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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걸어서 진해 탐방. '진해! 걸어서 어디까지 가봤니?'
진해를 걸어서 탐방했습니다.
'걷는 만큼 보인다!' 진해의 다양한 소식을 시리즈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조군의 리얼버라이어티 워킹쇼
'진해! 걸어서 어디까지 가봤니?'(4)를 시작합니다.
진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으신 분들..
이번 주 어디 놀러가지? 걱정이신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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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의 이번 걷기는 역사탐방이었습니다.
진해는 바다에 둘러쌓여 있어 예로부터 왜의 침입이 잦아 성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웅천읍성, 웅천왜성, 제덕토성, 제포진성, 그리고 요즘 인기리에 방송중인 징비록에도 등장한 제포왜관지가 있는 웅천으로 향했습니다.
전국에서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성을 보유한 곳은 웅천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김종길새정치민주연합진해지역위원장님과 국방전문가이신 조현근대표, 경남대평생교육원에서 사진 강의를 하시는 차동석교수, 웅천에서 곰내마을이라는 지역문화개발 회사를 운영하시는 김병수대표께서 함께해주셔서 즐거움과 배울게 많은 걷기가 되었습니다.
웅천읍성 동문지에서 일행을 만나 걷기를 시작합니다.
웅천읍성은 현재 동문이 완벽하게 복원된 상태이며 차후 성안까지 복원된다고 하니 기대가 많이 됩니다.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조금 걷다 보니 해자 조교라는 것이 나옵니다.
성을 따라 물이 흐르는 해자라는 것을 만들어 왜군의 접근을 어렵게 했는데 저 조교를 펼치면 해자를 건너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의 도교 같은 기능을 한거네요.
지금까지 해자에 대한 기록이 전해 지는 곳은 두곳이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복원된 곳은 웅천읍성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곳이 해자 인데 폭은 3-4미터, 깊이는 2m정도 되고 물 아래에는 나무를 뾰족하게 깍아 촘촘히 박아서 왜군들이 쉽게 건너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현근대표가 해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약간 미로처럼 되어 있습니다.
왜군들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겠죠?
성루(?)에 있는 견룡문이라는 현판이 보이네요.
성루는 계단을 통해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성루에 올라가 성안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지금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성이 복원된다면 이전을 해야 한답니다.
보상과 복원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제대로 복원된다면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훌륭한 역사 관광지가 될 것 같습니다.
성루에 올라서면 앞에 막힌 곳까지 성위를 걸어 보실 수도 있습니다.
성 바깥쪽으로 해자가 잘 보이네요^^*
웅천읍성까지는 진해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오실 수 있습니다.
조군은 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성은 직각으로 90도가 아니라 80도정도 약간 기울어져 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성을 복원할때 이부분을 특히 신경써야 한다는군요^^*
아래 청테이프가 붙어 있는 부분이 원래 성터이고 그 윗부분은 새로 복원된 것입니다.
조현근대표의 팔 위부터가 복원된 부분입니다.
동문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치성도 있습니다.
성 아래에는 저렇게 수구라는 구멍이 있습니다.
지금의 하수구 역활이었답니다.
함께 동행했던 김병수대표는 어릴적 저 수구를 통해 건너편으로 왔다 갔다 하셨다네요^^*
얇은 철판을 이어 만든 성문입니다.
전쟁시 불에 잘견딜 수 있도록 철판을 사용했답니다.
거북선도 이런 철판을 위에 얹고 쇠침을 밖았겠죠?
동문을 나와 서문이 있던 곳으로 향합니다.
멀리 웅천교회가 보이네요.
웅천교회..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하시다 순교하신 주기철목사님이 세우신 곳입니다.
교회 옆에는 기념비가 있고 주기철목사님 재임당시 사용했던 100년이 넘는 종도 있습니다.
그 옆에는 웅천읍성 성곽이 있군요.
그리고 교회 안에는 작은 규모의 주기철목사님 순교기념관이 있는데 목사님의 다양한 유품과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교회가 일반인에게 팔렸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 역시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인데 시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매입하신분의 뜻에 따라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며 교회분들이 많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에서는 웅천읍성 남문 건너편에 저렇게 큰 규모의 주기철목사님 기념관을 만들었습니다.
과연..
교회를 보전하는 것과 추모관 건립...어떦게 먼저일지...
창원시에서 만든 주기철목사기념관..
창원시는 이곳을 기독교 성지로 만든다는 목표인데
교회를 보전해 연계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웅천교회 바로 옆에 있는 웅천읍성 서문지입니다.
옆에 보이는 큰 돌들이 성문이 있었던 자리였다는군요.
골목을 따라 이렇게 성벽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조금만 손보면 웅천읍성 복원에 큰 어려움은 없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골목 골목이 옛추억을 되살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돌담길도 보이는군요.
아마도 웅천읍성에서 나온 돌들이겠죠?
성터정..
성 옆에 있는 음식점인데 참 센스 있게 작명하셨네요. ^^*
골목을 나와 제포왜관지로 향하는데 웅천 시장을 알리는 간판이 보입니다.
4일과 9일장..조선시대때 부터 있었던 장이라고 하니 정말 역사 깊은 장입니다.^^*
남문동회관이라는 명패를 쓴 건물이 보입니다.
비록 행정구역에 남문동이라는 지명은 없지만 이곳이 남문동이라는 것은 마을 주민들께 구전되어 수 많은 세월을 이어져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웅천읍성을 나와 제포성지로 향하는데 구획정리가 된 넓은 땅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네요.
1천여세대라고 하니 3천명가까운 인구가 웅천에 늘어날 것 같습니다.
웅천이 자연과 역사가 잘 보전된 역사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포진성을 넘어가는 길에 만난 쌍효각..
아마도 이 마을에 두명의 효자나 효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백년 동안 이 길 앞에 서 있었을 텐데 지금은 길이 새로 뚫리면서 저 멀리 밀려난 느낌입니다.
자..저희는 제덕으로 향합니다.^^*
제덕에 도착하자 마자 마을이 보입니다.
저 마을이 바다였었다는군요.
이렇게 매립된지 몇 십년이 안됩답니다.
저곳에서 800여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고 있어 제덕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지겠군요.
이곳이 제포왜관이 있던 곳인데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살면서 조선과 무역을 했다네요.
제포진성과 제덕토성, 웅천읍성은 이런 일본인들의 침입과 유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일종의 세관역활도 했었고요.
조선에서는 제포왜관에 유입되는 일본인 인구를 제한했는데 밀항이 성행해 조선시대 때 1만명이 넘는 일본인이 거주하기도 했답니다.
왜관지의 규모를 짐작하실 수 있겠죠?
자 저희는 다시 괴정마을 쪽으로 향합니다.
괴정마을쪽 산길로 조금 걸어가니 제포왜관지로 추정되는 성이 보입니다.
많이 허물어져 있어 시급한 복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성 복원과 성을 통한 지역문화발전에 대해 김종길위원장님과 조현근, 김병수대표께서 진지한 의견을 나누시네요^^*
제덕마을로 향하는데 저 멀리 천자봉공원묘원이 보입니다.
산 정상에 사화랑봉수대가 있어 왜군의 침입을 가장 빨리 알렸다고 합니다.
제덕마을까지도 버스가 이어져 쉽게 찾아 오실 수 있습니다.
전신주 오른쪽의 작은 길이 원래 있던 길이고 왼쪽길이 바다를 메우고 새롭게 만들어진 길이랍니다.
그러니까 집 바로 앞이 바다였군요.
마을 안쪽에 정말 큰 나무가 있습니다.
동네분들도 어릴 때부터 봐왔는데 몇백년은 됐을거라시네요.
시에서 조사해서 몇년생인지도 밝혀내고 보호수종으로 지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성지가 보입니다.
바닷물이 흐르는 천입니다.
제포성지 역시 빠른 복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성지를 알리는 표지판 조차 읽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이곳이 어떻게 방치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성지위에는 집들이 들어서 있고 아래에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습니다.
하천을 막아 올린 축대 인데 보시는 기법은 일본식 축성기법이랍니다.
아래 올린 우리나리식 축성기법과 비교해 보시면 확연히 그 차이점을 아실 수 있으실 거에요.
김병수대표께서 시원한 물과 방울토마토를 준비해 오셔서 잠시 쉬는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제덕마을을 나와 다시 웅천읍성으로 향하는데 마을회관 게시판에 이런 장학금수여 안내문이..
학생수가 급감해 내놓은 고육지책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마을회관을 조금지나니 만호비가 우뚝 서 있습니다.
만호 아시죠? 이순신장군을 도와 싸웠던 그 만호!
그러나 아무런 표지 없이 쓰레기 더미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저 비석의 주인께 죄송하기까지 했습니다.
김종길위원장님도 '큰것만 새로 짖고 알릴게 아니라 이런 작은 것부터 보전하고 복원해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는게 그 출발점이 아닐까? 직접 걸어 보니 많은 것이 보인다. 이런 것 부터 잡아 나가겠다'고 안타까움을 토로 하셨습니다.
자 이제 다시 웅천으로 입성(?)합니다.
외국인 주택 전용부지라는데 왜관이 있었던 곳과 가까운 곳에 외국인을 위한 부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니 역사는 이어진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어느 집에 예쁘게 핀 꽃.
혹시 이게 수국인가요? 잘 몰라서...ㅡㅡ*
웅천읍성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안타까운 모습을 또 봤습니다.
인력사무소의 전화번로를 저렇게 성벽에 칠해 놨군요.
조만간 자장면집 전화번호도 칠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ㅡㅡ*
위에서 설명 드렸던 수구문이 또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건축실명제가 있었습니다.
웅천읍성에는 총 5개의 명문석이 있는데 명문석은 공사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세겨진 돌입니다.
그러니까 그 돌에 세겨진 사람은 책임자로써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구간을 담당했었던 겁니다.
만약 성이 무너지거나 이상이 있으면 큰 곤욕을 치르고 다시 불려가 쌓았다는군요.
건축책임 실명제라..
부실 시공이 많은 현대에 본받을 부분이 아니가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해자에 물이 차 있는 모습입니다.
원래는 저물이 흘러야 된다는군요.
오늘 조군과 김종길위원장님, 조현근대표, 김병수대표는 총 5.59KM를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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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웅천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군요.... 왜곡된 부분도 여러곳에 보입니다........^^
아무턴 수고많으셨습니다... 양해없이 복제하여 올린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웅천교회 역사관은 시에서 지원한게 아니고 교회에서 만든겁니다... 저가 디자인했고 우리교회가 한겁니다.... 설명하시는분이 누군지는 알지만 안타깝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