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차 능경봉-고루포기산 - 박광용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8)
2008-02-25 13:54:23
[181차] 능경봉-고루포기산
2008. 2. 25. / 박광용
산행일 : 2008. 2. 23. (토), 맑음
코 스 : 대관령(하행휴게소)-능경봉-전망대-오목골갈림길-고루포기산-갈림길-오목골
참가자 : 광용, 문수, 인식, 은수, 민영, 덕영. (총 6명).
이번 산행에도 사설이 좀 길다. 여러 가지 집안일이 매끄럽지 못한 가운데 항선달님은 나를 지목하여 고루포기산 산행대장을 명하였다. 올 들어 처음 하는 대장, 굳이 마다할 이유가 별로 생각나지 않아 얼른 받아들이고 만다.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 산행이 될 거라는 것과 스키 탈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대가 여러 산우들을 설레게 만들었던가 보다.
세우가 거의 한 달 동안의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는 전갈이고, 최근 무척이나 바빠진 뱅우기는 금욜 저녁 늦게나 서울로 올라온다는 전갈이 있었다. 게시판이 왁자지끌하더니, 대장은 겨울의 별미 숭어회를 준비한다 하고, 항선달은 아예 닭도리탕을 준비해오겠단다.
홍콩에서 교환교수로 일하고 있다는 김찬석 군까지 참석할 거라 하고, 간간히 한 번씩 산행에 참석해오다가 최근에는 중국에서의 업무를 접고 다시 귀국했다는 박일기 군도 목동의 광호가 담아 싣고 오겠다는 전갈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예정이 삐끌어지고 만다. 주변 상황이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았는지, 오랜만에 나타난 친구를 반기는 주변 사람이 너무 많았던 탓일 게다.
더구나 김총마저도 사무실 업무가 완결되지 않아 토욜 오전 출근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목동팀의 불참으로 금욜 오후 떠나는 차량은 두 대로 줄어들었다. 평창동에서 쫄고님이 차를 몰고 정릉의 은수를 태우고 패밀리 아파트에 나타나고, 미리 준비한 숭어회를 담아 싣고 나와 덕영이가 타고 출발한다. 보정역에서는 김총이 빠져버리니 펭귄만이 항선달의 잠을 쫓아준다.
7:40에 출발한 차량은 서로 연락을 취해가며 8:45 경 문막휴게소에서 만나고 항선달의 랜드로바를 앞세우고 횡계로 달려간다. 마지막 스키를 즐기려는 것인지 간간히 밀리는 차량은 돌아올 내일을 걱정하게 만든다. 가는 도중에 걸려온 재일이의 전화, 토욜 아침에 나타나겠다 하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 하지만 밤 늦은 전화통화에서는 결국 포기하고 만다. ‘9시에 산행 출발할 것’을 딱 부러지게 일러두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었을 거라 여긴다. 마라톤 연습에 차질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음 대회가 3/16(일)에 있을 거라는데 마중 산행이라도 함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 숭어회 다 먹어버리기 전에 증거. 닭도리탕도 조금 남았다.
10:15경 도착한 횡계 읍내 콘도에서 바라보는 용평 스키장의 불 밝힌 슬로프와 달빛에 훤하게 밝아진 횡계 들판의 하얀 눈밭은 늙은(?) 가슴을 또다시 뛰게 만든다. 눈은 눈에 취하고, 입은 싱싱한 숭어회의 감칠맛과 닭도리탕의 간간함에 취한다. 깊어가는 달밤에 술잔이 비어있는 졸고님의 질문,
“너그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에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섬 이름이 뭔지 아나?”
“……”
“따라도”
하면서 술잔을 내민다. 모두들 배를 잡고 뒤집어졌다. 연속상영으로 이어지는 얘기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도 섬이 하나 있다는데, 그 섬은 ‘부~도’란다. 또 한 번 뒤집어지며 깊어가는 겨울 밤에 찰랑찰랑 술잔과 정이 넘쳐난다.
지난 며칠간 컨디션이 별로였다는 졸고님, 체기가 있다며 불편해하는데, 여러 가지 응급처방에 조예가 깊은 은수가 졸고님의 손가락을 딴다. 솟아오르는 검붉은 피는 그 증상을 조금은 완화시켜줬는지 안쪽의 작은 방에서 보다 따뜻하게 잤을 것 같다. 바로 옆에 있었던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피가 어느 누구의 것보다도 높이 솟았다는데 그 이유를 모르는 산우는 없으리라 여긴다. ㅋㅋㅋ ㅋㅋㅋ
다음날 새벽 5시반, 누군가가 맞춰둔 알람이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고 이불차고 나오기가 힘들어 눈망울만 굴리고 있다. 결국 7시가 돼서 모두들 자리를 차고 나온다. 만사님의 봉사로 어제 먹은 그릇들이 깨끗이 정리되고,
“8시에 밥 먹고 8시45분 출발이다.”
는 항선달의 명이 떨어지고 제각기 바쁘게 움직인다. 콘도 1층에 있던 식당에는 황태해장국은 없더라. 멀리 나가기가 귀찮아 그냥 그 집에서 간단한 아침을 챙기고 도시락을 내밀어 밥을 채운다.
항선달의 랜드로바에 여섯 명이 타고 대관령 옛길을 오르며 지난 겨울 선자령 갔을 때의 기억을 더듬는다. 남쪽 휴게소에서 북쪽 휴게소로 넘어가는 연결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은 그 난간에 부딪치고서야 멈춰 섰다. 바로 아래로는 옛 고속도로 차량들이 쌩쌩 달리고 있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때처럼 많지는 않은 사람들이 대관령 남쪽 휴게소에 삼삼오오 모여든다. 우리도 차에서 내리고 기념사진 한 방 박아두고 09:05 출발이다.
* 대관령 남쪽 휴게소에서 준비를 마치고...
카메라를 꺼내지만 한두 장 찍고 나면 지 주둥이를 닫아버린다. 추운 날씨 탓인지 충분히 충전해 온 배터리도 작동이 원활하지 못하다. 은수 카메라도 나와 같은 증상인가 보다. 결국에는 문수 혼자 찍사 노릇을 다 했다. 선달님 카메라는 성능이 좋은 것인 모양이다. 그 추운 날씨에도 작동이 잘 된다. 선달님요, 미안하요. 손 억수로 시러웠지요?
곧바로 시작되는 눈길에 스패츠가 필요할까 의심이 들긴 하지만 잘 다져진 길일 거라 여기고 아이젠만 찬 체, 스패츠는 없이 그냥 오른다. 남이 밟은 그 길을 따라 어젯밤 살짝 뿌린 백설에 잠깐씩 발자국을 놓치고 만다. 백두대간 길이라 이정표안내도 잘 돼있고 거리표시도 확실하다. 20분을 올랐을까, 아마도 샘터가 있다는 곳인 모양인데, 제왕산 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이정표에는 능경봉 1.1Km로 30분이면 오를 수 있겠다.
* 능경봉 직전 전망대 오름길에서... 각자의 모습이 다양하다.
자신의 능력껏 죽~ 늘어선 6명의 일행은 한 번씩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즐기며 오른다. 능경봉 바로 아래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다른 산객을 만난다. 이곳을 자주 다니는지 산행로에 대한 설명이 길어진다.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이 전망대에서 맘껏 눈요기를 한다. 북으로는 저기가 대관령, 우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지점이고, 그 뒤로는 선자령 오르는 길인데 어느 봉우리인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 능경봉 정상
바로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서니, 09:55 바로 능경봉이다. 주변에 나뭇가지들이 많이 있어 여름이라면 조망은 별로일 것 같다. 잠시 반복되는 풍광을 즐기고, 이제는 고루포기산까지 약간 지루할 수도 있는 산길을 간다. 얼마만큼 오르려고 또 내려가는 건지 자꾸 내려가기만 한다. 남쪽 능선을 따라 가는데 발이 자주 빠진다. 1미터쯤 쌓인 눈이 그 동안 따뜻했던 날씨에 밑부분은 많이 녹아 내린 탓인가 보다. 남이 밟은 발자국을 따라 가는 데도 여러 번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안되겠다. 스패츠 차고 가자.”
하여 모두들 스패츠를 차는데 펭귄은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들었는지 홀로 앞질러 나아간다.
부지런히 달려 쉼 없이 나아갔나 보다. 횡계치 부근에서 발 아래 펼쳐진 영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달린다. 첫 번째 왕산골 갈림길(횡계치 부근)을 지나고, 능경봉을 출발한 지 1시간20분만에 두 번째 왕산골 갈림길(제1쉼터)이다. 왕산골로 내려가는 산객들도 많은지 그 갈림길목에는 여러 산악회의 표지기가 달려있다. 잠시 쉬어가며 초콜릿 한 개를 입에 문다.
갑자기 지금까지 내려왔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오르막 경사가 급해진다. 스패츠를 차지 않았다면 신발에 눈 많이 들어갈 뻔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면 11:50 전망대 봉우리다. 횡계 읍내가 훤하고, 저 넘어 용평스키장의 슬로프가 눈앞에 다가온다. 저 멀리에는 대관령 풍력발전기가 우뚝하고, 선자령에는 회색구름이 모여든다. 혹시 눈이라도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바로 저기가 목적지 고루포기산인가 여기며 다시 길을 가고 오목골 갈림길(제2쉼터)를 지난다. 앞서가던 항선달 일행은 아예 흔적도 없이 나아가버렸다. 계속 30분을 진행하면 여기가 정상인지 12:25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다. 좁다란 정상에 표지만 있을 뿐 제대로 다듬어진 정상석은 없다. 주변 나뭇가지가 여름에는 시원하겠다.
정상부근이 너무 복잡하기에 잠시 옆으로 비껴나서 점심상을 차린다. 모두가 똑 같은 밥과 반찬, 그래도 온기가 남아 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근데 워쩐 일이래? 정성 들여(?) 갖고 간 매실주를 마실 생각을 안 하네? 두 잔을 따뤄놓고 빙 돌아가며 한 모금씩만 입술을 적셨을 뿐 누구도 제대로 마실 생각을 안 한다. 김총과 소룩이가 그리워진다. 은수와 펭귄은 컵라면을 하나씩 처치해 버리고 상을 접는다.
* 고루포기 정상에서
복잡한 정상표지판 앞에서 잠시 우리의 흔적을 남기고, 13:00 하산을 시작한다. 왔던 길로 500미터를 내려오면 올라갈 때 지나쳤던 오목골 갈림길이다. 작은 돌탑이 하나 만들어지고 있고, 13:10 돌탑 앞에서 사진 하나 찍어두고 1.3Km의 하산길을 종용한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급한 내리막에는 로프를 묶어뒀다. 그 로프 없었다면 아주 빌빌거리며 기어 내려올 뻔했다.
* 오목골 갈림길
하산길이 1.3Km 밖에 안 된다며 가소하던 펭귄은 어느덧 말이 없어지고 일행 중에 제일 뒤로 쳐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급한 경사에서 내려올 때 ‘Climbing down’하는 폼으로 밧줄을 잡고 뒷걸음으로 하나하나 잘 내려온다. 큰 걱정은 없겠다 싶어 계곡 중간쯤까지 가서 펭귄을 기다린다. 뭔가 부족한지 긴장한 탓인지 찌푸려졌던 펭귄 얼굴이 기다리던 나를 보자 이제야 환한 미소를 짖는다.
30분을 내달렸나 보다. 급한 내리막을 다 내려오니 이제는 포장도로다. 13:45 길 옆에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벗는다. 다시 15분을 더 걸어 횡계읍내로 들어서고 쫄고님의 애마가 홀로 기다리고 있을 콘도로 가서 모든 짐을 정리한다. 만사님은 저녁에 오시기로 한 마나님을 마중하여 내일 탈 스키를 마음으로 즐기고 있는 눈치고, 우리는 선달님이 안내하는 식당(또 이름 까무�다. 삼청회관 맞나?)으로 간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선달님과 졸고님은 대관령으로 가서 차량을 회수해 오고……
* 편한 마음으로 아이젠을 벗는다.
오삼불고기와 황태구이, 말이 필요 없다. 선달님의 메모리에 기억된 맛집에는 실수란 있을 수가 없다. 밑반찬도 깔끔하고 젓갈은 짭짤하고 더덕의 향이 진한 것이 내 입에 맞다. 불고기와 비벼먹는 밥이 일품이다. 산에서 마시지도 않던 매실주는 여기서 바닥이 나버리고, 추가로 이슬이는 두어 병이 더 필요했다.
이제 만사님을 남겨두고 우리는 떠나야 할 상황, 횡계의 골목길까지 훤하게 꿰고 있는 선달님이 만사님을 데려다 주고, 속이 불편하다는 쫄고님을 대신하여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4시에 횡계를 출발하여 중간중간 밀리고, 7시10분 양재역에 당도하니 김총, 뱅욱, 세우, 일기, 찬석이까지 모여있다. 김총, 세우, 뱅우기, 셋이 모여 청계산을 다녀온 후, 모처럼 서울 나들이한 찬석이를 환영한답시고 모였던 모양이다. 포장해간 황태구이를 내 놓으니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너무 부드럽고 간이 딱 맞네.”
“와~~ 맛있다.”
이렇게 2월의 마지막 산행의 밤은 깊어만 가고, 성의를 보이겠다는 김총이 또 무리를 해서 노래방을 하나 잡아둔 모양이다. 잠시 이동하여 12시까지 질급게 놀았다. 세우야 고맙다. 김총아 고맙다. 모두들 고맙심다. 모두들 잘 들어갔제? 근데 청계산 산행기도 올라 올라나? 그러면 출석 인정해줘야지…… 뭐? 그냥 인정해 주라꼬? 알았다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