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기질 아닌 말씀 (레20:1-27)
2001
지난 주일은 얼마나 이교적인 정신, 우상 숭배 정신 즉 인간의 자기 욕망에서 비롯된 정신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바른 기독 신앙을 가진 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말하는 욕망의 세계로 세상을 보라는 말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도 없이 인간이 자기 마음을 다스려 욕망을 버려서 부처가 되는 세계를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세상을 마귀가 지배하고 마침내는 이 세상이 망하고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보고 하나님이 새로이 창조하시는 새 세계를 소망하자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읽은 20장은 11장에서 19장까지의 내용들 가운데서도 핵심되는 내용을 반복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몰렉을 섬기는 일(18:21) 신접자와 박수 추종에 대해서(19:31), 부모 대적하는 자에 대하여(19:3), 여러 가지 간음에 대하여(20:10-21, 18: ), 새와 짐승과 곤충의 정하고 부정함(20:25,11: )에 대하여 본 20장은 간략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11장에서 19장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내용들을 압축하는 것이 본 20장의 목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압축하여 핵심적인 몇몇 사항들을 제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인간의 심성이 어떠하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본문의 서두로 돌아가 봅시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놓지를 못하고 계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고 하십니다. 못내 안심할 수 없어서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인간이란 하나님이 안심할 수 있을 만큼 믿을 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말씀대로 잘 따르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장담할 수 있는 존재가 못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장담, 자신감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잘 믿습니다. 그래도 주안에 있습니다.'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오늘 우리에게 안심하지 못하고 계실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타락한 후의 인간의 기질이란 믿을 수 없고 웃기기 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람난 아내를 집에 데려다 놓았더니 몇 날이 못되어 또 나가고 말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호세아) 집에서 살림 사는 것이 성미에 맞지 않고 오히려 마시고 노래 부르고 즐기고 그렇게 해서 스트레스도 풀고 쉽게 돈도 벌고 하는데 길들여져 있으니 집안 살림은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아서 다시 뛰쳐나가는 것입니다. 그 본성이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약 환자가 마약을 찾고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말입니다. 인간도 이러한 기질 속에 무엇엔가 그리워하고 있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종교적 욕망입니다.
종교적 욕망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만 이 종교적 욕망이 하나님에 의해 이끌림을 받지 않고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과 마귀에 의해 이끌림을 받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봅시다. 2-3절의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몰렉이란 암몬 족속의 우상인데 놋쇠로 제조된 송아지 머리의 우상입니다. 이 우상은 불로 달구어져 있는데(우상의 손과 팔이 후라이팬 역할을 한 것 같다.) 그것을 섬기는 자는 그 자녀를 우상의 손에서 태워 죽인 것 같습니다. -우상의 제물로서 생각을 하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여호와의 성소에도 찾아옵니다. 몰렉도 섬기고 여호와도 섬긴다고 하는 행위를 보여 줍니다. 성탄 때에 교회에, 석탄일에는 절에 가는 식이다. 몰렉도 "왕"이라고 하고 여호와도 "왕"이라고 하니 양쪽 다 섬겨 덕보자는 심산인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자녀를 태워 바치면서까지 이런 일을 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1) 이런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없습니다. 막연한 종교심입니다.(요즘도 이런 사람이 많다. -갔다 오면 불안하지 않고 안심)
2) 종교적 목적을 위해서 자식까지도 불태워 바치는 무섭고도 맹신적인 마음입니다. 얼마나 집요한가? -(명태 몇 마리 놓고 촛불 켜 놓는 것은 유가 아니다.)
- 밤 12시에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가서 절하고 내려오기를 내기하듯이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집착성을 가지고 있다.
- 이런 식의 행위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지는 않는가?
- 각종 금식,(아침 금식, ∼일 금식) 철야 기도, 갚기식 헌금(십일조, 예물 헌금) 그래서 집까지 바쳐 버리고 가정이 파산되지 않던가?
우리는 그렇지 않는데 하고 희희낙락할지도 모릅니다. 왜 무엇인가 해야만이 열심히 나는 것 같은가?
- 성경 읽기 (아에 차원 높은 체 하면서 참여도 안할지 모르지만) 기도 해야 전도 대회하고,
- 주님 만한 분 믿는 것 때문에 이런 것들이 되어져야 하지 않는가? 자 연스럽게 되어져야 하지 않는가?
특히 은사 집회를 찾아 헤매는 경향 : 병고침 -신통력을 찾는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 기도해야지! - 낫기 위해 신통력을 구한다.
예언 - 행불행,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 -말씀(안에 있다.)
축복 - 축복기도 받고 싶어하는 마음 - 예수 안에 받았다.
- 왜 이런데 그렇게 기를 쓰는가?
- 하나님이 그들만의 하나님이며, 제사장이 그들만인가?
- 하나님을 진정 믿으면 신뢰하고 기도하라.
이와 같은 집요한 마음의 경향성을 "음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5) 6절에도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 라고 했다. 음란을 추구하듯이 무당과 박수를 추종한다. 무엇인가 안다고 하면 기를 쓰고 추종한다. - 불신자는 물론 신자라고 해도 소위 기독교 예언자(예수 무당)라는 자들에게 이렇게 기를 쓰지 않는가?
종교적 음란성입니다. - 이런 자들을 하나님이 끊어 버리신다.(3,5,6)
2.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까?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규례"와 "법도" 즉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음을 바치고 지성이면 감천이니 정성을 바쳐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하지 말고 안다는 자를 추종하지 말고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예수님 사랑하면서 사랑하고 안할 것 안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사랑하는 생활이요 순종이요 행동입니다. 너무 내면적으로 내면화시키지 맙시다. 마 7:7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 12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롬 12:3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숨은 것을 알아내고, 문제 해결을 믿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하신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신앙이다. 고로 신령한 자를 추구하고 알려고 하기 보다 기록된 말씀을 순종하여 행합시다.
3. 말씀 중에 계신다는 하나님은 순종하여 사는 그 현장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시행되는 곳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기질을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말씀 따라 행동합시다.(약 2:14 -26)
그 외 의 것 : 자유다. 직장, 직업, 결혼 배우자, 이사, 차를 산다. 대학을 간다. - 자유로 해라. 자기 좋은 대로하라.
결론
신앙이란 영통자, 영능자를 추구하는 심리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이다. 주님도 표적을 행하셨지만 자기 믿게 하기 위한 것(표적)이었습니다. -주님 알자는 능력이나 영통을 추구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가라.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나머지는 죽이든 살리든 주님이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