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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성전(Solomon’s Temple)은 B.C. 10세기경 고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예루살렘 동쪽 모리아산(현재의 성전산)에 세운 성전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성전(Temple of Jerusalem)’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다. 솔로몬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 중 첫 번째로 세워졌다 하여 ‘제1성전’으로도 불린다.
성전(聖殿, Temple)은 하나님이 거하는 지상의 거룩한 처소로서 ‘성소(聖所, Sanctuary)’와 같은 개념이다. 최초의 성소는 이동식 천막으로 모세가 광야 생활 중에 만들었다. 성경에는 장막, 성막, 회막이라는 명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주로 장막(Tent)은 주거 개념, 성막(Tabernacle)은 예전을 중시할 때, 회막(Tent of Meeting)은 모임 장소를 강조할 때 쓰인다. 솔로몬 성전은 최초의 영구적이고 고정된 성소였다.
솔로몬 성전은 약 400년간 유대교의 중심지로 존립했으나 그 위엄과 영화는 성경의 기록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B.C. 586년경 신바빌로니아(바벨론)의 침공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1 2
바빌론유수 후 페르시아(바사)의 왕 키루스 2세(고레스)의 지원으로 스룹바벨의 주도하에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이 재건되었으나 B.C. 63년경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B.C. 20년경 유대 왕 헤롯이 제3성전(헤롯 성전)을 개축했으나 A.D. 70년경에 또다시 로마에 의해 무너졌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성전산(Temple Mount)에는 성전 서쪽 벽으로 알려진 ‘통곡의 벽’과 ‘황금돔’으로 유명한 이슬람교의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있다.
솔로몬과 예루살렘 성전 건축사업솔로몬에 대하여
솔로몬은 고대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제3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제2대 왕이었던 다윗과 밧세바(밧수아)3 사이에서 태어났다. ‘솔로몬’은 ‘평화롭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시켜 솔로몬에게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여디디야는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4 다윗의 죄를 용서한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일찍이 하나님에 의해 왕위를 물려받을 후계자로 지목되었다.5 이복형제였던 아도니야가 왕권을 노렸지만 어머니 밧세바와 선지자 나단의 도움으로 등극에 성공할 수 있었다.6 솔로몬은 부왕 다윗의 유지대로 예루살렘에 언약궤7를 보관할 성전을 건축했다. 솔로몬이 다스린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8
성전 건축사업
솔로몬의 치세 중 가장 큰 과업이자 위업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부왕 다윗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숱한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린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기를 원했다.9 솔로몬의 성전 건축사업은 다윗의 철저한 계획과 준비로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성전 착공 시기는 출애굽한 지 480년 되던 해로 솔로몬이 등극한 지 4년째 되던 해 2월이었다.10 성전이 완공된 건 7년 후인 솔로몬 치세 11년 8월로 공사 기간은 7년 6개월이 소요되었다.11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곳은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이다.12 다윗은 살아생전 당시 이곳을 소유하고 있던 여부스인 아라우나(오르난)로부터 성전 부지로 매입했다.13 현재는 성전산이라 불린다.
솔로몬은 다윗 시대부터 우호조약을 맺어온 두로(티레, Tyre) 왕 히람에게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목과 기술력을 요청했다. 히람은 식량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레바논산 백향목과 잣나무를 공급하고 기술자를 파견하는 등의 도움을 주었다.14 솔로몬은 협약한 대로 히람에게 매년 밀 20,000석과 기름 20석을 조달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 비용과 자재를 아끼지 않았다. 성전과 기구와 장식을 위해 부왕 다윗이 준비해놓은 막대한 양의 금은, 놋과 철, 귀한 목재와 석재를 아낌없이 사용했고, 성전 기초석은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놓게 했다.15 성전을 건축하는 데 동원된 인력은 183,850명이었다. 레바논에 파견된 노동자 30,000명과 함께 운반 담당 70,000명, 채석 담당 80,000명, 현장감독과 총감독 3,850명이었다.16 성전을 건축할 때 채석장에서 완전히 다듬은 돌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망치나 도끼 등 연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17
솔로몬 성전 구조와 규모
솔로몬 성전, 즉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알려준 설계도대로 지어졌다.18 구역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외부의 뜰, 내부의 성소와 지성소다.
솔로몬 성전 설계도.
성전 외부 구조와 기구들
솔로몬 성전의 전체적인 외관은 장방형 구조였다. 건축 재료는 모두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전 외벽에는 교창을 내고 성전 옆면과 뒷면에는 3층으로 다락들을 만들었다. 1층 다락의 출입문은 남쪽으로 내고, 거기에서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층계를 만들었다. 외벽공사를 마치고 서까래와 지붕을 백향목으로 덮었다.
뜰에는 번제단과 ‘바다(Sea)’라 부르는 거대한 수조, 성전 양편에 각각 5개씩 받침이 있는 물두멍을 배치했다. 성전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양편에 ‘야긴’과 ‘보아스’라 명명한 거대한 청동기둥을 세웠다. 백성들에게 성전 내부는 출입이 제한되었지만 외부의 뜰은 가능했다.
성전 내부 구조와 기구들
성전 내부는 두 개의 방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외소(外所, main hall, inside the temple)와 내소(內所, inner sanctuary)가 그것인데, 통상적으로 외소는 성소(Holy Place), 내소는 지성소(the Most Holy Place)를 말한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고, 일반 제사장들은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성전 내부 벽은 백향목으로, 바닥은 잣나무로 덧대어 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19 성소와 지성소의 사면 벽과 지성소의 출입문에는 그룹(천사)과 종려나무, 만개한 꽃을 아로새기고 금을 입혔다.20 성전의 모든 바닥에도 금을 입혔다.21
성소(외소)에는 제단, 떡상, 등대, 꽃장식, 등잔, 불집게, 대접, 주발, 불 옮기는 그릇 등 모든 기명이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심지어 문의 돌쩌귀도 금으로 만들어졌다.22 지성소(내소)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을 가로막아 만든 밀실이다. 성전 뒷쪽에서는 9미터 떨어진 곳에, 입구에서는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23 지성소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는 동일했는데, 각각 20규빗으로 9m가량이었다.24 지성소 앞에는 금사슬을 쳐놓았고, 안에는 감람목으로 조각하여 금을 입힌 두 개의 그룹(천사) 모형을 두었다.25
솔로몬 성전(예루살렘 성전)은 길이 30m, 넓이 10m 정도로 100평(330㎡)이 안 되는 규모였다. 일부 학자들은 왕실 규빗을 사용하여 길이를 40m로 산정하거나 26m가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26 성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건축기간이 7년이 넘게 걸렸던 이유는 성전 내부의 벽을 백향목 널판으로 입힌 다음 돋을새김(부조)으로 조각하고 순금을 입히는 등 내부 장식을 정교하게 꾸몄기 때문이다.
솔로몬 성전 모형,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솔로몬 성전 완공성전 건축의 핵심, 언약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위에 세워진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다. 당시 가장 유명한 산당은 예루살렘에서 약 10km 떨어진 기브온에 있었다. 모세 때 지은 성막과 번제단이 그곳 기브온 산당에 보관되어 있었다.27 솔로몬은 바로 이곳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목적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관하기 위해서였다.28 언약궤는 성전의 내소, 곧 지성소에 보관했는데, 지성소의 두드러진 특징은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동일하게 20규빗(약 10m)으로 정방형 구조였다.29
성전 완공과 낙성식
솔로몬 성전 완공의 백미는 다윗성(시온)에 보관되어 있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성전 안 밀실, 지성소에 두었다. 성막과 성막 안의 모든 기구도 성전으로 옮겼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성전에 가득 차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30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을절기인 초막절을 기해 낙성식31을 거행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양, 소를 바쳐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였다.32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간의 초막절 절기를 포함하여 14일 동안 낙성식을 치렀다.33
솔로몬 성전 – 에필로그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 예루살렘은 신앙의 중심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솔로몬 성전은 B.C. 586년경 신바빌로니아의 공격을 받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상상 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 병이 들거나 사망한 노동자는 없었고, 건축에 사용된 도구들도 전혀 닳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26
솔로몬 성전의 그 경이로운 역사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의 섭리가 숨겨져 있음이 틀림없다.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과 모세가 지었던 성막의 핵심은 지성소와 언약궤에 있다.
사도 바울은 옛 언약의 제도는 현 시대의 비유이며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으로서 우리의 죄를 온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이에 대한 텍스트가 담긴 히브리서 9장에는 대제사장의 실체인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34
사도 요한은 바울의 말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예언을 기록해놓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전에 대한 계시 중에는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를 상기시키는 대목이 있다. 지성소의 사면 규격이 동일했던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전의 규모도 사면이 동일하다는 것이다.35 요한은 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 보관된 언약궤를 계시로 보기도 했다.36 솔로몬 성전과 함께 지성소와 언약궤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