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김장과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에 이어 올해 정부에서는 ‘한식과 한식문화’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 한다. 이처럼 한식은 한국인의 일상인 동시에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잠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한국 음식은 예로부터 변함없이 이어온 원형 불변의 문화유산일까?
이에 음식을 문화와 인류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음식을 역사로 만들고 역사를 정답으로 여기는 사회 풍토는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중요한 것은 ‘한국 음식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한국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먹어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를 알면 그 사회의 역사가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무엇을 어떻게 먹어왔을까?
근대인의 밥상에서 현대인의 식탁까지,
메뉴를 통해 살펴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교수는 특히 지금의 한국 음식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2010년에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성과를 담은 ‘음식인문학’을 출간해 문화인류학과 민속학뿐 아니라 과학·예술·역사·사회 등 여러 학문 분과를 망라한 ‘비판적 음식학’을 제안해온 그는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에서 ‘식탁 위의 한국사’를 집필했다. 이 책은 지난 100년 사이에 전개된 한국 음식의 여러 면모를 민낯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세기 한국 음식과 음식점에 대한 사료와 해석이 종횡으로 거시사와 미시사를 넘나들며 음식 담론의 흐름을 읽어냄으로써 문화와 전통, 국가를 읽는 새로운 차원의 음식인문학을 제시하고 있다. 잠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에 음식을 문화와 인류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음식을 역사로 만들고 역사를 정답으로 여기는 사회 풍토는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중요한 것은 ‘한국 음식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한국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먹어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를 알면 그 사회의 역사가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무엇을 어떻게 먹어왔을까?
근대인의 밥상에서 현대인의 식탁까지,
메뉴를 통해 살펴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교수는 특히 지금의 한국 음식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2010년에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성과를 담은 ‘음식인문학’을 출간해 문화인류학과 민속학뿐 아니라 과학·예술·역사·사회 등 여러 학문 분과를 망라한 ‘비판적 음식학’을 제안해온 그는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에서 ‘식탁 위의 한국사’를 집필했다. 이 책은 지난 100년 사이에 전개된 한국 음식의 여러 면모를 민낯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세기 한국 음식과 음식점에 대한 사료와 해석이 종횡으로 거시사와 미시사를 넘나들며 음식 담론의 흐름을 읽어냄으로써 문화와 전통, 국가를 읽는 새로운 차원의 음식인문학을 제시하고 있다. 잠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 식탁 위의 한국사
“나는 이 책보다 먼저 쓴 ‘음식인문학’에서 ‘식사로서의 음식은 일상이지만, 문화와 역사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이다’라고 밝혔다. 문화와 역사에는 결코 정답이 없다. 오로지 그것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이 있을 뿐이다. 그 다양한 시선에 숨겨진 정치·경제적 함의를 밝히는 작업이 내가 지향하는 ‘비판적 음식학’이다. 하지만 음식을 역사로 만들고, 역사를 정답으로 생각하려는 사회적 풍토가 일반인들이나 학계를 가리지 않고 매우 강하게 퍼져 있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이 책은 한국 음식의 역사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음식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제안할 뿐이다. 생물학적인 음식에는 물질이 담겨 있지만, 문화적인 음식에는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식탁 위의 한국사'를 쓴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음식의 관습은 정치와 경제 제도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특정한 음식 재료나 메뉴의 유행과 같은 사회․문화적 변동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책 ‘식탁 위의 한국사’의 프롤로그에서는 한국 음식의 역사상 분기점이 되는 시기를 독창적으로 구분하여, 한국 근대사의 흐름과 주요한 사건 안에서 한국 음식의 변화 과정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기존 한국사의 시대구분과 다른 음식사의 독창적인 시대구분은 음식학의 특징이자 음식인문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20세기 한국 음식사를 다룰 때 첫 번째 분기점은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서양인·중국인·일본인이 대거 유입된 1880년부터 1900년까지로 볼 수 있는데, 이때 서로 다른 음식문화가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어 한반도의 음식 생산과 소비문화를 변화시켰다. 두 번째 분기점은 1890년대 이후부터 1940년까지로, 이 시기에 조선요리옥과 선술집, 대폿집 등 근대적 외식공간이 본격적으로 탄생했으며, 수많은 조선 음식이 식당의 ‘메뉴’로 변모하게 된다. 세 번째 분기점은 한국전쟁 발발 시기로, 남북의 인구가 교차 이동하면서 특정 지역의 토속 음식이 다른 지역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네 번째 분기점인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는 급격한 이농 현상과 도시화로 타지에서의 향수를 달래기 위한 고향 음식들이 도시의 음식점에서 크게 유행했다. 전국적 교통망의 구축과 경제성장으로 지역과 지역 간 접촉이 빈번했던 1970년대에는 관광음식이 서울 도심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육류를 비롯해 농수산물의 수입이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는 도시 구축이 완성 단계에 돌입하고 본격적인 세계화를 맞는 시기로, 배달 음식과 값싼 음식, 다국적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위해 한국 음식을 대상화, 타자화함으로써 정체성을 만들려는 음식 민족주의를 야기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 사업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식객에서 고객으로, 근대적 외식업의 탄생
20세기 한국의 음식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저자는 식객(食客)에서 고객(顧客)으로의 변모, 즉 ‘근대적 외식업’의 탄생을 들고 있다. 서유럽에서 탄생한 ‘근대성’은 과학주의와 합리성, 전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시대정신이었다. 20세기의 한국 역시 한국병합과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근대화의 물결에 편입하게 된다.
- 1924년 판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
1부 ‘개항기 외래 음식이 유입되다’에서는 개항기에 유입된 외래 음식의 역사를 들려준다. 서양 음식을 비롯해 중국 음식, 일본 음식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정치적 사건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들 음식이 확산된 데에는 한반도에 이주해온 외국인의 영향이 컸다.
20세기의 대표적 식문화 공간, 국밥집·조선요리옥·대폿집
이 책 2부부터 4부까지는 음식점을 업종별로 나누어 해당 시기마다 이들 음식점의 주요 메뉴를 통해 한국 음식의 문화와 역사를 들려준다.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식문화 공간으로는 국밥집, 조선요리옥, 대폿집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각의 음식 메뉴를 내건 근대적 음식점으로, 유행했던 시기와 음식을 소비하는 주체가 서로 달라서 20세기 음식사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먼저, 2부에서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외식업인 ‘국밥집’을 소개한다. 쌀밥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가정식 국밥은 20세기 급격한 산업화ㆍ도시화 속에서 서민들이 빠르게 배고픔을 해결하기 좋은 끼니음식이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국밥집은 외식업으로 진출한 첫 번째 주자가 되었다. 장국밥과 같은 계열의 끼니음식인 설렁탕, 추어탕, 육개장, 육회비빔밥, 그리고 삼계탕이 가정에서 식당으로 옮겨오기까지 그 변화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국밥집에 관한 추억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기도 한다. 여기서는 국밥집은 아니지만 끼니음식을 팔던 면옥집의 주요 메뉴인 냉면과 만두를 다루는데, 특히 겨울음식인 냉면이 여름에도 판매된 까닭과 더불어 냉면에 주로 들어가기 시작하며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아지노모도’ 이야기가 맛깔 나게 실려 있다.
3부에서는 에도 말기 일본에서 유행했던 요리옥이나 요정이 식민지 시기 한국에 전해져 변형된 ‘조선요리옥’을 소개한다. 술과 음식을 함께 파는 고급 식당인 조선요리옥의 메뉴는 조선 음식이었지만 일본요리옥과 청요리옥의 영향을 받아 점차 일본, 중국 음식의 맛을 닮아갔다. 이 책에서는 그릇 이름인 신선로가 조선요리옥의 대표 요리가 된 과정과 더불어 민간 음식인 탕평채가 궁중 요리로 둔갑하고, 조선식 어회가 일본식 사시미로 변한 과정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전통음식이라 생각하는 고급 한정식 메뉴의 역사와 기원을 비판적으로 되짚어보았다. 특집으로 한중일 3국의 합작품인 당면잡채와 더불어 기생과 보이 등 요리옥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 양념가루 '아지노모도'
음식문화와 역사에는 정답이 없다
5부 ‘해방 이후, 음식의 혼종과 음식점의 글로벌화’에서는 한국의 ‘혼종’ 음식과 식품산업의 역사를 들려준다. 식민지 시기 재조 일본인이 남긴 흔적인 오뎅과 김밥, 미국의 잉여농산물 유입으로 유행한 각종 분식과 빵, 자장면, 1960년대 이후 현대 식품공업이 성장하며 만들어진 공업식 간장, 제과, 희석식 소주를 다루었다. 한국 음식은 1980년대 이후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도입과 외국 음식과의 혼종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세계 체제에 편입된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수준 높은 위생시설을 갖춘 음식점이 늘어났지만, 메뉴와 맛의 균질화는 음식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저자는 음식문화와 역사에 대한 정답을 구하기보다 이면의 정치ㆍ경제적 함의를 밝히는 작업과 다양한 해석을 통해 현재 우리의 음식문화를 비판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마지막 에필로그에까지 이어진다.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할 이야기들이다.
이처럼 이 책은 설렁탕, 갈비, 신선로, 빈대떡, 자장면 등 근대 외식업을 주도한 34가지 음식 메뉴의 기원과 변화를 미시적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동과 같은 거시적 담론 분석을 통해 ‘비판적 음식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절대 딱딱하게 읽히지 않는다. 신문, 잡지, 광고, 옛 문헌 등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한 문화인류학, 민속학, 역사학,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을 넘나드는 학제적 연구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해석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당대인의 생활상과 문화사가 생생하게 복원되어 그 세월을 함께 살아온 ‘나’의 역사까지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음식을 통해 떠나는 새로운 차원의 한국사 여행, 그 시작을 이 책과 더불어 시작해봄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