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2021.1.27.수.
■코스:오산면사무소-봉동리-오지봉(482.3M)-매봉(427.5
M)-Back-가곡리5층석탑-가
곡리 마을회관-오산면사무소
(원점회귀)
■구간거리/평균속도:별첨
■후기: 두 산 모두 백아산과 괘
일산-설산ㆍ고리봉 등 조망은 좋았습니다. 첫구간 들머리 부
터 오지봉은 약 2.5KM 구간 중
, 막바지 500여 M 구간이 길이 묵었고, 특히, 매봉은 정상 표지
석과 삼각점도 없는데다가, 정
상 부근의 700여 M 구간이 산
객들의 방문이 뜸해서인지 등산
로가 묵어 진행이 어려웠기에, 본 코스는 비추입니다. 대신, 가
곡리 마을회관에서 오지봉으로 올라 Back하여 매봉을 오르지
말고, 가곡리 5층석탑 코스를 택하신다면 이코스는 권장합니
다. 아울러, 해당 지자체에서 등
산로 관리를 너무 소홀히 한 느
낌이 들어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가곡리오층석탑(보물
1,322호)을 보자마자 산행 중 고생했던 기억도 사라졌으며, 혹시 여건이 된다면 본 코스 등
산은 차치하고라도, 오층석탑은 한번쯤 방문하시기를 추천합니
다. 귀광길에 담양 고서면에 위
치한 후산리 은행나무와 명옥헌
원림을 다녀왔는데, 수백년 묵
은 은행나무와 수백년 묵은 베
롱나무 숲이 너무나 인상적이었
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명승지 58호인 명옥헌원림 베롱나무 숲 원림은, 수백년되어 올록볼
록 혹이 나고 구멍난 고목나무
로 이루어진 수십그루의 베롱나
무 숲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
라서, 베롱나무꽃 만개 시기인 7~8월에 방문하면, 큰나무이기
에 꽃수가 많은 나무에서 피어
나는 연분홍빛으로 흐드러지게 핀 베롱나무 꽃 잔치를 맘껏 볼 수 있겠습니다.
■차기 산행 후보지: 1.30.토/
거창 거열산성 망덕산-망실봉-관술봉-망설봉-옥난간산
■산 소개:
○오지봉(梧枝峰)-매봉: 호남
모후검장단맥에 속한 산으로 호
남정맥 연산에서 분기하며 흐르
다 차일봉으로 가기전 도면상 삼각점이 있는 △643.9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곡성군 오산
면과 겸면의 경계를 따라 하늘
재(370M)-검장산(△485.7M)
에서 서남방향으로 작산(588.
1M)을 떨구고 서북진한다. 6번
군도 산이재-매봉에서 서남방
향으로 오지봉(△482)을 떨구
고 북진하여 진등산 어깨-호남
고속도로로 내려가 용두마을 지
나 옥과면 리문리 옥과초교 건
너편 통명산이 발원지인 삼기천
이 백아산이 발원지인 옥과천과 합수점에서 끝나는 약 10.7km
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
산줄기이야기]
○가곡리 오층석탑: 곡성 오산
면 가곡리의 오층석탑은 보물 제1322호로 고려시대에 건립
된 일반형 석탑의 양식과 충청
도와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건립되던 백제계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백제 옛 터에서 나타나는 백제
계 석탑이라고 알려져있다. 또
한 가곡리 5층 석탑은 가곡리 마을 언덕에 서 있는데, 절은 없
고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탑
신과 기단이 온전하게 남아 있
어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었다
고 한다. 탑은 5층 구조로 기단
부·몸돌·지붕돌의 조각 수법이 정연하다. 백제계 탑 기법을 전
승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탑이 세워진 시기는 고려 전기 또는 중기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곳
에 있던 절과 탑의 정체는 아직 미스터리지만, 보존상태가 완벽
하고 예술성이 뛰어나다. 구전
에 의하면 이곳에 개사라는 절
이 있었다. 현존하는 5층 석탑
과 기와 파편 등으로 미뤄볼 때, 이 절은 고려 중기 이후까지 존
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
의 학자 신덕린(1330~1420)
의 제실과 묘소가 잡고 있는 것
으로 보아 절은 그의 묘를 조성
하기 이전에 없어진 것으로 보
인다. 고려말 조선 초기, 왜구의 침탈이 극에 달해 곡성이 초토
화 되었다는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그때 소실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는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명옥헌 옆에 있는 은행나무로 전남 기
념물 제45호이다.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키
가 30m에 달하며 흉고지름 7.7m, 수관폭이 동으로 10m,
서로 10m, 남으로14m, 북으로 9.5m의 노거수이다. 확실한 나
무의 나이는 알 수 없으나 300
년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후
산리 은행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조선 인조가 왕위
에 오르기 전 지금의 호남지방
을 두루 둘러보던 중 후산에 살
고 있던 선비인 명곡(明谷) 오
희도( 吳希道:1583∼1623)라
는 사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명곡의 북쪽 정원에는 은
행나무가 있었고 명옥헌 뒤에는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인조는 타
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맸다
고 한다. 그래서 이 은행나무를 일명 ‘인조대왕(仁祖大王)의 계
마행(繫馬杏)’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오동나무는 고사하여 없어
졌고 은행나무만 남아 있다. 은
행나무의 오른쪽으로는 민간 정
원으로 손꼽히는 오희도의 생가 터가 있다. 조선 중기 오희도가 이곳에 자연을 벗삼아 살았는데 그 후손들이 이 장소에 명옥헌
을 지었다고 한다.
○담양 명옥헌 원림(潭陽 鳴玉軒 苑林)은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정원이다. 2009년 9월 18일 대한민국 명
승 제58호로 지정되었다. 백일
동안 핀다고 흔히 ‘백일홍’이라
고 하고, 껍질 벗은 가지를 손으
로 간지럽히면 가지가 떨려 ‘간
지럼나무’ 또는 ‘자미화’라고도 한다. 이 배롱나무로 조경을 한 민간정원이 담양 명옥헌 원림
(鳴玉軒 苑林)이다. 유독 담양
에 유명한 정자들이 많은 것은 이곳에 많은 선비들이 은거했기 때문이다. 명옥헌 또한 조선시
대 오희도(吳希道, 1583~
1623)라는 사람이 어지러운 세
상을 등지고 들어와 수학하던 곳에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뜻
을 기려 조성한 정원인 것이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만발한 배롱꽃을 담양 명옥헌 원림에서 만나본다. 이곳은 오희도(1583
∼1624)가 자연을 벗하며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1652년 무렵에 명옥헌이라는 정자를 짓고 정자의 앞뒤로 네
모난 연못을 파 주위에 꽃나무
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이
름난 정원이다. 명옥헌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물 흐르는 소리
가 옥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다
고 하여 붙여졌다. 명옥헌은 앞
면 3칸·옆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이다. 정원 안에는 배롱나무와 붉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연
못 위쪽의 시냇가에는 ‘명옥헌 계축’이라고 새겨진 바위도 눈
에 띈다. 담양 후산리 명옥헌원
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구
조를 가지고 있어 조선시대 중
엽의 정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
가 되고 있다. 이곳은 오희도(吳希道)가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1574∼1615
)이 명옥헌(鳴玉軒)을 짓고 앞, 뒤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
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
꾸었던 이름난 정원이다. 정원
의 면적은 1,386평이며 명옥헌
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이다. 못 주위에 배룡나무
를 심었고 시냇가 암벽에는 '명
옥헌계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 있다. 명옥헌 뒤에
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지내던 도장사(道藏祠)의 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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