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오는 과정을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부터 나의 삶에 간섭하시고 나를 부르셨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다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나를 아시고 나를 조직하셨다는 걸 알게 되고 그 다음엔
창세전에 나를 미리 아시고 그리스도 안에 예정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육아일지는 이미 창세전부터 기록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11절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이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흑암이 나를 포위하고 빛 속에 있는 나에게 밤이 온다 할지라도 하는 뜻입니다.
12절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흑암이라도 나를 숨기지 못하고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하나님께는 흑암과 빛이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흑암이든 빛이든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빛은 우주 어디라도 통과합니다. 사실 우주자체는 흑암물질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외선 망원경은 캄캄한 밤에도 보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주 전체를 단번에 뚫는
광선의 파장이 있다고 과학이 증명을 합니다. 다만 그게 무슨 파장인지 알지 못할 뿐입니다.
13절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주께서 내 장부를 조직, 조성, 배열하셨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발견입니다.
이는 나의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를 만드셨다 곧 내장의 배열을 엮었다는 뜻입니다.
14절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옛날 성경엔 신묘막측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주께서 하시는 일이
신기하고 놀랍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감사한답니다. 실제로 우리의
장부의 조직은 현대의학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고 호흡하고 사는 등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밥상에 차린 음식과 공기 속에 산소를 숨 쉬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15절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이는 하나님께 ‘당신 앞에서 나의 형체를 숨길 수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것인데
극비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가 살아 있는 말씀에 의해 X레이
촬영이 되듯 고스란히 드러나서 각이 뜨여 정돈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집니다(히4:12-13)
16절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뿐만 아니라 형질이 이루기 전 곧 흙덩어리일 때부터 모든 사건일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엄마의 육아일기와 같습니다. 이를 테면 임신 8개월 때에 배를 찼다,
3살까지 똥오줌을 샀다 등등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이 되어있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만드시고 조직하셨으므로 능히 우리를 수리하실 수가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를 현대서비스센터에서 고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요즘은 자동차 일련번호 코드가 컴퓨터에 연결이 되면 그 제원과 기능이 그대로
노출이 되고 결함이 있는 부분이 발견이 되어 금방 수리를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17절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의 생각은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겁니다.
그 책에 기록된 겁니다. 그것이 바로 보배랍니다. 그 가치가 보배롭고 수가 많답니다.
18절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셀 수 없는 수, 곧 내가 깰 때에도
주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이 깰 때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곧 재창조 거듭났을
때에도 주는 나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이미 새 하늘 새 땅의 신령한
세계까지 내다보고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계시의 세계인 겁니다.
19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이제 부터는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구원과 심판이 항상
동시에 일어납니다. 악인과 피 흘리는 사람들 곧 혈육의 사람들아 나를 떠나라 합니다.
20절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 하나이다”
그들이 곧 혈과 육에 속한 악인들이 주께 대하여 악하게 말하고 헛되이 이름을
부릅니다. 원수들이란, 주여 주여 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마7:22-23)
곧 땅에 속하여 땅의 것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을 말합니다(히6,10장)
2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주님을 미워하는 자를 내가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이것 참 힘이 드는 일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요 주님께는
그들의 원수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호시탐탐 죽이려고 엿보았으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우시며 암탉이 병아리는 모음 같이 그 품으로 품으십니다.
지금도 세상과 육신에 속한 자들은 진리의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 가운데서 몰아냅니다.
그렇지만 진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갖 수욕을 당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들을 내가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겁니다.
22절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하나님의 원수는 나의 원수가 됩니다. 아주 심하게 서로 끝까지 미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합니다(빌3-18)
다른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믿음이 잘 못이 되어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인 줄 모릅니다.
23절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자신을 살피고 시험하시라고 재출하는 당당한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과 의롭게 됨과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리 안에 거룩함과 영광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됨이
분명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고 담대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24절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무슨 악한 행위 곧 악한 의지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방향, 생각)로
인도하소서 온전히 주께 맡기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내 주여 뜻대로, 뜻대로 하소서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 역사 충만하시면 권능이 나타나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주의 것이며 주께서 부르시면 고요히
가리니 하고 주님께 자신을 몽땅 맡기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고맙습니다 주께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