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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돌아와 보니...
I. 멀고도 힘겨운 귀국길
저녁을 먹고서도 한참 동안 식당에 머물러야 했던 인야는, 잠자러 자신의 방에 돌아온 뒤에야... 총 점검하는 의미의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흠, 이 밤이 지나고 내일 점심을 먹은 뒤, 꾸꼬가 데려다 주겠지만... '비고(Vigo)'까지 간 다음, 거기서 버스를 타고 '포르투갈'의 '오뽀르또(Oporto)'에 가서, 비행기를 네 번 갈아타는 일정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 하면서 보니, 여기 갈리시아에서의 출발은 10일인데, 한국 도착은 12일(토요일)이 될 것이었다.
'그래, 아직은 가을에 도착하는 거야......' 하고 잠시 감상에 젖었는데, 그것도 인야에겐 하나의 버릇일 수 있는 일이었다.
30대 중반의 인야가 스페인에 처음 와서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그 전까지 한국에서는 ‘봄’이라는 계절에 무관심하거나 그다지 좋은 감정이 아니었었는데...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면서 '지중해 성 기후'와 맞물려 맞았던 그 첫 봄이, 그다지 찬란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것도 그 봄을 다 보낸 뒤에야 인야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뒤 살벌하기까지 했던 여름을 보내고, 또 가을까지 보내면서...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노란 황금빛 들녘 등 어릴 적부터 가을을 너무 좋아했던 인야는, ‘한국의 가을’이 너무 그리워... 바르셀로나에서 치를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지만 그 해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 다음 해 가을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한국에 잠시 다녀왔을 정도로 자신의 '가을에 대한 상사병'을 상기하면서,
'비록 내가 지금 60대 후반의 늙은이가 돼 있다지만, 공교롭게도 스페인에 와 있는 입장인데... 아직도 가을인데... 그래, 어서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세상의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던 인야였지만,
‘아무리 내 팔자가 세상의 떠돌이로 살아간다지만, 가을만큼은 한국에서 보내고 싶으니... 어서 돌아가야 한다.’ 는 간절함만은 변함없이 이어지는 자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인야가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으로의 귀국행 비행기표를 바로 예매했더라면, 이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한 행로로 돌아가겠지만,(당시 '뽀르또' 출발 '이스탄불' 경유 편은 400유로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돈이 부족해 미적대는 바람에... 나중에 바르셀로나에 간 뒤 '장'의 도움으로 겨우 돈을 마련해서 사려니,
어느새 600-700 유로를 넘어, 어떤 건 천 유로가 넘게 올라 있었다. 그런데도 인야는 그 중 제일 싼 500 유로 선 항공권을 사긴 했는데, 그래서 이제는 비행기만 타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행로였다.
포르투갈의 '뽀르또(Porto)'를 출발해, 스페인의 '마드릳(Madrid)' 스위스의 '취리히(Zurich)'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zawa)'를 경유하는 비행기표여서... 네 나라를 거치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멀고도 험한 행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 예매했다면 뽀르또에서 17시간이면 서울까지 도착했을 여정이었는데,
뽀르또 출발이 10월 10일 오전 11시 30분이라, 공항엔 적어도 오전 9시 정도엔 가 있어야 하므로... 그러려면 꾸꼬네 집에서 새벽에 나가야 할 것이고, 식구들 모두를 깨우고 꾸꼬 부부에게 새벽에 인야를 '비고'까지 데려다주는 수고도 끼치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인야는 아예 그 전날(10월 9일)에 갈리시아를 출발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뽀르또에서 하룻밤을 더 새야만 할 여정으로 바뀌었고, 결과적으로는... 적어도 50시간이 되는 긴 행로가 될 터라, 인야는,
‘아, 한국까지 돌아가는 마지막 행로가... 나를 초죽음으로 몰고 가겠구나!’ 하고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꾸꼬 집에서 출발해 비행기를 탈 때까지의 먹거리 준비도 해야만 했는데, '아델라'가,
“인야, '보까딜료'가 좋을까, 아니면... '엔빠나다'를 해줄까?” 하고 물어서,
인야가 부피를 염두에 두고,
“차라리 엔빠나다가 낫겠는데?” 했더니,
손이 큰 아델라가 본인이 직접 엔빠나다를 만들었는데, 손바닥 만 한 크기로의 개수로는 총 13개였다.
그걸 본 인야가 놀라 자빠질 듯,
“아델라, 이렇게나 많은 걸 어떻게 가져 가라고? 못 가져가!” 하고 화를 내면서, “반절만 가져갈게!” 하고 말았는데,
“안 돼! 그래도 적어도 내일 점심까지는 견뎌야 한다면서? 그러니... 열 개는 가져가야지!” 하더니, “나머지 세 개는, 그냥 여기서 우리가 각자 하나씩 맛보는 걸로 하고... 그럼, 되겠지?” 하면서는,
즉석에서 엔빠나다 파티를 벌인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러자 꾸꼬는 한 술 더 떠서,
“이게 마지막인데, 그냥 말 거야?” 하고 집 비노까지 따라오는 바람에,
그 전날까지도 비노를 자제했던 인야도, 정작 떠나는 날은... 앞뒤 가릴 틈도 없이 마지막 비노까지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꾸꼬가,
“인야, 우리가 비고에 가도... 거기 버스 터미널 주변이 너무 복잡해서 주차하기가 힘드니, 차라리 '뽄떼베드라(Pontevedra)'에서 당신 혼자 ‘비고’행 버스를 타고 가면 어떨까? 그렇게 해도, 뽀르또 행 버스로 갈아타는 건 문제가 없을 뿐더러, 당신 혼자 짐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도 없을 터고......”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인야가 듣고 보니, 그 방법이 오히려 꾸꼬네에 덜 부담을 주는 것이기도 해서...
“차라리 잘 됐네! 나에게도 그게 좋겠어!” 하고 받아들여,
인야는 올 때보다 중간 크기의 가방 하나가 늘어난 상태로 꾸꼬 차에 올랐다.
아델라가, 그 안에 오루호 2 병, 물과 먹거리, 그리고 어쩌면 인천 공항 세관 통과시 빼앗길 수도 있는, 인야가 좋아하는 갈리시아 ‘초리소(Chorizo)’등을 담아 준 가방이었다.
그렇게 차가 꾸꼬의 집 마당을 빠져나가는데, 인야는,
'이미 이들에게 유화 한 점을 선물했으니, 확실히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었구나!' 하면서도,
'이들에게 신세를 진 건 사실이고 고맙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만약 내가 또 다시 여기에 온다 해도... 이번처럼 이들에게 신세를 지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산 로께'에서 뽄떼베드라로 가는 길엔 비가 갠 상태였다. 간혹 늦은 오후의 햇살이 반짝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뽄떼베드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뒤, 천천히 짐을 들고 대합실로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비고 행 버스가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꾸꼬가,
"뭐라고? 내가 시간 계산을 잘 못 했나?" 하면서, "인야, 서둘러!" 하고 뛰어가 문을 닫으려는 버스를 세웠고,
인야는 겨우 아델라와 포옹을 하며 스페인 식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버스에 올라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버스 창을 통해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게, 아니었는데......' 하고 있었지만, 버스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 뒤, ‘비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 때가 저녁 5시 경이었는데,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고... ‘뽀르또’행 버스 출발시간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인야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해야 하는 여행객’이 된 꼴인데... 내가 왜 이렇게 자유롭다지?'
인야는, 어쩐지 자신이 다시(?)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는 내가 억눌려 있었단 말인가?' 하기도 했지만,
아마, 그런 게 '역마살'일 것이었다.
어차피 있어야 할 일이었고, 그 길에 접어든 것으로... 인야의 멀고도 긴 귀국길이 시작되었다는 몸의 신호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7시가 지나도 뽀르또 행 버스는 오지를 않았다.
7시 16분 차였는데, 7시가 넘어 10분이 넘어도 오지를 않자... 인야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혹시 버스표를 잘 못 샀나?' 하는 생각은 물론, '아니면, 뭔가 잘못 된 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는데,
그렇게 애태우는 상황에서, 겨우 출발 3분 전에야 버스가 도착해,
이번에도 인야가 버스에 타자마자 출발하는 식이다 보니,
'오늘, 왜 이렇다지?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근데, 이거, 첫 단추부터 뭔가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기분이네......’ 하고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다,
‘허긴, 여행이라는 것이... 언제 어느 상황과 맞닥뜨릴지 모를 즉흥적인 것인지라... 긴장을 늦출 순 없지. 내가 정신을 차릴 수밖에......’ 하고 넘기기는 했다.
버스는 어두운 밤을 달렸고, 비가 계속 내려 버스 정면 창에 물방울이 잠시도 멈추질 않았고...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로 넘어와 두 정거장에서 선 뒤,
뽀르또 '프란시스쿠 드 사 카르네이루(Aeroporto Francisco Sá Carneiro') 공항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기온은 18도에서 16도로 떨어져 있었다.
공항은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새 건물인데다, 시설도 좋았다.
쾌적한 공항 청사에 자리를 잡은 인야는 우선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사실 저녁 생각도 없었는데, 어차피 짐도 줄여야 했고 또 먹을 게 남으면 버려야 하므로... 아델라가 싸준 ‘엔빠나다’를 먹고, 자두와 귤로 후식까지 먹었다.
그런데 이 공항은 인터넷도 공짜였는데, 다른 곳처럼 메일 주소를 대며 로그인하지 않아도 접속이 되는 편리함도 있었다. 그러니 인야는,
'물론 여기는 신공항이라 그러겠지만, 그 전에는 포르투갈이 스페인보다 후졌었는데, 가만히 보면... 요즘엔 포르투갈이 스페인보다 더 나은 점도 보이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밤을 새울 준비에 들어갔다.
11월의 밤은 길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이 따갑도록 잠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마땅히 누울 곳도 없어 참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순간이 지나니 조금 나아지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날 밤, 이 상황에 대비해서 충분한 잠을 잔답시고 평소보다 조금 많이 자두었던 잠은... 이 상황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주체하기 힘든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밤을 새웠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이, 어느새 날이 바뀐 듯 희미하게 아침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무거운 몸으로 화장실에 가서 일단 세면을 한 다음, 인야는 아침부터 먹기로 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행동에 제약이 붙어서... 일단 먹을 거리를 없애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델라가 싸준 엔빠나다로 두 끼의 식사를 해결하게 된 꼴이었다. 그러니,
'그래도 아델라가 정은 많지......' 하면서 혼자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빠나다는 아직도 두 개가 남았다.
'그나저나 첫 밤을 보내긴 했다만, 점심시간까지는 또 어떻게 기다린담?'
한심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인터넷이 무료여서... 노트북을 꺼내, 인야는 나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첫 비행기에 올라 스페인의 '마드릳'으로 향했다.
채 두 시간이 안 돼, 마드릳 '바라하스(Aeropuerto Adolfo Suárez Madrid-Barajas )' 공항에 도착했지만, 인야는 이미 갈리시아를 떠나오기 전에 산티아고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통화를 해두었기 때문에(마드릳에서는 공항에서 잠시 멈춰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연락 않기로 말해 두었던 터라), 전화도 걸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자가환승'이어서, 다시 체크인을 하느라... 공항 내에서 왔다갔다 하다 보니, 그럴 만한 여유도 없이...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마드릳에서 두 번째 비행기로 갈아타고 스위스의 '취리히(Zurich)'에 가는 시간도 금방이었다.
취리히 공항(Flughafen Zürich)에서는 2시간 40분의 여유가 있어, 짐을 찾고 다시 체크인을 했는데... 거기서부터는 폴란드 항공사(LOT)로 바뀌어, 한국까지 짐(10kg 허용)을 찾지 않아도 되어...
짐의 부담이 줄어들어선지, 바르샤바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도 대륙을 바꿔가며 수많은 공항을 거쳐왔던 인야에겐, 이런 2-3시간의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번 행로의 최대의 난관이기도 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의 환승이 남아 있었고... 문제는 환승 시간이었다.
바르샤바의 '쇼팽(Lotnisko Chopina Warszawa)'공항에는 밤 9시 경에 도착했는데, 다음 비행기 출발시간이 다음 날 정오라서... 또 하룻밤을 새워야만 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배는 고프지 않았고, 여전히 먹거리도 조금 남아 있었기에, 다음 날 비행기를 탈 때까지... 인야는 굳이 공항 내 식당 같은 데를 가서 식사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인야는 평소에도 여행 중에(공항, 기차역, 버스 터미널 등) 잘 사먹고 다니지 않는 습성 때문에,
현지에서 환전할 필요도 없었고, 환전할 넉넉한 돈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저 시간만 때우면 되었던 것이다. 다만 물이 문제였는데, 여기 쇼팽 공항엔 식수로 마실 수 있는 수도꼭지도 있어서... 그마저도 문제될 건 없었다.
그렇게 공항 밖에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어차피 돈도 없었기에) 시간을 때웠다.
큰 공항에 비해 승객이 많지 않다 보니, 공항이 널럴하다 못해 휑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여기라고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인터넷을 접속하려 했으나, 전원 콘센트의 모양이 달라(가운데 뿔이 나 있어서) 인야의 노트북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많은 시간(15시간 정도)을, 인터넷은 물론 휴대폰 충전마저 할 수 없어...
결국 지겹도록 길고도 힘든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발까지 퉁퉁 부어 올라, 하는 수 없이... 무거웠던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어야만 했고,
널찍한 공항 대기실의 네 개로 연결된 의자를 이용해(인야 키 크기의 잠자리로는 제격이었다.) 누울 수 있어서,
그나마 새우잠을 잘 수는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추워져서, 인야는 예비로 꺼내놓았던 아웃도어 스웨터로 몸을 칭칭 감았는데... 잠깐씩 잠이 들어주기는 했다.
아무 데서나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인야는, 그렇게 참으로 긴... 또 하루의 밤시간을 보냈는데,
여기라고 아침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는 없을 터였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을 정도로 힘든 몸이었지만, 한가로운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한 뒤, 남아있던 엔빠나다를 끝내고는... 다시 이를 닦으며 아침을 맞았다.
그러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밤새 추위와 피로에 찌든 건 물론 쪼글쪼글 주름살까지 더해져... 가관이었다.
'아, 나도 이제... 정말 추레한 늙은이가 돼 있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가 없겠구나!' 하다 보니,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과의 사투에서 승리한 것 같은(그래봤자 상처뿐이었지만) 다음 날 정오에,
인야는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는데,
‘아, 다른 사람 같으면... 이 나이가 되면, 편하고 안락한 여행도 선택적으로 할까말까 할 텐데... 나는,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왔고...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하는 처량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이 세상이 그렇고 또, 내 자신의 삶이 그런 걸......'
한국 행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뒤 기내식이 나왔다.
그런데 의외로 맛이 좋았다. 이틀 만에 먹는 정식 식사였으니까.
그 식사를 마치자마자 인야는 잠에 골아떨어졌다.
원래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잘 못 자는 인야였지만, 간밤에 추위에 떨고 잠을 설쳤던지라... 초반 약 한 시간 정도는침까지 흘리면서 잤던 것이다. 스스로 침흘리는 걸 느끼면서, 당황하면서 깨어난 이래...
인야는 의자 모니터의 '지도'를 켜놓고, 비행기의 현 위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그 어떤 비디오에도 관심 밖인 인야의 습성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평소보다 훨씬 조바심을 낸 모습으로 지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바르샤바에서 11시간 반의 비행으로,(그런데 막바지 서너시간은 너무 더디게 가서, 인야를 초죽음 상태로 몰고 가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녹초가 되어...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 앉는 순간, 이때도 인야는 역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제발, 이번만큼만 무사해다오......' 하고 빌었던 것처럼, 그에게는 너무나도 간절한 귀국길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하늘도 인야의 기도에 호응해준 듯,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지상을 달리면서야,
'아, 내 나라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입국심사는 너무 간단했고,
얼마 뒤 짐까지 찾아 세관을 무사통과(갈리시아에서 가져온 초리소도 문제없이) 하면서는, 제일 먼저...
'아, 떠날 때는 내 인생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죽음을 각오했던 여행'이었는데... 이렇게 멀쩡히(? 어쨌거나, 남미 대륙을 거쳐 지구 한 바퀴를 다 돌아오면서도 코로나에도 걸리지 않은 상태로) 돌아온 것이, 감개무량하다 못해 스스로도 자랑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으로 심호흡도 크게 하면서 숨을 들이켰는데, 그와 동시에,
'그러면 뭐 해? 이제 나는, 아니 이미 나는 정부지원(기초생활 수급자)에서도 제외된 빈털터린데......' 하는 생각이 따라붙으면서는... 다리에서 힘이 좍 빠져나갔다.
허무함과 싱겁다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바로,
'그래, 현실이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이 인야! 이런 순간까지 절망하고 자학하지 말자!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그 '용기'를... '만용'으로 폄훼하면서, 자조해서는 안 된다!' 하고 자기 자신을 다독이면서 세관 문을 걸어나왔다.
인야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공항의 군중들이었다.
지난 3월 출발할 때는 공항 내의 그 누구도 마스크 없이 돌아다닐 수 없었는데, 물론 아직 일부는 그렇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자유로운 표정으로 도착 승객을 기다리는 모습이었고, 그 게 퍽 인상적이자 그를 안도하게 했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는데, 저 쪽에서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건... 제자 '종윤'이었다.
이번 여행의 출발부터 인야를 공항에 데려다 준 장본인이었는데, 끝도 본인이 책임지겠다며 나와줬던 것이다.
"필승!" 하고 거수경례까지 한 녀석은,
"선생님, 멀쩡하시네요!" 환하게 웃으며 인야를 껴안았고...
"잘 지냈느냐? 니네 가족은?" 하고 안부부터 묻자,
"똑 같죠. 아니, 선생님 안 계실 때... 모두가 하나 같이 코로나에 걸리긴 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지나갔구요....." 하면서 녀석이 인야의 가방을 챙겼는데,
"종윤아, 우리 사진 한 장 찍고 가자!" 하면서, 그 와중에도... 인야는 핸드폰을 자동으로 놓고, 제자와 함께 사진도 한 컷 찍어두었다.
제자의 차를 타고 공항로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선생님..." 하고 잠시 말을 빼더니, "존경합니다!" 하던 종윤에게,
"너, 세상에 살면서... 존경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더냐? 다른 곳에서 찾아 봐라!" 하고 감정 없는 사람처럼 말하자,
"선생님은, 세상을 한 바퀴 돌아오셨으면서도... 여전하시네요! 하 하 하..." 웃었고,
"여전하다고? 너는 아직 젊은 녀석이, 눈도 없냐? 그렇잖아도 내가 바르샤바 공항 화장실에서 오늘 아침에 거울을 보니...쭈그렁방탱이가 돼 있던데......" 하고 담담하게 말하니,
"그래도 저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는 녀석에게,
"너무 그러지 말래두!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싫어질 수도 있고... 실망할 수 있는 게 사람 관계인데, 정신 차리거라!" 하고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하면서도, "그런 얘기는 됐고, 이제... 니 사업 얘기나 해봐라!" 하고 말을 바꾸었다.
그렇게 인야가 제자와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한 시간 정도 만에 아파트에 도착하니,
이번 여행 기간 내내 인야의 아파트를 돌봐오던,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인 치과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이 아파트에 와서 환기를 시키거나 공과금 고지서 등을 점검했을 터였는데,(인야와는 여행 기간 내내 카톡으로 통화를 한 데다, 그가 아파트의 열쇠도 가지고 있었기에)
“아, 이 코로나 시국에... 한국에 있던 저도 코로나를 피하지 못해 고생을 했는데, 화백님은 그렇게 돌아다니면서도 코로나 한 번 걸리지 않으셨다니... 참 대단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셨네요!” 하고 반겨주었다.
그러니 인야가 다소 머쓱해 하며,
“아, 원장님까지 왜 이러십니까?" 하다간, "그저, 제 팔자가 그런 모양이니... 또 거기에 맞춰 살아낸 거겠지요, 뭐...” 하고 '팔자소관'이라고 강조하는데,
"선생님, 치과 선생님 말씀이 맞다니까요! 근데, 자꾸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아닌가요?" 하고 인야의 눈치를 살피며 제자까지 옆에서 거드니,
"글쎄다. 그렇지만... '대단하다'는 말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 그저, 살다 보니... 이렇게 됐을 뿐......" 하고 뭔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야가 말하자,
“이 화백님은요, 더구나, 애당초 계획에도 없었던... 스페인까지 들렀다 오신 거잖아요?... 우리 같은 웬만한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그 수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야, 지구를 한 바퀴 삥 ~ 돌아오시다니, 그것 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니겠어요?” 하고 구체적인 예까지를 들먹이며, 마치 상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허공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웃자,
“원장님, 대단한 게 아니라니까요! 사람 마다 다 팔자가 있는 건데...... 그리고, 글쎄... 그 '스페인 이야기'는요... 그렇잖아도 저 역시 그 생각으로 고심 중이긴 하거든요?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그렇지만 원장님, 아직은 가을이니... 며칠 숨이라도 좀 쉰 다음에, 생각해 볼 거랍니다......” 하고 고개까지 끄덕이다가,
"일단, 밥부터 해 먹읍시다!" 하고 인야는 성큼성큼 주방 쪽으로 가더니 쌀부터 물에 담갔다.
그렇잖아도 치과 의사가, 이미 찌개용 돼지고기와 양파 대파 풋고추 등을 사왔던 터라...
냉장고에 시어터지게 남아있던 묵은 김치로 찌개를 끓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선생님, 저는 일 때문에... 가봐야겠습니다! 두 분이,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 하시구요, 제가 참참이...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는데, 인야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 종윤아! 잠깐. 가기 전에 이 말 듣고." 하더니, "원장님도 함께 들으세요!" 하면서,
"마침 두 사람이 함게 있으니 하는 말인데요, 내가 남미에 갔다 돌아온 사실을 우리 형제와 두 분을 제외하곤... 거의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 지금의 심정도 마찬가진데... 두 사람도 어딜 가서, 내가 '남미 여행을 갔다가 돌아왔네.' 하는 얘기를 절대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물론 나도, 당분간은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겠지만... 설사 만난다 해도 그런 얘긴 결코 하지 않을 거거든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지나갈 테니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으니, 그렇게 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는 아는 사이니,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꼭요!" 하고 입단속을 시켰다.
진심이었다.
인야는 이미, '한국에 돌아가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히 지내야지.' 하는 다짐도 해두었던 것이다.
"근데, 왜요? 선생님!"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종윤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래, 나는 정말 그러고 싶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싫거든? 제발, 조용히 살고 싶으니... 내 부탁을 꼭 지켜 줘." 하자,
"선생님께서 그러시다면, 알았어요......"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으로 종윤은 돌아갔다.
"화백님 뜻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화백님이 그러시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하면서 치과의사는 혼자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인야가 도착하기 전에 치과 의사가 보일러를 틀어놓은 듯, 방바닥은 이미 따뜻하게 올라오고 있었고, 그게 인야의 심신을 더욱 늘어지게 하는 것 같아...
"야! 오늘부터는 이 온돌방에서 몸을 지지며 잘 수 있겠구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방바닥을 어루 만지기도 했는데,
"그 동안 침대생활만 하셨을 텐데, 갑자기 방바닥 생활을 하려면... 배기지 않겠어요?" 하고 치과의사가 물었는데,
"원장님, 그 동안 제 얼굴이 서양사람으로 변했습니까?" 하고 눈을 흘기는 걸로, 인야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인야의 좁은 주방에서 묵은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맵사하면서도 시큼한 너무나 익숙한 냄새가, 인야의 50여 시간 긴 여정의 피로를 중화시키는 느낌이기도 했다.
밥상은 단출했다. 단출해도 너무 단출했다.
하얀 쌀밥과 붉은 김치찌개 냄비, 그리고 손바닥 만한 접시 안의 녹색 풋고추와 빨간 고추장 종기.
"원장님, 괜찮겠습니까? 저야, 이것으로도 황홀하지만......" 하자,
"무슨 말씀을요. 저도 오랜만에, 이 화백님 음식 맛을 보는 건데... 히 히 히..." 하면서 치과의사는 이미 숟가락으로 찌개 국물을 뜨고 있었는데,
그 간단하고도 완벽한 음식을 인야는, 정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것은 8개월 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돌아온, 가장 따뜻하고 소박한... 인야 자신만의 귀환의식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