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6코스 3부를 시작 합니다
서해랑길 96코스 3부에서는 배다리헌책방골목거리에서 신포국제시장 곁을 지나 자유공원을 거처
인천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 거리에 위치한 선린문까지 걷는 트레킹 입니다
뉘께서 96코스 트레킹할적에 신포국제시장을 지나칠땐 꼭 공갈빵을 시식하는 것이 필수라 하여 이빨에 땀나도록
당부를 하고 당부를 합니다
신포국제시장에서 공갈빵이라~ 그랴 그러지뭐~ 암, 사먹고말고~
크! 생각만혀도 군침이도네~
오늘은 9월 중순 15일데도 31도로 기온이 오르는 푹푹찌는 뙤양볕 더위로 트레킹하는 답사라 땀을 엄청흘렸습니다
나의 곁에 서면 퀘퀘한 땀냄새를 풍긴답니다
공갈빵을 사먹을려고 우현로에서 국제시장으로 몇미터 진입하였습니다.
시장답게 쇼핑하는 인천시민님이 무척많았습니다
공갈빵집을 찾을려고 두리번거리다 퀘퀘한 땀냄새로 여럿 인천시민님에게 불편을 끼칠까봐
아쉬움을 남기며 되돌아 나왔습니다
우현로 국제시장 입구에서 200m 서해랑길 96코스를 진행하여 신포문화의거리(삼거리)에서 또 공갈빵을 사먹을라고
국제시장에 진입하였습니다. 공갈빵집을 찾을려고 또 두리번거리다 모 가게 사장님게 여쭤받습니다
저쪽 끝으로 가라 하여 땀냄새로 인천시민님에게 쇼핑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을려고
공갈빵 사먹는 즐거운 행복감을 취소하고 서해랑길 96코스 이어가기를 계속 진행하였습니다
배다리헌책방 골목길엔 건물주변으로 이리저리 늘어진 전선을 땅속으로 매설하였는지 골목길이 깔끔하게 산뜻합니다
이런한 곳이 전국 곳곳에 흩어저 있습니다
코리아둘레길을 걸으며 여러곳을 봐왔었는데 금새 떠오르는 곳이
둘레길은 아니지만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변 레이크호텔에서 석촌동백제고분군까지 300m 거리~
군산시 근대화거리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월명동성당까지 700m거리를 서해랑길을 걸으며 아주 인상적이였습니다
인천 배다리헌책방거리
서울시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변 레이크호텔에서 석촌동백제고분까지 300m 거리에 전선을 땅속으로 매설된 골목길~
헬리오시티아파트 아래쪽엔 석촌동백제고분군(사각안)
2024년 11월 23일 서해랑길 54코스를 답사할 때였습니다
군산시 근대화거리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월명동성당까지 서해랑길을 걸으며 700m 거리에
도로상의 전깃줄이 몽땅 땅속으로 매설되어 걷는 내내 아주 아주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서해랑길 54코스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월명동성당을 지나 190m 거리에 위치한 동신교회를 지나게 되지요
조금전 지나온 주영광교회쪽을 뒤돌아 봤습니다. 골목길엔 이리저리 수십가닥으로 늘어진 전선이 없으니 말끔하지요
모든 전선이 땅속으로 매설되고부터 집값이 상한가라는 터줏대감의 귓띔이랍니다, ㅋ~ 그렇겠구나
조기~ 중앙시장이 앵글에 잡혔군요
옴마야꼬~ 중앙시장은 전통혼수거리라 하는군요
장가가는 사람, 시집가는 갑순이~ 그날이 손꼽아 기다지겠네요
낯선거리, 인천광역시 번화가의 거리를 걸으며 독특한 건물로 자랑하는 애관극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걷다가 그만
코리아둘레길의 상징인 주황색과 초록색으로 전신주나 벽면에 부착되어 팔랑이는 리본과 화살표 방향을 놓쳐
Phone의 두루누비에서 소쩍새마냥 목에서 피를 토하며 울부짓듯 코스를 이탈하였다고 연신 멘트가 들려옵니다
다행히 이탈한 코스를 40m쯤 되돌아가니 96코스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우와~ 뉘께서 공갈빵을 꼭 사먹으라고 하던 신포국제시장에 다 왔군요
공갈빵 가게가 어디있나 하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옷가게와 닭강정 가게와 김밥대통령 가게만 보일뿐
공갈빵 가게는 어느곳에 꼭꼭숨어 있는지~
공갈은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요. 공갈 공갈 공갈빵
시장에서 공갈빵 가게를 찾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며, 서해랑길 96코스 이어가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갈빵을 사먹을라고 우현로 국제시장에 진입하였다가 되돌아 나와 서해랑길 따라 190m 진행하니 신포문화의거리에
다다르니 국제시장에 갈 수 있는 통로가 보여 공갈빵 가게를 찾을려고 시장에 재차 진입합니다
어흐~ 여게도 족발, 찰보리빵, 호두과자, 계란집, 정육점, 건어물, 식료품 등등의 가게만 보일뿐~ 공갈빵 가게는 안보여
이웃집 형님같은 모 가게 사장님에게 여쭤봤습니다. 저쪽 끝으로 가서 왼쪽으로 가라 합니다.
에구~ 공갈빵 맛볼려다 하루해 다가겠습니다
내동교회를 지납니다
인천 홍예문(虹霓門)은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으로 응봉산(자유공원) 산허리를 잘라
높이 약 13m, 폭 약 7m의 화강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든 석문(石門) 입니다.
대한제국 시대에 철도 건설을 담당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 준공하였다 합니다.
이 홍예문을 뚫는데 일본인들은 혈문(穴門)이라 하였는데,
공사를 진행할 때 예기치 못한 거대한 암석을 만나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 합니다.
인천시 중앙동과 관동 방향 입니다
중구 중앙동과 관동에서 홍예문을 통과하면 중구 전동에 이르게 됩니다
인천학도의용대호국기념탑
인천학도의용대호국기념탑의 연혁
인천학도의용대호국기념탑의 연혁 내용 입니다
1944년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작전의 모습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마운트 맥킬리함 함상에서 상륙작전을 지켜보는 모습과
미 해병대원들이 적색해안(월미도와 만석동 사이의 해안)에서 방파제를 넘어 상륙하는 모습
언제였던가 광목에다 붉은색으로 철거라고 쓴 띠를 이마빼기에다 두르고 깃빨을 허공에다 치켜세우며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를 외치던 얼빠진 자들이 있었지요
자유공원 광장
자유공원 광장
자유공원 광장에서~
석정루 전망대에서~
석정루 전망대에서~
석정루
드뎌~ 서해랑길 96코스 종점 QR코드가 있는 삼국지벽화 거리의 선린문이 코앞이랍니다
삼국지 벽화 거리 입니다. 삼국지 벽화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삼국지를 숙독할적에 명장면들을 벽화로 표현하여
친숙한 장면을 접할 수 있지요.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 도원에서 의형제가 되기로 맹세했던 도원결의
중국 삼국 시대에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적벽에서 크게 싸웠던 적벽대전
중국 삼국 시대에 촉한의 유비가 난양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의 초옥으로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삼고초려
나관중 원작의 삼국지 소설에 등장하는 80여 개의 중요 장면에 설명을 붙여 제작한 타일 벽화로 장식해 둔
삼국지벽화거리로 그 길이가 자그마치 150m에 달해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은 이곳에서 일부나마
명장면들을 보면서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삼국지는 중국 4대 기서(내용이 기이한 책)의 하나로 불후의 고전 입니다. 중국의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맞서 있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조조(위나라), 손권(오나라), 유비(촉나라) 세 사람의 영웅담을
의리와 배신으로 얼켜여진 서사시로서 감명으로 이어지는 삼국시대의 고전 입니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고 의거 이유를 밝히는 안중근 의사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義士)는
1909년 초대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고 다음해 뤼순 감옥에서 사형되었습니다
11월 17일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또한
2020년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교도소에 갇힌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쓴
마지막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 회담하기 위해서였죠.
일본의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는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침략과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은 이토를 쓰러트렸습니다.
그리고 안 의사는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외쳤죠.
“코레아 우라”
러시아말로 “대한 만세”입니다.
안 의사는 당당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 의사는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 감옥에 수감됐습니다.
이후 여섯 차례 형식적인 공판이 이어졌죠.
그리고 1910년 2월 14일의 공판에서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죠.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대한의군의 참모 중장 자격’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기 때문에
‘형사범’이 아닌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동양 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이라고 선언했죠.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사형선고 소식을 접하고 편지와 손수 지은
수의를 보냅니다.
[편지내용]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항소하지 않고
사형집행 직전까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의거를 일으킨 진정한 이유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 中)
제3패루(패루란 중국의 독자적 건축으로서 문짝이 없는 대문 모양의 건축물) 선린문 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황제의 계단으로 첫 번째 계단은 왕의 길입니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붉은색과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화교 학생들이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붉은색과 금색으로 사자 모형을 만들어 사자놀이(사자춤)를 펼치는 공연 입니다
연희자들이 사자탈 속에 머리쪽에 한 사람, 뒤쪽에 한사람이 들어가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온갖 재주를 부리는 사자놀이 연희가 관중을 휘어잡는데 매력이 넘치는 공연이죠
서해랑길 96코스를 마무리 짖고 차이나거리를 활보하여 인역역으로 갑니다
서해랑길 96코스는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다른 파일방에다 사진을 몽땅올려 퍼옮기기를 하면 몇 분 후 옮겨진 사진이 보이지를 않아~
일일이 사진 한장 한장 올리고 글을 붙이다 보니 시간 꽤 걸릴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