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그랬었는데, 왜 그래야만 했는지 모른다. 만날 수만 있다면 꼭 따져 묻고 싶다. 그러니까 세월을 거꾸로 올라가 반백 년보다 전의 일이다. 작은 시골이지만 동네에는 스무 명 정도는 꼬맹이가 있었다. 나보다 세 살 남짓 형이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모두가 형보다 어렸으며 형이 제일 똑똑했다. 그림책 위인전을 100권 정도 가진 절대적 지식인이며 키도 출중했고 힘 또한 그를 능가할 수 없었다. 동네에서 제일 큰 건물인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형의 아버지이고 아무나 들락거릴 수 없는 학교 사택이 형의 집이었다. 출생부터 달랐던 탓에 전부가 졸개였었다.
모이기만 하면 전쟁놀이를 했다. 긴 나무 작대기를 휘두르며 이리저리 전쟁터 아닌 운동장을 몰려다녔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땀에 홀딱 젖기가 일쑤였다. 편을 나누는데 형은 항상 김유신 장군이었다. 그나마 똘똘한 아이들은 관창, 원술, 반굴, 사다함이란 이름을 주어 형의 편으로 데려갔다. 반대편에는 계백 장군이 대장이었고, 나는 늘 계백이 되어 놀이의 끝에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형이 고르고 남은 아이들은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고 계백의 편으로 와야만 했다. 기가 죽은 아이들에게 을지문덕, 강감찬, 최영, 이순신, 권율 등 장군을 시켜주었다. 하지만 계백 장군이 죽기 전에 강감찬도 이순신도 모두 죽어야만 했다.
누가 누군지 몰랐다. 분명한 것은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여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은 알았다. 계백은 백제의 마지막 장군으로 황산벌에서 최후를 맞이한 충신이라고 형이 매번 일깨워 줘서 알게 되었고, 을지문덕이나 최영은 김유신 장군이 쳐부순 적국의 장수인 줄로만 알았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이순신 장군이었다. 운동장 조회대 뒤에 높다랗게 세워진 용맹스러운 이순신 장군이 허구한 날 계백 장군보다 먼저 죽는 이유를 한 번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구국의 영웅이신 성웅 이순신 장군은 매일 반복되는 황산벌 전투에서 화랑의 칼에 순국해야만 했었다.
연산시장 도토리묵 정식으로 배를 채웠다. 연산 사거리에서 국도 1호선을 버리고 697번 지방도를 달리는 중이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평야가 황산벌 격전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계백의 5,000 결사대가 김유신의 신라군을 맞아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쓰러진 땅이다. 계백 장군 유적지에는 장군의 묘역과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와 말에 올라 칼을 휘두르는 동상 그리고 백제군사박물관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그의 아바타였다. 나는 왜 계백이어야만 했던가. 나와 장군을 이어주는 무언가가 있을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다. 형을 만나도 타당한 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50년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를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계백 장군 유적지 :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백제군사박물관
연산시장 도토리묵 : 논산시 연산면 연산4길 10-5
원조 연산 할머니 순대 : 논산시 연산면 황산벌로 1525
첫댓글 그냥 계백 진짜 그냥 계백 ㅋㅋㅋ
난 시키는 대로 했어. 계백하라해서 계백했고 ...
그런데 대가 왜 계백이었어야 했을까? 그걸 묻고 싶은데... 모를꺼야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