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좋은 사진으로 좋은 디카시를 쓰는 법
2) 좋은 디카시는 대상의 창의적 발상으로
창의적 발상과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문학에서 누누이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창의적 발상이 문학의 원동력이자 생명이라 할 수 있다. 시가 낯설게 보기에서 시작한다면 디카시는 사진을 보고 낯선 발상에서 출발한다. 사진이란 경험에 남이 할 수 없는 새로운 발상을 하느냐 그 발상의 조건은 문학이기에 공감이란 조건이 붙고 공감하는 발상이 좋으면 디카시는 살아날 수밖에 없다.
이열치열
가슴에
火가 많은 여자
花로 풀었다
-손설강
손설강 시인은 세상을 다 먹여 살릴 듯이 부지런하고 좋은 디카시를 항상 선보여 주시는 시인이다. 가슴에/火가 많은 여자/花로 풀었다'가 얼마나 명징하면서도 많은 시사점을 현대인에게 던져주는가? 삶의 지혜가 꽃으로 귀결되고 꽃이 삶의 고단함을 풀어간다는 발상 얼마나 건전하고 많은 감동을 던져주는가. 마음에 일어나는 불꽃을 꽃으로 다스려가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삼베옷
올여름도 거미는 찾아와
부지런하게 일을 하는데
아버지의 삼베옷 사이
쉰 막걸리 같은 땀 냄새
못 맡은 지 이십구 년째
-김사륜
거미줄을 삼베옷으로 창의적 발상을 한 김사륜 시인의 섬세함이 좋다. 거미줄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극세사처럼 풀어놓는 시인의 필력이 돋보인다. 발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디카시가 사느냐 죽으냐의 판가름이 난다. 김사륜 시인의 시는 일단 정성이 들어가 보인다.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 앞에 정중동 해 숨을 멈추고 있는 순간이 떠오른다. 거미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29년이란 간극을 삼베옷의 땀 냄새로 메꾸는 섬세한 손길이 시에서 느껴진다.
목목
나무와 나무가 모여
푸른 숲을 이루고
꽃을 피우듯
너와 내가 손을 잡고
웃음꽃을 피워가는 木木
-김경숙
여기서 목목은 결국 나무와 나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웃음꽃을 피우는 곳이 목목이다. 야생화와 같이 생활하면서 아침마다 묵향에 묻혀 좋은 시와 디카시를 쓰는 모습이 목목에 배어 있다. 시를 보면 대부분 시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시를 보면 시인의 마음이 드러난다. 시를 보면 시인이 펼쳐갈 세상이 보인다. 세상에 나무와 나무가 모여 숲의 이데아를 펼쳐가듯이 사람과 사람이 모여 유토피아를 건설하라는 간곡함이 시의 내면에 깔려 있다. 시에서 의인화가 중요한데 어떻게 나무를 사람으로 전환시킨 것도 단순한 것 같지만 엄청난 발상이다.
허공의 악보
저마다의 음계로 날아 앉는
즉흥쏘나타
Dm 베스 키key로 생을 조율하는
미완의 곡조
-김유석
김유석 시인은 김제에서 부지런히 시작에 전념하는 시인이다. 특히 좋은 시와 디카시를 써서 늘 감동을 던져준다. 전깃줄에 앉은 새를 악보로 보아 하늘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마술이다. 시인이 가진 마력이고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Dm 베스 키key로 생을 조율하는/미완의 곡조’ 완성이 아니라 미완이기에 얼마나 긴 여운이 꼬리에 꼬리를 치는가. 이것이 창의적 발상과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무릎을 탁치는 디카시 한편을 만나는 기쁨을 세상과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디카시를 늘 보여주기에 고마울 따름이다.
모정
어린 자식이
아플 때마다
등에 업고서
긴긴 밤을
하얗게 밝히셨던 어머니
-김영빈
이렇게 좋은 디카시를 대하니 가슴이 턱 막혔다. 너무 감동적이었다. 촛불안에 실루엣처럼 계시는 내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촛불을 모정으로 발상 전환을 한 김영빈 시인의 재치랄까 지혜가 놀랍다. 그리고 촛불을 가만히 바라보면 서서히 떠오르는 어머니 모습이 디카시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준다. 재미와 깨달음과 감동마저 준다. 앞으로 디카시를 주도해 나갈 김영빈 시인의 시적 역량을 이 한편의 디카시가 다 보여준다. 자칫 어머니 아버지나 혈육은 시에서 잘못 건드리면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을 많이 주게 되는데 아버지의 삼베옷-김사륜의 디카시와 모정-김영빈 시인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암수 한 쌍의 뛰어난 시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본보기
끝을 알 수 없을 때
너를 바라본다
희망의 꽃을 지피우는
마지막 피날레
- 조필
시의 구도가 여백마저 적절해 동양화 한 폭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다. 남녀상열지사 같지만 끝이 없는 불안함을 꽃 하나로 극복해 간다. 꽃 하나로 희망의 불길을 지펴주므로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가지 끝의 꽃으로 희망으로 바꾸는 발상 전환이 선비의 정신처럼 곱다. 아니 선비의 마음이다. 조필 시인은 광주에서 광주디카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시인의 디카시의 울림이 일찍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디카시에 쏟아붓는 열정이 정제되어 기대되는 디카시를 많이 태어나게 하고 있다. 가식의 눈물, 갈증, 바다로 간 피사의 사탑, 노산, 침묵 등 주옥같은 디카시를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다.
24. 8. 2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