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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혜암아동문학상 작품 공모
혜암 최춘해 선생의 아동문학에 대한 사랑과 봉사 정신을 기리고, 참신한 신인을 찾아 아동문학 발전에 동참토록 혜암아동문학상을 마련하였습니다. 미 등단 신인 분들의 많은 응모를 바랍니다.
◆ 모집부문
▷ 동시 : 5편(상패, 상금 100만원)
▷ 동화 : 200자 원고지 30매 내외 1편(상패, 상금 100만원)
▶ 접수 기간 : 2020년 4월 1일 ~ 4월 30일(도착분에 한함)
▶ 보내실 곳 : 42019 대구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지하 2410
범어아트스트리트 6번 스튜디오
혜암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010-8598-2945)
▶ 발표 : 2020년 5월 20일 혜암아동문학회 카페(개별 통지)
▶ 주의사항
1. 우편으로만 받습니다.
2. 봉투 겉면에 붉은 글씨로 응모분야를 써 주십시오.
3. 원고 앞에 별지를 붙여 성명(본명),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와 작품 제목을 적어 주십시오.
4. 응모작품은 미발표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5.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2020년 1월 22일
혜암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제1회 ‘혜암아동문학상’ 당선작과 당선소감, 심사평.
<제1회 ‘혜암아동문학상’ 동시 당선작>
아침마다 새집 외 1편
안명숙
밤마다 새 한 마리,
톡톡 내 어깨를 두드리면
나는 갈비뼈를 일으켜
푸드덕 푸드덕 하늘을 날지요
산과 바다를 건너
날지 않아도 날 수 있는
우주까지 날다보면
나도 잠이 들고,
새도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새는 날아가고
빈 둥지만
뒤통수에 남아있어요
엄마 아빠 싸운 날
깨진 거울 속에 내가 보인다
일곱 개의 머리
아홉 개의 팔
여섯 개의 다리
열 개의 입을 가진
내가 소리친다
악! 내가 괴물이 됐어!
<당선소감>
안명숙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길을 잃거나 차를 놓치거나 어딘가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런 꿈을 꽤 반복적으로 꾸었습니다. 20년 동안이나. 그런 꿈을 꾸고 싶지 않았지만 꿈은 제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왜 나는 그런 꿈을 꾸는 것일까? 왜 나는 꿈에서조차 힘들게 사는 걸까? 어떻게 하면 그런 꿈을 꾸지 않고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제기부터 해결책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두세 달 전쯤부터 또 반복적인 꿈을 꾸었는데 좀 다른 것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전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잠이 깬 후에도 울음의 흔적은 눈 밑에 남아 서러웠던 거 같습니다. 그런 꿈을 두어 번 꾸고 꿈이 너무 이상해 꿈풀이를 검색해 보니 그 꿈은 흉몽이 아니라 길몽이었습니다. 뭔가 불만스러운 일이 해결되거나 기쁜 일이 생길 거라는 해석이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왜 우는 꿈인데 기쁜 일이 생긴다는 거지? 꿈은 반대라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해몽에 대한 부수적인 설명은 꿈은 왜곡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지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데, 실컷 우는 것은 기분을 풀어주고 불만을 해소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좋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혜암아동문학상에 제 동시가 당선됐다는!
그 소식을 접한 후 신비롭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삶과 꿈속의 길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순간, 저는 스스로 답을 얻습니다. 그간 제 삶과 문학에 대한 헤맴은 광야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런 헤맴은 계속될 수 있으나 이제 가볍게 담대하게 가자는 겁니다.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저에게 영감을 준 자연과 아이들, 작고 구석진 곳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 시와 동시, 동화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끝으로 가족과 글벗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죽음에서 저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제1회 ‘혜암아동문학상’ 동화 당선작>
니체의 라면 레시피
유하정(본명 유정미)
모가 또 라면을 끓여 달라고 했다. 나는 입술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야, 이이체, 라면 한 번에 5천원씩이면 갈취 수준 아니니? 근데, 그 입은 좀 넣어줄래?”
“갈치가 어딨어?”
“아니, 갈취 갈취, 강제로 빼앗는다는 거지.”“내가 뭐…… 어쨌다고.”
사실, 5천원 안에는 고모의 ‘괴물 버림값’이 들어 있긴 하다. 우리집은 20층이고 엘리베이터를 꼭 타야만 한다. 문제는 그 엘리베이터 안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거다. 가끔은 한 마리였다가 가끔은 두 마리였다가 또 가끔은 아주 득실거릴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다시 다섯 마리가 되기도 한다. 괴물들은 브로콜리처럼 풍성한 머리카락을 하고 머리에는 뿔이 스무개는 넘게 달린 채 더러운 침을 뚝뚝 흘리면서 털이 수북한 손을 내밀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20층,
고모가 있을 땐 그나마 다행이다. 고모는 괴물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다리를 안으로 걸어 넘기는 거다. 그러니까 고모한테도 괴물이 보이는 게 분명하다. 고모도 그랬다. 내가 보는 건 고모도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 보인다는 건지 진짜 본다는 건지 좀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고모가 괴물을 물리치는 장면을 본다면 누구나 그랬을 거다. ‘진짜 괴물이 거기 있구나’ 하고 말이다.
고모가 나한테 라면을 끓여 달라고 준 5천원 안에는 나 혼자 괴물을 이겨내고 나 혼자서 무서움을 버려야 한다는 ‘괴물 버림값’이 들어 있다는 얘기다. 내가 괴물을 계속 무서워하거나 고모를 찾게 되면 고모의 앞날이 막막하다나. 그러니까 괴물을 스스로 버릴 수 있길 바라는 값인거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좀 막막해 보이긴 한다. 고모는 나이가 마흔 두 살이고 아직 결혼을 안 했다. 못 한 건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라면을 엄청 좋아하는 건 정확히 안다. 게다가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할 때는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부른다. 내가 괴물을 만났을 때는 엄마가 나를 불렀을 때처럼 ‘니체’라고 불러준다. 내 이름은 아빠의 성을 붙였지만 엄마가 철학자 니체를 좋아해서 내 이름을 니체라고 지어야 한다며 강력히 주장했다. 문제는 동사무소에 이름을 올릴 때 생겼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와 엄마는 무지 바빴다. 할머니가 이름을 올렸는데 그만 ‘이이체’가 되어 버렸다. 아뭏튼 고모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부터 할머니랑 우리집에서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마치 내 엄마라도 된 것처럼 나를 막 부려 먹었다. 그리고 꼭 ‘까만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한다. ‘까만 라면’은 라면이 다 끓어갈 때 쯤 짜장가루를 넣은 뒤 계란을 위에 얹어야 완성된다. 이 때 절대로 노른자가 깨지면 안 된다. 나는 그럴 때 마다 노른자를 깨고 싶다. 할머니도 소리쳤다.
“설명서대로 해.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이 있잖어.”
“그래. 고모, 설명서가 제일 맛있대.”
나도 맞받았다. 그래도 고모는 들은체도 안한다. 오히려 큰 소리다.
“설명서는 누가 만든건데, 재료만 주면 되지.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는 거야. 내가 만들어 먹는 방법이 내 라면이라고. 놔 둬. 나 혼자 먹게!”
그러면 할머니는 또 손가락질을 하며 더 큰 소리로 고모를 나무란다.
“그러니까 저렇게 시집도 못 가지. 속 터진다. 속 터져.”
고모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할머니가 버리려고 내 놓은 비닐봉지를 뒤적였다. 아빠가 버린 바지를 아깝다며 주워 입었다. 이번에는 할머니 목에 벌겋게 핏대가 섰다.
“니체 애비 바지 아니냐! 세상에, 어디, 여자가, 남자 바지를 입어. 어여 안 벗어?”“멀쩡한 걸 왜 버려. 바지에 여자, 남자 이름은 누가 붙였대. 내가 입으면 내 바지가 되는 거지. 어머니임.”
“지 애미 빨리 간 것도 니체 애비가 입던 바지 맨날 입고 궁상을 떨어 그런거 아니냐. 돈가스 가게 손님이 줄어든 것도.”
고모도 가만 있지 않았다. 입술을 약간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돈가스는 요리 잘하던 언니가 만들다가 이젠 없으니…… 그런거지.”
할머니는 고모가 아빠 바지에 눈독을 들인데다가 바지를 입고 집안 곳곳을 누벼서 안 좋은 기운이 퍼졌다고 했다. 고모가 귀신도 아닌데 마치 귀신을 물리치듯 고함을 질렀다. 할머니는 이상한 잔소리를 삼십분은 더 했다. 그러다가 한숨을 휴~ 쉬더니 그 날도 그랬다며 아주 펑펑 우셨다. 할머니가 말하는 그 날의 일은 내 이야기다. 그 날 이후부터 나는 괴물이 사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했다. 여름밤이어서 학원을 마친 시간이 8시였는데도 주변은 꽤 환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려고 할 때 키가 내 두배 반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커다란 손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억지로 열어서 탔다. 엘리베이터가 5층을 올라갈 때였다. 갑자기 내 엉덩이를 움켜 쥐더니 내 입술에 얼굴을 갖다댔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냥 내려야겠단 생각 뿐이었다. 우리집은 20층이지만 나는 8층에서 내렸다. 그 때부터는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으으으으”하고 내다가 아저씨가 내 다리를 잡았을 때는 “악~”하고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백수 고모가 내 목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뛰어 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모는 운동 삼아 자주 계단을 걷는데 그 날도 운동을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운동은 고모의 뱃살을 없애 주는 역할 뿐 아니라 나쁜놈도 잡아냈다. 고모는 나쁜놈의 머리채를 잡아서 잡히는 대로 물어 뜯었고 나쁜놈은 도망갔다. 고모의 몸에도 이곳 저곳에 상처가 있었다. 고모는 닥치는 대로 깨물더니 점퍼 지퍼에 긁혀 볼이 약간 패여 있었다. 할머니는 너무 놀라 약을 찾으러 서랍을 뒤졌지만 고모는 그랬다.
“이깟 보이는 상처가 뭐 대수라고, 괜찮아. 난. 니체야, 이리와.”
하며 나를 꼬옥 안아줬다. 고모는 나를 달랜 뒤 할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거였다.
“CCTV 확인해서 잡아 넣어야 되긴 한데 언니 그렇게 되고 오빠가 이런 사실까지 알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우리만 조심하자.” 할머니도 그랬다. 아무일도 없었으니 그냥 덮자고. 소문을 내 봐야 아빠 장사만 더 안 된다고. 나도 나 때문에 아빠 장사가 더 안 되거나 하는 건 싫었다. 엄마가 안 계신것도 힘든데 나까지 보태기 싫은 것도 사실이었다. 할머니 말을 들으면 할머니 말이 맞는 것 같고 고모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내 잘못은 없는데 자꾸 길을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게 되고 어딘가에서 누가 나타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옆동에 사는 세영이를 만나러 갔다. 세영이는 어떤 말이던지 잘 들어준다. 내가 괴물을 한 마리 봤다거나 열 마리를 한꺼번에 봤다고 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진짜?”
“응. 혼자서는 항상 불안해. 그 괴물때문인 것 같아.”
“그럼 신고하자.”
나는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세영이 말이 백번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세영이 손을 잡고 경찰서 앞까지 가면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두 번이나 그랬다. 그 때마다 자꾸 할머니와 고모의 말이 떠올랐기때문이었다. 세영이한테는 거의 비밀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세영이에게 털어 놓고 나면 집에 돌아갈 때는 괴물이 딱 한 마리만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가끔씩 있었다. 아빠가 버린 바지를 입었다가 된통 당한 고모 이야기부터 할머니가 했던 욕까지 몽땅 다 털어 놓았다. 웃다보니 배가 고팠다. 괴물버림값을 지불할 수 있다면 세영이에게 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치킨 먹을까?”
내가 먼저 얘기했다.
세영이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봤다.
“진짜?”
우리는 롯데리아로 향했다. 롯데리아는 초등학교를 지나 스타약국이 나오면 큰 길가 오른편에 있다. 길만 건너면 치킨을 한 조각씩 먹을 수 있었다. 둘이 팔짱을 끼고 걷는데 큰 길가에 낯익은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꽤 크고 그 날과 똑같은 검정색 점퍼였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세영이는 왜 그러냐며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세영이 말대로 그 때 신고를 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됐다. 나는 세영이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야. 그 괴물……, 말이야.”
나는 그대로 돌아 집으로 가자고 했다. 제발 그러자고 했다. 세영이는 내 뜻대로 해 주었다.
세영이네 집 앞에 도착해서야 커다란 상수리 나무 앞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야, 우리 신고하자. 거기 CCTV도 있어.”
“그러고 싶어.”
나는 또 할머니 말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세영이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세영이 말을 더 일찍 들었어야 했다.
괴물을 본지 이틀이 지난 저녁이었다. 밥을 먹기 전에 세영이를 잠깐 만나기로 했다. 여느때처럼 할머니와 고모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2차전이 시작 되기 전에 세영이를 만나고 싶었다. 안 그러면 그 불똥이 또 나한테 튈 게 뻔했다.
세영이 집은 5층이었다. 우리집에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세영이 집에 갈 때는 그냥 걸어 다녔다. 세영이에게 톡을 했다.
아파트 앞 지금 올라감.
오키 나도 나감.
내가 가면 되는데 세영이가 마중을 나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일층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고함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세영이였다. 뭔가 이상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나쁜 괴물에게 당했을 때 냈던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온 몸이 굳어버렸다. 무서운 건지 놀란건지 가슴이 쿵쾅댔다. 그 때였다.
“악!~”
짧고 굵은 세영이 목소리가 더 크게 났다. 전화. 전화. 전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다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휴대폰을 주워서 119를 눌렀다. 무조건 빨리 좀 와 달라고만 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그러기 싫었지만 세영이에게로 뛰어 올라갔다. 그냥 두면 세영이가 괴물에게 잡아먹히거나 다칠지도 모른다. 세영이도 나처럼 엘리베이터를 혼자 못 타는 바보가 될지 모른다. 계단을 오르다말고 나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스윽 닦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소리를 질렀다.
“살려 주세요. 아무나요. 제발. 살려 주세요.”
119는 언제쯤 올까? 경비실 아저씨라도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세영이가 신고하자고 했을 때 신고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세영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했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잔뜩 흐리기만 한 하늘에서 뭉게 구름 한 조각이 떠 있는게 보였다. 곧 사라질 것 같았지만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얀 구름이 참 폭신해보였다.
정확히 십분 후에 119가 도착했다. 나는 세영이에게도 가지 못했고 집으로도 가지 못해서 어정쩡하게 계단에 서 있었다.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다. 119 차에서 내린 아저씨들은 내가 신고를 했는데도 세영이 집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세영이가 나보다 신고를 더 빨리 했던 모양이었다. 나를 만나러 나오려고 현관문을 여는 찰나에 그 괴물이 세영이 집앞을 서성거렸다고 했다. 놀란 세영이가 고함을 질렀고 그 소리에 괴물도 놀랐다. 괴물은 세영이네 현관문을 잡고 들어가려고 했다. 순간 세영이네 엄마와 세영이는 있는 힘껏 현관문을 닫아 걸었던 거였다. 어쨌든 세영이 엄마가 신고를 해서 키가 큰 나쁜 괴물은 잡혔다.
잡고보니 괴물은 이미 저질렀던 죄가 많았던 상태였다. 근처 CCTV를 조사한 경찰은 괴물의 정체를 알고 난 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감옥에 가둔다며 연락이 왔다. CCTV를 살펴보던 경찰은 고모에게 연락을 했다. 고모도 경찰서에 다녀왔다. 할머니는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고모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당당히 가서 범인 얼굴을 확인하고 사건을 마무리하고 왔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이이체, 고모가 미안. 그깟 가게가 뭐라고, 우리 이체 힘들었지?”
나는 대답대신 냄비에 라면 끓일 물을 부었다.
오늘은 나도 나만의 라면 레시피를 만들 생각이었다. 고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건 고모 라면이지 내 라면이 아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된장이 보였다. 된장은 색깔도 안 예쁘고 일본라면이 있으니 통과했다. 카레가 보였다. 고형 카레를 넣으려고 그릇에 물을 붓고 수저로 저었다. 샛노란 카레색과 향이 맘에 들었다.
“뭐하는 짓이야.”
할머니가 없는 줄 알았는데 언제 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내가 끓이는 라면이니까 내가 만들거예요. 내 맘대로요.”
나는 구불한 면발 사이로 노란 카레를 부었다. 라면 스프향과 카레향이 적절하게 썩이니 기가 막힌 냄새가 났다. 탁, 계란도 깨어 넣었다. 계란 노른자가 탱탱하게 내 라면 위에 자리를 잡았다. 흔들리는 노른자를 젓가락으로 터뜨렸다. 속이 시원해졌다.
<당선소감>
유하정(본명 유정미)
모자란 산지기가 되고 싶습니다.
영화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고 불법이 관습이 되는 세상에서 호흡기를 하나 둘 달기 시작했습니다. 그 호흡기가 저에겐 동시와 동화였습니다. 어른의 잣대로 억누르는 굵직한 테두리를 억지로라도 구부리고 싶었습니다. 욕심이었을까요? 잘 되지 않았습니다.
동심을 찾으려 할수록 동심으로 열려 있던 문은 더 꽁꽁 숨어버리곤 했습니다. 잘 닫히지 않고 쉽게 열리지도 않는 문을 억지로 닫아 걸었다가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그 문 사이에서 자꾸만 냄새가 났습니다.
오카슈조의 동화에서 입으로 걷던 다치바나의 냄새와 빨간 머리 앤과 바다로 가다가 갈 곳을 잃은 두꺼비의 발냄새가 자꾸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다리가 없던 연이의 인공 다리를 간질이며 함께 놀고 싶었습니다.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중학생과 재수를 하는 제 딸과 아주 조금 아픈 조카의 웃음을 자주 보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틀 안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들이 자꾸만 제 안에서 머물다 가기만 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다 품지 못합니다. 많이 모자란 탓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닫아 걸었던 문을 조금씩 열어 놓고 기다려볼까 합니다. 그들이 보낸 작은 신호를 감지하기 위해 선배 작가들이 닦고 있는 숲길에 발을 내딛어봅니다. 숲길은 멀리서 보면 고만고만해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면 길이 제법 많이 나뉘어집니다. 길의 갈래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작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길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모자란 산지기가 되겠습니다. 산지기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저의 글벗들과 스승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가수의 꿈을 포기한 채 제 꿈을 뒷바라지 해 준 종석, 항상 엄마의 등을 토닥이는 어른같은 딸 한주와 묘경이에게 이 상을 받칩니다.
<제1회 ‘혜암아동문학상’ 심사평>
징표 같은, 냄새 같은 신(新)을 찾아
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은 우리 아동문학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신인상과 가장 어울리는 계절은 봄 같다. 시작과 새로움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열심히 쓰고 읽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밤을 새는 일은 허다하고 몇 년을 쓰는 일에 매달려 밥 먹듯 물마시듯 그렇게 작품에 빠져있는 이들을 여럿 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아직도 열심히 쓰고 있다. 지금은 묵정밭으로 있지만 그 밭이 콩밭이 될지 메밀밭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 추측 불가능함은 지켜보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저게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다른 나무 다 꽃 피우고 싹 틔우는데 봄이 다 가도록 검은 가지 그대로 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지켜보다보면 빼주죽 싹을 내미는 대추나무다. 신인에게서 묵정밭처럼(지금은 비어있지만 무엇이 자라날지 아무도 모르는 놀라움), 대추나무처럼(살았을까, 죽었을까 궁금해서 못 견디게 하는) 좀 더디지만 그래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자꾸 궁금하게 만드는 힘, 이것과 가장 닮은 것이 새로움이다.
기성작가들은 신인들에게 늘 새로움을 갈망한다. 그들 또한 문학의 첫걸음을 시작할 때 선배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가?’라는 이 힘들고 골치 아픈 신(新)을 두고 통(通)과 불통(不通)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이번 공모전에서 두 심사위원 또한 신(新)을 찾아 헤맸다.
신인에게만 있는 징표 같은, 신인에게서만 나는 냄새 같은 신(新). 그래서 풋풋하면서도 특별함이 살아있는 작품에 깊은 애정을 느끼며 혜암아동문학상 1회의 주인공들을 찾는데 열중했다. 동시, 동화를 각자 읽고 최종심에 올린 작품들을 다시 논의해 당선작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동시 응모작은 전반적으로 고른 수준을 보였으나 소재의 신선함은 아쉬웠다. 많은 분들이 주로 자연 속에 머문 감정의 나열에 그치고 그 속에서 기존의 시들을 답습한 느낌이 들었다. 또 아이 화자를 설정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에 초점을 맞춰 쓴 시가 많았는데 이는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낸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동시는 짐짓 아이들의 목소리가 느껴져야 해, 라는 잘못된 선입견이 시에 작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최종심에서 논의 된 작품은 「무궁화호」외 4편, 「일요일 운동장」외 9편,「아침마다 새집」외 4편이었다. 「무궁화호」외 4편은 편차가 있었지만 ‘전깃줄 뜨기’는 발상과 풀어나가는 방식이 신선했다. 전깃줄이 얽혀있는 골목길이 연상되고 그 골목집 어느 아이가 감기에 걸려 재채기 하는 모습도, 그리고 그 순간 전깃줄이 출렁거리는 상상까지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보여 지는 결점들, 시를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거나 모호한 끝처리 등의 단점들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작품은 「일요일 운동장」외 9편과 「아침마다 새집」외 4편이었다. 「일요일 운동장」은 화자의 심리가 절절하게 드러나 혼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외로움이 그림처럼 보여 지는 장점과 전체적으로 시를 풀어가는 방식이 능숙하고 시적 완성도가 높았다. 「도깨비의 진짜 마음」은 전래동화를 차용해 이야기 시로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도 원래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능청스러움이 웃음을 선사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인상’이라는 이름에 신(新)이 빠져 세련되고 능숙하지만 밋밋한 맛이 지적의 대상이 되었다. 「아침마다 새집」은 세련되고 능숙함은 부족하지만 시를 풀어가는 시선이 신선하고 사고의 확장이 자유로우며 활달하다. 또한 솔직함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는데도 그 감정에 몰입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일요일 운동장」이 속 깊은 큰형 같다면 「아침마다 새집」은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바락바락 대드는 막내 같은 생각이 든다. 속 깊은 큰형은 어디가도 누구에게라도 인정받고 위로 받을 것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아침마다 새집」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동화 부문에서는 생활동화, 의인화 동화, 판타지 동화, SF동화 등이 골고루 응모돼 지망생들의 관심사가 폭넓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기왕의 작품들을 답습하거나 설익은 소재주의에 그친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웠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니체의 라면 레시피」와 「숨은 천사 찾기」였다. 「니체의 라면 레시피」의 주인공 이이체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 고모와 사는 아이다. 엄마를 잃은 상처와 엘리베이터에서 당한 성추행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숨은 천사 찾기」의 진호는 상황이 더 절박하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엄마, 돈 벌러 가 소식 없는 아빠. 부모의 부재 속에서 끼니와 밀린 집세 걱정, 유치원생인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처지다. 두 작품 모두 개연성 있는 스토리와 생동감 있는 묘사력, 주제를 작품 안에 자연스레 아우르는 힘이 있었다. 어느 작품을 뽑아도 손색없을 만큼 수준이 비슷했지만 문제해결 방식이 당락을 결정짓게 했다.
「니체의 라면 레시피」의 니체는 또 다시 나타난 성추행범을 신고하고 검거시킴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해간다. 「숨은 천사 찾기」의 진호 형제는 굶고 있는 상황에서 잘못 배달된 짜장면을 먹는다. 진호는 짜장면을 천사가 보내줬다고 믿는 동생을 위해 누군지 모를 천사를 찾아 온 동네사람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한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동네사람들의 변화는 읽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각박한 현실에서 더 마음이 가는 동화는 「숨은 천사 찾기」일 수 있다. 하지만 형제의 감사 인사에 동네사람들이 앞 다투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음식을 갖다 준다는 결말은 작품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미담가화에 그치기 쉽다.
진지한 논의 끝에 「니체의 라면 레시피」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하신 분께는 축하를, 떨어진 분께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동시「아침마다 새집」과 동화 「니체의 라면 레시피」의 두 당선자에게 이제 자기만의 징표를 만들어 자기만의 냄새를 풍기며 즐겁게 나아가길, 그리고 혜암아동문학상의 처음이자 시작인 1회 당선자로 뜨겁고 빛나는 작품 많이많이 낳길 바란다. 심사위원/ 박혜선, 이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