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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강좌 제7강-1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15 -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지난주에 이야기가 있었겠습니다만, 내일은 부득이한 일로 제가 강의를 못할 것 같습니다. 대신이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만...
여기서 우리가 법화경 공부하는 것이 너무 짧은 시간에 법화경이라고 하는 방대한 량을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까 좀 부실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중요한 것까지 빠뜨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전이라고 하면 우리가 법화경은 一文一字是眞佛(일문일자시진불). 이런 표현을 합니다.
한 문장 한 글 자가 모두 참 부처님의 法身(법신)이다.
그래서 一文一字是眞佛. 이런 표현을 쓰는데요.
그래서 설사 중송이라 하더라도 그 게송은 게송대로의 특별한 그 맛이 있고, 또 장문에서 말씀하지 못한 내용들도 있기 때문에 사실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우리가 해석하고 의논해보고 생각하고 이렇게 해서 넘어가야 옳은데, 한정된 시간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빨리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나눠드리는 이 C D는, 이것은 문수경전연구회라고 부산서 하고 있는데요. 뒤에 사진이 있네요.
150~160명 스님들만 모여서 공부하는 곳입니다.
거기서 법화경을 가지고 1년 4개월. 한 번씩 모이면 거기도 3시간씩 합니다. 3시간씩 하는데 1년 4개월간 공부한 것을 끝난 지가 얼마 안 됐어요. 아직은 따끈따끈한데 이것을 cd로도 하고 테이프로도 하고 그랬습니다.
테이프는 너무 비싸서 도저히 드릴 수가 없고 그래서 cd는 하나쯤 드릴만 하다 싶어서 씨디를 주문해서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그러면 법화경 여기서 공부한 것이 미진한 것은 이 씨디를 들으면서 복습도 하고, 장문만 보고 게송은 못 본 게송부분도 여기서는 해석을 다 했으니까 훨씬 자세하게, 여기서 공부한 것 보다는 세 배 네 배 이상 자세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법화경 공부 하는데 상당히 참고가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꼭 씨디를 차에서나 아니면 집에서 많이 듣고, 부족한 공부 보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그 유명한 설법자료의 寶庫(보고), 염화실주소도 있고, 또 거기에 들어가면 여기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도 다 올라져 있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공부하는 대로 올라져 있어서 이 내용도 또 들을 수 있고요. 불교 TV에서 강의한 것도 들을 수 있고요. 또 그 전에 다른 곳에서 법화경 강의한 것도 들을 수 있고요. 또 현재 신도들을 대상으로 해서 한문으로 하루에 한 2장정도 공부하는, 그것은 1시간 반 동안에 겨우 2장정도 공부하는 그런 아주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 넘어가는 법화경 강의도 염화실에서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공부하기 좋은 곳은 염화실입니다.
특히 법화경. 그리고 임제록. 두 가지를 공부하기 제일 좋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거기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큰, 위대한 발명은 인터넷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우리가 호흡하면서 사는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인터넷이라고 하는 것을 수용하면서 살아야 돼요. 그것을 다 수용하고 이해하고 활용하면서 스님들도 그렇게 살아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다 잘 하실 줄 믿습니다만...
그래서 소개를 드렸습니다. 교실이 아주 근사하지요 사진? 이 교실 한 네 배 정도 되는 그런 공간입니다. 거기서 공부하신 스님이 여기 한 분 와 계십니다.
二 지적보살과 문수보살 이것이 제바달다품인데, 앞에서 제바달다품을 두 품으로 나누면 앞부분은 “제바달다품”이고, 뒷부분은 “용녀성불 품”이다.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서장으로써 지적보살과 문수보살의 대화가 나옵니다.
문수보살의 교화라고 해서... 제바달다하고는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독립된 내용이라 연결이 안 됩니다. 다 연결을 시킨다면 법화경의 주된 사상이 뭡니까? 人佛思想(인불사상). 사람이 부처님이다.
본래 인간의 궁극적 본성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아주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에, 정말 이 세상에서 神이라고 하든지 하나님이라고 하든지 부처님이라고 하든지, 그 보다 더 도교적 표현을 빌린다면, 지인이라고 하든지 신인이라고 하든지 이런 아주 최고의 명제를 붙여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갈고 닦아서 수행을 해서 되는 존재가 아니고, 본래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법화경의 주된 사상입니다.
一佛乘(일불승)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일불승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궁극적 실체. 그것의 가치. 이것을 드러내는 가르침이거든요.
이것은 다듬고 장엄하고 수행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세월이 걸리고 해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본래로 그런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것을 한껏 드러내서 정말 모든 사람들의 그러한 가치를 다 같이 존중해주고,
자기 자신도 당당하게 살라는 그런 메시지가 바로 법화경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바달다같이 천하에 무도한 악인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마찬 가지다. 그도 역시 부처님이다. 그가 어떻게 바깥 인연이 공교롭게 돼서 그런 악역을 했지 사실에 있어서는 그도 또한 위대한 불성 인간인 한 마디로 말하면 부처님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그 다음에 여기서는 그러면 여인은 어떠냐? 말하지 말라. 앞에서 비구니들 수기가 여러 번 있었고, 아라한들 수기가 여러 번 있었어요. 여기는 8세 용녀라고, 그러면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축생도 부처다. 8세 용녀도 부처다. 어떤 상황에 있는 생명체든 간에 모두가 그 궁극적 차원에서는 아주 위대한 가치로써의 佛性이라고 하는 그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는, 확인하고 들어가는 그런 내용이다 라고 이렇게 요약 할 수가 있습니다.
二 지적보살과 문수보살
1 문수보살의 교화
於時下方多寶世尊(어시하방다보세존)의 所從菩薩(소종보살)은
名曰智積(명왈지적)이라 白多寶佛(백다보불)하고
當還本土(당환본토)러니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
告智積曰善男子(고지적왈선남자)야 且待須臾(차대수유)하라
此有菩薩(차유보살)하니 名文殊師利(명문수사리)라
可與相見(가여상견)하야 論說妙法(론설묘법)하고
可還本土(가환본토)니라
爾時文殊師利(이시문수사리)가 坐千葉蓮華(좌천엽연화)하니
大如車輪(대여거륜)이며 俱來菩薩(구래보살)도
亦坐寶蓮華(역좌보련화)하고
從於大海娑竭羅龍宮(종어대해사가라용궁)하야
自然涌出(자연용출)하사 住虛空中(주허공중)하야
詣靈鷲山(예영축산)할새 從蓮華下(종연화하)하야
至於佛所(지어불소)하야
頭面敬禮二世尊足(두면경례이세존족)하고
修敬已畢(수경이필)에 往智積所(왕지적소)하야
共相慰問(공상위문)하고 却坐一面(각좌일면)이러니
智積菩薩(지적보살)이 問文殊師利(문문수사리)하사대
仁往龍宮(인왕용궁)하야 所化衆生(소화중생)은
其數幾何(기수기하)닛고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하사대
其數無量(기수무량)하야 不可稱計(불가칭계)라
非口所宣(비구소선)이며 非心所測(비심소측)이니
且待須臾(차대수유)하면 自當證知(자당증지)리다
所言未畢(소언미필)에 無數菩薩(무수보살)이
坐寶蓮華(좌보련화)하고 從海涌出(종해용출)하사
詣靈鷲山(예영축산)하야 住在虛空(주재허공)하니
此諸菩薩(차제보살)은
皆是文殊師利之所化度(개시문수사리지소화도)라
具菩薩行(구보살행)하야
皆共論說六波羅蜜(개공론설육바라밀)하며
本聲聞人(본성문인)은 在虛空中(재허공중)하야
說聲聞行(설성문행)하다가
今皆修行大乘空義(금개수행대승공의)러라
文殊師利(문수사리)가 謂智積曰於海敎化(위지적왈어해교화)는
其事如是(기사여시)니라
於時下方多寶世尊(어시하방다보세존)의, 그때에 하방 다보세존의
所從菩薩(소종보살)은, 쫓아온바 보살은 名曰智積(명왈지적)이라.
이름이 지적이다. 智積이라고 하는 보살이 있었다. 지혜 智자. 쌓을 積자. 또 지혜 제일 문수보살. 둘이 아주 잘 만났어요.
白多寶佛(백다보불)하고, 다보불에게 고하고 當還本土(당환본토)러니,
마땅히 본토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때에 마침, -그러니까 다보불과 석가불은 정상입니다. 그럼 수행원으로써 장관급에 해당되는 보살들이, 다보부처님 쪽에서는 지적보살이고, 제일 비서라고나 할까요? 석가모니부처님 쪽에서는 문수보살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이 말하는 겁니다.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 告智積曰善男子(고지적왈선남자)야,
智積보살에게 고하기를 아 선남자야, 且待須臾(차대수유)하라. 잠깐 기다리세요. 此有菩薩(차유보살)하니, 여기에도 내놓을 만한 보살이 있다.
名文殊師利(명문수사리)라. 이름이 문수사리다.
可與相見(가여상견)해서, 가히 더불어 서로 만나 보아서
論說妙法(론설묘법)하고, 묘법을 논설하고 可還本土(가환본토)니라.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법을 생명으로 하는 수행자들이 만나서 법에 대한 이야기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가면 되겠느냐? 그런 말이지요. 그래서 묘법을 논설하고 본토로 돌아가도 좋지 않은가?
爾時文殊師利(이시문수사리)가, 그때에 문수사리가
坐千葉蓮華(좌천엽연화)하니, 천엽연화에 앉아 있다. 연꽃잎이 어디 1000개 됩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1000개 꽃잎으로 된 연꽃위에 같이 앉아 있다.
大如車輪(대여거륜)이며, 크기가 아주 큰 수레바퀴와 같다.
俱來菩薩(구래보살)도, 함께 온 보살로 더불어 亦坐寶蓮華(역좌보련화).
보배로 된 연꽃에 앉아서 大海. 從於大海娑竭羅龍宮(종어대해사가라용궁)하야, 사가라 용왕이 계시는 그 궁전으로부터 自然涌出(자연용출)이라.
저절로 싸~악 올라왔다는 겁니다.
自然涌出하사 住虛空中(주허공중)하야, 허공 가운데 머물러서
詣靈鷲山(예영축산)할새. 영축산에 나아갔을 새. 鷲→ 취라고도 발음하고, 축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취라고 하면 저는 별맛이 적어서 축이라고 합니다. 힘이 있잖아요. 취라고 하는 것 보다는 발음이 강하잖아요.
저~기 통도사가 영축산인데요. 거기가면 전부 영축산이라고 합니다.
간혹 영취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겨우 옥편 찾아보고 내는 발음이에요. 우리 불교에서 관습화 된 그런 음이 있지 않습니까?
十方(시방)이라든지, 菩提(보리)라든지, 靈鷲(영축)이라든지, 이런 것은 옥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발음이 아닙니다. 영축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영축산에 나아 갈 새. 從蓮華下(종연화하)하야, 연꽃으로부터 내려와서
至於佛所(지어불소)하야,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서
頭面敬禮二世尊足(두면경례이세존족)하고, 두면으로 두 세존 앞에 경례를 하고, 두 세존 발에다 경례를 하고 修敬已畢(수경이필)에, 경례를 마치고 남에 往智積所(왕지적소)하야, 지적소에 가가지고, 지적보살이 있는데 가서 共相慰問(공상위문)이라. 서로서로 위문해요. 말하자면 부처님과 부처님끼리는 옆에 앉았으니까 다 이야기가 됐고, 그 다음에
보살들끼리 다시 이야기 되니까 서로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쪽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는 등등 그런 위문을 하는 것이지요. 건강하시냐고 하고... 건강이 제일 문제인가 봐요. 그래서 부처님끼리 만날 때, 보살들끼리 만날 때도 항상 하는 말이 “少病少惱(소병소뇌). 병이 없으시고 괴로움이 없으십니까?” 이것이 맨 처음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런 위문을 하고나서
却坐一面(각좌일면)이러니, 물러나서 한 쪽에 앉았더니
智積菩薩(지적보살)이 問文殊師利(문문수사리)하사대, 그때 지적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묻기를 仁往龍宮(인왕용궁)하사, 仁. 어지신이께서 용궁에 가가지고, 所化衆生(소화중생)은, 교화한바 중생은 其數幾何(기수기하)닛고?
그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하사대, 문수사리가 말하사되,
其數無量(기수무량)하야, 그 숫자가 무량해서 不可稱計(불가칭계)라.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입으로 펼 바가 아닙니다.
非口所宣(비구소선)이며,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또
非心所測(비심소측)이니, 마음으로 측량할 바가 아닙니다.
其數無量ㆍ不可稱計ㆍ非口所宣ㆍ非心所測. 그랬어요. 입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고 마음으로도 헤아릴 길이 없다.
且待須臾(차대수유)하면, 조금만 기다릴 것 같으면, 내 말이 진짠가 가짠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自當證知(자당증지)리다. 스스로 마땅히 증득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所言未畢(소언미필)에, 그 말이 막 끝나기도 전에 無數菩薩(무수보살)이, 무수한 보살들이 坐寶蓮華(좌보련화)하고, 보련화에 앉아서
從海涌出(종해용출)이라. 바다로부터 涌出했다. 솟아올랐다. 솟아올라서 詣靈鷲山(예영축산)하야, 영축산으로 나아가서 住在虛空(주재허공)하니,
허공에 머물렀으니 此諸菩薩(차제보살)은, 여기에 있는 모든 보살은
皆是文殊師利之所化度(개시문수사리지소화도)라. 다 문수보살이 전부 제도한 바더라. 具菩薩行(구보살행)하야, 보살행을 갖추었고
皆共論說六波羅蜜(개공론설육바라밀)이라. 모두 육바라밀을 논설해. 이야기를 해.
本聲聞人(본성문인)은 在虛空中(재허공중)하야, 허공중에 있어서
說聲聞行(설성문행)하다가, 성문행을 이야기하다가
今皆修行大乘空義(금개수행대승공의)러라. 지금 다 大乘空義를 수행했다. 文殊師利(문수사리)가 謂智積曰(위지적왈)하대, 문수사리가 지적에게 말하대 於海敎化(어해교화)는 其事如是(기사여시)니다. 제가 바다 속 용궁에서 중생들을 교화한 일이 이와 같습니다. 하면서 금방 바다 속으로 부터 솟아올라 온 무수한 보살들을 보여주는 겁니다. 보여줌으로 해서 말하자면 자신의 교화활동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적보살의 찬탄하지요.
2 지적보살의 찬탄
爾時智積菩薩(이시지적보살)이 以偈讚曰(이게찬왈)
大智德勇健(대지덕용건)하사 化度無量衆(화도무량중)을
今此諸大會(금차제대회)와 及我皆已見(급아개이견)이니다
演暢實相義(연창실상의)하야 開闡一乘法(개천일승법)하며
廣導諸衆生(광도제중생)하야 令速成菩提(영속성보리)니다
爾時智積菩薩(이시지적보살)이 以偈讚曰(이게찬왈),
그 때에 지적보살이 게송으로써 찬탄해 가로되,
大智德勇健(대지덕용건)하사, 큰 지혜 있고 덕 있고 용맹하고한
化度無量衆(화도무량중).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사
今此諸大會(금차제대회)와, 지금 여기 있는 큰 법회와
及我皆已見(급아개이견)이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미 다 봅니다.
演暢實相義(연창실상의)하야, 실상의 도리를 演暢해서
開闡一乘法(개천일승법)하며, 일승법을 열어서 開闡. 열어서 천량하며, 드러보이며 廣導諸衆生(광도제중생)하야, 모든 중생들을 널리 인도해서
令速成菩提(영속성보리)하니라. 속히 보리를 이루게 합니다.
이렇게 지적보살이 문수보살을 찬탄합니다.
그 다음 팔세용녀의 성불입니다. 여기 이제 나오는 겁니다.
三 팔세용녀(八歲龍女)의 성불
1 지적보살과 문수보살의 문답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하사대 我於海中(아어해중)에
唯常宣說妙法華經(유상선설묘법화경)호라
智積(지적)이 問文殊師利言(문문수사리언)하사대
此經甚深微妙(차경심심미묘)하야 諸經中寶(제경중보)라
世所希有(세소희유)니 頗有衆生(파유중생)이
勤加精進(근가정진)하야 修行此經(수행차경)이면
速得佛不(속득불부)잇가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하사대
有娑竭羅龍王女(유사가라용왕여)하니 年始八歲(연시팔세)라
智慧利根(지혜이근)하야 善知衆生(선지중생)의
諸根行業(제근행업)하사 得陀羅尼(득다라니)하며
諸佛所說甚深秘藏(제불소설심심비장)을 悉能受持(실능수지)하며
深入禪定(심입선정)하야 了達諸法(요달제법)하며
於刹那頃(어찰나경)에 發菩提心(발보리심)하야
得不退轉(득불퇴전)하며 辯才無礙(변재무애)하고
慈念衆生(자념중생)하대 猶如赤子(유여적자)하며
功德具足(공덕구족)하야 心念口演(심념구연)이
微妙廣大(미묘광대)하며 慈悲仁讓(자비인양)하고
志意和雅(지의화아)하야 能至菩提(능지보리)하니라
智積菩薩言(지적보살언)하대 我見釋迦如來(아견석가여래)가
於無量劫(어무량겁)에 難行苦行(난행고행)하고
積功累德(적공누덕)하야 求菩提道(구보리도)하대
未曾止息(미증지식)하며 觀三千大千世界(관삼천대천세계)하대
乃至無有如芥子許(내지무유여개자허)나 非是菩薩(비시보살)의
捨身命處(사신명처)라 爲衆生故(위중생고)로
然後乃得成菩提道(연후내득성보리도)어늘 不信此女(불신차녀)가
於須臾頃(어수유경)에 便成正覺(변성정각)이니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하사대, 문수보살이 말하기를
我於海中(아어해중)에, 내가 바다 가운데
唯常宣說妙法華經(유상선설묘법화경)했다. 오직 항상 묘법연화경만 宣說했다. 무슨 저~기 아함경이나 금강경이나 화엄경이나 법화경이외의 경전을 설 했다는 소리가 없고, 오로지 妙法華經만 宣說했다. 그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의 위대성. 인간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정말 불가사의하고ㆍ심심미묘하고ㆍ무량복덕과ㆍ한량없는 신통을 갖추고 있고ㆍ그리고 영원한 생명체 그 사실. 그 사실. 그 사실이 법화경이라고 그랬지요? 그 사실이 묘법연화경이고 그러한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이 책이다. 이렇게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용궁에서 그 사실을 宣說했다는 것입니다.
智積(지적)이 問文殊師利言(문문수사리언)하사대,
지적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어 말하대, 此經甚深微妙(차경심심미묘)하야.
이 경은 심심미묘해서 諸經中寶(제경중보)라. 모든 경전 가운데 보배다.
그러니까 인간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리고 가장 잘 드러내고, 가장 존중하고 하는 가르침이 법화경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전 가운데 보배라. 世所希有(세소희유)니, 세간의 希有한, 드물게 있는 바이니
頗有衆生(파유중생)이, 자못 있는 중생들이 勤加精進(근가정진)하야,
부지런히 정진을 더 해서 修行此經(수행차경)이면 이 경전의 도리를 수행할 것 같으면 速得佛不(속득불부)잇가? 빨리 부처를 얻을 수 있습니까?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하사대, 문수사리가 말하기를
有娑竭羅龍王女(유사가라용왕여)하니, 사가라용왕여가 있으니,
年始八歲(연시팔세)라. 나이가 비로소 여덟 살이다.
智慧利根(지혜이근)하야, 지혜와 아주 날카로운 근기가 있어서
善知衆生(선지중생)의, 중생들의 諸根行業(제근행업)을 善知. 잘 알아서, 또 得陀羅尼(득다라니)하며, 다라니를 얻었으며
諸佛所說甚深秘藏(제불소설심심비장)을, 제불이 설한바 심심비장을
悉能受持(실능수지)하며, 다 능히 받아가지며
深入禪定(심입선정)하야, 깊이 선정에 들어가서
了達諸法(요달제법)하며, 모든 법을 요달 하며
於刹那頃(어찰나경)에, 찰나 사이에 發菩提心(발보리심)하야, 보리심을 발해서 得不退轉(득불퇴전)하며, 불퇴전을 얻으며
辯才無礙(변재무애)하고, 변재가 걸림이 없고
慈念衆生(자념중생)하대,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을 생각을 하되,
猶如赤子(유여적자)라. 방금 낳은 자식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赤子. 아직도 빨가숭이 아들ㆍ빨가숭이 자식. 이런 뜻이지요.
그러니까 막 낳은 자식을 생각하듯이 얼마나 뭐 예를 들어서 바람이 불어도 안 되고, 온도가 안 맞아도 안 되고, 거친 것이 옆에 있어도 안 되고 큰 일 나지요. 예를 들어서 낯선 사람 혹시 신종플루나 감염될까?
얼마나 염려되겠습니까? 막 어린아이를 낳았다면... 중생들을 생각하는 것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런 말도 있지요.
哀愍衆生如赤子(애민중생여적자). 중생들을 애민이 여기기를 어린아이. 아주 갓난 애기 생각하듯이 그렇게 보살핀다.
猶如赤子하며 功德이 具足(공덕구족)해서 心念口演(심념구연)이니,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설명하는 것이 微妙廣大(미묘광대)하며 慈悲仁讓(자비인양). 아~, 좋은 말이네요. 慈 : 사랑, 무조건 사랑하는 것.
悲 : 어여삐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연민의 마음.
仁讓 : 아주 어질고 거기 또 겸양하고 겸손하고 사양하는 그런 자세.
慈ㆍ悲ㆍ仁讓하고 志意和雅(지의화아)라. 뜻과 의식이 아주 화평하고 우아하다 이 말입니다. 和雅. 참 좋은 표현 다 갖다놨지요? 그래서
能至菩提(능지보리)하니라. 능히 보리에 이르나니라.
智積菩薩言(지적보살언)하대, 지적보살이 말하대,
我見釋迦如來(아견석가여래)가, 내가 보니 석가여래께서
於無量劫(어무량겁)에, 한량없는 겁에 難行苦行(난행고행)하고 積功累德(적공누덕)하야, 공을 쌓고 덕을 쌓아서, 오랫동안 많은 덕을 쌓아가지고서
求菩提道(구보리도)하대 未曾止息(미증지식)이라. 일찍이 쉰 바가 없었다.
觀三千大千世界(관삼천대천세계)하대 乃至無有如芥子許(내지무유여개자허)나, 개자씨 만큼이라도 非是菩薩(비시보살)의 捨身命處(사신명처).
身命을 버리지 않는 곳이 없더라. 모두가 석가모니부처님의 과거 생 오랜 세월동안 이 삼천대천세계 어디든지 전부 보살행 하느라고, 身命을 다 바친 그런 곳이다.
爲衆生故(위중생고)로, 중생을 위한 까닭으로 然後(연후). 그런 연후에야
乃得成菩提道(내득성보리도). 그 때야 비로소 보리도를 이뤘다. 라고 하거늘, 不信此女(불신차녀)가, 此女. 축생이지요. 아니면 여자지요. 아니면 여덟 살 먹은 소녀. 그 사람이 於須臾頃(어수유경)에, 아주 짧은 순간에
便成正覺(변성정각)이니. 정각을 곧 이뤘다. 라고 하는 것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말입니다. 석가모니보라고요. 석가모니는 얼마나 오랫동안 難行苦行하고, 뭐 6년 고행정도가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과거 생에 그야말로 삼아승지겁 동안 수행하는 것. 이것이 전통적인 불교적인 상식을 가지고 지금 지적보살이 말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문수보살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보살들을 교화했으며,
또 8세 용녀가 어떻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성불 할 수 있느냐? 그것은 도저히 못 믿겠다. 그래요. 그것이 보통 우리의 상식입니다.
지금까지 일반 불교에서 말하는 그런 성불론 입니다. 일반 불교에서는 성불을 전부 그렇게 생각해요. 또 선방에서는 예를 들어서 화두를 들고,
靜中一如(정중일여)ㆍ動靜一如(동정일여)ㆍ夢中一如(몽중일여)ㆍ寤寐一如(오매일여). 寤寐一如까지 가가지고 그 다음에 確撤大悟(확철대오). 이렇게 해야 비로소 見性成佛(견성성불)이다. 라고 이렇게 알고 있는 것 하고 똑 같습니다. 이것이요.
그것은 오히려 삼아승지겁 보다 더 걸릴지 몰라요. 오매일여는요.
교학에서 삼아승지겁 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히 오랜 세월을 말하는 것이고, 선불교에서는 오매일여경지. 정중일여는 앉아서 한 시간 참선하면 한 시간 동안 화두일념이 되는 것을 靜中一如라고 그래요. 그 다음에
動靜一如는 우리가 앉아서 아주 집중적으로 참선을 하거나 아니면 어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움직이거나 일상생활. 밥을 먹거나 일상생활 하는 그 가운데서나 고요히 있을 때나, 항상 화두일념으로 한결 같다.
이것이 動靜一如입니다.
그 다음에 그 위에서 단계가 더 높아지면 夢中一如입니다.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도 한결 같다는 말입니다. 꿈속에서 공부하는 꿈은요? 어지간히 공부 좀하면 다 꿉니다. 공부하는 꿈은 저도 여러 수십 번 꿨어요. 공부하는 것을 꿈꾼 것 하고, 꿈속에서 화두가 한결 같은 것 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공부하는 흉내내는 꿈은 누구든지 조금만 신경 쓰다가 잠들면 그런 꿈을 꿉니다. 공부 열심히 할 때 공부하는 꿈 안 꾸는 사람 없지요.
그런데 夢中一如라고 하는 말은 꿈속에서도 一如가 돼야 됩니다.
一念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리되면 病中一如(병중일여)입니다.
病中一如. 아무리 심한 병을 앓아가지고 그야말로 기절할 정도로 통증을 느껴도 화두일념이 한결 같은 겁니다. 흔들리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夢中一如되면 病中一如다. 같은 것으로 보는 겁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10여년 이상을 제가 선방에서 많은 세월을 토론하고 씨름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눠보고 책도 많이 뒤져보고 그렇게 해가지고 정리 된 것입니다. 그럼 그런 病中一如ㆍ夢中一如를 넘어서면 그 다음에 寤寐一如(오매일여)이라고 해서 이것은 하루 종일 노동을 하다가 아주 피곤한 몸으로 푹~~ 깊이 잠에 빠졌을 때, 그 때도 화두일념이 되는 것이 寤寐一如입니다. 그럼 깨어있을 때나 아주 깊이 잠들었을 때나 한결 같다.
이것이 寤寐一如입니다. 그런데 寤寐一如가 된다고 해서 다가 아니거든요. 거기서 또 한 번 한 고비를 넘어야 그것이 確撤大悟(확철대오)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것은요? 삼아승지겁 보다도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그것 알아야 돼요. 말만 있지 실지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에, 이런 시대하고는 정말 전혀 다른 시대에 지금부터 한 4~500년 전, 아니면 5~600년 7~800년 전, 정말 순수한 그런 어떤 정신으로, 아주 타고난 종교적 천재성을 지닌 그런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화두일념에 매진했을 때, 그때 한 두 사람 가능한 겁니다. 그때 사람들의 어떤 정신으로 하면 寤寐一如가 한 두 사람 가능해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같이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밤낮 없이 수많은 정보를 좋든 싫든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소화해내고 겪고 하면서 그래가지고 우리들 정신은요? 산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낳아놓은 요즘 아이들이 더 산만하잖아요.
부모들이 산만하니까, 산만한 부모들이 낳아놓으니까 아이들은 더 산만한 겁니다. 나부대고 한 시도 그냥 안 있잖아요. 그렇게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사람도 시대의 산물입니다. 시대의 산물이고 자연의 산물이에요.
사실은 큰 소리 칠 것 없어요. 동양 사람은 동양사람 처럼 생겼고, 서양 사람은 서양사람 처럼 생겼고, 저기 아프리카 같은 데는 왜 새카맣게 생겼냐고요. 그것이 자연의 산물입니다. 그 자연의 영향을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오늘 평창 찰옥수수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습니까?
경상도에서 그것 맛있다고 씨 사다가 심어 봐요. 경상도 옥수수 돼 버립니다. 절대 찰옥수수 안 되는 겁니다. 이거 왜 이러냐고 가짜 판 것 아니냐고 야단법석일겁니다. 경상도에서는 알지도 못하고... 그 지역에 갖다 심으면 그 지역옥수수가 된다고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 오매일여경지를 터득해가지고 확철대오한다 라고 이렇게 옛날 7~800년 전에 송나라 때, 그 당시 사람들의 어떤 정신세계에 맞는, 그것도 어쩌다가 한 두 사람이 경험하는 그 정신세계를 그려놓은걸 가지고, 지금 그 교재 가지고 간화선, 간화선하면서 지금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겁니다.
한 사람도 그 경계라 할까? 그 관문 근처에 간 사람도 없어요.
지금 사람들은 안 되게 돼있습니다. 그럼 이것이 그 방법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닌 겁니다. 그리고 또 그런 방법이 송나라 때 비로소 생긴 것이지, 그 전에는 그런 방법 안 썼어요. 없었어요. 그것도 우리가 참선 생활이 좋아서 하기는 하되 그런 줄 알고 해야 돼요. 그냥 참선 생활이 좋아서할 뿐이라고 이렇게 생각해야지 거기서 뭘 얻어낸다. 어떤 경지를 터득해서 얻어낸다. 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답이 없습니다.
만약에 답이 있다면 매 철 2000명 이상씩 프로가 앉아서 쪼는데, 뭐 닭이 1000마리면 봉이 한 마리라고, 그러면 최소한도 한 철에 두 사람은 나와야 될 것 아닙니까? 1000대 1로 계산하더라도 한 철에 두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눈으로 지켜본 역사가 50년입니다. 50년 동안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 것이 말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간화선, 간화선 하는데 간화선의 실체를 우리가 알아야 돼요. 말은 아주, 정말 누구도 이르러 갈 수 없는 그런 경지를, 그 어떤 라인을 딱~ 설정해놓고, 설정은 잘 해놨어요. 설정을 해놓고는, 높이는 한 100m에다가 설정 해놨다면 지금 1m도 못 뛰고 있어요. 하고 있는 것은 1m도 못 뛰고 있는 겁니다. 높이는 100m 높이에다 설정 해놨다면 1m도 못 뛰면서 설정은 100m에다 설정 해놓은 것 하고 똑 같은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그래 여기서 지적보살이 자기들의 그 세계. 다시 말해서 구태의연한 불교. 그 동안의 상식적인 불교. 그 불교에서 볼 때 용녀성불이라고 하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 자기가 알기로 석가모니부처님은 과거에 무수한 세월동안 난행고행을 겪으면서 그렇게 공덕을 쌓아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랬잖아요. 難行苦行. 턱~ 있잖아요.
難行苦行. 無量劫(무량겁)에 難行苦行(난행고행)해서 積功累德(적공누덕)이라. 공을 쌓고 덕을 쌓았어, 공을 쌓고 덕을 쌓아가지고서 求菩提道(구보리도)하대 未曾止息(미증지식)이여. 한 번도 쉰 적이 없어, 일요일도 없어요.
그래서 보살행은 또 얼마나 했느냐? 삼천대천세계에 개자씨 만한 그 어떤 공간이라도,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보살의 捨身命處(사신명처).
身命을 버리지 않는 곳이 없더라. 이 말입니다.
중생을 위해서 보살행을 하면서 그렇게 이 육신을 다 버려가면서 그런 연후에 得成菩提道(득성보리도). 보리도를 얻었다. 라고 하거늘,
此女(차녀)가, 이 축생이여, 그것도 여덟 살 먹은 용녀가, 축생인지 뭔지 뭐 여자라고 합시다. 여자라고 하더라도 여덟 살 먹은 여자. 아니면 더 심하게 보면 이것이 축생입니다. 그런데 須臾(수유)사이에, 아주 짧은 순간에 正覺(정각)을 이뤘다하니 도저히 내가 믿을 수 없다. 이것이 말하자면 기존의 잘못된 불교. 불교를 대충 그냥 알아가지고, 대충 그저 알아가지고 아~ 성불은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는 불교를 아주 잘 그려 놓은겁니다. 이것이...
그런데 우리가 일찍이 방편품에서 보았듯이 우리인간의 궁극적 실체에 있어서는 뭐라고요? 본래로 부처다. 손 한번 든 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 절 한번 한 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 그것은 불도를 이루는데, 부처라고 하는 사실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그것이 조건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앞에 극악무도한 제바달다까지도 부처다. 라고 하는 그런 수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법화경 내용을요? 우리가 참 깊이 있게 연구해보면 정말 이것은 위대한 가르침이고, 이것만이 살 길이고, 이것이 정법불교의 답입니다.
“법화경이 답이다.”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숨이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왜냐? 寤寐一如(오매일여)? 어림도 없어요.
한 시간 앉아보세요. 단 1분이 되는가?... 하루 24시간 용맹정진 해보세요.
한 시간이 되는가? 안 돼요. 안 돼, 안 돼... 그것 그 누구도 안 되는 짓입니다. 靜中一如(정중일여)도 안 되는 겁니다. 제 1단계. 고요히 앉아서 공부하는 단계 靜中一如. 좌선 중에도 一如가 안 되는데 動靜一如(동정일여)?
우리 수좌계에서 공부도 많이 하고 정신도 살아있는 월암스님 강의.
저 백송선원 에서 월암스님 강의한 것 들어볼 것 같으면 그나마 그걸 놨다들었다, 놨다 들었다 하다가 예를 들어서 해제 딱 하면 일주문에다 화두 딱 걸어놓고 나간다는 겁니다. 아니면 포행할 때 방석 밑에다 화두 놔 놓고 일어나버리고요.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그것을 여러 번 표현해요.
그래서 그 스님이 또 수좌들한테 손가락질 받고, 미움도 사는 겁니다.
왜 그렇게 표현하느냐고... 그것이 사실이거든요. 방석 밑에 놔두고 일어나면 그때부터 내가 언제 화두 하는 사람인가? 하는 걸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천리만리 돌아다니면서 여행해 버리니까요.
나오면서 일주문에다 딱 걸어놓고 나와 가지고는 한 철 계속 깜깜하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들어가면서 일주문에 걸려 있던 것 내려가지고 선방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공개강좌에서...
백송선원에서요. 그러니까 수좌들이 싫어하는 겁니다.
사실이지만 어떻게 그런 소리하느냐? 그 실체를 우리가 알 것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우리가 “성불이다.” “견성이다.” 이렇게 설교를 해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전혀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삼아승지겁 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 지적보살이 말한 이것도 안 되는 일입니다.
법화경에는 “아니야.” 법화경에는, 정말 법화경에는 정말 어떤 경우도 인간의 실체를 아주 제대로 인식하면 그걸로 끝이다하는 것이지, 어떤 수행이니 뭐니 그런 것이 필요치 않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 것은 선사들이, 제대로 깨달은 선사들이, 특히 임제스님 같은 경우는 페이지 페이지마다 임제록에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가 지금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 六根(육근)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여기에서 欠少什麽(흠소심마)오? 모자란 뭐냐?
부족한 것이 뭐냐? 부처로서 뭐가 부족하냐? 부처로서 현재 뭐가 부족하냐 이 겁니다.
어느 부처가 그렇게 정말 아주 웃을 줄 알고 울 줄 알고 하는 그런 부처가, 그렇게 훌륭한 부처가 또 어디 있느냐? 이렇게 아주 명쾌하게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화경하고 아주 딱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禪門(선문)은, 선불교는 임제스님까지 발전해가지고 임제스님이 최정상에서 완성을 이룬 뒤에 그 다음부터 쇠퇴하기 시작하고, 또 교학. 교학적인 불교는 초기 불교에서 50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법화경불교에 와서 최정상을, 절정을 이루고 나서 그 다음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 것을, 전체를 굽어보면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대목에 지적보살은 말 한마디 그렇게 했다가 제가 이야기를 길게 덧붙이게 됐습니다.
2 용녀의 출현
言論未訖(언론미흘)에 時龍王女(시용왕녀)가
忽現於前(홀현어전)하야 頭面禮敬(두면예경)하고
却住一面(각주일면)하야 以偈讚曰(이게찬왈)
深達罪福相(심달죄복상)하사 徧照於十方(변조어시방)하며
微妙淨法身(미묘정법신)에 具相三十二(구상삼십이)와
以八十種好(이팔십종호)로 用莊嚴法身(용장엄법신)하며
天人所戴仰(천인소대앙)이라 龍神咸恭敬(용신함공경)하며
一切衆生類(일체중생류)가 無不宗奉者(무불종봉자)로소이다
又聞成菩提(우문성보리)는 唯佛當證知(유불당증지)라
我闡大乘敎(아천대승교)하야 度脫苦衆生(도탈고중생)이니다
言論未訖(언론미흘)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時龍王女(시용왕녀)가, 그 때에 용왕녀가, 용왕의 딸이
忽現於前(홀현어전)이라. 부처님 앞에 떡~ 홀현히 나타나났어요. 그래서
頭面으로 禮敬(두면예경)하고 却住一面(각주일면)하야, 一面에 물러가서 머물러서 以偈讚曰(이게찬왈). 게송으로써 찬탄해 가로되,
深達罪福相(심달죄복상)하사, 깊이, 죄니 복이니 그런 실상을 통달하사,
徧照於十方(변조어시방)하며, 시방을 변조하며
微妙淨法身(미묘정법신)에, 미묘하고 청정한 법신에
具相三十二(구상삼십이)와, 32상을 갖추고, 또 以八十種好(이팔십종호)로,
팔십종호를 갖추고, 그래서 用莊嚴法身(용장엄법신)하며, 써서 법신을 장엄하며 天人所戴仰(천인소대앙)이라. 천인들이 다 머리에이고 우러렀다.
龍神咸恭敬(용신함공경)하고, 용과 신들이 다 공경하며,
一切衆生類(일체중생류)가 無不宗奉者(무불종봉자)라.
모두다 으뜸으로 받들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더라.
又聞成菩提(우문성보리)는, 또 들으니 보리를 이룬 것은
唯佛當證知(유불당증지)라, 오직 부처님만이 마땅히 증득해서 안다.
그래 깨달음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만 아는 사실입니다.
我闡大乘敎(아천대승교)하야, 나는 대승교를 천량해서, 闡자는 드러낸다 이 말입니다. 度脫苦衆生(도탈고중생)이니다. 고통 받는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3 사리불의 의심
時舍利弗(시사리불)이 語龍女言(어용녀언)하대
汝謂不久(여위불구)에 得無上道(득무상도)는
是事難信(시사난신)이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女身垢穢(여신구예)하야 非是法器(비시법기)라
云何能得無上菩提(운하능득무상보리)리요
佛道懸曠(불도현광)이라 經無量劫(경무량겁)하야
勤苦積行(근고적행)하고
具修諸度然後乃成(구수제도연후내성)이며 又女人身(우녀인신)은
猶有五障(유유오장)하니
一者不得作梵天王(일자부득작범천왕)이오
二者帝釋(이자제석)이요 三者魔王(삼자마왕)이요
四者轉輪聖王(사자전륜성왕)이요 五者佛身(오자불신)이라
云何女身(운하여신)으로 速得成佛(속득성불)이리오
이것은 아주 “여인 五障章(오장장)이라.” 여자들은 다섯 가지 장애가 있다. 하는 그런 내용인데, 이것은 사리불이 문득, 저 앞에서는 아주 지혜로운 사리불이었었는데 여기 와서 문득 그만 소승들의 아주 잘못된 편견. 정말 뺨 맞을 소리를 지금 여기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인도 사회의 상식인데 어떻게 사리불까지 그런 사회상식에 편승해가지고 이런 소리를 하는지?...
어쨌든 표현상 아마 이런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時舍利弗(시사리불)이 語龍女言(어용녀언)하대, 그 때에 사리불이 용녀에게 말하기를 汝謂不久(여위불구)에 得無上道(득무상도)는, 그대는 오래지 아니해서 무상도를 얻는다고 하는 사실은 是事難信(시사난신)이라.
이 일에 대해서 내가 믿기 어렵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女身垢穢(여신구예)하야, 여자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더럽고 때 묻은 것이라. 非是法器(비시법기)라. 법의 그릇이 못 된다.
云何能得無上菩提(운하능득무상보리)리요. 어찌하여 능히 無上菩提를 얻으리요.
佛道懸曠(불도현광)이라, 불도라고 하는 것은 아주 멀고 넓은 것이다.
經無量劫(경무량겁)하야, 한량없는 겁을 지내서 勤苦積行(근고적행).
아주 부지런히 고행하고 수행을 쌓고 具修諸度然後乃成(구수제도연후내성)이며, 여러 가지 바라밀, 6바라밀을 갖추어서 닦은 연후에 이에 이루게 되며, 又女人身(우녀인신)은, 또 여인신은 猶有五障(유유오장)하니,
오히려 다섯 가지 장애가 있으니
一者不得作梵天王(일자부득작범천왕)이오, 1. 梵天王이 못 되고,
二者帝釋(이자제석)이요, 2. 帝釋天이 못 되고
三者魔王(삼자마왕)이요, 3. 魔王도 못 되고,
四者轉輪聖王(사자전륜성왕)이요, 4. 轉輪聖王도 못 되고,
五者佛身(오자불신)이라. 5. 佛身도 안 된다.
云何女身(운하여신)으로, 어떻게 女身으로 速得成佛(속득성불)이리오?
어떻게 성불을 이룰 수 있으리요?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뺨 맞을 소리이고 소승들의 아주 잘못된 편견을 짐짓 여기서 이렇게 표현하고 이것은 그 당시 인도 사람들의 사회 상식이었다 하는 그런... 이것은 동그라미해서 법화경에서 빼도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왜냐? 법화경의 주된 사상에서 맞지 않은데 그러나 사리불이 짐짓 악역을 함으로 해서 인간의 평등한 불성을 더 잘 드러내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한 것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여성분들 절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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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어떤 성인도 여성의 몸에서 나왔는데 왜 여성을 비하하지?
어떤 상황에 있는 생명체든 간에 모두가 그 궁극적 차원에서는 아주 위대한 가치로써의 佛性이다..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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慈悲仁讓(자비인양)하고 志意和雅(지의화아)하다. ㅡ 사랑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어질고 겸손하며 뜻과 의식이 아주 화평하고 우화하다. <법화경의 주된 사상이 인불사상이다>라는 사실,,,,,,공부 잘 하고 갑니다.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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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 있는 생명체든 간에 모두가 그 궁극적 차원에서는 아주 위대한 가치로써의 佛性이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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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불승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궁극적 실체. 그것의 가치. 이것을 드러내는 가르침이거든요. 이것은 다듬고 장엄하고 수행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세월이 걸리고 해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본래로 그런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것을 한껏 드러내서 정말 모든 사람들의 그러한 가치를 다 같이 존중해주고, 자기 자신도 당당하게 살라는 그런 메시지가 바로 법화경이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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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일불승 인간의존엄성, 무한한능력과 생명을 갖인 가치를 자신도 알고 타인의 가치도 인정하는 자가 부처가 아니겠는가
간화선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왜 조계종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요?
기득권보호.어렵사리 구축된 걸 어찌 쉬이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간화선 취지는 아직까지도 매우 훌 륭하지요. 허나 현대사회구조와는 부조화. 언젠가는 변화..
고맙습니다_()_
나모묘법연화경_()()()_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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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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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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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