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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거리가 먼 우주의 은하를 두 여인이 어떻게 이동 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장애들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어디에 우주가 있으며, 어디에 은하가 있으며, 어디에 장애들이 있단 말입니까? 두 여인은 왕비가 사용하던 왕궁의 내실 방에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바시슈타가 비두라타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던 곳은 거기였습니다. 전의 파드마 왕도 다름 아닌 그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순수한 공간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런 우주도, 먼 곳도, 장애도 없습니다.
서로 대화하면서, 두 여인은 방에서 나와 산 위에 있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 산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곳의 모든 집들은 말 그대로 나무에서 계속 떨어지는 꽃들로 덮여 있었습니다. 젊은 여인들은 자신들의 방 안에서 구름들로 만들어진 침대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지혜의 요가를 집중적으로 수행함으로 릴라는 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돌이키며, 그녀는 사라스와티에게 말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얼마 전까지 저는 나이든 여인으로 여기에 살았습니다. 저는 여러 면으로 옳은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본성 속으로의 탐구, 즉‘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남편 또한 착하고 정의롭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내면의 지성은 일깨워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행위들의 모범이었으며, 그러한 행위들로 우리는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말한 후, 릴라는 사라스와티에게 그녀가 살던 곳을 보여 주면서,“보십시오. 이것은 제가 귀여워하였던 송아지입니다. 서로 떨어지게 되었으므로, 그것은 풀을 먹지 않고 지난 8일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제 남편은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그의 강한 의지 때문에 그리고 그가 곧 위대한 왕이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몹시 길게 보이기는 하지만, 8일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공기가 공간에서 보이지 않은 채 움직이듯이, 이 집의 공간에서 제 남편 은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만한 작은 공간인 이곳에서, 우리는 남편의 왕국이 백만 마일이 된다고 상상합니다. 오, 신이시여! 남편과 저는 모두 순수 의식인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수수께끼 같은 환영의 힘인 마야로 인하여, 남편의 왕국이 수백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듯 보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신기합니다. 저는 남편이 통치하고 있는 수도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도록 합시다. 근면한 자에게 성취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사라스와티와 함께 릴라 왕비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극에 있는 별의 영역 너머로, 완성을 이룬 현자들의 영역 너머로, 신들의 영역 너머로, 창조자인 브람마의 영역 너머로, 그리고 고로카, 쉬바, 사자의 영혼, 해방된 이들의 영역 너머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릴라는 태양과 달조차 멀리 밑에 있어서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라스와티는 릴라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이것조차 넘어서 창조의 정점까지 가야 한다. 그대가 봤던 것은 그곳에서 나온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곧 그들은 이곳의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식이 순수하고 견고하여 그들의 의지가 다이아몬드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릴라는 이 창조물이 물, 불, 공기, 공간들의 층에 의해 싸여 있으며, 그 너머에 순수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지고의 무한한 의식은 순수하며, 평화롭고, 환영들이 없고, 자신의 영광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릴라는 빛 속에 있는 먼지 입자처럼 떠다니는 수많은 창조물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우주들 속에 거주하고 있는 지바들의 자기 투사들이
그것들에게 그것들의 형태들과 내용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 무한한 의식의 근본적 본성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계속하여 일어나며, 그것들 자신의 생각하는 힘에 의하여 평온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하는 자발적인 놀이와 같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무한한 것만이 진리일 때, 사람들이 말하는‘위’,‘아래’등과 같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작은 개미들이 둥근 바위 위를 여기저기 기어 다닐 때, 그들의 발아래 있는 것은 늘 ‘아래’에 있는 것이며, 등 뒤에 있는 것은 늘‘ ’위에’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방향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오, 라마여! 수많은 우주들 중 어떤 곳에는 식물만이 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브람마, 비슈누, 루드라 등이 있으며, 또 다른 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곳에는 동물과 새들만이 있고, 어떤 곳에는 바다만이 있으며, 어떤 곳에는 단단한 바위들이 있고, 어떤 곳은 벌레들만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짙은 어둠이 퍼져 있으며, 어떤 곳에는 신들이 거주합니다. 어떤 곳은 항상 빛으로 환합니다. 어떤 곳은 소멸되려 하고, 어떤 곳은 소멸을 향하여 공간 안으로 떨어지는 듯 보입니다. 의식은 모든 곳에서 늘 존재하고 있으므로, 이 우주들의 창조와 그것들의 소멸 역시 모든 곳에서 영원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비한 힘에 의해 함께 결합되어 있습니다. 라마여! 모든 것은 하나의 무한한 의식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일어납니다. 그것만이 모든 것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본 후, 릴라는 궁궐의 내실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왕의 시체가 꽃들 아래 묻혀 있었습니다. 남편의 또 다른 삶을 보고 싶다는 강한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우주의 정상을 헤치고, 남편이 지금 통치하는 왕국 안으로 갔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신두 지역을 다스리는 힘센 왕이 남편의 왕국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싸움이 벌어지는 전장 위의 공간을 달릴 때, 두 여인은 거기서 전쟁과 위대한 영웅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천상의 존재들을 만났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런 분이시여! 누가 군인들 가운데 영웅이며, 누가 짐승 즉 전쟁 범죄자입니까? 말해 주십시오.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결점 없는 행위를 하는 정의로운 왕을 위하여 경전의 지시들에 따라 전쟁을 하는 자는 전쟁에서 죽든 승리하든 영웅입니다. 백성을 괴롭히며 그들의 몸을 불구로 만드는 정의롭지 않은 왕을 위해 싸우는 자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었을지라도 짐승이나 죄인입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갑니다. 가축, 성스러운 이들, 친구들, 자신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자는 하늘을 장식합니다. 반면에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왕을 위해 싸우는 자들은 그들이 왕이든 지주이든 지옥으로 갑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영웅만이 천국으로 갑니다. 전쟁터에서 죽었지만 정의롭지 않게 싸운 자들은 천국으로 가지 않습니다.
오, 라마여! 그때까지 하늘에 서 있으면서, 릴라는 두 대군이 전투에 임할 태세를 갖추고 서로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군대의 준비 상태, 각각 다른 전투 배치, 전쟁의 격렬함, 그에 따른 파괴의 섬뜩한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뒤를 잇는다. 이 모든 것이 이 책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 S.V.)
저녁이 되자, 릴라의 남편은 대신들과 함께 아침에 있었던 일에 관해 회의를 한 뒤 잠에 들었습니다. 두 여인은 치열한 전쟁을 서서 바라보던 장소를 떠나 공기의 흐름처럼 이동하여, 왕이 자고 있는 궁궐의 내실로 들어갔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몸은 크고 무거워 보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갑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자신이 물질적인 몸이라는 생각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작은 구멍이나 관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런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몸이다.’라는 깊은 내적 확신이 사실상 장애입니다. 앞의 확신이 없어지면 장애도 없어집니다.
물은 늘 물로 있으면서 아래로 흐르고, 불은 올라가는 성품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의식은 언제나 의식으로 머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의 미세함이나 진정한 본질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해가 그러하면 그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마음을 만드는 것은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방향은 많은 노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행위들은 그 사람의 마음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에테르라는 것을 아는 자가 있다면 어떻게 그의 움직임이 방해받는다는 말입니까? 사실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이의 몸은 순수한 의식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슴속에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고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같은 무한한 의식이 또한 개체적 의식인 마음과 우주적 공간인 물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테르의 몸은 어디서든 어떤 것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가슴이 소망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갈 수 있습니다.
오, 라마여! 모든 사람의 의식에는 이러한 성품과 힘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의식에는 세상에 관한 각기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죽음과 같은 경험은 우주의 소멸, 우주 의식의 밤과 같습니다. 그것이 끝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들, 개념들, 미혹들의 구체화인 그 자신의 심적 창조물에 대해 깨어납니다. 우주의 소멸 후 우주적 존재가 우주를 창조하듯이, 개체들은 죽은 후에 자신의 세상을 창조합니다.
그러나 브람마, 비슈누, 쉬바와 같은 신들이나 성스러운 현자들은 우주가 소멸되는 동안 궁극의 해방을 얻습니다. 다음 번 윤회에서 그들의 창조는 기억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다른 존재들의 경우에, 죽은 이후의 새로운 탄생은 이전의 삶의 경험이 남긴 인상들에 의해 조건 지어집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죽은 바로 뒤의 상태는 그 사람이 여기에 있는 것도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때 의식은 말하자면 그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눈을 조금 뜹니다. 그 상태는 프라다나, 즉 의식의 물질적 혹은 둔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또한 에테르의 본질 또는 나타남이 없는 본질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지각력이 있거나 없는 것 둘 다로 간주됩니다. 기억과 기억 없음에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번 탄생에 책임이 있습니다.
에테르의 성품이 일깨워질 때, 그리고 그것의 의식 안에서 자아감이 그 스스로를 나타낼 때, 그것은 다섯 원소인 흙, 물, 불, 공기, 에테르와 시공간의 연속체 그리고 물질적 탄생과 존재에 필요한 여타의 것들을 만듭니다. 그때 이것들은 자기들의 물질적 대응물 속으로 응축됩니다. 꿈꾸는 동안이나 깨어 있는 상태에서 그것들은 물질적 몸의 느낌을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이 지바의 에테르 몸을 구성합니다. 비록 이 모든 것이 공기 속의 진동이나 움직임들처럼 일어나지만, ‘나는 몸이다.’라는 생각이 깊이 스며들면, 이 똑같은 에테르의 몸이 눈 등과 같은 몸의 물질적 특성들을 발전시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꿈속의 성적 쾌락의 경험만큼이나 비실재적인 것입니다.
죽을 때마다 바로 그곳에서 지바는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 공간에서, 의식 그 자체의 바로 그 장에서, 그는‘ 이것은 세상이다, 이것은 나다.’라고 상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났다고 믿으면서, 그는 공간에 불과한 세상을 경험합니다. 그 사람 즉 지바 역시 공간입니다!‘ 그는 내 아버지고, 그녀는 내 어머니다. 이것은 나의 재산이고, 나는 이 놀라운 행위를 하였다. 아! 나는 죄를 지었다.’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그는‘나는 어린아이가 되었고, 지금은 젊은이가 되었다.’고 상상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그의 가슴속에서 봅니다.
창조물이라는 이 숲은 모든 지바의 가슴 안에서 일어납니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때 거기서 그는 이 숲을 봅니다. 이런 방법으로, 개체적 지바들의 의식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세상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처럼 수많은 브람마들, 루드라들, 비슈누들 그리고 태양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창조에 관한 환영적인 지각이 수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생각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은 무한한 의식과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마음의 활동은 단지 의식일 뿐이며, 그 의식은 지고의 진리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두 개의 달처럼 빛나는 두 여인은 신들처럼 왕의 내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은총으로 왕의 시종들은 빨리 잠들었습니다. 그들이 앉자 왕은 깨어나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은 일어나 그들의 연꽃 같은 발을 꽃으로 숭배했습니다. 사라스와티는 왕의 대신이 릴라에게 왕의 조상에 대해 알려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대신이 깨어났습니다.
사라스와티가 왕이 누구인지를 묻자, 그 대신은 그는 위대한 왕 익슈바쿠의 자손이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10세 때 왕궁을 아들에게 맡기고 영적 삶을 살기 위해 숲 속으로 물러난 나보라타라고 두 여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왕의 이름은 비두라타였습니다. 그때 사라스와티가 왕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과거의 삶들에 대한 사실들을 기억하게 하는 영감을 주었습니다. 즉시 왕은 곧 모든 것을 기억하고는 사라스와티에게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제가 죽은 지 하루가 되지 않았지만, 이 몸 안에서 70년을 산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사라스와티가 답했습니다.
“오, 왕이여! 지금 여기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대가 죽는 바로 그 순 간, 그대가 죽는 바로 그 장소에서 나타났다. 이 모든 것은 성스러운 바시슈타가 살았던 언덕 마을이다. 그것이 그의 세상이고, 그 세상 속에 파드마 왕의 세상이 있다. 그리고 파드마 왕의 그 세상 속에 그대가 있는 세상이 있다. 그 속에 살면서 그대는 생각한다. ‘이들은 나의 친척이다. 이들은 나의 백성이다. 이들이 나의 대신이다. 이들은 나의 적이다.’그대는 자신이 통치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종교 의식들을 행하고, 적들과 싸우고, 그들에게 패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자신이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를 경배하고 있으며, 우리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는‘나는 모든 슬픔을 극복하고 지고의 희열을 즐긴다. 나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 속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데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 그것은 전 생애가 꿈 속의 드라마로 상연되는 데 아무런 시간이 들지 않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대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보지 않지만 그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무한한 의식과 다르지 않은데, 누가 무엇을 본단 말인가? (비두라타가“그러면 이 모든 나의 대신들은 독립된 존재가 아닙니까?”라고 묻자, 사라스와티가 대답했습니다.) 깨달은 자에게는 오직 하나의 무한한 의식만이 있을 뿐, “‘내가 존재한다.’거나‘이것들이 존재한다.’와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바시슈타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또 하루가 끝났다. 사라스와티는 계속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미숙하고 유치한 자에게는 이 세상이 계속 실재한다. 그것은 귀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아이에게는 평생 동안 귀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팔찌의 겉모습에 반하면, 팔찌가 금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궁궐, 코끼리, 도시의 장관을 보는 자는 유일한 진리인 무한한 의식을 보지 못한다. 이 우주는 긴 꿈에 불과하다. 다른 것들이 있다는 상상과 자아감은 꿈속의 대상들만큼 실재한다. 단 하나의 실재는 무한한 의식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순수하며, 고요하고, 전능하다. 그리고 그것의 몸과 존재는 절대 의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상도 아니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의식이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나타나든 간에, 의식은 그것이 된다. 그러므로 보는 자가 인간의 존재를 본다고 공상하면, 인간 존재가 거기에 나타난다. 바탕(무한한 의식)은 실재이다. 비록 실재가 바탕이지만,
그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모든 것은 실재성을 얻는다. 이 우주와 그 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긴 꿈에 불과하다. 그대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그대가 실재한다. 이런 상대적인 실재성은 꿈 속 대상들의 실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