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체의 표면이 여덟 면으로 각이 진 각병이다.
이런 형태의 병은 조선 중기(17세기~18세기 중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몸통이 좀더 불룩해지는 형태로 변화한다.
우윳빛의 기면(器面)에 옅은 청화 안료로 난초와 풀꽃들을 그려 넣었다.
가는 붓선으로 전체적으로 여백을 많이 두어 간결하게 무늬를 그려 넣는 방식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부흥을 맞은 조선 중기 청화백자의 특징이다.
이러한 문양 표현의 각병은 달항아리와 더불어 경기도 광주 금사리(金沙里) 관요에서 주로 만들었다고 본다.
굽은 안바닥을 얕게 깎았으며
접지면과 안바닥의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받침을 받쳐 구워낸 흔적이 있다.(국립중앙박물관 해설)
조선 백자로 모깎기 방법을 사용하여 8각의 모를 이룬, 높이 31㎝, 입지름 4.8㎝, 밑지름 9㎝ 병이다.
길게 뻗은 목과 도톰한 아가리, 그리고 둥근 몸통과 높고 넓은 굽이 있다.
문양은 밝은 청화 안료를 써서 대칭되는 양 면 중 한쪽 면에는 조그만 대나무 한 그루를,
다른 면에는 난초를 간결한 붓질로 묘사하였다.
굽다리 모깎기한 모양이나 간결한 청화문양, 그리고 투명에 가까운 백자유로 보아
18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활달하면서 힘차게 벋은 대나무 그림과 고고한 난이
당시 선비들의 기개를 나타낸 듯한 격조에서
단연 이 무렵의 대표적인 백자 병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