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겨울방학 내내 나는 피노키오를 그리고 백설공주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새 학년이 되어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이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졌을 때, 나는 화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림대회에서도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나에게도 미술에 소질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중학생이 된 나는 미술시간에 외워야하는 작품과 작가 이름을 통 기억하지 못했고, 색칠하기가 너무 어려워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난 아직도 몇 번 만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며, 고흐와 고갱을, 마네와 모네를 헷갈리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인류의 고대사를 마주할 수 있는 루브르박물관과 달리 오르세 미술관은 학창시절의 미술책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미술책 속에서 경건한 기도의 종소리로만 기억되던 그림이 내 눈앞에 실제 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어릴 적, 신앙심을 키우던 내게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 작품은 큰 감동을 주던 작품이었다.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림에서 그들이 어려운 삶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만 알지 않고, 이웃을 위해 남김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서로 돕고 사는 선의를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을 보며 타인을 위해 나눔의 선행을 본받고 싶어 했었다.
또한 해가 질 무렵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고개 숙여 기도하던 <만종> 속의 부부를 보며, 나 역시 고단한 삶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의 발치에 있던 감자 바구니가 죽은 아이의 관이라는 괴담이 돌았을 때의 충격이란. 훗날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바구니 자리에 검은 상자 모양이 초벌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보며 단순한 나눔과 감사를 떠올렸던 나의 감상이 그 서늘한 진실 앞에서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그림은 이토록 잔인한 현실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놓기도 한다. 내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이다. 사춘기 소녀의 눈에 더없이 멋지고 사랑스러웠던 그 소년이, 이제 머리가 희어진 여인 앞에 서 있었다. 성가대 소년을 짝사랑하며 가슴 설레던 그 시절의 기억이 그림 속에 그대로 박제되어 나를 다시 그 설렘의 시간으로 데려다주었다.
꿈과 환상 속에 서 있는 나를 설레게 한 빈센트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화상>과 <아를의 고흐의 방>, 그리고 모네의 <수련> 등 많은 작품들 속을 거닐었다. 고흐와 고갱을, 마네와 모네조차 헷갈려 하는 나는 그저 그림이 주는 막연한 설렘에 마음을 빼앗겼다.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사이를 지나며 내가 마주한 것은, 지식은 부족했어도 그림 하나에 가슴 설레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이었다. 미술책 속을 걷는 이 길은 작가의 화풍이나 특징을 정확히 알지 못하던 서툰 발걸음이었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마주하며 작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여정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는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자였다. 원래 기차역이었던 이곳의 커다란 시계는 아직도 여전히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며 돌아가고 있다. 미술관 안의 작품들은 수백 년 전의 시간을 박제하고 있지만,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다. 기차가 달리다 멈춰 선 오르세에서 수백 년 전으로 돌아가 마주한 작품들은 여전히 경이로웠고, 때로는 서늘한 진실 앞에 숙연해졌다. 꿈결 같은 길을 지나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발걸음 위로 이제야 비로소 그림들이 들려준 묵직한 삶의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