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능'에 신록이 깃들다, 구리 숭릉
이왕이면 아침 일찍 간다. 올해 개방한 숭릉 말이다. 숭릉은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이다. 구리 동구릉인 9개의 능 가운데 오랜 세월 닫혀 있다 올해 초 일반에 개방됐다. 그 숭릉이 첫 신록을 드러냈다. '비밀의 능'으로 가는 길은 한동안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던 아늑한 숲길이다. 아침 숲은 깊고, 새소리는 완연하다. 단언컨대 이른 아침의 숭릉은 세인들의 번잡함이 없는 고요한 능이다.
숭릉으로 가는 숲길과 정자각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숭릉의 문인석과 무인석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관람제한구역'. 문화재 보호를 위해 숭릉에 붙어 있던 오랜 꼬리표다. 동구릉 안내서를 봐도 추천 관람 코스의 맨 마지막에 놓여 있다. 태조의 건원릉, 선조의 목릉, 영조의 원릉 등 유명한 임금님들을 알현하다 보면 동구릉 산책이 다소 주춤해진다. 햇살은 뜨겁고, 능이나 능 앞에 놓인 정자각, 홍살문 등이 죄다 비슷해 보인다. 경종의 능인 혜릉쯤 오면 산책보다는 휴식에 더욱 마음이 동한다. 고요한 숲속의 숭릉은 그래서 더욱 한갓지고, 빛을 발한다. 동구릉 산책의 묘미는 굳이 능을 마주보고 서는 게 전부는 아니다. 능과 능을 연결하는 흙길이 묘미다. 이미 세계문화유산 사이를 걷는다는 대단한 가치가 그 속에 배어 있다. 오랜 세월 왕릉을 지켜냈을 고목들이 허리를 구부린 채 산책길에 도열해 있다. 전나무, 참나무, 동백나무, 소나무 등이 수백 년 세월을 함께한 왕의 신하들 같다. 숲에는 연녹색 이끼가 자라나고, 이끼 위에 올라서면 포근한 양탄자를 밟는 느낌이다. 나무 사이로 한줌 볕이 들고 길가에는 정적을 깨듯 가녀린 시냇물이 흐른다.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가 숭릉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에 서려 있다.
보물로 지정된 팔작지붕 정자각
숭릉에 얽힌 사연들은 산책길을 더욱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현종은 조선의 왕 가운데 유일하게 타국인 청나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봉림대군(효종)이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을 때 얻은 아들이다. 현종은 19세에 왕위에 오르자 임진.병자 양난을 겪으며 흔들렸던 조선 왕조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모한 북벌정책을 중단하고, 호남에 대동법을 실시하기도 했다.
숭릉 전경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보물로 지정된 정자각의 지붕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동구릉의 재실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숭릉은 쌍릉으로 돼 있다. 왕비인 명성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다. 숭릉에서 돋보이는 명물은 제사를 지낼 때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이다. 조선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팔작지붕으로 돼 있어 그 모습이 특이하다. 숭릉의 정자각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정자각 외에도 왕릉 주변 구조물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기면 왕릉 나들이가 더욱 새로워진다. 왕릉 밖으로는 시내가 흐르는데 이 냇물은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그 냇물 위 다리를 금천교라 부른다. 왕릉 앞 붉은 기둥의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이며,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참도는 왼쪽과 오른쪽의 높낮이가 다르다. 왼쪽 길은 신(神)이 다니는 신도이고,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다. 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각이 정자각 오른쪽에 있고, 왕릉 주변으로는 석마.석양.석호 등 동물 모습의 조각들이 둘러싸고 있다. 능 앞에는 무인석과 문인석이 나란히 서 있는 구조다. 숭릉의 문인석은 온화한 표정이고, 눈을 부릅뜬 무인석은 절도 있는 모습이다. 능마다 개성이 있으며, 석상들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동구릉 산책로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숭릉의 홍살문과 참도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이른 아침에 누리는 왕의 숲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왕릉은 42개의 왕릉 중 40개가 남한에 있고 그중 9개의 능이 구리 동구릉에 속해 있다. 조선 왕릉의 규모로는 국내 최대다. 하지만 500년 넘는 조선 왕조의 혼이 서려 있다는 역사적 가치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동구릉이 매혹적인 것은 울창한 숲과 자연 때문이다. 이끼 가득한 땅 위에서 자라난 나무들은 흉내 내지 못할 최고의 산책로를 만들어냈다. 태조의 건원릉에는 색다르게 억새풀이 자란다. 태조는 말년에 평소 그리워했던 고향에 묻히기를 원했기에 고향 영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봉분에 심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또 건원릉 정자각 위에는 바닥에서 절을 할 수 있도록 사각형의 돌인 배위가 놓여 있다. 정자각 위의 배위는 조선 왕릉 중에서는 이곳 건원릉이 유일하다. 문종이 잠든 현릉의 문.무인석은 얼굴 표정이 익살스럽다. 선조의 목릉 입구에는 서어나무 군락지가 자리 잡았다.
동구릉의 시냇물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역사문화관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숭릉은 꼭 이른 아침에 방문하기를 바란다. 하절기에는 오전 6시면 동구릉 문이 열린다. 방문객들이 성기게 오갈 때, 속세의 소음보다는 숭고한 정적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질 때, 숲과 능이 고요하게 품에 안기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예전에는 왕의 능을 함부로 범접할 수 없었을 테고, 왕릉과의 만남이 그리 소란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래전에 그랬듯, 수백 년이 지나도 같은 분위기에서 만나는 왕릉과 숲길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세인들은 시냇가나 잔디 옆에 돗자리 하나 펼쳐놓고 임금님이 내려주신 사후의 성은을 맘껏 누린다. 매표소 초입의 역사문화관에서 왕릉의 축조 과정 비디오를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휴일이면 탐방객들을 위한 해설이 곁들여지고 아이들을 위한 숲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이렇듯 의미 가득하고 아기자기하며 호젓한 산책로가 삶의 공간 가까이에 있다는 것 자체가 후손들에게는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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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숭릉 [崇陵]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후기 제18대 현종과 그 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 왕릉·왕비릉. 사적.
내용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674년(현종 15)에 능호가 정해졌다. 능의 제도는 국조오례의식을 따르고 있으며 석물(石物)의 양식은 장릉(長陵 : 인조의 능)을 본떴다. 왕릉과 비릉(妃陵)을 나란히 두어 쌍릉(雙陵)을 이루었고 장명등(長明燈)ㆍ망주(望柱) 등은 모두 장릉식의 화문(花文)으로 장식하였다. 망주 세호(細虎)는 형태를 완연히 갖추었으며 양주(兩柱) 모두 오르는 형상으로 조각하였다. 문무석(文武石)은 장릉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나 얼굴부분과 신체의 비율이 장릉만 못하다. 이 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令) 1인과 참봉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현종실록(顯宗實錄)』
『대전회통(大典會通)』
『문화재대관(文化財大觀)-사적편(史蹟篇) 상(上)-』(문화재관리국, 197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영웅 - 연모 (미스터트롯의 맛 임영웅 제2의 인생곡)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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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