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미사에 날마다 슬리퍼를 신고 오는 어떤 자매님이 있었다.
대개 성당에서는 "민 소매 복장 등 노출이 심한 옷과 슬리퍼 착용을 금합시다." 주의를 환기하고 눈총과 흉을 보게 마련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같이 입방아를 찧었다.
어느 날, 성서모임에서 그 자매님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자매의 말은 늘 성공만 있을 줄 알았던 남편의 사회생활이 IMF 이후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로 그 해 여름에는 다른 신발이 없어 슬리퍼 하나로 여름을 날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슬리퍼가 신고 다닐 유일한 신발이라 그래도 깨끗이 하여 신고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며 경제와 더불어 가난해지고 삭막해진 마음을 위로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옷차림과 신을 보고 한마디씩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자신이 너무나 초라한 생각이 들어 한동안 냉담(冷淡)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2)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미사를 드리는 어느 형제님
아는 분 중에 외짝 교우이던 어떤 자매님은 열심한 신자였는데, 남편이 성당에 안 나오는 것이 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형제님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 표현대로 약간 시건방진 모습으로 늘 한쪽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녔고, 평소에도 별 말이 없었다. 미사 중에 성체를 모실 시간이면 슬그머니 빠져나가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그 형제님의 처사에 모두 한마디씩 하였다.
그런데 어느 땐가 그 자매님으로부터 형제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남편이 주머니에 손을 늘 넣고 다닌 것은 사고로 손을 다쳐 의수(義手)를 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격이 소극적이 되어 남과 대화를 꺼려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성체를 모실 때 한 손으로 모셔야 하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끌게 될 것이고, 더불어 동정심이 싫어, 그 동안 차일피일(此日彼日) 미루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흠(欠)이 되는 것"이 허다하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우리는 새알꼽재기 만한 지식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기가 다반사(茶飯事)이다. 그러고서는 앞짧은소리를 서슴지 않고 하기가 일쑤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우리는 "무슨 사연이 있겠지, 무슨 까닭이 있겠지." 라고 하는 지식(知識)을 지혜(智慧)로 마음이 있었으면 한다.
(이야기 3) 키스 상자
어떤 한 남자가 황금색 포장지를 낭비하는 네 살 짜리 딸아이를 호되게 야단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딸아이가 황금색 포장지로 어떤 상자를 포장하려는 모습을 보고 그만 성질을 낸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빠에게 다가와
그 상자를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이거 아빠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그는 전날 자신의 과민반응을 생각하면서 당혹했지만 상자 안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화가 나서 딸에게 소리쳤습니다.
“넌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내용물이 있는 것을 줘야 한다는 것도 모르니?”
그러자 딸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말했습니다.
“아빠, 이건 빈 게 아니에요.
저는 이 안에 키스를 수 없이 불어넣었어요. 모두 아빠를 위한 거예요....”
그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서 딸아이의 작은 몸을 부둥켜안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남자는 그 후로 황금색 상자를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 그 안에 담긴 딸의 키스와 함께 딸의 깊은 사랑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보이는 것에만 집착을 한다. 보이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닌데도 그냥 자기 눈으로 판단하고 만다. 김동인의 「배따라기」처럼 말이다.
그렇다. 인생에는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벗어나는 예외(例外)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지나치기가 얼마나 많은가.
- < 이야기 1, 2 > 는 '참 소중한 당신 2004. 6월호'에서 퍼옴,<이야기 3>은 어느 사이트의 글을 인용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