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질이여
통통하고 향기나던
너는 어디 가고
말라비틀어지는 거냐
잠시 딴눈 팔았더니
가는구나, 사랑이여
추레한 모습에도
촉촉한 속살을 생각한다
살아 있는 거다
아직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어
입술을 대어 보니
말라비틀어진 몸뚱이에서도
향기가 나네
나 또한
죽어도 향기 나게
살아야겠다
죽는 날까지
사는 것처럼
살아야겠다
나의 바질아
「나의 바질아」는 한 포기의 바질이라는 일상적 사물에서 출발하여 사랑과 시간, 존재의 태도로 확장되는 서정시이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시들어 가는 식물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외형의 쇠락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긍정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통통하고 향기 나던 생명의 시간은 지나가고, 말라비틀어지는 현재가 도래한다. 그러나 시의 시선은 그 변화를 비관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하는 육체를 정직하게 응시하면서도, 그 안에 남아 있는 ‘향기’를 끝까지 붙든다. 이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 관계의 온기, 시간 속에서 축적된 기억과 품격을 상징한다.
이 시를 읽을 때 하나의 비평적 쟁점이 제기된다. 화자와 바질은 동일한 연령대의 존재인가 하는 문제이다. 많은 독자들은 “말라비틀어진 몸뚱이에서도 / 향기가 나네” 뒤에 이어지는 “나 또한”이라는 구절에서 화자의 자기 동일화를 발견하고, 두 존재를 함께 늙어가는 자리로 읽는다. 이 전환은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자기 투영이며, 화자가 바질을 자기 거울로 삼는 장치처럼 보인다. 또한 쇠락을 바라보는 어조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수용과 자기 반성에 가깝다는 점, 그리고 “죽어도 향기 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선언처럼 읽힌다는 점 역시 동일 연령 해석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독해는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이 시는 어디에서도 화자의 나이를 명시하지 않는다. “말라비틀어짐”은 육체적 노쇠가 아니라 감정의 식어감이나 사랑의 소홀함으로도 읽힐 수 있다. “잠시 딴눈 팔았더니 / 가는구나, 사랑이여”는 오히려 젊은 화자의 미숙함과 사랑의 관리 실패를 드러내는 문장일 수도 있다. “추레한 모습에도 / 촉촉한 속살을 생각한다”는 구절 역시 노년의 관조라기보다 사랑의 본질을 깨닫는 성장의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의 핵심은 생물학적 연령의 동일성이 아니라 ‘시간의 자각’에 있다. 바질은 시들고, 사랑은 마를 수 있으며, 존재는 유한하다는 인식이 시 전체를 관통한다. 두 존재를 같은 시간선 위에 놓이게 하는 것은 실제 나이가 아니라 사라질 운명을 공유하는 존재 조건의 동일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바질아」는 젊음 중심의 미학을 거부한다. “통통하고 향기나던” 시절은 아름다웠지만, 시는 그 젊음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말라비틀어지는” 현재의 모습까지도 사랑의 대상 안에 포함시킨다. 쇠락은 배제의 이유가 아니라 사랑이 시험받는 자리로 제시된다. 외형적 아름다움보다 시간 속에서 축적된 깊이를 더 소중히 여기는 태도, 그것이 이 시의 미학적 입장이다. 바질은 구체적 식물이면서 동시에 연인이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 확장되는 상징이다. 그러나 그 상징은 난해하지 않다. ‘향기’라는 감각적 이미지로 구체화되어 있어, 독자는 육체가 쇠락한 이후에도 남을 수 있는 무엇을 즉각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마지막의 다짐, “죽어도 향기 나게 살아야겠다”와 “죽는 날까지 / 사는 것처럼 / 살아야겠다”는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실존적 결단이다. 인간은 늙고 결국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이 시는 체념이 아니라 의지로 끝난다. 사라짐을 슬퍼하기보다 사라진 뒤에도 남을 향기를 준비하는 삶의 태도를 선언한다. 육체는 변해도 관계의 온기와 존재의 깊이는 남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끝까지 ‘사는 것처럼’ 살겠다는 의지가 작품을 지탱한다.
따라서 「나의 바질아」는 특정 세대의 고백으로 고정될 수 없는 작품이다. 중년의 관조로도, 젊은 화자의 성장 서사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해석을 관통하는 중심에는 시간의 흐름을 자각한 존재가 끝까지 사랑을 지속하려는 태도가 놓여 있다. 이 시는 젊음의 찬가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향기를 남기려는 인간의 의지를 긍정하는 서정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