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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길
댓글에 회장님께서 석죽길이라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천화대 끝에서 오르는 "석주길" 이라
생각됩니다. 바위가 대나무끝처럼 생겨서 석죽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코스 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갓었는데 한번더 글을 남기겠습니다..
------- 산행기와 사진을 올립니다 ------ 참고 바람
설악산 석주길을 오르며
일정:2005.6.12. 일요일
시간:관동사무실 07:00
산맨: 이요균.이재관.김광식.이종수.이권수.함영은
코스:설악산 소공원- 비선대-설악골-석주길-희야봉-설악골-소공원
산행 : 소공원08:00~~ 석주길 ~~소공원 19:00
이른 아침 부랴부랴 사무실로 달린다. 어제밤 서울서 온 친구 가족이랑 늦게까지 과음한것이 아침을 설치게 한다. 권수형님의 전화는 사무실 거의 다와서 받았다. 사무실 키를 갖고 있길래 연락이 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천화대 석주길이다. 자일이랑 안전 벨트를 챙기고 출발한다. 관동회원 5명과 광식형님의 속초 친구분 해서 6명으로 일행이 구성되었다.
소공원을 출발해서 비선대를 거쳐 설악골 골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참을 걷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보이는 산 봉우리는 저멀리 공룡능선의 나한봉뿐이다. 어디까지 가는지도 모른다. 석주길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천화대 '석주 길' 에 얽힌 이야기
천화대(天花臺)는 천 가지 꽃이 핀 듯 아름다운 절벽.
릿지 등반으로 설악산을 찾는 산악인에게 인기 있는데
여러 코스 중 하나인 '석주 길' 동판이 유독 눈길을 끈다.
60년대 말 요델 산악회의 송 준호 엄 홍석 과 신 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이고 친구이자 연인사이였고
어느 한 가지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 늘 함께 다녔다.
결국 송 준호는 세 사람의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물러서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 곁을 홀연히 떠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연인이 된 두 사람에게는 비운이 찾아온다.
설악산 천당 폭 빙벽을 오르던 신 현주가 실족하자
확보를 보던 엄 홍석은 그녀의 위기를 직감하는 순간
자신의 몸을 빙벽 아래로 날려 그녀 추락거리를 줄였지만
그 추락하중을 못 견뎌 빙벽에 설치한 확보물이 빠져나가며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로 추락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설악산에서 숨진 산악인은 대부분 그러하듯
두 사람 시신도 설악산 자락의 노루목에 묻힌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산악인 묘지이기도 한 그곳
그 후 송 준호는 1969년에 천화대에 바윗길을 개척하고
개척자가 새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고유권한의 관례에 따라
고인이 된 두 사람을 못 잊어 '석주 길'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엄 홍석'의 석 字와 '신 현주'의 주 字를 따서 명명된 이름이다.
그 후 송 준 호 역시 1973년 초에 '토왕 폭'을 오르다가
실족사고로 인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따르게 되고
후일 송 준호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가 남긴 엽서 한 통이 발견된다.
..........................................
받는 이 : 석주
주 소 : 목(노루목)으로
보내는 이 : 준
주 소 : 벽에서
..........................................
'잘 있었나.
그동안 나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네.
내일 벽과의 감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네.
아니면 자네 품으로….
(이하 생략)
지금 세 명은 노루목에 묻혀 있다.
아래는 묘지 충혼비에 새겨진 글이다.
- 아 래 -
시간과 존재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우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써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는 이들의 교훈이 될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그 대담한 의지로
그대들은 설악에서 회생하리라.
--- 청주백두산장산악회 ---
계곡을 오르다가 큰 바위에 '석주'라고 방향이 씌여져 있고 좀더 오르면 넓은 비박지가 나오는데 마지막 물을 보충하며 능선을 오른다. 5분여를 오르니 바위가 나오면서 비로서 석주길의 암릉이 나온다. 주위를 보면 공룡능선이며 마등령 정상과 비선대 적벽이랑 금강굴이 보인다. 이곳에서 자일을 확보하고 안전하게 조심스럽게 오른다. 이제야 릿지의 맛을 보는구나...난이도는 쉽게 오를수 있으나 선배님들의 안전을 위해서 자일을 권수형님이 묶고 선등을 하신다. 자일은 물론 막내의 몫이다. 오늘 나와같이 생사고락을 같이할 소중한 파트너이다. 지난번 칠성봉을 오를때도 나와 한몸이 되어서 이젠 친구이상으로 친근하다.
한고개를 올라치니 제법 저멀리 울산바위까지 보인다. 천화대 릿지 바위들도 보인다.흑범길,염라길..칠성봉도 보이고 화채봉 이젠 제법 많이 올라 왔다. 칼등 바위는 엉덩방아찧듯 조심스레 건너지만 아래 낭떠러지 밑을 보니 손에 땀이 난다. 긴장이 가득, 발길도 떨어지지도 않지만 스릴도 만껏 누린다.
초입부터 긴장되는가 쉽더니 바위길을 서너번 올라가니 제법 넓은 지대가 나온다. 1시간을 올랐다.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찍고 ... 위에서 밑으로 올라온 바위를 보니 별것 아닌것 처럼 느껴진다. 이젠 천화대 봉우리들이 더 가까와진다. 저멀리 우리가 가야할 봉우리는 조그많게 보인다. 계속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고 우리를 지치게한다.땀은 나오는데 어제밤에 마신 술인지 땀인지 비오듯 쏟아지는데 재관형님은 나한테서 술냄새가 난다고 하신다. 아직 까진 그리 어렵지 않은 릿지길이다. 자연경관도 구경하면서 설악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만끽하면서 언제다시 와서 이렇게 좋은 구경하노라면서 디카를 연신 누른다. 30여분 오르니 밑은 낭떠리지고 왼쪽은 붉은 벽이 우뚝 서있고 저앞에 바라보이는 세개의 봉은 왼쪽부터 희야봉이고 중봉이랑 천화대의 백미인 범봉이 기세등등 우뚝 서있다. 이 광경은 중국의 황산에서나 봄직하다. 일행들은 이광경에 모두 함성을 지른다. 희야봉 사이는 우리의 하산길이지만 사람들이 보인다.그들은 중봉을 올라 범봉을 릿지할 사람들인가 보다. 12시 30분 휴식도 취하고 넓은 바위 위에 오늘의 진수성찬 점심을 먹기로 결정한다. 신선들이 고산에서 기암절벽 바라보고 기세등등한 산봉아래 손에 부채들고 노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오늘 우리일행들은 신선님들 못지 않은 여유를 부리는지 모른다. 어디가던 한번은 절경이 있고 발길 떨어지지 않는 명당이 있다.지난번 토왕성폭포 정상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따사로운 오후를 만끽하고 시간을 마냥 잡아두고 싶은생각이 들었는데 이곳이야말로 동서남북 사방이 황홀하니 무릉도원이 아닐까.. 이곳은 사진 배경도 좋아 독사진도 찍고 단체사진도 찍고 나혼자만이 간직하고 보고싶은 맘에 연신 누른다..
휴식도 취하고 배도 부르고 신선도 되었으니 이젠 두 다리를 구름과 바위 위에 올려야 겠다 . 1시에 출발하여 붉은벽을 올라서진 못하고 우회를 한다. 역시 만만치 않다. 밑은 낭떠러지이고 어름풋이 바위틈으로 손을 넣고 개걸음으로 버티어 가면 한달음에 건널수 있지 안전을 위해서 자일 확보하고 건너오니 이젠 내려가는 길도 자일 확보한다. 권수형님은 앞서가면서 "영은아 .. 자일 챙겨라" 하시곤 저멀리 가신다. 어차피 자일 담당은 나였지만 오늘은 "막내야.." "영은아.." 소리가 많이 들린다. 붉은벽을 돌아 오르니 붉은벽은 두개의 직벽으로 되어잇으며 슬링도 걸려 있었다. 저위로 걷는 사람들은 다리를 덜덜덜 떨었을까 아니면 스릴을 즐겼을까? 범봉의 뿌리 바위들은 기암괴석에 직선으로 비스듬히 내리운것 또한 절경이다.
천화대와 석주길이 만나는 희야봉 오르는 흙길엔 에델바이스가 많이 자란다. 지척에 우뚝 서있는 바위의 모양은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이다. 설악산에는 천차만별 사물의 형상을 갖춘 모양들이 많아 눈을 즐겁게 해준다. 아무쪼록 산은 우리의 눈들은 넘 피곤하게 한다. 이렇게 긴장을 풀다간 아차하는 순간에 사고가 나는 법이니 조심들 해야한다. 이젠 희야봉 초입을 접하니 권수형님이 영은이 탑을 기회줄테니 해보란다. 생각엔 바위 위를 오르면 될것 같은데 침니로 오르시란다.
암벽은 양쪽으로 갈라지고 침니가 있는데 내몸 하나 들어가면 딱 맞을것이다. 자일을 허리춤에 묶고 양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오르라는 요균형님의 가르침을 받고 기를 쓰나 쉽지 않다. 무릎대지마라 하시지만 '첨으로 오르는 초보가 어디 기술이 있을것이요 오직 힘으로 버티고 오를 뿐이다' 생각하고 중간지점 오르니 이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야 하는데 배낭도 꽉기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평소에 배살좀 뺄것을 후회하면 무엇하리. 2미터 높이를 이젠 팔힘으로 버티고 오르는 수밖에 없다. ㅎㅎ 어쩧튼 올랐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자일 확보 하고 권수 형님은 빌레이를 보신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이 천화대도 탐을 내본다. 왕관봉를 최대한 디카로 당겨서 찍고, 내 머리에 왕관을 쓴 왕이된 기분이다. 여유를 부리고 있을때 선배님들은 힘들게 오르신다.
마지막 희야봉의 정상은 못 오르고 옆으로 우회하여 가는데 이젠 마지막 난코스다. 밑은 천길 낭떠러지 모두 긴장한다. 4미터여를 오르면 완만한데 밑이 아득하다보니 안전을 위해 위에선 권수 형님이 수고하시고 밑에선 요균형님이 확보 해주셔서 안전하게 오를수 있었다. 옆으로 살짝 돌아가니 희야봉 중턱이다. 왼쪽 광경은 칠형제봉이 우뚝 서 있어 웅장함을 과시하고 정면은 중봉이 딱 버티고 밑은 20여 미터의 절벽이다. 석주길 동판이 있는 이곳으로 내려 가야한다.
권수형님과 요균형님외 일행은 하강이 처음이다. 슬링에 자일을 두줄로 걸고 팔자하강기에 확보하고 천천히 조심스레 내려간다. 오른손으로만 자일을 조금씩 풀고 엉덩이 쭈욱빼고 벽과 직각을 이루라고 밑에선 소리 치셔도 자일 잡은 왼손은 힘이 들어가며 떨어지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그래도 멋있게 하강을 해야한다고 생각은 드는데도 몸과 맘이 따로 움직인다.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웃음이 나온다. 별것 아닌데 괜히 쫄았다는 생각이 든다.
밑에서 바라본 석주길 동판을 보니 참으로 안타까왔다. 60년대의 산악장비가 지금 처럼만 발달되어 있어도 그들의 고귀한 목숨은 잃지 않았을텐데.. 그들의 개척이 있었길래 지금의 우리가 편하게 석주길을 맛볼수 있어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오후4시 힘든 석주길 릿지는 모두 안전하게 종료되었다. 이젠 하산만 하면 설악골에서 라면에 하산주가 반겨줄텐데 단숨에 내려 갈려고해도 하산은 오를때 보다 더 힘든다. 경사길이 만만치 않아 발에 힘이 들어간다. 한시간여를 걸어 시원한 설악골 물이 있는곳에 베이스캠프를 친다. 오늘의 산행을 소주와 라면에 넘어가는 설악의 햇살을 바라보며 하루의 힘듬을 다 씻어 버린다.
글로 설악의 아름다움을 아무리 맛깔스럽게 표현해도 직접 눈으로 보기전엔 그 황홀함을 표현 못하리라..
톱으로 선 권수형님, 후미에서 자일확보해주신 요균형님, 광식형님, 종수형님, 재관형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형님들 아니었으면 석주길은 엄두도 못냈을 겁니다. 그래도 하산주는 동동주에 감자부침이 최고죠..도토리묵은 옵션. 비선대에서 마신 동동주는 아주 달고 갈증을 해결해 주어 맛있었습니다. 이 맛에 산에 가는 것이 아닐까요?
석주길(2005.6.12)
나무다리건너 계곡으로
석주길 오르기전에 브리핑
엉덩이로 바위등을 건너야한다
여기가 어디노??? 희야봉과 범봉이 보이네
천화대 릿지길
천화대 왕관봉
불안하게 앉은 새바위
정상에 오른 자만이 맛본다
탈출로 하산길
하산후 계곡에서
첫댓글 영은아우 벌써3년이 흘렀구나 새삼그때감격에 다시돌아가보련다 좋았지 감사하구요
내가 갔던 그길이 맞구만...석죽길이 아니구 석주길이구만
안내글과 사진을 보니 우리 초보자는 엄두도 못 낼 코스인것 같습니다. 암벽을 타고 정복한 그 기분은 과연 어떠했을까? 사진으로만 봐도 벌써 소름이 쫙 엄습 해 오는 기분입니다. 우리 사무국장님 그러고보니 베테랑이십니다. 사무국장님 화이팅!
다시 한번 가봅세~~석주길 --맞어 들은 적 있어
사진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산은 그런 것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