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 2020 여름호 특집 원고- 2 ※1의 작품 <고향이 날 부르는 소리>는 2의 작품부터 14번까지의 작품은 저의 고향(경북 울진)의 명승고적을 노래하기 위한 서문 형식의 작품입니다. 고향을 떠난 출향인으로서 고향의 그리움을 13개의 작품에 담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으로 지은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고향이 날 부르는 소리 아서라 선잠 깰라 고이 안아 어리다가 설레는 속삭임을 찾아 헤맨 그리움에 아늑한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자장가. 저무는 저녁놀이 산마루를 넘을 채면 갈 길 바쁜 디딜방아 호박 찢는 공이소리 허리 휜 초가지붕도 흥에 겨운 어깨춤. 개울가 수양버들 오늘도 그네 타고 돌아 누운 조약돌도 예전 모습 그대론데 어릴 적 벗님네들은 어느 결에 소소백발昭昭白髮. 못 이룬 사랑이라 생각하면 더 그립고 멀리 둔 고향이라 애틋한 맘 간절하여 찌들은 타향살이에 목이 메는 옛 노래. *호박 : 방앗공이로 찧을 수 있게 바닥에 묻어둔 절구 모양으로 우묵하게 파인 돌. *소소백발昭昭白髮 : 온통 하얗게 센 머리 ※이 작품은 4연시조로 어릴 적 고향을 잊지 못해 그린 작품이다. 고향은 경북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고와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울진에 나와 다녀 순수한 울진 토박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깊어 고향을 그리는 작품이 다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연은 꿈속에서도 잊지 못한 고향을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로 대신하였고, 2연은 하루해가 막바지 방아를 빨리 찧으려고 속도를 내는 것이 흥에 겨워 초가지붕도 춤추는 정겨운 모습을, 3연은 동구 밖의 개울물은 예전처럼 여전한데 그 때 놀던 친구들은 어느덧 백발이 되었음을, 4연은 옛 사랑이 더 그립 듯이 고향도 멀리 두면 더 애틋하고 넉넉지 못한 타향살이에 옛 노래까지 애절함을 노래하였다. 2. 울진 망양정望洋亭 지척도 천리라서 어렵사리 닿은 발길 성큼 자란 송림 새로 잔솔가지 안부 묻곤 뭘 하다 이제 왔냐며 핀잔까지 곁들인다. 두 눈에 못 담은 채 한 폭에 다 그렸고 바닷물에 빠진 달도 수평 위로 꺼냈지만 관동關東의 제일망루第一望樓는 그릴 엄두 못 낸다. 청자빛 흐른 물결 그림 속에 고이 담고 갈 길 바쁜 고깃배도 떼를 써서 붙잡아도 놀다간 산들바람은 간 곳 몰라 못 부른다. ※망양정望洋亭은 울진 근남면 산포리에 있으며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어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대왕이 친히 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받은 정자이다.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또 송강 정철(鄭澈)은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御製詩)가 시판으로 남아 있어 더욱 고고하다. 또 정선(鄭敾)은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으로 화폭에 담는 등 많은 문인·화가들의 예술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울진의 3대 정자는 망양정, 월송정, 연호정이라 하겠다. 3. 울진 성류굴聖留窟 굽이치는 왕피천에 천상 선녀 놀던 동굴 수억 년 긴 세월을 숱한 전설 간직하다 찬란한 지하궁전이 열두 광장 펼친다. 선유봉에 반한 신선 차마 발길 못 돌리고 불상도 난을 피해 잠시 피해 은신하고 장엄한 기암석벽에 연신 머리 조아린다. 이리 봐도 선경仙境이요 저리 봐도 비경祕境이라 가파른 절벽위에 붉은 도포 두른 노송 골 깊은 산자락마다 선장禪杖 들고 나온다. ※성류굴은 경북 울진 근남면 구산리에 위치함 석회암 동굴로, '성불이 머물던' 뜻으로 성류굴聖留窟이라 부른다. 약 2억 5천만의 연륜이 쌓인 동굴로 추정되는 성류굴은 기묘한 석회암들이 마치 금강산을 보는 듯하여 ‘지하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1963년 5월 7일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된 성류굴은 탱천굴(撑天窟), 선유굴(仙遊窟)이라고도 하며, 굴의 길이가 약 470미터, 전체 길이 약 800미터로 현재 12광장까지 개발이 되어 탐사할 수 있다. 입구는 선유산(仙遊山) 절벽 밑 왕피천(王避川)가에 있는 좁은 바위구멍이다. 사방의 경치가 아름다워서 선유굴 또는 선유산 밑에 성류사(聖留寺)가 있어서 성류굴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일설에는 해일로 인하여 근처가 모두 물에 잠기고 이 산봉우리만 석류만큼 남았다고 하여 석류산이라고, 그 밑에 있는 굴이라 하여 석류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울산을 지나 진격해온다는 말을 들은 부근의 백성 5백 명이 이 굴로 피난했는데, 왜군이 동굴 입구를 막아버려 모두 굶어 죽었다고 한다. 입구 경사지에 깔린 바위들은 그때 왜적이 입구를 막은 돌이라 하며, 제5광장 동쪽에서 발견된 사람 뼈는 그때에 죽은 사람들의 뼈라고 한다. 이 굴에는 이무기가 숨어 있어서 가뭄이 심하면 굴 어귀에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3연의 <도포 두른 노송>은 금강송을 의미하였다. 4. 울진 불영계곡佛影溪谷 화공이 뿌린 붓질 병풍 속에 가둬놓고 긴 세월 틀고 앉아 묵상하는 바위틈에 휘감는 푸른 물결로 수를 놓는 물보라. 휘몰아친 물굽이에 소름이 날 세우고 여울에 자지러져 적실 맘도 옴츠려져 쏟아질 절벽에 붙어 엉거주춤 기댄 노송. 승천하는 비룡飛龍조차 곁눈질 하는 절경絶景 먹이 쫓던 송골매도 넋 잃고 맴돌 때면 용소에 갇힌 전설이 햇살 타고 오른 계곡. ※불영계곡은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부터 근남면 행곡리까지 이어지는 장장 15km에 이르러는 흰빛을 띤 풍화된 화강암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 장엄한 계곡으로 명승6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굽이진 계곡과 특이한 형태를 가지는 암석(부처바위, 사랑바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불영계곡은 20억 년 전에 만들어진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마암은 땅 속 깊은 곳에서 아주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변형된 암석으로, 이러한 편마암이 드러나게 된 것은 동해로 흘러나가는 계곡물이 오랜 시간 편마암 위의 돌을 깎아냈기 때문이다. 특히 울진지방의 3대 계곡은 불영계곡, 덕구계곡, 신선계곡이라 하겠다. 5. 울진 월송정越松亭 어둠 짙은 솔밭 숲에 넋을 잃은 초승달이 긴 밤을 아우르다 마지못해 흘린 정을 선잠 깬 바닷바람이 백사장을 빗질한다. 월송月松에 넋을 잃어 한 눈에 다 못 채워 세월의 먼발치도 화필로 주워 담고 서산에 걸린 반달을 낚아채어 낙관落款한다. ※월송정(越松亭)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로 517에 위치한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혔다. 울진군지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네 화랑인 영랑, 술랑, 남석, 안상의 유람 지였다고 한다. 월송정의 명칭은 달빛과 어울리는 솔숲이라는 뜻으로 월송(月松을 잘못 표기)에서 유래되었나는 설과 신선이 솔숲을 날아서 넘는다는 뜻(越松)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월송정은 경북 울진 평해 월송리에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진 오래된 누각으로 1980년대 옛 양식을 본떠 새롭게 지었으며, 현판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썼다. 6. 울진 불영사佛影寺 한나절 깊은 골에 물소리로 겹을 쌓고 풍령風鈴은 졸고 있다 솔바람에 문득 깨니 서산의 부처 바위는 연못으로 떨어지다. 육중한 삼층탑엔 청태靑苔가 눌러앉고 천년도 찰나라서 세월도 흔적 없어 숨죽인 부연婦椽 끝마다 하늘 항해 치솟는다.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천축산(天竺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1370년(공민왕 19) 유백유(柳伯儒)가 지은 「천축산 불영사기」에 그 기록이 나온다. 의상이 경주로부터 해안을 따라 단하든(丹霞洞)에 들어가서 해운봉(海運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서역의 천축산을 옮겨온 듯한 지세가 있었다. 또 맑은 냇물에서 다섯 부처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내려가서 살펴보니 독룡(毒龍)이 살고 있는 큰 폭포가 있었다. 의상은 독룡에게 법(法)을 설하며 그곳에다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독룡이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신비로운 주문을 외워 독룡을 쫓은 뒤 용지(龍池)를 메워 절을 지었다. 지금은 북쪽 산마루의 부처바위가 절 앞의 연못에 비쳐 천축산 불영사(佛影寺)라고 한다. 7. 울진 덕구계곡德邱溪谷 승천하는 비룡飛龍조차 곁눈질 하는 절경絶景 먹이 쫓던 송골매도 넋 잃고 맴돌 때면 폭포에 갇힌 전설이 햇살 타고 오른다. 이리 봐도 선경仙境이요 저리 봐도 비경祕境이라 가파른 절벽 길에 푸른 도포 두른 노송 매봉산 골짜기마다 선장禪杖 들고 나온다. ※덕구계곡은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선에 위치한 매봉산 자락의 계곡으로 불영계곡과 더불어 울진의 양대 계곡으로 불리는 명소로 약 3km의 계곡을 따라 세계 곳곳의 유명한 다리들의 축소판이 재현되어 있어 특색 있는 경관을 자랑하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덕구온천이 위치한다. 덕구계곡 지역은 주로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암석들이 쪼개진 틈을 따라 올라와 굳은 안산암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덕구계곡은 이곳의 암석들에 영향을 받은 강물의 흐름이 잘 관찰된다. 8. 울진 죽변항竹邊港 밤마다 팔을 끌어 고향 가자 조른 꿈이 어제는 포구 돌며 십팔 곡을 흥얼대다 오늘은 선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운다. 가지런히 고삐 묶어 숨 고르던 고깃배가 설렘에 부푼 꿈을 미리 챙긴 만선滿船 깃발 백구白鷗도 동행하자며 출항 고동 울린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죽변항은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또는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라 하여 죽빈 이라고 하다가 죽변 또는 죽변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죽변이 「포구의 인사」라는 대중가요 속에 남아 있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가수 남인수이다. 또한 죽변은 울릉도에서 직선거리에 있으며 한때는 포경선들이 줄을 섰던 곳이다. 그런 연유로 죽변초등학교의 교문은 고래의 턱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울진대게와 오징어, 정어리, 꽁치, 명태 잡이로 이름난 항구가 죽변항이었다. 죽변은 어업 전진 기지로 명성을 날렸고 동해안에서도 규모가 크기로 손꼽히는 곳으로 1938년에 축항 시설을 하였다. 9. 울진 연호정蓮湖亭 느닷없는 솔바람에 연잎은 지레 눕고 왜가리 날갯짓에 잔물결 요동치니 어릴 적 청운의 꿈도 안개 덮인 일장춘몽. 산그늘 내리깔면 좌선하던 선비님은 연꽃을 품어 안고 연심戀心도 포개 안아 시심詩心에 흠뻑 취해서 읊어보는 칠언율시. ※연호정은 경북 울진 울진읍내 자연호수 연호(蓮湖)가 내려다보이는 소나무 숲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1815년(순조 15) 이 자리에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작은 누각을 세웠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하자 1922년 당시 군수 이기원(李起遠)이 지역 유지들과 뜻을 모아 옛 동헌(東軒)의 객사 건물을 옮겨 세우고 연호정(蓮湖亭)이라고 개칭하였다
10. 울진 죽변등대竹邊燈臺 긴 세월 하루같이 벼랑 끝에 웅크리고 낮에는 술래 되어 머리 숨긴 멥새 찾고 보채는 양떼구름도 얼려주며 보낸다. 감긴 눈 비벼가며 졸음 쫓는 금강역사金剛力士 밤에는 투정하는 조각달도 외면하고 길 잃은 철부지 찾아 이 한 밤을 새운다.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등대로 1907년 일본군이 러시아군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프랑스인의 설계로 건립되어 1910년 11월 24일 최초로 점등되었다. 죽변등대 내부 천정에는 원래 대한제국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죽변등대의 윗부분이 함포의 포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보수 공사를 하여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길 잃은 철부지>는 <항구를 찾아 돌아오려는 배>를 의미한다. 11. 울진 후정해수욕장後亭海水浴場
간밤에 잠 못 이뤄 뒤척이는 파도소리 흐르는 조각구름 그물채로 낚아놓고 백사장 모래알마저 곱게 씻어 다렸구나. 하늘이 쪽빛이라 바다가 푸른 건가 바다가 쪽빛이라 하늘이 더 푸른가 화사한 쪽빛 바다가 쪽빛 하늘 같아라. ※후정해수욕장은 경북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해안선을 따라 4km 이상 펼쳐진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명소이다. 비교적 바닷물의 깊이가 낮고 주변에 크고 작은 바위가 있어 여름철 해수욕장으로는 제격이다. 이근에 명승지나 고적이 있어 수산물이 풍부하여 탐사객이나 관관객이 일 년 내내 붐빈다. 12. 울진 금강송金剛松 나래치는 솔바람을 품어 안아 잠재우고 붉은 기운 서린 솔은 높은 하늘 낮다면서 빛 사래 긴 능선마다 연지곤지 찍는다. 골이 깊어 물이 좋고 산이 깊어 울창하니 자리 깔고 앉은 구름 어느새 나들이 가 청 물감 뿌린 창공엔 시린 햇살 부신다. ※울진군 금강송면(옛 서면)은 일명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는 금강송(金剛松)의 국내 최대 군락지이다. 조선 숙종시대 바위에 새겨진 입산금지 표지석은 나라의 허락 없이 입산을 금지한다는 왕명을 담고 있다. 520년 수령의 최고령 금강송은 붉은빛 감도는 모습으로 하늘로 곧게 뻗은 소나무의 제왕으로 왕궁과 종묘 등 국가의 중요한 건축에만 사용된 목재로 그 가치가 대단하다. 13. 울진 봉평신라비鳳平新羅碑 천년의 숨은 비밀 혼자 안고 고이 자다 / 천년의 숨은 비밀 긴 세월 자락 끝에 감당하기 어려워서 행여나 깨울 이 없나 가슴 조려 기댄 세월. 무심코 던진 돌이 다시 보면 옥돌이듯 / 무심코 던지 돌이 다시 보면 옥돌이요 하찮은 일이라도 보기 따라 새롭듯이 반만년 이어온 사직 헛꿈만은 아닌 자취. ※울진 봉평신라비는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신라의 비석으로 국보 제242호이며, 1988년 4월 경북 울진 즉변 봉평리에서 발견되었다. 울진군 죽변면 봉평마을 한가운데 있는 전각 안에 의젓하게 서 있는 이 비석은 오랜 세월 동안 묻혀 있다가 세상의 빛을 다시 본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냇가 옆의 밭에 오래 묻혀있던 비가 객토사업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당시 신라가 영토를 넓혀나가면서 지방 통치를 어떻게 했는가 등 삼국시대 신라 역사를 밝혀주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비문을 담고 있는 신라 최고(最古)의 비이다. 법흥왕 11년(524년)에 세워진 신라 최고의 비로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완전한 판독은 어렵지만 당시 신라의 영토, 율령체제 그리고 왕권과 관료 제도를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14. 울진 백암온천 땅속에서 가마 걸고 섶을 지펴 끓인 물이 더운 열기 참지 못해 자리 차고 용솟음쳐 양지볕 산기슭마다 증기 서린 온수溫水레라. 움츠려 담근 몸은 숨죽인 인어 되어 쏟아지는 비지땀에 온 냉탕을 넘나드니 비눗기 없는 맨살이 방금 탄 솜일레라. *백암온천 : 경북 울진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유황 온천. ※울진 백암온천은 경북 울진 온정면에 있는 온천으로 신라 시대에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뒤쫓다가 날이 저물어 이튿날 다시 찾았으나 그 행방이 불명하였다. 이를 괴상히 여긴 그 부근을 탐색하니 창에 맞은 사슴이 누었던 자리에 지하에서 온천수가 솟아오름을 보고 약수탕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 백암사의 승려가 돌무더기로 탕을 지어 병자를 돌보다가, 고려 명종 때는 목조탕, 조선시대 때는 석조 탕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15. 울진 신선계곡神仙溪谷 세월의 물굽이에 갈고 닳은 기암절벽 달을 삼킨 명경지수 비룡도 입 다시고 무지개 핀 폭포가에 바둑 두는 노옹들. 백암을 품에 안고 굽이 돌며 어화둥둥 판소리 열두 마당 은물결 부서지고 뻐꾸기 우는 소리도 발길 멈춘 여울목.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신선계곡은 천연 기암절벽이 많은 계곡으로 계곡 전체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고, 계곡 곳곳에 여러 개의 담이 있다.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며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과 한데 어우러져 비경을 이룬다. 명칭의 유래는 이진사(李進士)라는 사람이 와서 보니 사방에 있는 계곡의 아름다움이 신선이 놀던 곳과 같다 하여 신선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선계곡의 동쪽은 서화산과 백암온천, 서쪽은 영양군 수비면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으로는 백암산과 태백산맥의 준령들이 이어져 있다. 북쪽은 외선미리와 구주령이 위치해있는 험준한 산과 계곡들이 연결되어 있다. 16. 고향 유정 발길 끊긴 고향 땅은 이역보다 더 멀어도 / 오래 뜸한 고향 땅은 이역보다 멀다더니 동네 잎새 삽살개는 낮 설어 짖어대고 / 동네 잎새 삽살개가 반갑다며 꼬리 치고 사립문 닫은 집마다 예전 같지 않구나. / 집집이 닫힌 담장은 예전 같지 않구나. 옛적에 어린나무 어느새 성큼 자라 그 위용 뽐내면서 마을을 수호하고 / 마을의 문장 되어 그 위용도 한껏 뽐내 어릴 적 산천초목도 오늘따라 더 푸르다. / 두고 간 산천초목도 오늘따라 더 푸르다. 저무는 먼 산 넘어 진눈깨비 내리더니 허기진 골짜기는 허리띠 졸라매고 초저녁 돋는 별 보니 이제서야 실감 난다. ※‘고향’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정감을 강하게 주는 말이면서도, 정작 ‘이것이 고향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고향은 나의 태어난 곳이며, 그곳에서 자랐던 곳, 그래서 정이 든 곳이다. 그래서 공간적이며 시간적이며 심리적인 세 요소가 복합된 말이다. 1연은 오랫동안 찾지 못한 고향을 찾았으니 몰라보게 많이 변한 모습을, 2연은 예전에 보는 수목들이 성큼 자라 정겨운 마음을, 3연은 비록 진눈깨비가 내린 산골의 초저녁 별을 보니 이제야 고향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음을 표현하려 하였다. 17. 고향 가는 길 그리움에 설레는 설렌 가슴 가슴 안고 한달음에 가고픈 길 한달음에 가고픈 길 이슬 품은 들국화 들국화는 이슬 품고 수줍어 고개 깔고 수줍은 듯 고개 깔고 인기척 끊긴 밤길에 둥근달이 반긴다. ※추석 전에 당일로 성묘를 다녀왔다. 고향 가는 길이 다소 멀어도 늘 즐겁고 감개무량하다. 그래서 고향은 언제나 나에게 각별한 의미와 정감을 준다. 이 시조는 단시조로 고향의 그리움과 설렘을 마을의 정취와 함께 노래한 작품이다. 18. 고향산천 뻐꾹새 울고 간 뒤 백로가 나래 접고 숨 고른 산과 들은 겨우내 한결 수척 꾹 눌려 쌓은 옛정에 봇물 터진 옛 시절. 산에는 진달래꽃 들에는 개나리꽃 먼발치 아롱거린 정겨운 논배미에 참았던 동심에 취해 등실 거린 어깨춤. 동구 밖 느티나무 이제껏 나 먹어도 백발은 솎아 내고 턱밑도 잘 다듬어 언제나 뒷짐을 지며 위엄 넘친 어르신. 벗님네 고향 떠나 서러워도 달은 뜨고 신행길 굽진 고개 꽃가마 울고 넘고 옷고름 마를 날 없이 눈물 찍는 어머니. ※출향인에게는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다. 특히 나이 들수록 더욱 그러하다. 어릴 적에 놀던 고향을 다시 되새기며 읊은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목가적인 노래로 한번 음미하며 저절로 고향을 그리는 서정을 담을 수 있었으면 하고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19. 고향의 소리 한 굽이 돌다보면 귀에 익은 냇물소리 또 한 굽이 돌다서니 눈에 익은 파도물결 예전에 불던 휘파람 등뒤에서 들린다. 떠가는 구름 한 장 이불 삼아 덮은 달밤 울던 아기 잠 들어도 청승맞게 우는 뻐꾹 집나간 어린 새끼를 애태우며 찾는다. 20. 귀향 어젯밤 꿈속에서 옛 친구 어울려서 동구 밖 개울에서 혼 뺏긴 물장구에 불현듯 잠에 깨어서 마음 먼저 달린다. 그래서 그러한지 덩달아 덜뜬 가슴 고향행 버스표에 몸둥이 맡기고서 돌아온 방랑자되어 산마루를 넘는다. 여름 내 먹구름이 물 먹고 망서리다 곳곳에 쏟아부어 물바다로 이룬 산천 비지땀 흘린 임들께 이 한몸도 바친다. 동산엔 진달래꽃 들밭엔 복숭아꽃 설움이 태산이라 사연도 너른 바다 들숨에 긴밤 지새면 날숨에 날 밝힌다. 어려서 오른 나무 나이 들어 더 푸르고 동네 꼬마 놀이터에 마실 지킨 회화나무 달밤에 숨박꼭지로 밤 깊은 줄 모른다. ※소시절 땐 시골인 고향이 싫었다. 그래서 타향, 그것도 도회지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望八이 되니 고향이 한없이 정겹고 그립다. 부모님이 묻히신 정다운 산천은 내 젊은 시절의 혼이 깃던 곳이다. 낙향은 꼭 고향이 아니라도 도회지에서 어쩔 수 없이 시골로 거처를 옮기거나 이사 오는 것이지만 귀향은 내가 태어난 시골로 되돌아 가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품같이 따뜻하고 정감이 설레인다고 하겠다. 이 작품도 옛 고향을 그리다 귀향하여 그간의 소회를 담은 작품이다. 21. 연호지蓮湖池
버들가지 실바람에 치맛자락 향 뿌릴 때 저녁놀은 가는 임을 소매 잡고 길 막으니 진 옥색 깊은 물결엔 졸음 쫓는 에 물오리. 한여름 붉은 연꽃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어젯밤 은하수가 흘러놓은 뒷얘기에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도 못을 메운 꽃창포.
한여름 붉은 연꽃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어젯밤 은하수가 흘러놓은 뒷얘기에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도 못을 메운 꽃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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