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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가기 위해 목포항에서 하의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제법 세차게 불어 오는 동남풍으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헤치며 달리는 뱃머리에서 느낀 감회는 여느 대통령 생가와 선영의 간산길과는 사뭇 달랐다.
그 만큼 김 전대통령이 대권에 오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여정을 지켜 보면서 온 몸으로 느껴온 간접체험의 구비구비가 필자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새삼 솟구쳤기 때문이리라.
신안 하의도는 딱히 내세울만한 특산물이 없고 해변산중이라할 정도로 어업이 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동쪽과 남쪽해안에 염전이 조성될 정도의 척박한 땅이다. 만약 김 전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았다면 하의도는 그저 서남해역 한 곳에 떠 있는 작은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김대중하면 하의도가 떠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리자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탄생지 하의도’라고 새겨진 자연석 표지판이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대리마을은 이 섬에서 가장 큰 마을로 한때 500호가 살았다고 한다.
섬을 순회하는 승합버스를 타고 우리 일행은 원후광 마을 뒷편에 염전을 내명당으로 삼아 단아하게 복원된 생가에 도착했다.
초가로 된 안채가 6칸 접집의 큰 규모로 앉혀져 있고 왼쪽 입구에 두채의 초가가 나라히 자리잡아 꽤나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사진 참고>
그러나 복원된 집들이 자리잡은 그 곳은 김대중의 원생가터가 아니여서 복원된 가옥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단순히 육안에 의해 형기적으로 간룡하면 복원된 가옥의 터가 포근히 감싸 안은 진혈처럼 보였으나 이는 이기적 심룡에 의해 전혀 용진혈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의 관심과 궁금증은 김 전 대통령이 부친 김운식씨와 모친 장수금여사 사이에서 잉태되고 태어난 원생가터가 정확히 어디쯤인가에 집중됐다.
지형과 지세를 따라 생가의 양택에 대한 간산을 본격 시도하려는데 하의도의 전체적인 지형에 밝은 일행이 없는데다 필자도 이 곳에 오기전 지도를 통해 어느정도 익혀두긴 했어도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방향감각이 잡히지 않았다.
또 생가터까지 이르는 용맥의 본원은 어디에서 발조해 어떤 과정을 밟아서 결혈됐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때 마침 공직에서 퇴직한 강상원씨와 장명흠 대한염전조합 이사장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줬다.
이 두사람의 소상한 설명과 하의도의 산세의 흐름을 듣고 난뒤 부터 간산활동은 빨리 이뤄졌다.
하의도 전체 산세를 거느린 태조산은 멀리 남쪽(병오방)에 솟아 있는 망매산에 두고 있다.
거기서 부터 북쪽으로 낙맥한뒤 다시 서쪽으로 몸을 틀어 회두한 다음 또다시 서북방을 향해 낙맥, 결인, 비룡, 이위, 박환, 과협을 거듭하다가 그 중심축을 이루는 대리마을의 뒷쪽에 덕봉산을 일으켜 세운다.
그 수려하고 후덕한 덕봉산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의 생가터를 이루는 근조산이자 그 아래 가까운곳에 입도조의 선영을 비롯한 선조의 묘역을 결혈시킨 주산이기도 하다.
#그림1중앙#
덕봉산에서 다시 북쪽과 동북쪽으로 행도를 계속하다 후광2구 소포리의 현무봉이기도 한 목성체의 탐랑봉을 일으켜 세운다.
그 빼어난 기상과 수려한 산봉의 모습은 그 용맥의 끝 마무리 어느 지점인가에 예사롭지 않은 수혈의 결실을 예고하고도 남는다.
그 탐랑성의 수려한 산봉우리가 바로 김 전 대통령의 원생가터의 주산이다.
주산에서 좌선룡의 행도로 서서히 내려서는 용맥이 지금은 제방(옛날에는 얕은 갯벌이었다고 함)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이르러<산도 A지점> 이른바 잠룡의 도수과협을 거쳐 후광의 생가터를 이루는 현무봉을 치켜 세우려고 석맥의 비룡맥을 타고 치솟아 오른다.
용맥의 행도와 교도를 실측한 것은 소포리(후광2구) 뒷산 즉, 생가터의 주산에서 비롯됐다.
조종산(망매산)에서 생가터까지의 용맥은 형기적으로 봐서 분명 생기왕성한 형세를 갖춘 좌선룡이다. 이점은 다른 대통령의 생가터의 후룡형세와 일치했다.
그리고 현무봉에서 생가터에 이르는 마무리 용맥 또한 좌선작국의 용진혈적 요건을 갖췄다. 연화부수형의 군왕지지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다섯명의 다른 대통령의 생가터와 크게 다른점은 마무리용맥의 교구통맥과 주산에서 혈처(집터)까지 내룡맥의 변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약수강(山弱水强)인 산세를 비롯 주산에서 집터까지의 용맥의 흐름은 크게 봐서 좌선룡의 형국이지만 분석적으로 살펴보면 변국(부분적으로 좌선에서 우선, 우선에서 좌선으로 변환된 용맥행도의 형세)이 심했다.<산도 왼쪽 용맥도 참고>
이는 늦은 발복을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또 마무리의 교구통맥은 선매룡이 먼저 있고 결혈체에 이르러 태교룡의 교구를 형성했다.
끝에서 교구를 이룬 두자락의 태맥 또한 음두룡 태맥인 곤신맥(서남방에서 동북방으로 향하는 맥)과 양두룡 태맥인 건해맥(서북에서 동남방으로) 교구(음룡과 양룡의 배합)를 이루고 있어서 다른 대통령 생가터 입혈용맥인 음미의 간인맥(동북방에서 서남방으로 내룡하는 음미룡)과는 차이점을 드러냈다.
음양맥의 교구통맥으로 용진혈적이 성립됐지만 머리(양두)와 머리(음두)가 배합을 이뤘으니 순조롭고 조화로운 형태가 못된데다 너무 강세룡의 교구가 돼, 속칭 ‘터가 세다’는 생가터를 이뤘다는 것이다.
이는 순탄하지 못한 성공의 행로를 예고한다 하겠다.
다음회에서 소개할 예정이지만 선영의 음택도 역시 같은 형국이었다.
여기서 비록 DJ가 대통령이 되고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위대한 족적을 남겼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의 역정은 태어나면서 이미 예정된 것이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염려했던 궁금증을 어지간히 풀 수 있어 보람으로 느낀다.
그러나 생가터의 뒷동산에서 둘러본 생가터의 국세는 조물주가 미리 수려한 한송이 연꽃의 핵심에 생가터를 지어놓은 것을 비롯, 전면에 펼쳐진 안산은 마치 여섯개의 예쁜 연꽃의 꽃잎 모양새를 뽐내면서 생가터를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고<산도 점선 원>멀리 감돌아 떠 있는 섬들은 생가터를 옹위하는 아름다운 꽃잎의 병풍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수차례 확인하고 실측해도 ‘원생가터’의 표지판은 진혈의 중심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곳은 생기 보다 오히려 수맥의 살기가 있다는 것이 수맥탐지기의 결과였고 용맥의 측정결과도 건해맥의 해입수가 혈입수로 인입된 탓에 재고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필자의 독단일까.
필자는 원생가터 뒷쪽 언덕에 다시 올라 사방을 둘러봤다. 크고 작은 섬들로 싸여 마치 물위에 뜬 연꽃 처럼 보여지는 것이 영락없이 연꽃잎으로 옷을 지어 입혀진 섬, 하의도임을 확인시켜 준다.
풀숲 여기저기 피어있는 인동초의 향기를 느끼면서 숱한 역경을 딛고 이 나라 민주화에 온 몸을 바쳐온 DJ가 태어난 그 자리에서 필자도 신화창조의 출발점에 서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