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지도자들] 힘없는 이들을 위하여 개혁한 에즈라와 느헤미야
열강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은 정말 황당하게도 무능력하고 비도덕적인 지도자 때문에 오랫동안 깊은 구렁에 빠지기도 했지만 어려울 때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일어섰다. 이스라엘에서는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사제였던 에즈라와 페르시아 점령 아래에 지방관이었던 느헤미야는 무너진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데 힘을 합친 이들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아시리아와 바빌론이 이스라엘을 처참하게 짓밟은 뒤, 그나마 조금 덜 파괴적인 페르시아가 다시 점령하게 된 시점이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 페르시아 임금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이 성채와 성곽을 재건하도록 허락했다고 기록하는데,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은 피침략국의 자발성과 문화적 특성을 인정해 주었다. 요즘으로 보자면 일종의 연방제 같은 느슨한 종속관계였던 것 같다.
불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임금의 술 시중을 드는 사람이었다(느헤 2,1). 이는 암살의 위험에 시달리는 임금의 신뢰를 받았다는 뜻이다. 느헤미야기는 평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남긴다.역대기와 에즈라기, 느헤미야기에 이름이 기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거룩한 일을 저 높은 자리의 임금부터 평민들의 삶에서 모두 찾아보란 뜻이다. 이처럼 성과 성벽을 재건한 사람들과 음악을 담당한 사람들, 목수들의 이름까지 언급한 것은 바로 이 사람들 모두가 이스라엘 민족의 힘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나라의 역사가 오로지 지배 계층의 일거수일투족만 기록하였다. 하지만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지도자뿐 아니라 평민의 행적도 모두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특히 에즈라기, 느헤미야기가 비슷하게 민중 지향적 역사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임금과 귀족의 치적은 자세히 기록하면서, 궁과 성벽, 절 등을 지은 목수와 평민의 이름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된다. 정조 시대에 이르러서야 화성과 청계천 등의 대토목공사를 하면서 석공과 목수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기고 기록하였다.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비록 페르시아의 침략을 현실적으로 인정했어도, 당시 사회의 불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개혁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기근이 닥쳤을 때 기아를 면하려고 밭과 포도원, 집을 저당 잡혀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로 가지 않도록 애썼던 일과, 임금에게 낼 세금 때문에 돈을 꾸다가 다 털리고 종이 되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무기력하게 방치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 보기다.
자신이 먼저 반성하고 실천하는 지도자
어쩌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세계나 마르크스와 레닌이 무모하게 꿈꾸고 계획했던 평등한 세상의 뿌리를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먼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페르시아 임금에게 신뢰를 받아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섰다는 것은 현대인의 눈으로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일파들, 독재 시대에 정권과 유착하며 부를 쌓아놓고는 마치 자신의 능력 때문에 잘살게 된 듯, 가난한 이들을 무시했던 우리나라의 부패한 일부 고위층이나 부자들과는 안타깝게도 너무나 비교된다. 특히 느헤미야는 자신뿐 아니라 가까운 친척과 부하들에게도 가난한 이들에게 고리 대금을 받지 못하게 했으며, 지도자로서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엄정한 태도를 가진 지도자의 모범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이 세계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느헤미야는 자신의 옷자락부터 먼저 털면서, 하느님께 한 점 부끄러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린다. 자신처럼 하느님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의 집과 재산을 모두 털어버리실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자신뿐 아니라 형제들이 열두 해 동안 지방관의 녹을 받지도 않고, 양식이나 포도주 또는 돈도 받지 않았으며, 밭뙈기 하나 사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하러 모여든 부하들을 자비를 들여 대접한다(느헤 5장). 명예롭게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어 한다면 이처럼 개인적인 경제적 안위와 이기적 욕망을 단호하게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선함을 방해하는 세력은 주변에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융의 심리학으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에즈라와 느헤미야에게는 적이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페르시아 제국에 속한 이방 민족 지도자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에게 유다의 반란을 도모한다는 혐의를 씌운다. 느헤미야는 당당하게 이들과 대적해 성벽을 지켜낸다(느헤 6장). 비겁하지 않은 지도자의 모습이다. 느헤미야가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백성과 함께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데 한 점 부끄러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임금이나 권력을 쥔 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율법학자인 에즈라가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와 백성들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자리도 만든다. 만일 느헤미야가 세속적 성공이 자신이 잘나서 그런 것이라고 자아도취에 빠졌다면 지배계층의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아부하고, 에즈라 같은 유다의 학자나 평민은 업신여겼을 것이다. 친일파나 독재권부에 유착하여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무시하며 호의호식했던 이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백성 대신 참회하는 에즈라
에즈라는 백성을 대신해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적을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는 점(에즈 9장)에서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이다. 무능하고 비도덕적인 지도자는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백성 탓을 한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본인의 잘못은 부정하고, 백성에게는 설교를 하면서 군림하려고 하니 분통이 터지다 못해 무기력해진다. 참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라면 추종자들의 잘못은 덮고, 스스로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솔직하게 인정하기 마련이다. 솔선수범하지 않는 지도자는 지도력이 떨어진다. 무조건 자신의 뜻만을 관철하려는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는 재주가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 자리가 영원히 보전되리라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제 꾀에 빠져 스스로 무덤을 판 로마의 네로 황제나 연산군,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히로히토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백성 편에 서서 잘못을 뉘우치는 지도자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이방인들과 혼재되어 살고, 도덕 개념이나 종교적 태도가 민중 사이에 완전히 확립되지 못했던 기원전 400년 전의 인물이다. 옳고 그름, 나와 너의 구별, 도덕과 비도덕의 차이, 민족정신 등에 대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애매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이와 같은 시기에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과연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강력한 지침을 남긴다. 물론 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민족의 아내를 내보내라고 강요한 점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다. 「고백록」을 쓴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이민족의 아내와 결혼한 것에 대해 참회의 글을 남긴 바 있다. 유다인의 이런 배타적인 태도가 결국 반유다주의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반 유다주의는 유다인들이 세계를 떠도는 동안, 때로는 일종의 게토에 살면서 온갖 수모를 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족 여자와 혼인하지 말라는 주문은 어쩌면 힘없는 약소 민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도 ‘왜놈’이나 ‘양놈’이란 말을 쓰면서까지 외세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보였던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 의식과 무의식에 각인된 일종의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나 우리 민족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벌써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뿌리를 이어가게 한 것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도덕성을 잃지 않은 가운데 영성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언제나 가난한 백성의 편에 서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에즈라와 느헤미야 같은 탁월한 지도자 덕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도자는 누구일까?
* 이나미 리드비나 - 심리분석 연구원. 한국 융 연구원 지도 분석가이며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성서를 심리적으로 풀어본 슬픔이 멈추는 시간」, 「성경에서 사람을 만나다」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0월호, 이나미 리드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