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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금)
하루가 24시간보다 길은 날이었다.
5시 20분 기상하여 차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짐을 챙겨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는데 현대자동차 스타렉스가 정차하면서 어디를 가느냐고 한국인이 묻는다. 센트럴 버스터미널에 간다고 했더니 타라고 한다. 이른 아침에 종교 활동을 위해 이동한다는 한국인 세 명은 교회 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단다. 터미널까지 데려다 줄 수는 없고 적당한 곳에 내려준다고 한다. 안개가 좀 끼어있는 신시가지 어디엔가 내려주며 잘 가라고 하며 떠나간다. 종교의 발상지에서 교회 활동을 해서 그런지 모두들 평안한 표정의 얼굴들이었다. 아침부터 동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니 오늘은 출발이 좋다. 택시를 타고(25NIS-택시비가 비쌈) 터미널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검문검색이 철저하다. 짐검사를 통과한 후, 짐을 짐칸에 실었다. 옆에 있는 흑인 아가씨가 짐 가방을 세 개나 가지고 끙끙댄다. 함께 실어주고 차에 올랐다. 7시 정각에 에일랏(70NIS)으로 출발했다. 출발하는 속도가 빠르다. 지금까지의 버스들은 출발하며 호객행위를 했었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동쪽으로 달려 알렌비 국경(후세인 다리) 가까이 간 후,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해 서안을 끼고 2차선 도로를 계속 달린다. 차창으로 사해가 계속 따라온다. 각종 건조 지형이 차창으로 스쳐 지나갔고, 사막이 계속되었다. 휴게소에서 잠깐 정차했을 때, 통통한 여군이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쉰다. 이스라엘은 군인들이 많다. 초소 군인들은 군인답게 몸매가 날씬했고, 폼이 없는 군인들은 다른 곳에 근무하나보다. 우리 버스를 타고 근무지로 이동하나 보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마사다 유적지 밑을 지난다.
마사다는 유대 사막의 동쪽, 사해의 남쪽 끝자락 서쪽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산에 자리 잡은 고대의 왕궁이며 요새이다. AD73년 로마에 항거하던 유대인 960명이 이 요새에서 집단 자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문화유산인 이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고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사막 지형과 마사다 유적지
11:30 에일랏에 도착했다. 이스라엘의 동해 아카바 만에 자리 잡은 휴양도시 에일랏은 번화하고 휴양 온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서 이집트, 요르단으로 통행이 가능하니 국경도시를 겸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이집트 국경으로 간다. 국경은 경계하기가 편리한 좁은 해안에 설치되어 있다. 중동 전쟁 이후 점령지를 반환하면서 유리한 지형에 국경을 설정한 것 같다. 출국세 94.5NIS를 내고 엑스트라 페이퍼에 스탬프를 받았다. 여권 상에는 이스라엘에 입국한 흔적이 없는 셈이다. 이 여권의 유효기간이 다하기 전에 이란이나 레바논을 갈려고 어렵게 별지에 스탬프를 받는다. 이스라엘을 다시 볼 날이 있을까? 한편으로 섭섭한 마음도 든다. 물가가 비싸서 짧은 시간 머물다 갈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또 이집트에 들어선다. 근무자의 복장 자체가 다르다. 제대로 차려입은 근무자도 우리나라 군인 이등병처럼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찬란한 문화 민족이지만 소득 수준이 낮아서 일까 더워서 일까? 비자피를 내려고 하였더니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교대 근무도 모르나보다. 비자피를 내고 인지를 받아 입국 심사를 받으러 줄을 섰다. 창구가 두 개 밖에 없다. 사람들은 100여명 대기하고 있고, 이스라엘에서 계속 넘어오고 있다. 그런데 비자를 받아오지 않아서 못 들어간단다. 이곳에서는 입국 비자를 안 준단다. 앗뿔사 에일랏에 있는 이집트 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와야 하는데 그냥 왔다. 우린 국경에 영사관이 있는 줄 알았다. 낭패로다. 같이 온 창현이는 그냥 이스라엘로 돌아간다고 돌아갔다. 다시 돌아가 받아오려면 이스라엘 출입국을 통과하고, 택시타고 영사관 찾아가 접수하고 기다리고, 수수료 내고, 또 택시타고, 이스라엘 출국을 거쳐야 한다. 영사관에 간다고 해도 금요일 오후라 일찍 문을 닫을까봐 걱정이다. 우린 이스라엘에서 out하려고 reentry visa를 안 받았는데 싼 항공권이라 변경이 안 되어 다시 이집트로 가야한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한심해 하고 있는데 이집션이 와서 비자 발급해 준단다. 50불을 내란다.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여행사를 통해서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다 준단다.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으니 30분이란다. 이해가 안 된다. 30분에 될 리가 없는데 하고 의심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같이 온 짐 많은 흑인 미국인 아가씨도 비자가 없다며 50불을 내고 비자를 받는단다. 의심이 갔지만 갔다 오는 것 보다 훨씬 유리하니까 여권을 내주고 돈은 비자 받아오면 주기로 하고 기다렸다. 흑인 아가씨가 짐을 보아달라고 하고는, 맞은 편 벽 밑에 주저앉아 랩탑을 꺼내 컴퓨터를 하다가 가방에서 음료수를 두 개 꺼내 건네준다. 점심은 이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아침은 굶다시피 하고 점심은 건너뛰어도 배가 안고프다. 답답함 때문이다. 30분이 되기도 전에 다 되었다고 입국하란다. 출입국 관리들과 커넥션이 있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중 삼중 줄을 서 있는 옆으로 데리고 가서 관리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으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가로이 돌아다니던 또 다른 관리가 와서 무어라고 하니까 우리부터 들여보내준다. 본의 아니게 새치기를 했다. 14:10 국경을 통과했다. 국경에서 비자를 안주는 나라, 시리아 요르단 보다 못한 놈들(그러니 시리아보다 GNP가 떨어지지), 무질서하고 불친절하며, 환전 창구가 하나인데도 점심시간이라고 닫고, 이집트는 발전하기 틀렸다. 아니 발전하면 안 된다. 국민은 바가지 물가로 뜯고. 정부는 모든 입장료를 차별 징수하고, 국경의 관리들은 비자 관련해서 챙기고 전체가 도둑이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그랬을까?
이집트의 국경 지역은 타바이다.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통과하자마자 많은 세르비스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버스 터미널까지 2Km란다. 다합까지 60P에 가기로 하고 폴란드인 두 명과 출발했다. 타바 교통세(이 지역 통행세 같은 웃기는 세) 75P를 울며 겨자 먹기로 냈다. 이집트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버스터미널은 1Km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가다말고 다합에서 온 세르비스에게 우리를 140P에 인계한다. 240P(4명)에 가기로 하고 잠깐 사이에 100P를 챙긴다. 다합 기사는 다시 국경으로 향한다. 차 상태가 나쁘고 에어컨도 안 나오고 해서 폴란드인은 버스타고 간다고 하면서 내린다. 우리 둘만 남았으니 이 기사도 화가 났다. 아까 그 기사를 찾아가 싸움을 한다. 주변 기사들도 무어라고 거든다. 돈을 얼마간 돌려받고 손님을 받으려 했지만 텃세에 눌려 그냥 출발하다가 다시 폴란드 인들을 50P에 태운다. 우리도 50P 해줘야 한다니까 그렇게 한단다. 시간은 까먹었지만 10P 절약했다. 결국 15:10 출발했다. 타바에서 누웨바까지는 두 번째 가는 길이라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누웨바에서 다합 가는 길은 해안을 따라 가다가 시나이 산으로 가는 큰 산을 하나 넘어간다. 성카트리나 계곡에서 불어온다는 시원한 바람 속에 기사는 열심히 지형을 설명해 주며 사진을 찍을 것이냐고 묻는다. 우리 모두 사진에 흥미가 없어서 그냥 지나치는데 칼라샌드, 사구, 낙타바위 등등을 알려주며 관광 가이드인체 한다. 17:30 다합에 도착했다. 너무 친절해서 팁을 주고 내렸다. Octopus garden resort에 숙소(90P)를 정하고 sun restaurant에 가서 짬뽕밥을 먹었다. 아직 해가 중천이지만 에어컨을 틀고 한 숨 잔다.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만난 한국인 부부(LG해외상사 출신)를 해변 식당에서 다시 만나 맥주를 마시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퇴 후 여행을 한다는데 그동안 많은 여행을 했단다. 이번에는 지역 상사에서 여행을 안내하여 터키에서 이집트까지 편하게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돈도 있는 것 같아 부러워 보였지만 능력에 따라 행복의 지수를 달리해야 할 것 같다. 헤어져 달걀 라면 등을 사가지고 들어와 12:30 잠을 청한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다합 해변의 밤
8월 15일(토)
짐을 정리한 후 세탁을 해서 널고 해안으로 나갔다.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 바다로 드나들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누울 수 있는 beach seat에 앉았다. 열대어와 산호를 관찰하다가 출출하여 피자를 시켜 먹고, 그늘에서 쉬다가 또 바다에 들어가서 바다 속을 관찰한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인 것은 햇빛의 각도와 물결 크기의 그림자가 다르고, 열대어의 종류와 움직임이 다른 탓일 것이다. 멀리도 가보고 주변 해안을 돌다보니 페트라에서 만났던 대학생과 다마스쿠스에서 만났던 대학생들이 스킨스쿠버 강습을 받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행복한 젊은이 들이다. 5시에 돌아와 사워하고 저녁을 먹으로 나갔다. 해변 식당에서 즉석 요리로 식사를 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맛있게 먹었다.
즉석 코프타 만들기
기념품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 뒤 들어와 짐을 챙겨 놓은 후 속소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영어가 짧아 일반적인 이야기이지만 시간을 때우기는 좋았다. 대추야자를 따 먹어가며 밤이 깊어갔다. 밤11:30 15인승 미니밴이 왔다. 출발지점을 우리 숙소 앞에서 해야 한다고 수차례 부탁한 결과 숙소에서 배려해 준 덕분에 우리 네 명(LG부부)이 앞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바퀴 돌아 손님을 태우고 관광경찰서에 갔는데 카이로에 간다는 경찰이 한명 탄다. 경찰 덕분에 검문없이 잘 달린다. 누웨바에서 수에즈 쪽으로 통하는 길이 통제되어 타바를 향해 북으로 달리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잘 달린다.
8월 16일(일)
3:30 휴게소에 들렸다. LG부부로부터 홍차 한잔을 얻어먹고 또 달린다. 수에즈 운하가 가까워 오면서 도로가 넓어졌지만 화물차가 많이 다녀 노면이 좋지 않다. 배를 탄 듯 한 흔들림 속에 아침이 밝아온다. 안개 속에 흐릿한 수에즈 운하를 지나간다. LG부부는 카이로에서 기다리는 사람과 계속 통화한다. 6:50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카이로 공항 입구에서 내렸다. 택시(30P)를 타고 2청사에 도착했다. 돈이 좀 남아 스낵바에 들려 값을 물으니 콜라 15P(보통 3~4P), 과일 주스 50P(보통 10P)란다. 도둑이 여기 또 있었네. 싸가지고 온 달걀과 과일,코프타를 먹고 기다린다. 티케팅 홀 입구는 시간이 안 된 승객은 막고 통제한다. 가까운 곳에는 화장실도 없고 엉망이다. 10:00 시간이 되어 입장하려 해도 National express(공항에서 화물을 취급하는 회사인 듯) 직원들이 이집트인들의 짐인지 돈을 주는 손님의 짐인지 새치기를 하면서 끼워 넣어 입장이 안 된다. 짐 검사가 밀리니까 사람도 정체되고 엉망이다. 국제공항이 이러니 다른 관광지가 어떤지 상상이 되시리라 믿는다. 새끼들, 더러운 놈들, 정이 안 간다. 짜증이 났지만 이들식 대로 따라 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티케팅 홀에 들어왔는데 옷 갈아입을 곳이 없다. 화장실도 없고 좁다. 할 수 없이 입은 대로 한국 가기로 하고 짐을 부쳤다. 출국 신고도 엉망진창이다. 줄을 서기는커녕 대기선도 지키지 않는다. 우리 줄에 있던 사람 중에 쿠웨이트인들이 앞에 서 있어서 부러운 나라라고 하니까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들은 선을 지키며 순서대로 출국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인도 안 지킨다. 남자 하나에 일부다처의 식구 여러 명이 따라 들어간다. 이집트인은 정말 개판인데 교육 문제이겠지 하면서도 여기는 이런 문화인가보다 하고 단념한다.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면세점은 밖의 상점보다 비싸다. 대한 항공에 탑승하고 나니 승무원들이 반겨주어 집에 온 것 같이 포근하다. 일본인 단체 팀이 두 팀 탔다. 출발하려고 움직이다 말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기관에 이상이 발견되어 2시간 정도 정비를 해야 한단다.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경제신문을 하나 다 보면서 기다렸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방송이 나온다. 일본인은 방송을 할 때마다 가이드가 설명해준다. 일본인은 잠자코 있는데 한국인들이 불평을 한다. 5:40 예정 시간보다 약 5시간이 넘은 후 이륙했다. 정비가 잘 되었다니 다행이다. 지상에서 공급하지 못한 주류를 벨트 시그널에 꺼지자마자 공급한다. 불만에 싸인 승객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웃음과 함께 요구하는 대로 준다. 옆의 일본인 청년은 맥주를 종류를 바꿔가며 벌써 4캔 째 시음하듯 먹는다. 우리도 와인으로 취기가 오를 때까지 먹고 잠에 빠졌다.
타슈켄트에서는 어둠속에 내렸다 타고 다시 이륙했다. 어둠속에 중앙아시아를 지난다.
8월 17일(월)
중국 상공을 지날 때 그간 잊고 살았던 일들이 부팅 창 위에 하나, 둘, 셋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들, 딸, 며느리, 손녀, 장인, 장모, 직장, 여행비 펀드 등등 머리가 복잡해진다. 황해 상공을 지나면서 모든 창이 다 열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머리가 바빠진다. 그래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에만 매여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달 동안 재충전한 심신으로 또 한 학기를 시작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한반도의 윤곽선이 보일 때는 대한민국의 감사함과 녹음으로 짙게 보이는 국토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작지만 비가 많이 내려서 수 많은 종류의 식생이 자라 모래바람이 없는 나라, 사계절이 있어 계절의 변화 속에 일 년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나라, 가난의 나라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해 국민소득 2만 불에 도달한 나라, 세계 속에 IQ가 높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민족적인 당위성으로 평화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나라, 세계 경제 위기 속에 제일 먼저 벗어나고 있는 저력이 있는 나라가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다. 혼자서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올 겨울에 갈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기대한다.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연착하여 죄송하다며 할인권을 나누어 준다. 다음 탑승 때 사용할 수 있는 할인권인데 얼마나 이용할는지는 모르지만 기분전환용이다. 선물은 돈이 들어가니까 이용자에게만 요금을 할인하면 되는 돈 안 드는 할인권을 발행한 것 같다. 건강신고서를 제출하고, 이집트 복장을 한 것과 어려운 경제상황에 여행을 다녀와 미안한 마음으로 입국관리소에 여권을 내밀었더니, 기다릴 새 없이 입국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어 또 한 번 선진국 대열에 섰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외국인들의 입국 창구를 바라보았더니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배낭을 찾아 대한항공 리무진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쯤 이었다.
이렇게 해서 한 달간의 중동 4개국 여행이 끝이 났다. 늘 새로운 곳에 가려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지만, 막상 여행이 시작되면 두려움보다 설렘으로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걱정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안 되면 일정을 변경하면 되고, 여권과 돈, 항공권만 있으면 정해진 날에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가면 될 일인데 Don't worry, Be happy가 아닐까?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많이 하고, 가지 못하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고 권하기만 해 미안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많은 사람에겐 돈이 부족하고, 돈이 많은 사람에겐 시간이 부족(배낭여행을 할 만큼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퇴직 후에 세계 배낭여행을 간다는 것은 건강이 허락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돈은 쓰는 사람이 쓰는 만큼 부자’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또 여행을 가기로 하고 이번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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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동안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끝까지 변변찮은 여행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글쓰기에는 둔한 편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아는 만큼 써 진다는 것을 또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 여행기를 올리기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네팔은 어느 분이 올려야 할까요?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여행 같이 한 느낌^^
안나푸르나 함께 하지 못해 서운합니다. 누군가 글을 올릴 것입니다.
좋은 그림 많이 보고 즐기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