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녀(女)
- 양성일기자
- 승인 2021.01.22 17:07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도 부여받지 못하고
무상으로 제공하는 어린이집, 유치원 문 앞도 못 가본 아이!
(사진: 김옥수 수평선)문학회원/한국청소년보호울산명맹장/청소년상담사
【울산】 우울한 아침이다. 아침 6시 폰을 열자마자 전율로 다가왔다. 엄마 손에 숨진 딸의 마지막말 “사랑해 엄마 • 아빠” !! 전 남편과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다른 남성과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살다가 성격차이로 별거중이던 엄마가 삶이 어렵다며 8살 아이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질식사 시키고 자신은 자해(自害)를 단행했다. 딸이 살해되었음을 알고 별거 중에도 딸 만을 사랑한 아빠는 그 먼 곳을 딸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다음날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죽은 아이는 아직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상태로 아빠와 함께 홀연히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 예쁜 아이는 오늘은 종일 무명녀(女)가 되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려버렸다. 나는 물 한모금도 삼키지 못하고, 보리밥조차 입에 넘어가지 않았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으니 주민등록번호도 생년월일도 기록할 수 없다. 그렇게 8년을 보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대명천지 이런 일이 어찌 일어 날 수 있는가 말이다. 아동학대, 아동살인을 넘어 인권말살이자 천인공로할 일이다.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어린이집, 유치원 문 앞도 못 가본 아이! 친구도 없이, 가족의 사랑도 없이, 퀘퀘한 방구석에서 보낸 아이! 남들 다가는 번듯한 가족외식 한 번 못 해보고, 이 땅의 어린이들이 즐겨신는 메이커 신발 한 번 못 신어보고, 초등학교 입학가방 한 번 메어 보지못한 아이! 복지인력이 넘쳐나는 행정복지센터, 국가로부터 엄청난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지역자활센터 등은 모두가 문서요, 행정이요, 절차 만이 중요하다. ‘딱하지만 우리로서는 해 줄 것이 없다는 답변들!!’ 과연 그럴까! 센터마다 익명으로 기부해 오는 천사들이 있고, 자체 운영경비 등 분명 방법은 있을텐데 보고가 귀찮고, 내 할 일 아니라서 서로 미룬다. 모두가 지네들 생식내기, 실적을 만드는 데만 혈안인 이 나라 행정풍토 하에서 이런 경우의 수에 혜안(慧眼)을 발휘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우찌 이런 일들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일어 날 수 있는가! 하루가 멀다 않고 유사한 사연이 접해야 하는지 참으로 기가찬다. 엄마의 엄마 세대로서 어떻게 해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도 우리가 먼저 가야지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기는 좋든 싫든 본인들이 낳았을지 모르나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서의 기본권, 생존권, 인격권, 교육권이 주어진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폭력이나, 구타, 괴롭힘도 더더욱 안 된다. 이 시대 엄마는 그냥 엄마가 아니다. 사명감을 안고 사는 영웅들이다.
지난 7년 간 아동청소년보호운동을 최 선봉에서 하고 있고, 아동청소년보호유해약물예방홍보를 하며 울산전역을 돌고 있고, 청년들 기 살리자는 공익연극을 주도해온 내가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 수 많은 청소년 상담으로 용기를 가져라 했었고,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사회에서 소외감을 받지 않고 멋지게 성장하도록 옆에서 무던히도 도우며 할 일을 다 했다고 자부했던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최고의 삶의 지표는 무엇인가? 초유의 코로나19 시대 한 집 건너 문 닫는 업소가 늘고 있는데 부동산버블이 남긴 후유증, 너도나도 주식으로, 주식으로 향하는 어처구니 없는 한탕주의, 사회 곳곳에 구멍이 보인다. 모두가 자기만 잘 살고 잘 먹으면 그만이라는 개인주의만 판을 친다면 제2의 무명녀가 또 생기면 우짜노!! 오늘 아침은 숭늉이라도 넘어가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