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3:1-13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 시키셨습니다. 고레스 왕은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유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것을 명하였고, 이에 힘입어 이스라엘 백성은 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가진 것을 내어놓아 기쁨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고향 땅에서 쉼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백성들이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1-7)
(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이제 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7월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곱째 달은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7월 1일은 나팔절이고, 10일은 속죄일이며, 15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초막절이었습니다. 또 과거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낙헌제를 드린 때도 7월이었습니다. 이들이 일곱째 달에 이르러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는데, 일제히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일제히’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한 사람처럼’입니다. 각지의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한 사람처럼, 한마음과 한뜻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 명절 중 하나입니다. 초막절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포로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들 중에는 과거에 고향에서 초막절을 지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부모에게 또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긴 세월이 지나고 드디어 다시금 고향에서 초막절을 맞이한 것입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각지의 흩어져 살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였고 고향 땅으로 돌아온 이유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필두로 제단을 만들고 번제를 드립니다.
(2-3)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또 하고 싶은 대로 번제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과거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그대로 회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주변 모든 나라 백성이 두려웠지만, 제단을 쌓습니다. 여전히 두려움은 가득하였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두려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에서 주인공 이순신 장군은, 왜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사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이순신 장군은 휘하 군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하여, 결연하고도 단호한 모습으로 먼저 앞장서서 싸움에 임합니다. 그 결과, 이순신 장군의 이 모습은 부하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시발점이 되어 우리가 아는 것 같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끕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는 누군가 한 사람의 결단과 시작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주변 민족을 향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그냥 제단이 아닌 바로 자기 민족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세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바로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제단을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그대로의 방식이었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록된 율법의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며 번제를 드리고, 또 저녁에 하루를 마무리 하며 번제를 드립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다짐하며 살아간 이들에게는 결코 두려움 따위가 자리할 수 없었습니다.
(4-5)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그렇게 정해진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키고 마음대로 더하거나 덜하지도 않은 번제를 드립니다.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미 앞선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포로로 끌려갔던 페르시아 땅에 잘 정착해서 어느 정도 부를 누리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편안함과 안락함만을 추구했더라면,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왔더라도 일곱째 달에 이르러 예루살렘에 한마음과 한뜻으로 일제히 모여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자기 있는 그곳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았더라면 그것대로 꽤 괜찮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초막절을 기억하며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쌓았다는 것은, 과거 조상들이 애굽을 탈출하며 광야에서 생활했었던 것 같이 그들의 포로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향한 감사과 기쁨이 그들에게는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자신들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한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으로 심판을 받아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리고 절기를 지켰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존재하였습니다.
(6-7)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은 쌓았지만, 아직 성전의 기초도 놓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들은 사람을 고용하고 재료를 준비하며 성전을 재건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8-13)
(8-9)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귀환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일제히 모여든 다음 해 성전공사가 시작됩니다. 이번에도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종교 지도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비롯한 일반 백성들도 성전 재건을 위하여 힘을 모읍니다. 1절에서 일제히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한 사람처럼, 한마음과 한뜻으로 모여들었던 것처럼 9절에서도 일제히 한 사람처럼 한마음과 한뜻으로 성전 재건에 힘을 보탭니다.
(10-11)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그렇게 기초 공사가 마무리되고, 모든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직 성전이 완성된 것이 아니고 그저 성전의 기초만 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지극히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전에도 함께하셨고, 지금도 함께하시고, 이후로도 함께하실 그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사랑받는 존재답게 사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이미 이루어지고 완성된 것만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마다 함께하셨고, 함께하시고, 또 함께하실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가슴 벅찬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 대성통곡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2-13)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이들은 과거에 성전이 불타고 훼손되는 장면을 보고 기억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성전이 다시 재건되는 과정이 기쁘기도 하였겠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죄로 성전이 파괴되었음을 기억하였습니다. 지금 다시 재건하는 성전은 과거 그들이 보았던 솔로몬 성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초라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또 성전이 없는 동안의 시절이 떠오르며 그때의 기억이 그들의 마음을 서글프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에 마냥 기뻐할 수 없이 대성통곡하였던 것입니다. 감격과 회한의 눈물이 동시에 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제 다시 성전에서 예배할 그 날을 꿈꾸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각자의 성읍에서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달에 일제히, 마치 한 사람처럼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기 시작하고, 초막절을 지킵니다. 아직 성전의 기초조차 놓지 못했으나, 가장 먼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할 준비를 합니다. 사람을 모으고 자재를 모읍니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정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였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한마음과 한뜻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기초 작업이 완성되자 한편에서는 환호성을 지르고 한편에서는 통곡합니다.
오늘 본문의 키워드는 ‘일제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제히 모여들었고, 일제히 일어나 성전 재건을 시작합니다. 마치 한 사람처럼, 한마음과 한뜻으로 일제히 움직이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주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입니다. 이 확신에 근거하여 살아간다면 어디든지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면, 어떤 순간에도 한마음과 한뜻으로 일제히 마음을 모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한마음과 한뜻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여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넉넉히, 또 신실하게 살아내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향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약속된 때에 일제히 모여들어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일어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늘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삶에도 함께 일제히 움직일 수 있는 공동체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답게 신실하게 이 땅을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1절과 9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일제히’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입니까?
2. 일제히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번제를 드렸습니까?
3.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4.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여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작성: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