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병산서원은 서원을 뒤덮고 있는 목백일홍의 화려한 자태에 황홀경을 연출한다.
병산서원의 유산적 가치는 화산을 배경으로 한 건물군은 접근하면서 보이는 중첩된 지붕들이 산자락의 흐름을 조금도 거슬리지 않으면서 공간의 위계질서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선조들의 외경심은 만대루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원 전체에 비하여 큰 듯한 만대루는 이름 그대로 많은 유림들이 시주詩酒를 논할 수 있는 장소이지만 주변의 자연 풍경에 무관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그 자연의 일부분을 만대루 밑에 옮겨와 작은 동산을 만들고 작은 대나무를 배경으로 그 그림자 밑을 잉어가 뛰어놀았을 작은 연못과 화장실의 애교는 조상들의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만대루 밑을 지나면서 보이는 병산서원 편액은 주건물과 뒤로 이어지는 사당까지의 공간 질서는 엄격하면서도 주변 자연과 내외공간의 연결은 뛰어난 공간 연결 수법을 보여준다.
병산서원 사당인 존덕사 내삼문에도 목백일홍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병산서원이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갖는 역사성과 자연경관 그리고 뛰어난 건축미에 있다. 낙동강과 백사장 그리고 병산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병산서원은 관광객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하다. 병산서원은 자신의 건축미만으로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된다. 건축학자 이상해 교수는 병산서원은 건축을 둘러싼 산천경계가 어떻게 건축의 공간미학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이 건축이야말로 우리의 산하를 알고 그 속에 건축을 얽어 만든 길잡이가 되는 사례라고 극찬한다.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최고 서원으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 배치, 존현양사尊賢養士로 대변되는 서원의 기능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겸손과 절제를 추구하는 선비정신과 생명과 평화, 소통과 화합, 나눔과 배려의 정신과 선비들의 교육적 이상을 실천하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 두보가 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은 해 질 녘에 마주 대할만하고(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이름처럼 해 질 무렵 ‘만대루’에 올라 강 건너 짙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는 ‘병산’을 마주 바라보면, 산 아래 강물에 내리는 노을이 화려하다. 병산서원은 단조롭지만, 품격을 지키며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축물이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져야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공간’으로 완성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즈음의 병산서원은 붉게 타는 목백일홍이 만개하여 온천지가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목백일홍 꽃그늘을 지나 외삼문인 ‘복례문’에 들어서면 병산서원의 랜드마크 ‘만대루’를 마주한다. 사방이 트인 누마루에 오르면, 낙동강 넓은 모래밭과 그 건너 병산을 7폭 병풍에 이어 담고 있다. 7칸의 단순한 이 건물은 병산서원의 집합적 질서의 묘미가 함축되어 있다. 만대루의 기둥들은 주변 경관을 수직적으로 분절시켜 한 폭 한 폭이 병풍이 된 듯 보여주고 있다. 중앙 마당을 감싸는 입교당, 동재·서재 그리고 외부로 열려 있는 만대루의 시각적 구성은 외부에서는 폐쇄적인, 내부에서는 개방적인 서원 건축의 특징을 나타낸다. 즉 만대루는 밖에서 보면 밖에서 안을 감싸고 막아서는 담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안에서 보면 안에서 밖을 향해 시원스럽게 뚫려 있는 창의 역할을 한다. 이는 외부에서는 폐쇄적인, 내부에서는 개방적인 서원 건축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것을 유교 사상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의미를 그 안에 담고 있다고 하겠다.
서원 공간은 외부의 욕망을 막아서 스스로의 수양을 깊게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자기 수양은 언제인가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바꾸려는 그런 수양이다. 그러므로 밖의 욕망은 막되, 밖과 영원히 단절되어서는 안 되고 수양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밖을 향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건축의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 보면 정면에서 볼 때 높게 솟아 있어 위압감까지 주는 만대루는 안에 들어와서 보면 그 기둥들 사이로 만대루 앞의 낙동강의 물과 백사장과 건너편 그늘진 푸른 절벽까지를 한 폭의 그림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강학 공간인 입교당에서 만대루를 바라보게 되면 밖의 자연경관이 만대루의 누마루 7칸 기둥 사이로 강물과 병산과 하늘이 일곱 폭 병풍이 되어 얽힌다. 또한 만대루의 지붕 선과 누마루 난간 선들은 그 풍경을 수평적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그래서 만대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건축물 가운데 셋째로 뽑혔고, 특히 서원 건물로서는 첫째로 꼽혔다.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병산과 낙동강은 신인합일의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만대루는 병산서원의 유생들에게는 숨 쉬는 공간이기도 했다. 담장과 주변의 건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엄격한 원규에 따라 절제되고 긴장된 생활을 하며 오로지 학문과 수련만을 해야 했던 유생들은 가끔 만대루에 올라 파란 하늘과 병산의 푸른 절벽과 굽이쳐 흘러 나가는 강물, 그리고 넓은 백사장을 바라보며 도덕주의적 학문이 가져오는 팽팽한 긴장감을 풀어내고 우주와의 교감을 궁극 목적으로 하는 호연지기를 길렀을 것이다. 만대루와 병산서원 정문인 복례문 사이에 조성된 공간 서쪽으로는 물길을 끌어 만든 작은 연못 광영지(光影池)가 있는데, 방형의 연당 속에는 원형의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이 방지원도(方池圓島)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이라고 하는 유교적 세계관을 형상화한 것이다.
만대루의 멋과 힘은 주변 공간(자연) 속에 조화로움을 추구하고 합일되는 공간의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 공간이 가히 시적이고 또한 자연적이다. 낙동강이 휘감고 앞산을 마주하면서 절대 고요와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저녁 어스름, 빛을 안으로 머금어 검푸르게 보이는 아득한 절벽과 저녁 하늘과 하얀 백사장과 짙어진 강물, 그것들이 이루어내는 모든 공간이 바로 시(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