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빠랑 이혼했어요! /이정순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한밤중에 엄마는 나를 깨워 황급히 옷을 입혔다. 잠이 덜 깬 채 엄마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겨울바람이 쌩쌩 불었다.
“에취! 추워!”
며칠 집에 오시지 않던 아빠가 어둠속에 서 있었다.
“아빠!”
나는 달려가 아빠 품에 안겼다.
“세진아! 이제부터 우리 세진이가 엄마 보호자야.”
“왜? 아빠는 어디 가는데요?”
아빠는 나를 한 번 안아주고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는 나를 붙들고 떨고 있었다.
“아빠, 가지마세요! 엉엉!”
엉겁결에 아빠랑 헤어졌다. 엄마는 놀이터 뒤쪽에서 택시를 잡았다.
“엄마, 집에 안 가고 어딜 가요?”
택시는 덜컹거리며 비탈길로 올라갔다. 말로만 듣던 달동네 지하방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창문도 없는 지하 방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마와 나는 이렇게 달동네 생활이 시작되었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저녁때가 다 되어 돌아온 엄마 몸에서는 생선 냄새가 확 풍겼다.
“배고프겠다. 엄마가 고등어조림 맛있게 해 줄게. 잠깐만 기다려.”
그 뒤 엄마는 거의 매일 고등어조림을 했다.
어느 날 골목 시장 앞을 지나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등어 사이소.”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생선을 팔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짓말 같지만 우리 집에는 전화도 컴퓨터도 없다. 동네 도서관에서 온종일 있었다. 냄새나는 방안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장이 됐다.
점심시간에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급식 식당으로 갔다. 식당 앞에 오늘의 특별 메뉴 판에 <고등어조림>이라고 붙어 있었다. 고등어라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옆 칠판에 눈길이 갔다.
<오늘의 초대요리사 김혜선 선생님>
‘어, 우리 엄마 이름이랑 똑같네. 하지만, 엄마가 요리사일 리는 없지. 동명이인이겠지.’
속으로 말하며 친구들이랑 배식구에 식판을 내밀었다. 나는 하마터면 식판을 떨어뜨릴 뻔했다. 배식구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이내 집게를 들고 고등어를 내 식판에 담아 주었다.
“시, 싫어해요. 안 먹어요.”
찬일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반장, 오늘 특별 요리사야. 우리 엄마가 초대했어.”
나는 아이들한테 들킬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이거 되게 맛있어. 요리사선생님은 우리 동네 골목 시장에서 생선 장사하는 아줌마야.”
찬일이가 고등어조림을 먹으면서 나와 혜린이에게 말했다.
“캑캑!”
“왜 그래?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어?”
혜린이가 놀라서 물었다. 동시에 엄마가 주방에서 달려 나와 물 컵을 내 입에 갔다 대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저리 비켜요. 아줌마 고등어 때문이란 말이에요.”
물 컵을 뿌리치자 물이 엄마 얼굴에 튀었다.
“반장, 요리사 선생님께 너무하는 거 아니야? 너답지 않게.”
혜린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 고등어 먹지도 않았는데 고등어 때문이라고 그래?”
찬일이도 한마디 했다.
“그, 그랬어. 미안해.”
“야, 나보고 사과할 게 아니라 저 아줌마한테 해야지.”
“싫어! 내가 왜?”
그러면서도 찬일이 말이 귀에 거슬렸다.
“넌 요리사 선생님한테 아줌마가 뭐야? 선생님이라 해야지…….”
찬일이를 한 번 째려보고 사태수습을 위해서 얼른 배식구로 달려갔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줄 알고 놀라서 그만…….”
나는 엄마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역시 세진이야.”
떠버리 찬일이가 또 떠들어댔다. 다행히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했다. 집에 와서 나는 엄마를 원망하며 화를 냈다.
“친구들이 알면 어쩌려고요?”
“엄마가 고등어조림으로 요리사 자격증을 땄어.”
“그래서 맨날 고등어조림을 한 거였어요? 생선장사 아줌마가 반장 엄마인 줄 떠버리 찬일이가 알게 되면요?”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던 자신이 미워 더 화가 났다.
“우리 아들 마음고생이 심하구나.”
“이게 다 아빠 때문이잖아요? 외국에서 돈을 벌어 오신다고 했는데 이게 뭐에요? 아빠는 정말 어디 가신 거예요? 엄마도 아빠랑 이혼하신 거예요? 그래서 말 안하신 거예요? 우리 반에 엄마아빠 이혼한 아이 많아요. 걔들 하나도 안 숨겨요. 왜 나만 숨겨야하는데요?”
나는 그동안 참아온 말을 폭탄처럼 쏟아냈다.
“세진이도 다 컸으니 말해도 되겠다. 숨기고만 있다고 해결 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
내가 아빠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빠는 외국에서 고생하신단다. 조금만 참으면 곧 오실거야. 우리 세진이 착하지.”
그런데 엄마가 하는 아빠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아빠 친구 회사가 어려워 보증을 섰는데 부도가 났어.”
“근데 왜 우리까지 망해야하는데요?”
나는 악을 쓰며 그 아저씨를 원망하는 말을 쏟아냈다.
“그 아저씨도 그러고 싶었겠어. 그래서 아빠가 자수하셨어. 네가 너무 어려 말 못 했던 거야.”
“아빠 감옥에 있는 거예요?”
엄마는 말없이 나를 껴안았다. 나는 엄마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악! 생선장사 엄마와 전과자 아빠?”
나는 소리소리 지르고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밤하늘에는 별이 유난히 총총했다.
“꺼지란 말이야! 오늘은 꼴도 보기 싫단 말이야.”
괜히 하늘을 보고 빛나는 별을 원망했다.
‘쳇! 내별은 반짝이지도 않는데…….’
나는 속상하거나 아빠가 보고 싶을 때, 특히 엄마한테 거짓말을 한 날은 하늘이 제일 가까운 곳까지 올라와 별을 보고 반성했다. 별은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이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음도 가라앉았다. 오늘밤은 별들이 더 총총하다.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를 면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말에 도서관 컴퓨터에서 아빠가 있는 교도소를 알아냈다. 그런데 내 호주머니에는 딸랑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뿐이었다. 나는 그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 두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목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와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엄마가 매일 고등어 판돈을 넣어 두는 서랍을 열었다. 비닐봉지에 돈과 통장, 그리고 카드가 들어 있었다. 카드비밀번호는 내 생일인 걸 잘 알고 있다. 비밀번호래야 지하방 들어오는 문 열쇠가 전부다. 그것도 내가 현관열쇠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번호열쇠로 바꾼 것이다. 돈을 조금 챙겼다. 어제 도서관 컴퓨터에서 아빠 면회신청을 해 두었다. 나는 구로구 천왕동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왔다. 빵집이 눈에 보였다.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과 우유를 샀다. 그리고 교도소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힐끔 힐끔 쳐다봤다. 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꼬마야! 이 차는 교도소 가는 차야. 다른 버스타고 가거라.”
“저, 저 교도소 가는데요.”
모기소리보다 더 작게 말했다.
“쯧쯧쯧! 애비가 못나 저 어린 것 고생시키는 것 좀 보소!”
한 아주머니가 아빠를 나쁜 사람 취급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아주머니를 노려보았다.
“재 좀 보소! 그 애비에 그 새끼구먼!”
옆에 있던 아저씨가 거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닭똥 같은 눈물이 발등에 떨어졌다.
“자자, 고만하소! 면회신청서는 있나?”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호주머니에서 어제 프린터 한 종이를 꺼냈다.
“그래도 아들 하나는 반듯하구먼!”
다른 아주머니가 말했다. 우리아빠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교도소 정문 앞에 내렸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빵 봉지를 든 손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정복을 입은 아저씨 두 명이 장총을 들고 정문에 서 있었다. 쭈빗쭈빗 걸어오는 나를 보더니 한 아저씨가 내 곁에 다가왔다. 호주머니에서 면허신청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아저씨가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안내소에서 면회 참관증을 받아 가슴에 달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빠가 나를 알아볼까?’
‘내가 아빠를 못 알아보면 어쩌지?’
그때 방송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이세진! 면회자 대기입니다.”
쇠창살 너머 영화에서만 보던 파란 죄수복을 입은 아저씨가 가슴에 번호를 달고 앉아 있었다.
‘707’
나는 무서워 조심스럽게 발을 땠다. 가까이 가서 까치발을 하고 쇠창살을 잡고섰다. 유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곳으로 말을 하라고 안내 아저씨가 일러 주었다. 그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왔다. 우리는 점점 눈이 왕방울 만해졌다.
“세, 세진아. 너, 너가 여기에 어떻게?”
“아, 아빠?”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빠가 원망스러워 말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아빠! 미워! 엉엉! 아빠 보고 싶었어. 왜 말 안했어.”
“세, 세진아! 우리 세진이 많이 컸구나. 어른 다 됐네. 아빠가 미안 해.”
“아빠 땜에 우리가 얼마나 힘든데요. 하지만, 아빠 잘 못 아니잖아.”
우리는 구멍이 숭숭 뚫린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서로의 촉감을 느꼈다.
“아빠 이거.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이야.”
“얘야, 그건 안 된단다.”
안내 아저씨가 와서 말했다.
“아저씨! 제발! 우리 아빠가 좋아하시던 단팥빵이에요. 이것만 아빠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네!”
“세진아. 아빠 배 안고파! 괜찮아.”
아빠는 창살을 붙들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안내 아저씨도 한참을 보고 있더니 내게 와서 말했다.
“이거 불법인데 707번이 워낙 모범수이고, 네가 진심으로 아빠를 걱정하는 것 같으니 딱 이번만이다.”
아저씨는 빵 봉지를 받아 아빠한테 전해드렸다.
“세진아, 고맙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단팥빵이야?”
아빠는 두 손으로 빵을 입에 넣었다.
“아빠! 목 메이니까 우유도 마셔요!”
“그, 그래!”
“이세진! 면회시간 끝났습니다.”
“아, 안 돼! 벌써?”
30분이 너무나 짧았다. 재미없는 수업은 너무나 길었던 것 같았는데.
“아빠! 빵 가지고 가서 배고프면 먹어!”
접견 창구에 아빠가 먹던 빵만 덩그러니 남았다.
“세진아. 씩씩하게! 알았지? 우리 세진이 힘내!”
아빠가 뒤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빠도 힘내! 또 올게.”
나도 아빠를 향해 힘껏 주먹을 올리며 활짝 웃어드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