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평양 방문 김일성 대학을 방문하여
국제 외교무대에서 외교관이 서로 교류하는데 그리스도문화와 전통을 숙지하는 것이 상식인데 현재 북의 외교요원들은 이점이 부족하다고 보는데 새로운 외교성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교문화와 전통에 대한 안내 교육방안은 무었인가? ㅇ 요원의 선발: 김일성대학생으로 민족주체성과 당성분이 투철하고 그리스도교문화와 전통에 관심이 있는자를 선발. ㅇ 요원의 교육: 이창재가 교원이 되어 주체신앙과 그리스도교 특히 현대 세계 및 각국 가톨릭 현항중심으로 안내 강의할 것이라는 기본구상에 우리는 합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김일성대학 역사학부안에 종교학 강좌를 개설하기로 하고, 다음날 김대를 방문하여 부장교수를 만났다. 김대에서는 학생선발을 맞고 나는 미국에 돌아와 관계교재자료를 북경우체국 국제사서함을 통하여 최 참사에게 우송하기로 약속하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나는 매년 6개월 동안 김대 강사로 북에 체류하기로 약속한 다음, 큰 기대감을 간직한 상태로 미국에 귀환하였다. 김일성대생중에서 당성이 투철한자를 선발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새로운 교육의 결과로 그들이 그리스도교사상으로 전향하지 않게 하겠다는 보중이며, 나 또한 요원교육의 교원으로서 우리조상들과 함께 조국의 사명과 조선천주교회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그리스도교문화와 전통을 안내 교육할 때 가급적이면 전향적으로 강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임하는자세였다.
나는 우선 내 책장에 소장하고 있는 책중에서 세계 및 조선(한국)천주교회 역사와 제II차 바디칸 공의희 문헌, 그리스도교 사상사, 그리고 현대 남미 해방신학과 제3세계의 민중신학에 대한 책과 신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미국교회 연감등을 포장하여 발송하였다. 마침 미국에 귀환한 다음 1991년부터 나는 Permanent Deacon으로서 미 원주민 사목실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전례의 토착화에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그리스도교문화와 전통의 다양한 민족적 토착화에 대한 생각으로 제3세계의 다양한 그리스도교 현황에 대한 책도 추가 발송 하였다. 이렇게 1991년을 나는 새로운 비젼으로 고무되어 희망에 찬 한해를 보냈다. 그런데 북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이었다.
1992년은 현대 가톨릭성령운동이 일어난지 25주년이 되는 해인데 미주가톨릭성령운동본부의 권유로 미주한인성령운동본부를 설립하고 회장(박창득신부)를 보좌하여 나는 상임집행위원이라는 중책을 맡아 동분서주, 나는 미주 각도시의 한인공동체를 방문하여 오순절 세미나를 지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주 전역에 동서남북으로 9개의 지역봉사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바쁘게 뛰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북에서의 사명을 거두시고 미주한인공동체와 교우들의 신앙쇄신과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하여 미천한 이 종을 잠시 활용 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천직을 만난듯 즐겁고 기쁘게 매일 밤낮으로 이 사역에 투신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