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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선생님들을 모시고…
오늘은 특별한 산행길이다
사실은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서두를 필요가 없는데도 여섯 시부 터 일어나 설치기 시작했다
약1개월 전 역시 조계산 길에서 광주 이효춘 선생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음달 20일경 광주중고교국사선생님들을 모시고 조계산의 고탑 순례를 하고 싶은데 안내를 좀 부탁 한다는 전화였다
고맙기 그지없는 일인지라 특별한 일만 없다면 당연히 해드리겠노라고 정확한 날짜와 인원이 정해지면 일주일 전쯤에 다시 전화를 달라 하고 끊었다
그러고 나서 국사교사를 의식하며 조계산에 산재한 고탑들에 대한 효과적인 안내 방법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암사와 송광사의 거리 관계로 시간이 문제였다
만약 송광사나 선암사에서 8시쯤에만 출발할 수 있다면… 희망사항이었다
그래서 탑 해설에 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주일 뒤쯤 조계산 중에 산재해 있는 대표적인 고탑 15기에 대한 해설문을 미리 보내 숙지할 것을 부탁했었다
그 후 약속대로 일주일을 앞두고 전화를 하여 5월 21일로 날짜가 잡혔다면서 당일09:30에 선암사에 집결하겠다고 알려 왔다
역시 시간의 문제는 안고 넘어야할 숙제였다
하늘은 맑았다 아홉시 반이므로 일곱 시 반에 나서도 충분했다
그러나 뭉그적거리고 기다릴 수가 없어 일곱 시도 못돼 털고 일어섰다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하니 여덟시 사십분으로 한 시간 가까이 여유가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과 느긋하게 인사를 나누는 중 주차장이 끝나는 지점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그 밑에 포장을 치고 모여 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무슨 행사가 있는 것으로 보여 매점주인에게 물으니 서울서 돌아가신 문화제 큰스님의 화장(다비)이 오후에 있을 것 이란다
다비장은 어디랍니까? 하고 물으니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어 지계골 들어가는디 꽃으로 이쁘게 만들어 놨다데요”
가보고 싶은 생각이 은근히 동하여 같이 한번 가보시지 않을래요? 했더니
“저-어 우에서 스님들이 못 들어가게 한데요”
스님들 잘 아시지 않아요? 저 언덕으로 해서 같이 한번 가보시지요
만약 못 가게 하면 입구까지 만이라 도요
재차 권하자 아주머니께서 가보고 싶었는지 앞장을 섰다
논둑을 걸어 올라가니 입구에서 스님 두 분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왔다
아주머니께서 지레 물러서며 여기서만 보고 가겠다고 했다
스님께서 아무것도 볼게 없다고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개울 건너 공터에 꽃 장식을 한 다비 대는 포장을 둘러 앞면만 보이고 입구에는 “중요 무형 문화재 48호 단청부분 승정 만봉당 치 호 대종사 다비식”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극구 말리지는 않았지만 미안해서 사진만 한 컷 누르고 돌아왔다
오늘 일만 아니면 참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아홉시 30분이 되자 순천의 박 선생님과 광주 이 선생님 일행 6명이 도착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각자 소개는 걸으면서 하자고 앞장서니 설치는 모습을 웃음으로 넘겨주었다
입장권은 남자 선생님들만 끊도록 하고 여선생님들은 인사를 하는 공익요원에게 나와 함께 공부 가는 길이다. 로 대신 했다
검표소를 들어서자 이 선생님이 젊은 여선생들을 향해 “우리 동네 아줌마 들이다” 하고 걸쭉한 목소리로 흉내를 내었다 모두가 한바탕 웃어재낀다
아마도 항상 듣는 ‘선생님’이란 말 대신에 들어 보는 ‘아줌마‘ 소리가 웃음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다
사실은 지난 4월 2일 광주전남 중고교 교사들 조계산순례 때 이 선생이 동행하였는데 여선생님들을 모시고 들어가며 내가 한 말이었다
동부도전에서부터 본격적인 안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 머리 속은 시작부터 일정의 시간 나눔으로 빽빽하였다
오늘의 테마가 고탑이니 탑들만 열심히 찾아다니면 그만이련만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젊은 선생님들 앞에 선암사가 보듬고 있는 걸물들을 대충 지나치려니 자꾸 멈칫거림으로 발목을 잡았다
일주문 앞에서 우측 개울가로 인도했다
신구독락당이라 부르는 곳이며 소설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선생이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소개되어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궁금해 하는 곳이다
아래 마을 사람들의 말만 듣고 아버지 고향이 벌교이고 그곳에서 태어나서 왔을 것이라는 설명을 하였더니 박 선생이 부친의 고향은 고흥 점암이고 조정래 씨는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바로잡아 주었다
일주문 뒤편의 “古 淸凉山 海川寺”라는 옛 선암사 현판을 보여주고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을 감상하고 나서는 미안 했지만 절구경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젊은 여선생님들에게는 입맛만 버리는 탐방 길이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암사의 첫 번째 산중 부도인 동(무우전)부도 앞에서는 엄숙한 분위기를 유도 하며 선생님들의 느낌을 읽으려고 표정을 살피기도 하였다
열한 시가 조금 넘어 선암사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에 있는 북(선조암)부도를 탐방하고 내려 올 때는 여선생님들의 복장이 은근히 염려되었다
다섯 분 모두가 반팔 차림이었으므로 녹음기의 벌레들 때문이었다
곧장 절로 내려간다면 그런대로 넓은 길이니 염려할 바가 아니지만 내 머리 속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절 뒤편 녹차 밭 풀숲 묵은 길을 가로 질러 대각암 길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을 향해 선생님 같은 말이 튀어 나왔다
“앞으로 산에 올 때는 긴팔을 입고 오는 것이 기본입니다 특히 여름에는…”
오늘은 이 선생님 책임 같아요. 구면인 언니의 책임으로 마무리 지었다
직업처럼 산을 다니다 보니 최소한의 기본인 신발과 짧은 팔 옷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현장을 가끔 목격하게 된다
개인의 무의식이나 과신에서 비롯된 결과이겠지만 한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이 낭패를 당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풀숲 길을 헤치고 갈 때 뒤에서
“짧은 팔 입었다고 훈련시킨다.” 는 합창과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대각암에서 석조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을 받아 마시고 나서 대각암부도 참관을 마치고 아름다운 봄꽃들과 어울려 촬영을 하는 젊은 여선생님들의 모습에는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선암사 탐방으로만 일정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꿈틀거렸다)
대각암(서)부도를 끝으로 선암사 측 고탑 순례는 끝이 났다
대각암삼거리 11:45, 중간 길로 가려면 다시 절의 입구까지 내려가야 하므로 비로암 길로 가기로 했다
“조계산보리밥집 80분” 대각암삼거리의 이정표이다
젊은 여선생들 표정에는 보리밥집이 간절한 듯 보였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데 박 선생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쉬는 시간은 빼고야” 모두를 느긋한 마음으로 유도 하려는 뜻이 엿 보인다
오르막길에 힘들어하는 그들을 위해 뒤돌아보며 이것저것 쉬지 않고 주워 섬겼지만 아마도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열두시 이십분 비로암 평소보다 6-7분은 더 걸렸다
승인 스님께서 모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고 산길을 둘러봐도 다녀간 흔적이 없어 혹시 멧돼지에게 받치지나 않았나 걱정했다고 농담을 하고나서 손님들에게 비로암의 유래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좀 더 이야기를 들으며 쉬고 싶었으나 여러분들의 간절한 소망을 풀어주기 위하여 아쉽지만 10여분 만에 걸음을 재촉하였다
12:40 작은 굴목재, 이재부터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잠시 쉬는 사이 쓰레기봉투를 매달고 훼손된 게시물(서부도전)을 회수하여 가벼운 발걸음을 계곡 길로 옮겼다
남자선생님 두 분이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한시를 조금 넘겨 조계산보리밥집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등산객들이 많아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에 생기가 느껴졌다
박 선생과 이 선생님은 배식을 기다리는 줄에 서고 나는 젊은 선생님들과 빈자리를 찾아 다녔다
몇 군데 만에 자리를 잡아 짐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갔다
예약도 하였고 내 얼굴로 특별대우도 누릴 수 있었지만 줄을 서자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였다
반쯤 줄어든 배식대열 사이로 주인처럼 막걸리 한 뚝 발을 떠가지고 나와서 나누어 마시며 기다리다가 앞줄이 서넛으로 줄어들어 계산 차례가 되었을 때 이 선생님께 “내 밥값은 계산하지 마세요.” 라고 이 선생님께 말하자 머뭇거렸다
내가 주인이니까 괜찮아요. 했지만 자신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딸아 일곱 분만 계산해라” 했더니 주인친구의 작은 딸이 나와 이 선생님을 향해 활짝 웃는 얼굴로 답을 보내주었다
평상시는 점심식사를 하지 않지만 손님들과 함께 라 한다는 뜻까지도 담겨 있었다
사실은 지난번 순례 때 내 밥 갑까지 계산하여 뒤늦게 주인아주머니가 미안해하는 우리끼리 만의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이내 식사가 시작 되었다
막걸리와 파전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였다
자! 박 선생님 한 말씀 하시고… “위하여”
모두의 얼굴에 지루했던 무게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잠시 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주인 친구가 찾아 왔다
“부족하면 말씀하시고 많이 드세요”
뭐가 있어야 많이 먹지? 농담이 날아갔다
뭔가를 가지러 돌아서는 주인친구에게 ‘그 술이나 한잔 가져와…’
지난번에 와본 이 선생님이 금방 알아차렸다
“담근 술 향기가 아주 좋아”
친구가 금방 양은 물그릇에 가득 떠가지고 왔다
또 다른 분위기가 다시 조성되었다
이미 밥그릇은 다 비웠고 술잔과 담소로 어우르는 중에 약간 소리를 높여 ‘안주 없어 술 못 먹겠네!’ 하였더니 주인 친구가 부리나케 파전 두개와 막걸리 한 양푼을 들고 왔다
이 사람 각시한테 쫓겨나려고 이러나…
“아! 각시 몰래 가져왔지~이” 모두가 웃음판이 되었다
산속 친구의 선한 마음이 고마웠다
시간이 없단 말도 거짓말이 되어 있었다
어느덧 식사를 시작한지 한 시간 반가량이 되었다
그동안 시간을 어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고조된 분위기를 깨뜨릴 수 가없었을 뿐 이었다 “자- 이제 출발해 봅시다.”
송광사에서 둘러보아야 할 탑만 해도 열 곳, 아예 송광사를 들르는 것을 포기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걸음걸음 마다 일러주고 싶은 것들로 가득하다
배도사 대피소와 숯가마 터를 게 등에 소금 흩듯 설명해 주고 송광굴목재에 도착했다
생각 같아선 탑이고 뭐고 그만두고 천자암으로 돌아가 쌍향수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아 보내고 싶었다.
세시 반 여기서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몇 걸음 앞장서서 걸었다
토다리삼거리를 조금 지났을 무렵 박 선생이 “그 폭포 있지요?” 했다
한번 보았으니 위치를 기억하지는 못해도 매우 인상적이었는지 선생님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뜻이리라 가끔 사람들을 인솔할 때면 이곳은 반드시 그냥 지나치지 않는 곳이다
조계산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룡폭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네 시 사십오 분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 한다는 수석정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절의 뒷길로 돌아갈 참이다 약간의 비상수단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탑 참배 길로 이어지는 일반인들은 다니지 않는(못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립문에 걸어 놓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이라는 안내문에 머뭇거림을 보고
“우리는 일반인들이 아니에요” 라고 기분을 풀어 주며 앞장서니 그제서야 웃으며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깊은 물그림자를 굽어보며 날아오를 듯 처마를 펼치고 서 있던 팔각정, 수석정은 낡아 허물어지고 이제는 스님들의 법고, 목우, 운판 수련과 체력 단련 장으로 변했지만 예전에는 절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곳 시운이 넘치든 곳이다
송광사의 뒷담너머로 대웅전 앞마당을 중심으로 펼쳐진 전경을 잠시 내려다 보고나서 스님들의 포행 길을 따라 청진국사 탑 앞에서 송광사의 첫 번째 탑을 안내 하였다
시간은 이미 다섯 시를 훌쩍 넘고 있었다
널찍한 터에 잘 다듬어진 청진국사 탑을 대하며 어떠한 감흥을 받고 있는지?
긴 산행에 지친 선생님들의 심신의 피로에 더 신경이 쓰였다
다음은 원감국사 탑으로 갈 차례이다
송광사의 고 탑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탑이다
원감국사의 행적뿐만 아니라 탑의 위치가 주는 특징 때문에 꼭 보여주고 싶은 탑 이었지만 최소한 50분은 소요되는지라 도저히 시간이 허락 치 않아 숙제로 남기겠다고 하였다
깊은 산중이라 이미 어스름이 내려 안고 있었다
대가대사, 고봉, 자각국사 탑을 돌아 광원암에 도착하였다
이미 저녁 공양 시간이 지난지도 시간 반을 훌쩍 넘겼으니 암자의 고요는 적막으로 변해 있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댓돌 마당을 지나가도 스님들의 기척은 조금도 없다 진각국사 탑에 나있는 총탄자국의 특별함을 설명해주고 광원암을 돌아 나왔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현봉스님께 한 말씀 부탁 드릴수도 있었을 텐데”
불일암으로 들어가는 대 숲길은 우리들을 무거운 그림자로 줄지어 세웠다
불일암 사립문, “하안거 중 일반인 출입 제한”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선생님들은 이 글씨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조용히 다녀옵시다”
나는 이미 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본당 댓돌 위에는 털 달린 고무신 세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분이 계셨는데”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기분으로 본당 앞을 지나 자정국사 탑 앞에 모여 서자 조금은 자유로운 모습이 되었다
내 깐에는 목소리를 낮추며 탑의 도굴 사실까지 설명을 끝내고 내려서려 할 때 낯익은 스님이 걸어 나왔다
민망함을 속으로 감추며 합장으로 죄송함을 표하면서도 굳이 변명은 하지 않았다
스님께서 미소로 받아 주었다
이 어둑한 시간에 순례를 하고 있으니 스님도 조금은 이해 하셨겠지
일곱 시는 이미 넘었다 산속의 어둠이 급해지는 시간 불일암은 등 뒤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불일암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아쉬움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일곱 시 사십분 송광사 주차장, 막차 시간을 알아보기 위한 바쁜 걸음을 가로 막는 맛있는 목소리가 스쳐갔다 “식사들 하세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한 미안함과 교훈을 두고두고 되새기는 하루였다. 끝
- 2006. 5. 21 樂山 漸修 生 認 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