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일 오후 2시40분쯤 경기도 용인시 신봉동 아파트 공사 현장 부근에서 불이 났다. 불은 임야 3000여평을 다 태운 뒤 4시간이 지나서야 꺼졌다. 화재를 진압해야 할 용인소방서 본부가 현장에서 16㎞나 떨어져 초동진압이 늦은 게 원인이다.
인구 18만700여명의 수지를 관할하는 수지파출소 직원은 19명. 소방대원 이상순(32)씨는 “4명은 인근 영동고속도로 동수원IC로 파견나갔고 구조차도 한 대 없어 펌프차에 구조장비를 싣고 다닌다”고 말했다. 5만9000여명이 사는 구성읍에는 소방파출소도 없다.
수지 상현동은 인구 5만9000여명으로, 웬만한 군(郡)과 맞먹는다. 그런데 동사무소 직원은 동장(洞長), 운전사를 포함해 10명뿐이다. 이곳에는 하루 평균 150여명의 전입 주민을 포함해 1000여명이 찾아온다.
김남숙 동장은 “작년 말 동사무소를 개원할 때 인구가 3만5000여명이었으나, 1년 만에 2만4000여명이 증가해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며 “한꺼번에 20~30명의 민원인들이 몰릴 때는 20분 이상 민원처리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용인시 상현동 주부 곽미숙(34)씨는 작년 2살 난 딸을 분당 제생병원으로 데려갈 때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새벽녘 기관지 천식 증세로 보채는 아이를 안고 동네 병원을 찾았지만 문이 닫혀있었다”며 “1년에 2~3차례 분당이나 수원의 병원으로 달려간다”고 말했다.
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는 수지 주민들은 “갑자기 아프면 분당이나 수원으로 달려가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김영숙(金榮淑·여·53·풍덕천1동)씨는 “최근 딸애가 갑자기 아파 분당까지 차를 몰고 갔는데, 죽전사거리에서 막히는 바람에 1시간도 넘게 걸렸다”며 “119 구급차를 부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개원한 수지삼성병원 김석헌 기획실장은 “1주일에 2~3번은 인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낙상 등으로 인한 골절환자들이 실려온다”며 “수지 지역 중환자들은 대부분 시간을 다투는 경우가 많은데 의료시설 부족으로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파트 밀집지역인 상현동의 유일한 근린공원 부지는 서원중학교 옆에 옹색하게 마련된 1곳이 유일하다. 하지만 벤치와 운동기구 몇 개만 형식적으로 갖춰놓은 이곳은 인근 언덕 높이 짓고 있는 아파트에 가려 햇볕조차 잘 들지 않았다.
수지의 공원녹지 면적은 모두 18곳 12만여㎡(3만3000여평). 중앙공원·율동공원 등 95곳에 295만4000여㎡(89만3000여평)의 공원이 조성된 분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연과 함께’를 믿고 이곳에 입주한 주민들은 아예 할 말이 없다.
수지에 있는 학교는 초등학교 15곳, 중학교 7곳, 고등학교 3곳 등 모두 25곳이다. 하지만 인구가 비슷한 이천시의 53곳(초등학교 30곳, 중학교 13곳, 고등학교 10곳)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성진(辛成鎭·40·상현동)씨는 “급하게 학교를 짓느라 아파트 공사 현장 등이 그대로 방치돼 있어 아이들 등교길이 위험한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한승희(韓承姬·여·35·죽전1동)씨는 “학교 주변에 공사 차량들이 오가고 인도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태권도학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게 한다”고 말했다. 등교에 무려 40분이 걸린다는 것이다. 작년 9월 개교한 수지 D초등학교에서는 통학로가 확보되지 않아 집단 등교 거부가 벌어졌다.
수지에서 산 하나를 넘어가야 하는 구성읍 보정리 경부고속도로 서쪽엔 학교가 없다. 이곳 학생들은 고속도로 밑으로 뚫린 ‘토끼굴’을 지나 1㎞ 떨어져 있는 구성읍 연원마을의 학교로 간신히 통학해야 한다.
변변한 쇼핑센터 하나 없는 것도 큰 불편이다. 김은희(金銀希·39·풍덕천1동)씨는 “장을 보려면 큰 맘 먹고 분당 오리역 근처에 있는 하나로마트까지 가야 하지만, 주말에 한 번 가는 데만 1시간30분이 걸린다”고 말했다. 성남에서 2년 전 이사온 김미영(金美英·34·여)씨는 “동네 시장을 들러도 채소나 과일 등이 성남보다 10% 이상 비싸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여가생활을 즐길 만한 문화시설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수지와 인구가 비슷한 이천시의 경우, 영화관 8개, 공연장 2개, 도서관과 박물관이 각각 1개씩 있으나, 수지는 이들 시설이 하나도 없다. 난개발 소동 이후 3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과연 무엇을 했느냐고 용인시민들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