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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1~11(p신286) //
위로하시는 하나님
시편 기자나 예레미야 선지자도 안 믿는 자들은 형통한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우리는 왜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까? 묻습니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입니까?”(렘12:1)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스러운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시37:1)
왜냐하면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익디 때문입니다.
악인의 번영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 한 시간 후의 일도 모릅니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사실은 궁극적으로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자의 것입니다. 낙심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보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란 생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의 앞날이 믿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집니다. 믿음이 병들면 병든 삶을 살게 되고, 믿음이 건강하면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사람의 생각, 사람의 시각을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고 시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꿔지고, 실패가 성공으로 바꾸어지는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축복의 인생이 열리고, 행복한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체험들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고난은 누구나 당하는 것입니다.
(베이커)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학교에는 4학년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1학년 때는 "나는 고난을 견뎌야만 한다."는 것을 배우고, 2학년 때는 "나는 참고 견디리라."는 것을 배워서, ‘비록 어렵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견디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며, 3학년 때는 "나는 고난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배워서, 고난을 훈련으로 생각하여 좀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기대하고, 4학년 때는 "나는 고난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버리운 자식에게는 징계나 고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요, 사랑받는 징표인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를 중심으로 인류 역사를 움직여 나가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내가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며, 나와 동행하시면서, 친히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 같은 신앙의 위인들도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더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믿음의 모든 선진들이 모두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성경은 "무릇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8),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고난이 내 힘의 한계를 넘어서서, 더 이상 견딜힘이 없으므로, 이제는 주를 위해서 죽어야겠다는 각오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고난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구원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후1:3-5을 함께 읽어 봅시다. 아멘. 바울이 당한 고난에 대해서는 (행14:19)에"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고 기록하였고, (행19:20)이하에서는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백성들을 충동질하여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는 바울의 가르침에 대하여, 소동하며,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바울은 (고전15:32)"내가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앙의 모든 노력과 끈기와 믿음이 한계에 이른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가운데서 왜 ’자신이 이러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의지하고 사는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으로 만드시기 위한 섭리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분별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고난은 `나 자신'이라는 우상을 타파하는 기회가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고난은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삶의 법칙 가운데서 귀중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고난을 인내할 때 충실한 열매가 있고, 고난 중에도 더욱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롬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심으로, 환란과 시련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불로 연단 받은 금이 정금으로 나타납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그러나 우리의 고난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밤이 왔다가 때가 되면 아침이 오는 것과 같이, 사나운 여름날의 폭염과 장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의 가을 들녘에, 상처만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성한 오곡과 각종 탐스러운 과실을 뿌려 놓고 물러가듯, 오늘 우리를 둘러싼 온갖 고난들이, 내게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남기고, 웃으며 떠날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4: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중에 절망과 낙심하며, 살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풀무 불에 던져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머리카락 한 오라기 그을리지 않게 하시고, 피할 길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어떤 위기의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나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고, 나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고전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 어떤 시련과 고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로 피할 길을 주셨던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피할 길을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시기에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어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으며,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고난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울은 본문1-2절에 문안인사로서 고린도후서를 시작합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란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인데, 사도의 자격요건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열두 번째 사도를 선택할 때, 베드로가 언급한 것입니다. (행1: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동안 그와 함께 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한 자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두 가지 조건에 모두 결격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싫어하는 유대주의 반대파들은 늘 바울의 사도권을 문제 삼아 왔던 것입니다. 바울이 (고전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언급하면서, 8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말씀한 것도, 그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증인으로 자격요건이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고 행9:15)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음.
본문3-4절에 "찬송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할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반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찬미)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6절, 12절, 14절)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찬송은 평안할 때만 하는 일이 아니라, 고통 중에도 슬픔 중에도 할 일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위로의 하나님이시요, 또한 구원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위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클레시스"는 '용기를 돋우어 주고', '도와주고', '위로하고', '요청하고', '구원하다'는 뜻입니다. 4-7절에 ‘위로’란 단어가 10회나 걸쳐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요15;26)"보혜사(保惠師)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보혜사(Helper)성령께서 파라클레토스-위로하는 자, 도와주는 자인 것입니다. (요일 2:1)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심은 우리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환난 중에 빠져서 고통하며 근심하며 헤어나지 못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운데서도 찬송하며,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성도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 때에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5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난이 넘친 것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도 바울을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코자 하는 사람에게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본문6절에 "우리가 환난당하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고통을 맛본 사람만이 고통 받는 자를 위로할 수 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배고픔을 당한 자를 위로할 수 있고, 실패를 경험한 사람만이 실패자의 아픔 가운데 참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고난을 당하신 이유를 히브리서 기자는 (히2:18절)"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본문7절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본문8-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알기를 원한다."는 것을 강조적인 표현입니다.
이로써 고난당하는 그들을 위로하고, 또한 서로를 위해서 서로 기도해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가 전도여행 중에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참으로 컸다고 했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으로 여길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환난이 임한 때도 있었습니다.
고난이 성도들에게 임할 때,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가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에게 고난이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로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전에 아시아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사망이라고 부를 정도로 커다란 환난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현재 그가 겪는 고난 중에도 구원의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주실 것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장차 닥칠 어떤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구원하실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시86:7)"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 하시리이다."고 확신했습니다.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같이, 내어 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11절에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고난 가운데 그 고난의 원인을 제공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는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을 용납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반대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너희가 망하나 안 망하지나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원망의 마음을 품지 않았던 것입니다.
(롬12: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신 권고대로, 사랑과 용서로 반대자를 제어할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로 바울이 고난에서 벗어나게 될 때 이것으로 인하여 바울을 염려하고 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해하고자 했던 사람들까지도 감사가 넘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혹시 성도님들이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평안 가운데 있습니까?
위로를 받고 계십니까?
위로를 나누어주고 계십니까?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성도님들의 삶이 더욱 풍성하여지고 감사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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