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조집, 『펄펄펄, 꽃잎』, 월간문학출판부, 2023.
펄펄펄, 꽃잎
순한 햇살들이 초록숲을 만들 동안
바람에 지는 벚꽃, 천지가 꽃안개다
나이테 둥근 시간도 새때로 날아간다
움직이는 모든 것엔 둥지 트는 사랑 있지
실시간 반짝이는 봄볕 속 너를 본다
봄이다, 꽃불자락이 들녘마다 타오른다
영축산
바위산 기슭 아래
봄보다 먼저 와서
붉어지는 진달래야,
그 기운의 무지개야,
해질녘
법화경 읽는
산노을을 보아라
정방폭포
직립의 곧은 길을 여기 와 나는 보네
구차함도 망설임도 거느리지 않는 몸짓
뉘 위한 간절한 기도 저렇게 쏟아내나
아득히 햇빛 너머 떨어지는 저 고요,
용머리 구름 아래 떨어지는 저 고요,
마음 끝 둥글어지게 모난 곳을 깎아주며
눈 속에 감추어둔 근심이 있었던가
눈물로 젖어 들던 무엇이 있었던가
서귀포 다 못한 사랑, 나는 네게 안긴다
<유종인 해설>
이러한 시인의 폭포에 대한 인상적인 감각은 단순한 감탄의 대상을 넘어 보다 극적인 표현의 묘미에 이른다. 즉 장대한 폭포의 여느 우렁찬 폭포음을 그대로 현시하지 않고 ‘떨어지는 저 고요’로 역전적으로 바라보는 시적 눈썰미에 있다. 극(極)과 극(極)은 맞닿아 통한다고 했던가. 김민정의 감각적 인상의 묘사력이 생동하는 지점으로 폭음(爆音)과 무음(無音)을 하나의 반열에서 일체화시킨 묘미가 서늘히 감도는 구절이다. 이렇듯 폭포에 대한 인상적인 묘파(描破)는 정방폭포라는 회부의 경물(景物)에 한정하지 않고 급기야는 2수 종장에 이르러 ‘마음 끝 둥글어지게 모난 곳을 깎아주’는 인간적인 교화의 끌밋한 대상으로까지 격상된다. 그리고 종내는 화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근심’과 ‘눈물’의 연원들을 씻어주고 위무하는 ‘다 못한 사랑’으로 오롯해진다. 이런 미쁘고 훤칠한 폭포의 헌걸찬 기상 앞에 경도된 시인은 ‘나는 네게 안’기는 심정적 동화(同化, assimilations)의 절정에 이른다. 이는 서정시의 작동원리 중 하나인 자아동일성(自我同一性)의 경지를 폭포를 통해 환상하는 가운데 구현하는 모범적인 사례로 충만해 있다.
파도 탱고
둥글게 오므리는
가을의 끝자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물결
여자는 밀물로 오고
남자는 썰물고 가고
<유종인 해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특징적인 국면을 노래한 이 시조는 자연과 인간이 어떤 관계설정에 놓일 수 있느냐에 관심을 드리우고 있다. 여기서 모든 숨탄것들을 ‘둥글게 오므리는/ 가을’ 속성에 자못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변화의 힘이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적인 회복력의 일종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조락과 퇴색의 계절이 지닌 위축된 모습들 속에 오히려 변형이 아닌 자연스런 변화의 완숙함도 엿보아낼 수 있음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본래적인 생명의 활기로 재충전하려 ‘안간힘을 쓰는 물결’이라면 어떤가. 그런 구성진 물결의 운동과 율동을 다시 ‘여자는 밀물’로 상정하고 ‘남자는 썰물’의 형태로 비유할 때 이 모든 자연의 현황은 하나의 춤, 변화의 자연스러운 본령인 ‘파도 탱고’의 이미지로 완연해지는 것이다. 종장의 의미를 일견 엇갈림의 구도로 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밀물의 여자와 썰물의 남자가 서로 상보적(相補的)인 자연계의 구성원으로 넘나드는 조화(造化)의 기틀로도 볼 수 있다.
김민정은 이렇듯 자연의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놓치지 않고 거기에 인간적인 현황을 겹쳐 바라보거나 견줌으로써 인간의 존재방식과 그 어울림의 상생(相生)의 뉘앙스(nuance)를 유려한 시조의 율격으로 되살려내는데 능숙하다. 자연의 흐름과 시조의 흐름을 격절시키지 않고 하나로 아우르는데 친연성(親緣性)을 대동하고 있다.
뻥튀기 카페
쉬었다 가시라고 식당 앞에 차려놓은
커피도 매실차도 말 그대로 공짜인 곳
덤으로 수북이 쌓인 쌀뻥튀기 일품이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뒷담화 하는 대신
눈 맞추며 사각사각 씹으라는 말씀인가
말이란 뻥, 튀겨놓으면 감당하기 곤란하니
<유종인 해설>에서
무엇보다 우리가 주고받는 언어, 즉 말이라고 하는 것과 ‘뻥튀기’를 의미적인 연관으로 겹쳐놓음으로써 말의 무게에 대한 새삼스런 성찰을 유도한다. 그런 측면에서 2수(首) 종장의 언술은 요즘의 세태와 관련해서 의미적인 일침(一鍼)이 아닌가 싶다. 음식과 말은 입을 통해서 들고 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쓸데없는 ‘뒷담화’를 대체하고 경계하는 방편이 ‘사각사각 씹으라’는 뻥튀기라는데 있다. 흔히 뻥을 치는 말 대신에 그렇게 부풀려서 만든 뻥튀기 스낵을 저작하는 것으로 대체하라는 시인의 재치와 유머는 경쾌하면서도 나름 진중하다. ‘뻥’으로 대변되는 말과 음식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우리가 지켜야할 에티켓(Etiquette)의 종요로움을 새삼 똥기는 가편(佳篇)이다.
이렇듯 심상하고 평범한 상황을 김민정은 그냥 흘리지 않고 공동체적 삶의 유지와 활성을 위한 윤리적 덕목(德目)을 산출하는 계기로 삼는다. 시인의 활달한 시적 캐치와 전개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을 살 수 없는 공동체적 윤리의식이 관념적 이데아(idea)가 아니라 실제적 관계의식에서 낳은 그윽한 현실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말을 모시다
찬바람 들어올까 꼭꼭 닫힌 방문처럼
구설에 오를세라 말문 닫아 걸은 날은
마음에 부처 한 분이 들어와 앉으신다
모든 화는 말로 짓고 모든 덕은 행하는 것
봄날도 말 못하고 마스크를 쓰는 오월
열 번을 생각하고도 한 마디를 참는다
<유종인 작품 해설>
앞서 시조에서도 언급했듯이 김민정에게 있어 말은 단순한 지시체계의 사회적 도구나 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존재의 활성과 운명을 좌우하는 매우 종요로운 존재의 기명(器皿)이다. 즉 존재의 그릇은 어떤 말과 침묵, 어떤 함의의 언어를 담고 품어내느냐에 따라 그 존재의 실존적 가치를 지배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현실의 우리 사회나 여러 관계에게 시인은 늘 ‘구설(口說)’의 애옥살이에 빠지지 않으려 조심하고 노력을 경주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화는 말로 짓고 모든 덕은 행하는 것’이라는 유교적 덕목의 에피그램(epigram)은 여전히 화자의 현실 속에 종요로운 실행 덕목으로 완연하다.
<작품 해설>
「상생(相生)의 자연과 존재의 회복의 시학(詩學)」에서
유종인(문학평론가)
이번 김민정의 시조와 그림이 어울린 시조화집(時調畵集)은 그런 시화의 친연성을 구성진 화필의 그림과 어울린 시조를 통해 새뜻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시조와 그리므이 이런 콜라보레이션(collabaratioon)은 인접 예술 장르 간의 격절이나 격조(隔阻)를 해소 완화하고 그 어울림을 통해 상호 심리적 영향을 한층 완숙한 지경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민정의 시조 시편들은 이렇듯 부단한 자연애의 관심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의 여러 공동체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 조화로운 윤리의식이 갈마드는 따뜻한 서정을 열심히 돋아내고 있다. 바로 이 열심(熱心), 이 열심의 자세가 그녀로 하여금 자연을 관광이나 완상의 대상만이 나린 자신의 처한 현실을 덕성스레 똥기고 그윽하게 북돋우는 심미적 계기의 시조를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