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사실은 전북(全北)향토문화연구회(회장 李康五.전북(全北)大 명예교수)가 지난해 말 정읍(井邑)시의 의뢰로 유적확인 시굴후 최근에 펴낸 조사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칠보(七寶) 流觴臺는 최치원(崔致遠)이 통일 신라말 태산(泰山)군(현 정읍(井邑)시 泰仁면) 태수(太守)로 재직 당시 중국 晋나라 서가(書家) 왕희지(王羲之)(321-379)의 `蘭亭序'에 나오는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본떠 건립, 근 1천년간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다가 1735년 영조 11년 대홍수 등을 겪으면서 퇴락하기 시작, 점차 옛모습을 잃어갔다는 것.
가사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정극인(丁克仁)(1401-1481)의 `상춘곡(賞春曲)' 무대이기도한 流觴臺는 경주(慶州) 鮑石亭보다 섬세하고 규모도 커 최근들어 명소로 부각된 중국 강소성 소흥시 소재 왕희지(王羲之) 제작의 `유상곡수(流觴曲水)'와 같은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流觴臺 위치는 동진강 상류인 칠보천과 고운천을 낀 동남쪽 언덕 천변의 詩山리 동편마을 앞으로 조사단은 주민들에 의해 거북바위로 불리는 암반조사에 착수, 덮여있는 토사 제거에 들어가 이 암반이 3백㎡규모의 단일 암반으로 感雲亭 터와 老休齊 터까지 이어져 있으며 표면에 나있는 요철(凹凸)까지 확인했다.
보고서는 이어
不憂軒 정극인(丁克仁)의 `寄泰仁諸儒(태인의 선비들에게 부치다)'를 비롯
天默齊 李尙馨(1585-1645)의 `天默齊集'과 迂齊 趙持謙(1639-1685)의 `
流觴臺碑文' 趙恒鎭(1700-?)의 `流觴臺 重修記'
이재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이재난고' 칠보(七寶)`武城書院誌'등의 문헌에 나온 流觴臺에 관한 명사들의 시문을 소개했다.
전북향토문화연구회 李회장은 " 정읍(井邑)시 칠보(七寶)는
▲ 만인의 스승이라 칭했던 최치원(崔致遠)이 몇년동안 수령을 지낸 임지였고
▲ 정극인(丁克仁)이 창시한 한국최초의 `古縣 향약(鄕約)'의 발상지이며
▲ 단종비 정순왕후의 태생지이자
▲ 구한말 서원 철폐 때도 전북에서 유일하게 남은 武城書院과
▲ 호남의병 최초의 창의지 등 문화 역사적 전통을 자랑한다"며 " 流觴臺를 본격 발굴한 뒤 복원해 관광자원화함으로써 국민정서 함양의 도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첫댓글 발굴이 우선이겠네요. 복원은 늦추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