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단어 ‘작살’.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작고 예쁘장한 꽃은 숲속의 초록빛이 한층 짙어지는 유월 들어 얼굴을 살포시 내밀기 시작한다. 장마가 시작되는 유월과 뜨거운 칠월을 지나 팔월의 뙤약볕 아래서도 작살나무의 꽃은 여전히 피고 짐을 계속한다.
여리여리한 가지에 잎겨드랑이마다 연보랏빛 깨알 같은 꽃들을 촘촘하게 피워내는 작살나무는 꽃이 지면서 햇 열매를 맺고 또 새로운 꽃을 피우니 한 가지에서 ‘꽃망울-꽃-열매’라는 세 가지 성상을 함께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한창 벌어지는 풍경이다.
‘작살나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완전히 망쳐지거나 결딴나다’, ‘완전히 깨어지거나 부서지다’, ‘거의 죽을 지경으로 혼나거나 맞다’ 등으로 살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짐승이나 물고기를 찔러 잡는 데 쓰는 기구인 작살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니 또 다른 의미의 단어 ‘작살’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작살나무의 가지는 서로 마주나면서 중심 가지와 벌어진 각도가 40도 정도로 고기잡이용 작살과 비슷한 모양이다.
좀작살나무 겨울 열매
작살나무(Beauty berry, 紫珠, 紫式部)는 마편초과의 낙엽 떨기나무로 중국에서는 작살나무 열매의 아름다움을 ‘보라 구슬(紫珠)’로, 일본 사람들은 불과 스물다섯의 나이에 과부가 된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과 같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로 부른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아끼고 사랑했던 작가의 이름을 작살나무에 그대로 붙인 것인데 보랏빛 아름다움과 썩 잘 어울리는 낭만적인 이름이다.
봄부터 푸르름이 무성한 여름 산행까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작살나무는 열매가 익어 가는 가을에 들어서야 조금씩 정체를 드러낸다. 보라색 구슬이 빛을 발하는 철이라 그렇다.
꽃망울-꽃-열매
전국 산야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작살나무지만 다 자라도 사람 키를 조금 넘는 정도의 작은 나무다. 줄기는 대체로 개나리처럼 길게 늘어져 나긋나긋하다. 그런 작살나무는 단지에서도 여지없이 진가를 뽐내는데 초가을부터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을 지나 흰 눈 내리는 겨울까지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보라색 구슬을 송골송골 매달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고운 자수정 빛깔을 그대로 쏙 빼닮은 작살나무 열매는 걸작임이 틀림없다.
좀작살나무 꽃
가을이 깊어지면서 지름 2~5mm 정도의 동그란 열매가 익는데, 그 열매는 혼자가 아니라 가녀린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수십 개씩 올망졸망 붙어 있다. 그렇게 자수정 구슬은 낙엽이 진 앙상한 가지에 삭풍이 휘몰아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겨우내 단지의 조경을 책임진다. 루비 같은 화살나무 열매와 빨간 사철나무 열매와 더불어….
좀작살나무
작살나무와 좀작살나무는 언뜻 봐서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이름에서 보듯 ‘좀’ 자가 붙었으니 ‘작다’라는 의미에 걸맞게 열매는 작살나무에 비해 2~3mm로 작다. 그리고 잎의 가장자리 절반가량만 톱니가 있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좀작살나무다. 간혹 우윳빛 열매인 흰작살나무도 있지만 자수정 구슬과 댈 것이 못 된다.
흰좀작살나무 열매
※ 관리 포인트
- 가을에 씨를 따서 땅에 묻어두었다가 봄에 심거나, 풋가지꽂이 또는 반숙 가지꽂이로 번식한다.
- 습기가 많은 구석진 곳을 좋아하지만 조금 메마른 땅에 심어도 잘 자란다.
- 그늘이나 건조한 데서도 잘 자라며 추위와 공해에도 강하므로 바닷가나 도심지에서도 개화와 결실이 잘된다.
- 대체로 병충해에 강하나 잎 뒷면에 응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제때 방제한다.
- 홀로 심거나 관상수, 산울타리로 적당하며 큰키나무 아래에 심어도 좋다.
출처 : [조길익의 조경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