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8:26~40)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다. 종종 내가 결정을 했지만, 그러한 결정을 하도록 일종의 ‘이끌림’이 있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외부로부터 일정 부분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성령’의 영향을 받는 선택과 결정이기를 소원하자! 성령은 가장 선하시고 안전한 존재이지 않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령의 이끄심과 이를 순종한 이들이 얼마나 숭고하며 아름다운 것인지를 밝혀 준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참으로 사연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나라의 국고 관리인으로 세속적으로는 매우 영향력 있고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가 분석했듯, 그는 ‘지위불일치적’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세속적 성공의 반대편에는 ‘에디오피아인, 내시, 흑인’이라는 열등감이 있다. 그는 진리에 대한 영적 갈급함이 깊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죄와 죄의 대속물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어 했을 만큼 하나님의 진리 발견과 관련된 어떤 ‘단서’를 가지고 깨달음을 추구하던 사람이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길고 긴 여정의 여행도 그의 진리탐구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피곤한 여정 속에서도 마차 안에서 성경을 소리내어 읽고 있다. 하지만 그는 유대교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결정적 결격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 인물은 ‘빌립’이다.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해서 그의 복음에 대한 열망을 해소시킬 인물이다. 빌립은 복음 전파에 대한 궂은 선교적 소명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는 선교하기 힘든 곳으로만 매번 명령 받아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순종해 왔다. 이번에도 빌립은 내시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던졌고 그것이 내시가 복음의 진리를 결정적으로 깨닫게 하는 사건이 되었다. ‘펑’하고 터질 만한 에디오피아 내시의 깨달음에 선량하고도,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자신이 일국의 영향력 있는 사람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으니, (군대용어로) ‘전과확대’를 하기 위해 노력할 터인데, 빌립은 또 훌쩍 떠난다. 자신의 공로를 전혀 드러내거나 확대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존재가 있다. 바로 ‘성령’이시다. 사실 성령께서는 솔로몬 시대부터 스바여왕으로부터 지금의 역사를 계획하셨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복음의 씨앗이 내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빌립이라는 내시와 전혀 관계가 없지만 (성령님만 아시는) 가장 적합한 인물을 그 빌립을 보내셨다. ‘가사’라는 곳은 전혀 사람을 만날 것 같지 않은 비합리적인 장소였지만 순종의 사람 빌립을 그곳으로 보낸 것이다.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말이다. 또한 빌립이 할 말을 예비하셨고 그 말을 통해 내시에게 폭발적인 깨달음이 있게 하셨다. 내시가 가지고 있던 출신/피부색/장애 등을 포함한 모든 의문이나 갈등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참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 세상은 중세 기독교의 역사에 관한 스포트라이트를 오로지 유럽에만 비추지만, 사실 복음은 유럽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먼저 전파되었다. 오늘 에디오피아 내시와 빌립의 이야기들과 같은 역사가 시점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뜨겁게 부흥되고 있는 지역이 아프리카인 것도 오늘 이야기를 포함한 오랜전부터 이미 역사하고 계신 성령의 역사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역사가 이루어진 현장에는 남은 것이 없다. 세속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가치라면, 돈? 권력? 명예? 어떤 것도 남은 것이 없다. 단, ‘기쁨’만 남았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민들레 홀씨가 되어 어디든 다시 날아가듯’ 모두 가버린 그곳에 기쁨이 남았다. 그런데 그 기쁨은 단순하고 일회적, 소모적인 기쁨이 아니다. 생명이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위력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위대한 일이다. 세상이 알 수 없는 비밀과도 같은 기쁨이다. 마치 어디엔가 홀린 듯한 에디오피아의 내시, 그리고 민들레 홀씨처럼 방랑하는 듯한 빌립. 기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복음의 비밀을 품은 이들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어디든 날아갈 만하게 가뿐하게 사는 인생, 그것이 성령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다. 또 아차피 그렇게 홀연히 떠나야 할 인생인 것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