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8번 버스를 타고 가는 곳
김선(서울 잠일초등 5)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뒹굴뒹굴하던 일요일 오후, 엄마와 나의 눈이 마주친다.
"갈까?"하고 엄마가 말씀하시면, "가요!"라고 내가 대답한다.
집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커다란 가방만 들고 우리는 4318번 버스를 타러 간다. 이 버스를 타고 가는 곳은 내가 태어나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살았던 바람드리 마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잠실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풍납동의 순우리말 이름은 바람드리 마을이다.
한강변에 위치해서 바람이 부는 지형의 특성이 이름에 나타난다. 풍납동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풍납토성이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루어진 토성은 사적 제11호로 지정된 한성 백제 시대의 왕성 터이다. 마을은 토성 안에 다소곳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개발을 하려고 땅을 파면 유물과 유적이 출토되기 때문에 법으로 개발을 제한했다. 개발을 제한했다고 어른들은 불평을 하지만 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즐겁다.
잔디로 덮인 토성과 울창한 나무가 신나는 놀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한강도 가까워서 조금만 걸어가면 한강 둔치가 나온다. 동네의 개발이 덜 된 것처럼 한강 둔치의 풍경도 자연의 모습이다. 수영장이나 레스토랑 같은 깔끔한 시설 대신 풀밭과 갈대밭이 있고 운동 시설이 조금 있을 뿐이다.
잠실 지역의 아파트 단지와 롯데월드를 지난 버스는 서울아산병원을 거쳐 바람드리 마을로 들어간다. 엄마와 나는 예전에 살았던 시장 입구에서 내린다. 오전과 오후의 물건 가격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로 요술을 부리듯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도깨비 시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재래시장이 우리의 목적지이다. 시장 입구에는 아빠의 단골집이었던 이발소와 옷 수선 집이 있다. 내가 이발소에 들어가서 머리를 자를 동안 엄마는 수선할 옷이 있거나 없거나 수선 집에 들러 수다를 떠신다. 마을을 떠난 지 5년이 되었지만 마치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신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이른 저녁을 먹을 행복한 시간이다. 시장에는 떡볶이와 튀김을 잘하는 분식집, 어묵을 파는 가게, 붕어빵과 호떡 집, 양념이 기막힌 닭강정 집, 쫄깃쫄깃한 칡냉면 집, 왕만두 집, 닭꼬치 집 등 푸짐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가득하다. 시장에는 재미있는 간판을 가진 돼지고기 식당들도 많다.
"돼지가 고추장에 빠진 날, 많이 먹어도 돼지, 돈 내고 돈 먹기……."
이름이 재미있어서 음식 맛도 두 배이다.
배를 채운 다음 코스는 토성 길 산책이다. 차량의 통행을 막고 산책로를 만든 토성 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나는 토성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날마다 토성에 가서 놀았다. 봄에는 민들레와 제비꽃에 앉은 나비를 잡던 곳, 여름이면 네 잎 클로버를 찾던 곳,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를 타던 곳이다.
토성에서 노느라 내 다리에는 항상 어딘가에 멍이 들어 있고, 바지의 무릎과 엉덩이 부분에는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비록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은 없지만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도깨비 시장에 있는 가게 대부분은 오래 되었고 상인들이 바로 동네 주민들이다. 유난히 뚱뚱한 아줌마와 마른 아저씨가 하는 과일 가게는 시장의 명물이다.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예뻐해 주신 그분들은 나를 볼 때마다 바나나, 자두, 귤, 사과, 곶감 등 과일 한두 개를 내 손에 쥐어 주신다. 물건이 정말 좋다고 하시면서 엄마는 가방에 과일을 담으신다. 때로는 무거워서 고생을 하시면서도 가방 한 가득 과일을 사신다. 내가 들고 간 배낭에는 주로 야채가 담긴다. 도깨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야채 가격이 싸기 때문에 안 사고는 못 배긴다고 하신다.
"생선도 정말 좋은데 버스 타면 냄새나니까 살 수가 없네. 다음에 자전거 타고 와서 사야지!"
생선까지 욕심을 내는 엄마는 나보다 바람드리 마을을 더 좋아하신다.
무거운 짐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는 집으로 가는 4318번 버스를 기다린다. 우리가 들어간 시장의 반대편 출입구에 있는 공원에는 바람드리 마을을 상징하는 색색의 바람개비 수백 개를 땅에 꽂아 두거나 담벼락에 매달아 두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이 꽃보다 예쁘다. 항상 바람이 부는 동네이므로 항상 바람개비가 돈다. 바람개비가 만들어 내는 바람에는 풀 냄새, 꽃 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가 난다. 내 고향인 바람드리 마을을 다녀오면 나는 요즘 어른들이 '힐링'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학원과 숙제에 바빴던 시간을 다 잊어버리고 마음속에는 따뜻한 기운이 넘치기 때문이다. 바람드리 마을이 지금의 정다운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그리고 엄마와 내가 줄곧 바람드리 마을에 갈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