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박동(授朴洞)의 효자 박진(朴晋) 객사동(현재의 대성동)에서 전주천 너머 북쪽을 바라보면 각시바위와 서방바위가 보이고, 그 중간 지점 산기슭에 남향 으로 옴팍 들어앉은 골짝 마을이 수박동이다. 조선 초기에 전주가 낳은 효자 박진의 설화가 발생한 곳이다. 박진은 고려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의 외손이자 박종수(朴從壽)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박진이 영암군수로 나가 있던 1394년(태조 3년)의 일이다. 그 해 여름,전주 지역에는 크게 장마가 져서 전주천이 범람하여 길과 땅이 모두 물에 잠기는 등으로 심한 물난리를 겪고있었다. 때마침 여든 살이 넘은 부친의 노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박진은 그 길로 당장 관직을 사퇴하고는 영암을 떠나 밤낮없이 전주를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그러나 먼 길을 달린 끝에 막상 전주 남천에 다다르고 보니 장맛비로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집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건너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박진은 잠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촌각을 다투어 병중의 부친을 빨리 뵙고 싶은 효심이 강물의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 그를 기다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원망하며 한 차례 통곡한 다음 말에게 채찍질을 가하면서 그대로 세찬 물살 속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용돌이치며 벙벙히 흐르던 성난 물살이 별안간 양쪽으로 좌악 갈라지면서 통로를 터주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물을 건너 집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박진은 집에 돌아온 후 지극절성으로 부친의 병구완에 임했으나 워낙 노환인 탓에 섣달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차도가 안 보였다. 어느 날 부친이 갈증을 호소하면서 수박을 먹고 싶다고 말하자 박진은 엄동설한에 어디서 수박을 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끝에 목욕재계한 다음 신명 앞에 소원을 빌었다. 그러고 나서 수박을 찾아 눈밭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내 양지쪽 밭이랑에서 마르지 않은 수박덩굴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허등지등 눈 속을 파헤치자 수박덩이 하나가 나왔다. 박진은 그 수박으로 부친을 대접해 소원을 풀어드렸다. 그 뒤로도 부친은 걸핏하면 겨울철 사정을 생각 않고 꽃순을 달여 먹고 싶다는 등 잉어를 먹고 싶다는 등 무리한 청을 해왔다. 하지만 박진은 그럴 때마다 신명에게 축원을 올리면서 눈바탕을 헤매고 다니던 끝에 필요한 것들을 구해다가 부친에게 대령해서 소원을 풀어드리곤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후부터 하늘이 내린 이 효자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해 박진이 수박을 구한 곳을 가리켜 수박동,꽃순을 구한 곳을 가리켜 박과산(朴菓山), 잉어를 구한 곳을 가리켜 잉어소라 불러 버릇했다고 한다. 박진의 놀라운 효심을 세상에 널리 알려 후세의 본보기로 삼게끔 하기 위해 교동의 전주향교 남쪽에 박진정려각(朴晋旌 閭閣)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