝내었며 나는 시작은 매우 빨리하였으나 여러가지 부식가져간그릇들을 그냥버릴수가 없는터이라 모두 간직해서 싸가지고 버스까지가져와야함으로
그것들을 챙기노라고 제일늦게야 배낭을 메게된것을 뒤늦게서야 알게되었으니
우리가 제일끝이라는 말을 듣고 깨닫게되었다
그러니까
점심먹는 장소가 아주 훌륭한곳이라
아주 여러곳에서 온사람들이 모두 거기서 먹고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있다가 우리일행은 모두 떠났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 사람들은 우리일행이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렇다고 다급해할일은 아니었다
이제 워낙 산행에 자신이 붙었고 또 넉넉히 우리일행을 따라붙을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있었기로 아무런 걱정꺼리가 않되는것이었다
분에 내려가기시작했다
우리가 올라온곳이 평창쪽인데 반해 내려가는 길은 동해안쪽인 강릉방면인것이다
그런데 그쪽이 무척이나 길다는것을 누누히 이야기하는것으로 어느정도의 부담감을 안고 새로운 도전의 이지를 굳히며
언제나 내리막길이 더 위험스럽다는것을 생각하면서
꾸준하게 큰보폭으로 장곡험로(長谷險路)를 줄여가고있었다
이윽고 비는그치고 날씨는 아주 시워스러운 바람으로 산행에는 최상의 적합성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역시 내리막길은 약간은 위험스러운곳이 없지않았다
계단식사닥다리모양의 난간등을거쳐 한참을 내려오다가 다시오르막길에는 세갈래 길이있어 자칫헷갈릴염려가있었는데 우리는 바로 제길을 찾아서 잘내려오긴했지만 뒤에 오시던 한분은 거기서 엉뚱한곳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제길로내려오는 고생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뒤늦게서 들었던것이다
내리막길에도 여러곳에서 오신산악인들로 붐비는 터이라 앞사람을 따라붙는데는 상당한 애로요인이 있었으나 줄곳따라오게되면서 약간씩을 틈새가 나는것으로 앞질러서 계속내려다가보니까 어느사이엔가 우리 일행중에서 아주 선두주자인 여섯사람들과 합류하게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12년은 제쳐놓고 동갑으로 하자는제안을 해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할수가 있게되는것이었다
여섯사람은 나와 그와 또 한분이었고 여자분 세분도 끝까지 기를 쓰고 앞장서기를 다투는 분들이었다
이윽고 낙영폭포에 이르니 반쯤은 온듯하였고 그렇게도 날씨가 좋아질수가 없었다
하오2시쯤에 훤한 너래반석이 깔리고 앞이 탁 트이며
만물상바위산이 깍아질은 절벽을 이루고 그바위에는 띄엄띄엄 소나무가 멋을부리는듯 위태롭게 바위위에
뿌리를 밖고 바람과 씨름을 하는것이었다
험산장곡을 내려와서야 그런 훤한곳이 있는것은 마치 어려움이 지나간후에 인생길이 열리는듯한 그런것이었다
햇볕이 쨍나고 참매미울음소리과 우렁찬 폭포소리가 어울려 대자연의 화음을 이루고 산들바람까지 불어서 참으로 좋은 날씨가되었다
계곡으로 줄곳내려오는 길은 작년도에 내설악 주전골에 들어갔던생각을 하게되었다
깍아지른 바위틈사이로 이어지는 잔도교는 서천서역국으로 들어가는그런 어려운 길이아니고 고무박킹으로 나무목판에 깔아놓은 것은 발밑창에 탈싹탈싹달라붙는 아주 걷기운동에 발바닥충격을 흡수해주는 그런곳으로돼있는것은 설악산계곡에 수해피해후 새로길을 만드는 잔도교의 새로운 공법이 여기에도 아주기분줗은 안전지대로 마음에 건강을 효과적으로 배가시켜주는 심리적인 기대효과를 증대시켜주는것이었다
얼마쯤으로 가늠할것도 없이 그대로 줄곳 앞을 다투어 내려오다가 보니까
소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이게된 모멘트가된 만물상바위가 있었고 그곳에서 한참을 내려오노라니까
이름만듣던 구룡폭포가 전개되었다
흰물보라를 하늘허공중에 걸어놓은 대단한 3층폭포이었다
그곳에서 한참을 구경하면서 후속부대를 기다리다가 내려왔으며 커닿란 절이있어서 올라오는사람들과 내려오는사람들의 중간기착지노릇을 하는곳이기도하였으니 거기엔 시원한생수가 있어서 지금까지 내려오느라고 애를 쓰고 목이 말랐던 하산등산회원들의 갈증을 풀어주었으며 또 올라오는사람들로 새로운 힘을 비축하기위한 생수를 마시는 사람들로 교대근무를 하다싶이 줄로 서서 맛있게 말을 마시는것이었다
목적지인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이곳에서
소금강을 유람삼아 구룡폭포까지 절반만 산행을 끝내고
버스안에서 기다리던
여덟분외에
제1착으로 오신분은 내앞에 단 한분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번째로 최종코스라고도할수있는 버스에 도착한시간은
오후3시15분이었다
진고개에 첫발을 디려놓은 시간이 오전10시였으니 꼭 다섯시간15분이 걸린셈이었다
참으로 긴코쓰이었다 그곳에서 후속부대가 다올때까지기다르는 시간은 대략두시간이었다 늦게온사람들은 일곱시간이나 걸린것이다
나의 만보기는 20,000보를 훌쩍넘었다
당일코스산행으로는 나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날이었다
산천경개를 구경하면서 앞사람들을 제치고 달리듯이 내려오는 나의 발걸음은 성큼성큼 멀리내어딛는 추월의 쾌속질주로 그동안 나의 물범벅이된 양말을 벗어새것으로 가라신었다
또 그곳 여러지방에서 오신사람들과의 색다른 동향과 사귀는 일외에 거기에 주차관리를 하시는 분을 특별히 사귀게되었다
나이가 지긋하신분이라
몇살이냐고 물으니까 72살 기묘생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정말 기묘하신분이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름을 물어보니
최백순(崔伯洵)이라하였으며 강릉최씨라고했다
그러면서 나의 이름풀이가 아주재미있는듯 4대독자에 자기는 아들셋에 딸이둘이라고하는것이었다 아주 자랑스러운 축복이었다
내가 그의 얼굴만 보아도 그럴만한 사유를 알아맞히는것은 그의 심상이 매우 정직하고 순박하다는것이 얼굴에 쓰여있다고하였더니 그는 자기는 불의를 보고는 참을수가 없노라고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온 자기주관을 알리었다
그 어렵게 산행에 고된것도 잊어버린듯 새로운 흥취로 버스는 노래자랑과 개구장이 춤들로 아주 벅석을 떨면서 여흥을 즐기니 약간은 나이가 더든 여자분인듯 이사람을 산에 올랐던 그사람들이냐고 묻고있었다
입석 원마루 송학에서 대부대가 거의 다 내리고 우리일행 네사람이 시내까지들어왔는데 오늘은 아주 다행스럽게 장락수퍼앞에서 내가내리게되니 롯데수퍼에 들려서 다시 내일아침에 먹을 부식까지 사가지고 돌아오게되는 행운을 만난것이었다
후기2제
1, 어젯밤 매우 다리가 아파서 벌떡 일어서기가 곤란스러웠다
왜? 이럴까?
장단지에 알이 배어 있는것을 발견하고 아하 이것 않되겠다 싶었다
그것은 노인봉에서 달리다싶이 뛰어서내려온 까닭이었다
줄곳내리달려오느라고 쫙쫙뻗은 다리가 늘어난것이었다
그래서 장단지에 알이 배어 딴딴해진것을 알아차리고 이것 어쩌나 싶엇다
그래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생각이 나서 곧바로
밖으로 나아가 10분간을 제자리뜀뛰기를 하였으며
이것으로는 안되겠으니 한번 더 달려서 아주 완쾌하도록 다리에 알을 풀어놓지 않으면 않되겠다는 결심으로
벌써 밤여덟시가 훨씬넘은 캄캄한밤에 시내로나갔다 그래서 시내한바퀴를 돌아서오게되니 밤열시가 거의되었다
2,오늘아침 소나무 산악회 이미지란에 들어가 보았다
노인봉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유독 나의 얼굴은 찾아낼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거기없는사유를 알만하였다
그것은 내가 제1착으로 거기올라가서 너무 오래 기다리다가
주력부대가 올라오는것을 보고서 내려와
점심먹을 자리를 펴놓은 다음에야 한참이 지나서
주력보대가 내려오는것을 보았고 또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된것을 회상하게된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려온 한참후에서야 우리회원들이 그곳에 모두 올라와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으니
내가 거기있을턱이없는것은 당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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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강원도 평창)
五臺山
옛날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수도를 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진신사리를 가져와 국내 명산 다섯곳에 나누어 모시게 되었다. 그곳들이 적멸보궁인데, 최초로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오대산에 있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수행하던 곳이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이었는데, 국내에서 흡사한 산을 찾다 보니 현재의 오대산이 눈에 띄었다고.... 그래서 그곳 중심에 진신사리를 모시고, 산이름도 청량산의 별칭이었던 오대산이라 했다. 즉, 연꽃처럼 다섯 개의 봉우리가 주변 감싸고 중앙의 연꽃심에 해당하는 곳에 진신사리를 모신 것이다. 때문에 오대산은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 제일의 명산으로 손꼽힌다.
오대산은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이라 이름붙여진 다섯 봉우리가 둥글게 자리잡고 있다. 또한 진고개를 사이에 두고 강릉쪽의 노인봉(1338m)까지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북으로는 명개리계곡, 남으로는 남한강의 발원지가 되는 동피골 우통수에서 시작해 오대천으로 이어지는 물줄기와 동으로는 송천계곡이 절경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오대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월정사지구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대웅전 앞의 팔각9층석탑(국보 48)과 석조보살좌상(石造菩薩坐像:보물 139)이 있다. 그리고 월정사입구의 전나무숲길 또한 이곳만의 자랑이다. 월정사에서 계곡을 따라 차로 십여리를 오르면 오대산 사고지를 지나 상원사에 닿는다. 월정사의 말사인 이곳에는 한국 동종(銅鐘) 중에서 일품으로 꼽히는 상원사 동종(국보 36)과 오대신앙의 발월이라 하는 문수보살상이 있고, 사찰로 오르는 길에는 울창한 노송과 나무들이 심산유곡의 정치를 한껏 느끼게 한다. 여기서부터 오대산의 계곡과 오름길들은 경사가 급해지고 계류도 폭포로 변한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상원사를 중심으로 서대사(西臺寺)·중대사(中臺寺)·북대사(北臺寺) 등 월정사의 말사들이 모여 있다. 상원사에서 비로봉을 향해 30여분을 더 오르면,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적멸보궁이 있다. 주변으로 울울창창한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신비로운 형국의 자리다. 적멸보궁에서 한시간여를 더 올라야 비로봉에 닿는데, 중간에 주목군락이 있고 정상 일대에는 눈측백나무 군락이 있어 산행의 재미가 한층 높아진다.
오대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오대산과는 별도의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 노인봉의 동쪽자락에 위치한 소금강지구다. 청학동 소금강으로 불리다가 오대산에 소속되면서 오대산 소금강으로 불리는데, 초입의 무릉계에서부터 시작해 십자소,연화담,·금강사,·식당암,·구룡연,·군자폭,세심폭,구곡담,문수담,선녀탕,만물상,만폭동,백운대 등의 명소가 즐비하다. 단일 계곡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오대산 비로봉>
<적멸보궁>
오대산의 중심 줄기인 비로봉 아래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자리에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인 상원사 적멸보궁이 있으며 그 밑에 있는 옹달샘은 용의 눈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용안수(龍眼水)라고 이름하고 그 안 골자기에서 흐르는 우통수(于筒水)와 함께 한강의 시원이라고 일러 오고 있다.
이 적멸보궁은 자장률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아 온 부처님의 정골사리(佛頭骨一片)를 모신 곳인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각 안에는 붉은 방석만 놓여 있을 뿐 불상은 보이지 안는다.
전각 뒤의 작은 언덕에 부처의 정골사리를 모셨기 때문이다. 건물 뒤 석단 위에 50cm 정도의 작은 탑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는데 이것이 '세존진신탑묘'(世尊眞身塔墓)이다.
이 자리를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는데 영조 때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박문수(朴文秀)가 팔도를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와 보고 "중들이 좋은 기와집에서 일도 않고 남의 공양만 받아 먹고 잘 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고 한다.
둘도 없는 명당에 승도들의 조상인 석가세존의 정골사리를 모셨으니 그 후손인 승도들이 어찌 잘 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뜻 이었을 게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정골과 불사리를 직접 봉안한 곳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으로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강원 인제의 봉정암, 영월의 법흥사, 정선의 정암사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오대산의 적멸보궁이 있다.
좋으신 수록을 남겨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러나 정정 해드립니다 8분은 모두 소금강 주차장에서 구룡폭포까지 등반을 실행하셨습니다 3시간의 장시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회원분들은 제천시에 거주하는 모든 분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10.08.2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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