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주제별 요약은 원문과 함께 읽어야 좋습니다.> 원문 한.영으로 보기 (각 장별 오디오 북 포함) 용어 조정 |
제 143 편
사마리아를 거쳐서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서기 27년 6월말 ~ 8월 중순
. 활동장소 : 사마리아 지역
143:0.1 예루살렘을 떠난 복음 전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예수와 열두 사도는 짐을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맡긴 뒤 예루살렘을 떠났다. 그들은 사마리아 북쪽의 베델에서 안식일을 보내며 고프나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어 아리마대와 탐나의 초청을 받아 2주 이상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가르쳤다. 멀리 안티파트리스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찾아왔다.
143:0.2 사마리아 편견을 넘어서다
남부 사마리아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기쁘게 들었고, 가룟 유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을 크게 극복했다. 7월 마지막 주, 예수와 사도들은 요단강 인근의 그리스풍 도시인 파사엘리스와 아켈라이스를 향해 새로운 전도 여행을 준비했다.
1. 아켈라이스에서 전도하다
143:1.1 이방인 전도의 시작
8월 초, 예수와 사도들은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를 거점으로 처음으로 그리스인, 로마인, 시리아인 등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적 차이와 반대에 직면했으며, 예수는 저녁 모임마다 사도들의 전도 경험을 들었는데, 열두 사도들이 모두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143:1.2 복음은 약한 가르침인가?
빌립의 질문은 사도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었다. 빌립: “주여, 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우리의 가르침이 약자와 노예에게 적합하다로 말합니다. 이방인의 종교가 강한 것을 얻는데 영감을 주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가 우리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당신의 종교는 이 세상과는 맞지 않고 사람들은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방인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합니까?”
143:1.3 예수의 답변
토마스, 나다니엘, 열심당원 시몬, 마태의 비슷한 이유를 듣고 난 뒤에,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말했다:
143:1.4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왔으며, 어떤 오해 속에서도 이 사명을 이루어 갈 것이다. 사랑에는 때로 훈육이 따르지만, 그것 역시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하늘 아버지는 사랑으로 우주를 다스리시며, 사랑은 가장 위대한 영적 실체이고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지금은 세상이 다르게 움직일지라도, 장차 내가 전하는 복음이 세상을 이끌 것이며, 인간 진보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깨닫고 인간 형제애를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143:1.5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누가 내 복음이 약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느냐? 나는 두려움에 굴복한 적이 없으며, 내 사도들도 약자가 아니다. 비록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것은 세상의 종교들이 그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늘 아버지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 자유인과 종,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전해져야 한다.”
143:1.6 복음은 용기 있는 삶을 요구한다
“내 아버지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늘나라를 섬기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파라다이스를 향한 여정은 가장 위대한 모험이며,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용기와 헌신을 요구한다. 너희 가운데 많은 이가 복음 때문에 생명을 잃게 될 것이며, 참된 용기는 전우들과 함께 싸우다 죽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서서 사랑하는 진리를 위해 담대하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다.”
143:1.7 최고의 용기는 영적 충성이다
“세상은 지금 너희의 무저항과 비폭력을 조롱할지라도, 너희는 하늘나라 복음에 처음으로 헌신한 사람들이며, 장차 온 인류는 너희의 용기와 헌신에 놀라게 될 것이다. 너희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 형제애를 선포할 것이다. 육체의 용기보다 정신의 용기가 더 크며, 가장 위대한 용기는 하나님을 아는 확신에 끝까지 충성하는 영적 용기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며, 인자의 참된 동료들이다.”
143:1.8 간절한 마음으로 전한 말씀
이 내용은 예수의 긴 가르침의 서론에 불과했다. 예수는 이 선언을 다양한 예와 함께 자세히 설명하며, 열두 사도에게 가장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평소 감정을 절제하던 예수도 이날만큼은 뚜렷한 감정과 깊은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143:1.9 담대한 복음 전파의 시작
예수의 가르침은 즉시 사도들의 사역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의 메시지는 더욱 담대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이후 그들은 부정적인 금지나 수동적인 가르침보다, 적극적이고 생명력 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더욱 힘썼다.
2. 자아-정복에 대한 교훈
143:2.1 예수의 완전한 자기 통제
예수는 완전한 자기 통제의 표본이었다. 모욕을 받아도 되갚지 않았고, 고난을 당해도 상대를 위협하지 않았으며, 비난을 받아도 단지 하늘 아버지의 의로운 심판에 맡겼다.
143:2.2 자아-초월과 자아-통제의 생명의 길
저녁 회의에서 안드레가 요한의 금욕과 예수의 가르침 중 자아-정복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지 그 차이를 묻자, 예수가 대답했다. “요한은 조상들의 빛과 율법에 따라 자아 성찰과 금욕을 통한 의의 길을 가르쳤다. 그러나 나는 자아-초월과 자아-통제라는 새로운 메세지를 주려한다. 나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계시하신 생명의 길을 보여 줄 것이다.
143:2.3 자아-정복의 새로운 삶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아를 정복하는 사람은 한 도시를 정복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자아-정복은 도덕적 성품과 영적 성장의 척도이다. 이제는 금식과 형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되어야 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속박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졌음을 세상에 확신시켜야 한다.
143:2.4 영의 새로운 법; 자아-정복의 참된 자유
“옛 길은 규칙과 금욕으로 자신을 억제하는 삶이었지만, 새로운 길은 진리의 영으로 내면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행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사람은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이상 육체와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영 안에서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이다. 옛 율법이 두려움과 금욕을 요구했다면, 영의 새로운 법은 자아-정복의 참된 자유를 준다.”
143:2.5 악의 근원은 자기 자신
“너희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악한 자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원인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쉽게 자신을 속이며, 그 결과 두려움, 탐욕, 비굴한 쾌락, 악의, 질투, 복수심과 같은 죄에 빠지기 쉽다.”
143:2.6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영의 자유
“구원은 자기 의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영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얻는다. 사람은 두려움과 금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은혜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 영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는 자아와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며,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참된 평화를 누린다.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봉사를 향해 나아가며,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전을 추구하고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 기쁨의 특권이 된다.”
143:2.7 믿음이 주는 참된 자유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믿음에 기초하며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신뢰하는 데서 기쁨이 나온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사람을 참된 회개로 이끌며, 자아-정복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을 믿는 믿음에서 이루어진다. 이 믿음마저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욕망의 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승리한 자이며 자유로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143:2.8 영의 열매와 참된 자아-정복
“너희가 영으로 태어났다면, 금욕과 육체의 욕망을 억누르는 데 매인 삶을 떠나 기쁨이 있는 영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 결과 일상속에서 영의 열매를 자발적으로 맺게 되며, 이것이 가장 고귀하고 기쁜 자기 통제의 모습이다. 참된 자아-정복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영적 경지이다.”
3. 오락과 휴식
143:3.1 긴장과 혼란이 있을 때, 휴식이 주는 가치
사도들과 직계 제자들은 서로의 관계, 요한의 제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이방인·사마리아인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긴장과 혼란이 깊어졌다. 예수의 최근 가르침까지 더해져 공동체의 불안은 더욱 커졌으며, 안드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를 찾아갔다. “안드레, 사람들이 이런 일에 연루되고,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격한 감정으로 도달했을 때에, 너희는 그들의 곤혹스러움에서 벗어나도록 설득할 수 없다. 나는 너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나는 이러한 개인적인 사회적 어려움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너희들과 함께 휴식과 긴장을 풀면서 3일간의 즐거운 시간을 가질 것이다. 너희 형제들에게 가서 너희 모두 나와 함께 사르타바 산으로 올라가서, 내가 하루나 이틀 쉬기를 원한다고 전해라.
143:3.2 예수의 지도
“이제 너는 각각 열한 형제에게 가서, 개인적으로 대화하라: '주가 한동안 쉬고 긴장을 풀려고, 우리만 그와 함께 가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최근에 많은 마음의 번민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으므로, 이 휴일 동안에는 우리의 시련과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이 일에 대해 너는 나와 함께 협력하겠느냐?' 이렇게 각 형제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하라." 그리고 안드레는 주의 지시대로 그대로 했다.
143:3.3 휴식의 지혜
사도들은 근심을 내려놓고 예수와 함께 산에 올라가, 평생 잊지 못할 쉼의 시간을 보냈다. “형제들아, 너희는 휴식의 가치와 이완의 효과를 배워야 한다. 때때로 얽힌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시 그것들을 버려두는 것이다. 너희가 휴식이나 예배에서 새로워져 돌아올 때, 문제를 더 명확한 생각과 더 안정된 손길로, 그리고 더 결단력 있는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로, 너희의 mind와 몸이 쉬는 동안 문제의 크기와 비율이 줄어든 것을 발견할 때도 많다.”
143:3.4 쉼의 하루
예수는 사도들에게 각자 토론할 주제를 정해주고, 하루 동안 자유롭게 대화하며 온전히 쉬게 했다. 그들은 예수가 점심으로 빵을 먹을 때, 감사 기도를 하지 않자 잠시 충격을 받았다. 그가 그런 예식을 무시하는 것을 처음 본 것이었다.
143:3.5 산에 올랐을 때, 사도들의 고민
산에 오른 사도들은 저마다 근심과 갈등을 품고 있었다. 마태는 재정 문제로, 야고보는 슬픔과 우울, 베드로는 과로와 신경질, 유다는 과민과 이기심에, 시몬은 애국심과 형제와의 조화 노력에, 빌립은 돌아가는 방식에 당황, 나다니엘은 이방인들과의 사역에서, 토마스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오직 쌍둥이들만 평범했다. 특히 모두는 요한의 제자들과 어떻게 평화롭게 지낼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143:3.6 쉼이 가져온 변화
사흘간의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사도들은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들은 많은 걱정과 긴급한 문제들이 실제보다 과장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으며, 때로는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143:3.7 관계의 회복
사흘간의 휴식을 마친 뒤, 사도들은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고 신경과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한의 제자들과의 관계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으며, 일상의 긴장과 사소한 갈등이 사람들 사이의 분란을 키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143:3.8 사마리아로 향하다
비록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사도들은 이방인 선교를 통해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이후 예수와 일행은 곧 야곱의 우물 근처 시카를 향해 길을 떠났다.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143:4.1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반목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오랜 적대감은 약 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약 700년경, 아시리아의 왕 사르곤은 이스라엘 북왕국의 유대인 25,000명 이상을 포로로 끌고 갔고, 그 자리에 의 같은 수의 큣, 세파르브, 하마트 족속의 후손들을 이주시켰다. 이후 아슈바니팔은 또 다른 이민자들을 보내 사마리아에 거주시켰다.
143:4.2 종교적 갈등의 뿌리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종교적 갈등은 바빌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후 시작되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했고, 나중에 알렉산더의 군대를 도와서 유대인과 더 갈등이 생겼다.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에게 게리짐 산에 성전 건축을 허락했고, 그들은 야웨외 부족 신들을 섬기며, 예루살렘 성전 예배 체제를 좇았다. 이 성전은 마카비 시대에 파괴되었으며, 훗날 예수의 죽음 이후 사도 빌립은 그 터에서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143:4.3 편견을 넘는 믿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오랜 반목으로 인해 사도들은 사마리아로 가는 것을 매우 꺼렸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며 쌓아온 믿음과 개인적인 충성심은 그들의 오랜 편견을 이기게 했고, 마침내 예수와 함께 사마리아로 향하게 되었다.
5. 시카의 여인
143:5.1 야곱의 우물에 도착
주와 열두 사도가 야곱의 우물에 다다랐을 때, 사도들은 먹을 것과 텐트를 준비하러 갔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은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을 터이지만, 예수는 형제들과 함께 가라고 이들에게 부탁하며 말했다. "조금도 내 걱정을 하지 말라. 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우리를 해치려 할 것이다. 여름 저녁 6시가 가까워질 무렵, 예수는 사도들이 돌아올 때까지 우물 옆에 앉아 기다렸다.
143:5.2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예수는 목이 말랐지만 우물에서 물을 길을 방도가 없었다. 시카의 한 여인이 물을 길으려고 준비했을 때 예수는 말했다. “내게 물 좀 다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의 모습과 옷차림, 말씨를 보고 갈릴리 유대인이라 짐작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날다 였다. 날다는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마실 물을 달라 하십니까?” 예수는 대답했다: “내가 마실 물을 너에게 달라 하였지만, 네가 이해할 수만 있다면 생명의 물을 나에게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하지만 주여, 이 우물은 깊고, 당신은 물을 길을 그릇도 없는데, 어디에서 이 생명의 물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당신은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가요?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자기와 아들들과 가축도 그 물을 마셨습니다.”
143:5.3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의 물
예수는 대답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이 다시 마르려니와 살아 있는 영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날다가 말했다. “내게 그 물을 주사 목도 마르지 않고 물 길러 여기 멀리 오지도 않게 해 주세요.”
143:5.4 날다의 오해
날다는 예수가 자기에게 일종의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예수는 명령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찾아 여기로 데려오라.” 이 명령에 날다는 주의 친절함을 그릇 판단했음을 깨달았고 그의 말투를 오해한 것을 알아차렸다. 비로소 깨닫고 더듬으며 말했다. “그러나 주여 내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네가 진실을 말하였구나, 네가 한때는 남편이 있었을 수 있으나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다. 내 말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고 내가 오늘 너에게 내민 생명의 물을 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143:5.5 날다의 예배에 관련한 질문
이때가 되어서 날다는 영이 맑아졌고 제 정신이 들었다. 그 여자는 전적으로 부도덕한 여자는 아니었다. 남편에게 모질고 부당하게 버림받았고, 막다른 상황에서 어떤 그리스인과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날다는주를 향하여 말했다: “내 주여, 당신께 버릇없이 말씀드린 것을 뉘우칩니다. 당신은 거룩한 사람이거나 선지자일 것입니다.” 게리짐 산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의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고, 당신은 예루살렘이 예배해야 할 곳이라고 말씀할 터인데, 어느 쪽이 하나님을 예배할 바른 장소입니까?”
143:5.6 마음을 다한 진정한 예배
예수는 날다의 가슴 속에 생명의 물을 바라는 참된 목마름이 있음을 알았다. 예수는 : “여인아,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를 예배하지 않을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너희가 드리는 예배는 여러 이교도 신들의 종교와 이방의 철학이 섞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한 분의 하나님, 야웨께 예배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예배하는 사람이 진실로 아버지를 예배할 때가 곧 올 것이다―바로 지금이 그런 때라―고 말할 때 나를 믿어야한다. 이는 아버지가 바로 그러한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143:5.7 예수의 선언
날다는: “예 주여, 요한은 구원자가 오신다고 설교했는데, 그가 모든 것을 선언할 줄을 내가 압니다.” 예수는 날다의 말을 막으며,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여인아, 말하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143:5.8 예수에게 비춰진 사마리아 여인의 혼
이것은 예수가 처음으로 감추지 않고 신의 본성을 지닌 아들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 여자에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순간까지 남자들 눈에 의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여자에게 선언하였다. 신성한 눈은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한 인간 혼을 보았을 뿐이다.
143:5.9 날다의 변화
이것은 예수가 처음으로 감추지 않고 신의 본성을 지닌 아들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 여자에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순간까지 남자들 눈에 의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여자에게 선언하였다. 신의 눈은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한 인간 혼을 보았을 뿐이다.
143:5.10 야곱의 우물과 생명의 물
그녀가 도시로 들어서자 만난 모든 사람에게 외쳤다: “야곱의 우물로 빨리 가세요. 내가 한 모든 것을 말한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이 교화자가 아닐까요?” 해 지기 전에, 큰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야곱의 우물로 모였다. 그리고 주는 생명의 물, 깃드는 영이 주는 선물에 대하여 그들에게 더 말씀했다.
143:5.11 십자가의 죽으심 보다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에 촛점
사도들은 예수가 부도덕한 여자와도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아무리 부도덕한 여자라도 하나님의 딸이요, 영생을 받을 후보자가 된다는 것을 예수는 사도들에게 가르치기 무척 어려웠다. 19세기가 지난 뒤에도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기독교조차 그리스도의 삶 진리가 아닌, 죽은 사실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쌓아 올렸다. 세상은 예수의 비극적이고 슬픈 죽음보다 행복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143:5.12 날다가 요한에게 전함
날다는 이튿날 이 이야기를 전부 사도 요한에게 말했지만,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 다 밝히지 않았다.
143:5.13 날다의 깨달음
날다는 예수가 자신의 삶을 모두 말했다고 요한에게 전했다. 실제로 예수는 자신의 과거를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눈빛과 말씀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게 했고, 그녀는 그분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6. 사마리아의 부흥
143:6.1 영적 추수
날다가 시카에서 예수를 보라고 군중을 이끌어낸 날 저녁에, 열두 사도는 먹을 것을 가지고 막 돌아왔다. 안드레가 예수에게 먹을 것을 권하자, 예수는 말했다: "내가 먹을 고기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사마리아의 한 도시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추수할 때가 되었다.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곳에서 거두라고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낸다. 남들이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하던 일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전도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143:6.2 시카 전도
시카에서 많은 주민이 복음을 믿고 세례받기를 청했지만 예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143:6.3 하나님 나라의 중심 실체
게리짐 산에서 사도들은 자신들의 태도에 대해 예수께 꾸중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수는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떤 종교에서도 가치가 한 쪽으로 치우치고, 신학에서 진리 대신 사실이 차지하도록 버려두기가 너무나 쉽다. 십자가의 사실은 후일에 기독교의 바로 그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의 핵심 진리가 아니다.
143:6.4 예수가 가르친 말씀의 주제
게리짐 산에서 예수가 가르친 말씀의 주제는, 예수가 형제요 친구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이자 친구로 삼는 것이었다. 사랑은 세상에서―우주에서―가장 큰 관계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143:6.5 사마리아인들을 향한 사랑
예수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을 안전하게 선언할 수 있었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하려고 사마리아의 심장부로 또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143:6.6 이후 빌립의 전도 사역의 토대
예수와 열두 사도는 8월말까지, 낮에는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나라 복된 소식을 전하고 밤에는 게리짐 산에서 야영했다. 사마리아의 이 여러 도시에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많은 사람을 얻었고, 후일에 빌립이 일하도록 예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7. 기도와 예배에 관한 가르침
143:7.1 게리짐 산에서 강조했던 가르침
게리짐 산에서 저녁 회의가 있을 때, 예수는 큰 진리를 많이 가르쳤고 특히 다음을 강조했다:
143:7.2 참된 종교와 조직화된 종교
참된 종교는 창조자와의 관계를 스스로 의식하는 개인 혼의 행위이다. 조직된 종교는 개별 신자의 예배를 사회화 하려는 인간의 시도이다.
143:7.3 참된 영적 삶이란
참된 영적 삶은 예배와 봉사, 일과 휴식, 진지함과 유머가 조화를 이루는 균형 속에서 이루어진다. 삶의 긴장과 불안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깊은 예배와 신뢰, 그리고 최상위(Supreme)를 실현하려는 노력 가운데 평안으로 바뀔 수 있다.
143:7.4 기도의 의미
기도는 생각을 덜하고 깨달음을 더 얻게 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지식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넓히도록 설계되었다.
143:7.5 예배의 의미
예배는 앞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이 새로운 영적 중요성을 현재의 삶에 다시 반영하도록 의도되었다. 기도는 영적으로 유지되지만 예배는 신성하게 창조된다.
143:7.6 예배가 이끄는 삶
예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의 영감을 얻기 위해 하나인 분을 바라 보는 기술이다. 예배는 혼이 물질 우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재고, 또한 혼이 영적 실체들에 얼마나 안전하게 붙어있는지 재는 척도이다.
143:7.7 기도와 예배의 차이
기도는 자아를 생각하게 한다. 예배는 자아를 잊는 초월 사고이다. 예배는 진실하고 이상적인 혼의 휴식, 편안한 영적 노력의 한 형태이다.
143:7.8 예배가 주는 태도
예배는 전체와 자신을 식별하는 부분적 행동이다. 예배는 아들이 신다운 아버지와 몸소 친교하는 행위이며, 인간의 혼과 영이 신선하고 창조적인 태도, 친근하고 열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143:7.9 이후 세대에게 주는 깨우침
사도들은 야영지에서 그의 가르침 중에 아주 조금만 깨달았지만, 다른 세상과 세대들은 그 가르침을 깨달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