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陸上)에서 많은 동식물이 서로 어울려 엎치락뒤치락 먹고 먹히면서 살고 있듯이 강이나 연못 호수에서도 한시도 조용한 때 없이 큰놈이 작은놈을 잡아먹으려고, 작은 것은 큰 것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괜스레 던진 돌 하나에 개구리의 박이 터진다는 것에도 무심(無心)한
우리가 아닌가. 흐르는 강, 고요한 호수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 안을 살짝 들여다보도록 하자. 춘천 의암호에는 이렇게 사는 물고기와 조개가 있다.(이 분야는 필자와 제자들이 연구하여
이십여 편의 논문을 냈고 박사학위 논문도 두 편이 나왔다.)
조개(이매패)는 물고기 지느러미에 알을 붙이고 물고기는 조개 몸 속에 알을 낳는다는 이야기다. 이 문제 하나를 풂으로 우리는 생물계의 오묘한 큰 구석 하나를 보는
것이요, 큰 의구심 하나를 떨쳐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물고기에 알을 낳아 붙이는 의뭉스러운 민물조개부터 보자. 대부분의 바다 조개(껍질이 두 장인 것을 통틀어 쓰는 말)는 암수가 따로 있어 암놈이 알을 뿜어내면 수놈도
때맞춰 정자를 뿌려 물에서(몸 밖 에서)수정이 되어 부화되고 새끼는 떠다니면서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커서 바닥에 떨어져 사는 것이 예사다.
그런데 대부분의 민물 조개들은 몸에서 수정이 일어나고
거기서 발생하는데 바깥아가미(양쪽에 2장씩 아가미가
있다.)에 들어가 그 속에서 유생(글로키디움(glochiduum)이라 부른다.)이 되는데 조개는 호시탐탐
물고기 지나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왔다 하면 출수공(出水孔)으로 새끼들을 걸쭉하게 분출시켜 지나가는 물고기(주로)에 찰싹 달라 붙인다. 해부현미경으로
보면 밤톨 모양을 한(육안으로 겨우 보이는)이 글로키디움들은(조개 한 마리가 10만여 개까지 품고 있다.)낚시바늘 모양의 갈고리와 로프 같은 실을 가지고 있어 지나가는 물고기를 싣고 감아 걸고 딸려간 유생은 예리한 집게 모양의 갈고리로 아가미 지느러미 눈 위 콧잔등이 같은 곳에 찍어 달라붙는다. 제일 많이 붙는 곳이 가슴지느러미다. 애꿎은 물고기에 붙자마자 헛뿌리 같은 돌기를 물고기 조직에 쑥 집어넣고 양분을 빨라먹으면서 기관 형성을 완성시킨다.
수십 마리의 유생이 다닥다닥 달라붙으면 물고기는 휘몰아 요동을 치지만 불가항력으로 피를 빼앗기고,
피를 먹은 유생은 20∼30일 간 기생생활을 하고 어엿한 새끼조개(치패, 稚貝)가 되어 적당한 곳에 떨어져 살게 된다. 이 기막힌 생존전략을 치졸타 해야 할까. 아니다! 언젠가는 대모(代母)인 물고기에게 은혜를 갚을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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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갈고리와 무슨 악연이 있어 사람 낚시에 꿰이고 조개 놈 새끼한테도 당한단 말인가. 필요 충분한 해석은 못 되지만 조개들은 느림보라 어미 아비 둘레에 새끼를 뿌려놓으면 새끼들도 멀리 못 가고 근방에서 어물쩡 거리다가 먹이 싸움만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굼뱅이도 굼불재주가 있다."고 조개가
생각한 것이 활동적이고 이동성이 있는 다른 동물에게 새끼를 붙여 멀리까지 퍼뜨리려는 방산(放散)을
고안한 것으로 해석해보는 것이다. 사실 바다에 사는 놈들은 해수의 비중이 높아 새끼가 멀리까지 떠다녀 이동할 수 있으나 민물에서는 비중이 낮아 멀리 못 가고 가라앉게 되고 또 강물에 뜬다 해도 강 아래로만 이동이 가능하여 물고기에 붙었을 때처럼 아래위로 부내지 못하게 된다. 크게 이야기하여 어류에
부착시킴으로 넓게 퍼져나가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참 영리한 조개들로 의암호에는 대칭이, 작은 대칭이 곳체두드럭조개, 말조개, 칼조개, 도끼조개, 펄조개가 살고 있고 전국적으로
이런 조개가 11종이 살고 있다. 이 무리는 껍질이 두껍고 딱딱하다는 특징이 있어 석패(石貝, Unio)라 부른다. 한번 더 말하지만 이 조개들은 모두 새끼를 물고기나 다른 동물의 몸에 달라 붙여 발생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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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개들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진주층이 매우 발달하여 양식진주(인공진주)의 모패(母貝)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드럭조개나 곳체두드럭조개는 껍질(패각)이 두꺼워서 어떤 것은 7mm나 되는데 이
조갑지(조개껍질)를 적당한 크기로 동그랗게 갈아서 양식진주의 핵(核)으로 쓰기도 하고 옛날에는 단추의 재료로도 썼었다. 그래서 옛날 단추는 잘 깨지고 영롱한 진주색이 나는 것을 불 수 있었다. 선조들이
다슬기 재첩과 이들 조개의 살을 먹어왔다는 것은 큰강가의 조개 무덤(패총)에서도 볼 수 있고 특히 칼
모양을 한 칼조개는 무기나 연장으로도 썼을 만하다.
이들 패류는 입수공(入水孔)으로 물을 빨아들이고 그 물 속에 들어 있는 유기물이나 플랑크톤을 아가미로 걸러 먹고 살고 있어 호수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재첩이 제일 깨끗한
물에 살고 석패과는 그 다음으로 청결한 곳에 산다.
다음은 패류가 어류에 진 빚을 갚는 어떻게 보면 어류가 패류에게 신세를 지는 이야기다.
모든 물고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납줄갱이, 납줄개, 납자루, 납지리, 각시붕어 같은 납자루 무리와
중고기 무리는 반드시 패류에 산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들 물고기가 사는 곳에는 석패과 패류가
반드시 살고 있다.
예쁘지 않은 물고기가 있을까마는 납자루 무리는 색이 곱고 생김새도 귀여워 관상어로 안성맞춤이고 넉살도 잘 부려 수조에서 사육하기 더없이 좋은 어종이다. 특히 5~6월의 산란기에 암놈은 배에서 긴 산란관(産卵管)을 내놓고 수놈은 혼인색을 띠며 또 암수가 다정하게 짝짖기를 하는 등 상상의 영역을 초월하는 어류생태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납줄갱이(Acheilognathus yamatsutae)를 대표 어류로 상정하고(종에 따라 생식활동이 조금씩 다르다.)이야기를 한다. 수조에 석패와 조개를 가능한 큰 것들을 여러 마리 모래자갈이 섞인 수초 사이에 심어놓고 물고기 몇 쌍을 넣어놓아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실험 결과 조개(껍질)가 없으면 산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수초를 넣고 큰돌을 넣어보아도 다른 고기처럼
알을 수초에 붙이거나 돌 사이나 돌 밑에 절대로 산란하지 않는다. 조개껍질이야말로 이 물고기가 산란을 하게 하는 본능을 발휘하게끔 자극 주는 해발요인(인자, '큰가시고기의 별난 짝짖기'참조)인 것이다.
산란기가 가까워오면 암놈은 긴 산란관을 뻗고 유유히 오가는데 이즘엔 호르몬을 받아 짙은 혼인색 띤
수놈이 무척 바빠진다. 어영부영 노닐던 수놈도 조개 주변을 한바퀴 돌고는 암놈의 몸을 툭툭 치면서 추스려 조개 쪽으로 유인하랴 제가 맡아놓은 텃자리 조개 둘레에 나타나는 수놈들 쫓아내랴 어지러운 정도로 분주하게 설쳐댄다. 기회는 왔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꼬신 암놈 한 마리가 수놈 따라 조개에 접근하여 산란관을 조개의 입수관에 집어넣어 잠깐 사이에 알을 낳고 비껴나면 수놈은 냅다 달려가 방정(放精)한다. 뿌려진 정자는 입수공에서 빨려 들어가 조개의 몸 속(아가미)에 이미 들어온 어란과 수정이
된다.
조개를 잡아 해부해보면 아가미 사이사이에 발생중인 물고기 새끼들이 판을 치고 고무작고무작거린다.
그런데 중고기 무리는 납줄갱이와는 달리 출수관에 산란관을 넣어 산란하고 수정은 아가미가 아닌 외투강에서 일어나고 그곳에서 자란다. 많은 경우는 조개 한 마리에 40여 마리의 물고기 새끼가 들어 있다.
이놈들도 20~30일 간 대리모 품에 안겨 커서 1cm 정도의 치어가 되고 공실해져서 세상 밖으로 할랑할랑
달려나간다.
그러면 납줄개이는 다른 어류들과는 달리 꼭 이 조개들에만 알을 낳을까. 조개는 아가미에 물고기 알이
들어와서 발생을 하고 있으니 호흡에 큰 지장을 받는다. 한마디로 숨이 찬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안쪽 아가미에만 들어차기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연역적인 해석이지만 껍질이 딱딱한 조개 부화기(인큐베이터)에 넣어 키우므로 새끼들이 다른 동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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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밥이 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특별한 적응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낳은 알은 100% 치어가 되는 특징이 있기에 다른 물고기보다 훨씬 적은 수의 알을 낳는 것도 우리는 밝혀냈다. 그리고 납줄갱이는
조개에서 커서 나왔기 때문에 일종의 각인(imprinting) 현상으로 조개를 어미로 생각하여 오매불망 꼭 그곳에다 다시 부리나케 알을 낳는 습성이 생겼으리라. 연어가 제가 태어난 강을 찾아와 산란하고 죽는 모천회귀본능(母川回歸本能)처럼 이 물고기도 조개에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조개에서 나왔으니 조개에만
알을 낳는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짚고 넘어가려는 것은 우연찮게도 조개의 산란기와 물고기의 산란기가 거의 일치하는 일이다. 물고기가 산란을 하기 위해 조개 근방에 얼쩡거리면 조개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갈고리 가진 새끼를 분사시켜 달라 붙이고, 물고기도 그것을 알고 조개에다 새끼를 치는 것이다. 어디 세상에 공짜가 있던가. 야비하리 만치 계산적이다. 조개는 새끼를 달라 붙여 멀리멀리 시집 보내고 물고기는 새끼를
따뜻한 유리관에 넣어 키울 수 있어 좋고,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물고기 입장에서는 양분을
빼앗기고 피부가 가려워 부아가 나겠고 조개는 남의 새끼 품고 있으니 숨이 차고 답답하여 부대끼고 죽을 지경이나 둘 다 자손 퍼뜨리기 위해 참고 또 참는다. 인고의 미덕은 여기에도 있다.
자연계를 파고 들어가 보면 이렇게 흥미로운 일들이 많다. 굳이 한쪽으로만 보면 기생현상으로 보이나
모두를 곰곰이 둘러보면 양쪽이 공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태계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철부지 우리 사람의 삶도 뚜껑을 열어보면 그런 점이 들어 있다. 어느 책을 보니 제목을 『남편은 적인가 동지인가』로 붙여 놨던데 사실 동지와 적을 공유하는 키메라(chimera)임에 틀림없다. 개인의 구석구석 약점까지 유리알처럼 알고 있는 적의 의미도 들어 있는 게 사실이나 단란한 금슬로 묶어진 부부의 고리를 과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이럴진대 모든 인간관계가 기생과 공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개와 물고기도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뭇 사람들아, 둥글둥글 어울려 서로 도와 축축하게 살아보자. 세상에 상서(祥瑞)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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