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앤 베이스(Drum and bass: 디앤비, DnB, D&B) 장르가 생겨나기 전까지, 런던에서는 "드럼 앤 베이스"라는 말이 소울(soul)과 펑크(funk)를 틀어주던 [수많은] 해적 라디오 방송국들(UK pirate radios)에서 사용됐고, 심지어 BBC 라디오 원(BBC Radio 1)의 DJ 트레버 넬슨(Trevor Nelson: 1964~ )조차 해적 방송국 DJ 시절에 "드럼 앤 베이스"라는 말을 약간은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했을 정도이다. 넬슨은 이 용어를 보다 깊이 있고 거친 펑크 음악 및 당시 런던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레어 그루브"(rare groove) 사운드를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 [현재는 정식 허가를 받은 방송국이 됐지만] 당시엔 해적 방송이었던 키스 에프엠(Kiss FM)도 1980년대 말부터 "드럼 앤 베이스 스타일 온 키스"(drum and bass style on Kiss)라는 표어를 천명하는 시그널 음악을 사용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드럼 앤 베이스' 장르가 그 언더그라운드적 뿌리로부터 탈출하면서, 일반적인 영국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프로듀서들이 원래 [자메이카의] '라가'(ragga) 장르의 영향에 그 기반을 두고 있던 이 음악의 외연을 더욱 확장시키려는 시도들을 했다. 그리하여 1995년 무렵부터 라가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의 움직임이 출현했다.
[초기에 사용되던] "정글"(jungle)이란 용어는 라가 음악의 영향을 받은 사운드와 너무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레개(reggae, 래게)의 요소들을 사용하지 않는 프로듀서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및 음악을 차별화시키기 위해 "드럼 앤 베이스"라는 용어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 음악 스타일 안에 점차로 드럼 브레이크를 사용한 편집이 증가하는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 음악은 때때로 "인텔리전스"(intelligence)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인텔리전스'라는 용어는 나중에 엘티제이 버켐(LTJ Bukem: 1967~ ) 같이 보다 릴렉싱한 스타일의 '드럼 앤 베이스' 음악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로서 "드럼 앤 베이스"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한 첫번째 트랙(음악)은 아마도 1993년의 일일 것이다. 프로듀서 디 인비지블 맨(The Invisible Man)은 자신의 트랙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롤랜드 티알-808[Roland TR-808] 드럼머신으로 만들어낸 베이스 드럼 라인인] '808 서브킥'(808 sub kick)을 가진 잘 편집된 아멘 브레이크(Amen Break: 에이멘 브레이크) 비트, 그리고 약간은 단순한 '분위기'(atmospherics)가 결합해 너무도 놀라운 독특성을 지닌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는 "정확하게 드럼 앤 베이스"의 견본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드럼 프로그래밍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 전체가 열리고 있다. 이 부문의 모든 프로듀서들이 '아멘 브레이크'를 실천적인 관점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벨전 테크노(Belgian techno) 스타일의 스탭(stab: 찌르는듯 강조하는 포인트)과 노이즈(noise: 잡음효과)는 사라졌고, 편집(edit)과 스튜디오 조작기법(studio trickery)이 더욱 더 복잡해졌다. 사람들은 마침내 이 음악을 '하드코어'(hardcore)라는 이름 대신 '드럼 앤 베이스'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레전드 레코드사'(Legend Records)에서 광에(Gwange), 큐 프로젝트(Q-Project), 스핀백(Spinback)을 위해 만든 많은 트랙들에서, 이러한 아멘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형식은 분명히 그 사운드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데 도움을 줬다. 얼마 안 있어 '아멘 브레이크'를 사용한 트랙들은 사실상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됐다. 파울 플레이(Foul Play), 페샤이(Peshay), 엘티제이 부켐, 디제이 덱스트러스(DJ Dextrous), 디제이 크리스탈(DJ Crystal) 같은 이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모두 아멘 브레이크에 확실히 중독돼 있었다.
(동영상) '디 인비지블 맨'의 1993년 트랙 <더 비기닝>(The Beginning).
1994년 말부터, 특히 1995년에 레개 및 라가 사운드에 영향을 받은 정글 음악과 브레이크 기법을 매우 많이 사용한 트랙들 사이에 확고한 구분이 생겨났다. 후자에 속하는 아티스트들로는 서버번 베이스 레코드사(Suburban Bass Records)에서 활동한 리마크(Remarc), 디제이 덱스트러스, 더 드림 팀(The Dream Team) 같은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이 부문 외부에서 '드럼 앤 베이스'라는 용어를 폭넓게 인식시킨 컴필레이션 앨범 중 하나인 <드럼 앤 베이스 셀렉션 볼륨 원>(Drum & Bass Selection vol 1: 1994년)에는 라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들이 대거 삽입됐다는 것이고, 역시 '드럼 앤 베이스'라는 타이틀을 사용해 히트한 첫번째 음악 중 하나인 <리마크스 드럼 앤 베이스 와이즈>(Remarc's 'Drum & Bass Wize': 1994년) 역시 라가 사운드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주22)
'더 드림 팀'은 비지 비(Bizzy B)와 퍼그워시(Pugwash)의 2인조였다. 하지만 비지 비는 이 장르의 명칭에 관한 실질적인 변화가 있기 전부터 복잡한 브레이크비트들(Breakbeat)를 사용한 트랙들을 발표한 전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리즈 베이스라인(Reese bassline)의 사용 증가와 거의 동시적 현상이었다. '리즈 베이스라인'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디트로이트 테크노(Detroit techno)의 창시자 중 한명인] 케빈 손더슨(Kevin Saunderson: 1964~ )이 '리즈 프로젝트'(Reese Project)로 활동하던 1988년에 발표한 <저스트 원트 어나더 챈스>(Just Want Another Chance)였다. [케빈 손더슨은 당시 그룹 인너 시티(Inner City) 활동으로도 유명했다.] 1995년 중반, 우연찮게 알렉스 리스(Alex Reece)가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발표했다. 이 음악은 '리즈 베이스라인'을 변형시켜 투-스텝 브레이크(two-step break)를 사용했고 템포는 좀 더 느렸다. 이 음악은 새로운 스타일인 테크스텝(tech-step 혹은 techstep)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테크스텝은 이후 '이모티프'(Emotif)나 '노유턴 레코드사'(No U-Turn Records) 같은 레이블들에서 출시됐다.
(여전히 그렇지만) <펄프 픽션>은 대단히 거친 곡조였는데, 당시에는 대단히 독창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 후로 여러 해 동안 그 곡은 클래식 올드스쿨 트랙들 중 하나로 남았다. 또한 그 "투-스텝"(2-Step) 스타일은 수많은 모방자들을 만들어냈고, 이 스타일은 불행하게도 이후 여러 해 동안 지속됐다... 흠.. 오.. 왜냐하면 투-스텝 그루브는 일반적으로 사운드를 더욱 느리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당시 디앤비 음악은 160BPM 이상의 빠른 스피드로 템포를 올리고 있던 때였다. 그러니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주23)
(동영상) 알렉스 리스의 <펄프 픽션>.
이러한 변화는 또한 '정글' 사운드와 구분하기 위한 '드럼 앤 베이스'라는 장르에서, "테크스텝" 서브장르와 '드럼 앤 베이스'의 정체성 동일시에 혼란을 초래시켰다. 또한 디제이 트레이스(Dj Trace)가 1995년에 티 파워(T Power)의 <뮤턴트 재즈>(Mutant Jazz)를 리믹스한 트랙을 발표하기 전에 이미 '드럼 앤 베이스'라는 전체 장르로서의 명칭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또한 디제이 트레이스, 에드 러시(Ed Rush), 니코(Nico) 같은 이들도 이미 다양한 스타일 속에 '정글/드럼 앤 베이스'와 '하드코어' 트랙들을 만들었던 전력을 갖고 있음도 주목해야만 한다.(주24)(주25)
한편 언론에서는 스타일 상의 한가지 차이점에 주목했다. 음악 관련 매체들은 "인텔리전트 드럼 앤 베이스"(intelligent drum and bass)라 불리던 서브장르에 특히 관심을 가졌고, 그 주요한 얼굴들에는 엘티제이 부켐 및 그가 소유한 레이블인 굿 룩킹 레코드사(Good Looking Records)를 필두로, 무빙 섀도우(Moving Shadow) 소속 아티스트들인 파울 플레이, 옴니 트리오(Omni Trio), 클라우드 나인(Cloud 9) 같은 이들이 있다.(주7)
(동영상) 엘티제이 버켐이 1995~1997년 사이에 발표한 음악 모음집. 언론에서는 이러한 음악에 "인텔리전트 드럼 앤 베이스"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사진) 엘티제이 버켐(본명: Danny Williamson, 1967년생)의 2006년 공연 모습. 엘티제이 버켐은 10대 시절에는 퓨전 재즈 공부를 하면서 재즈 펑크 밴드 멤버로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길을 DJ로 바꾼 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글로부터] 디앤비로 이동한 것이 디제이들과 프로듀서들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들이 갱스터 유형 및 폭력적 요소들을 함유한 문화에 저항하면서, 라가의 영향을 받은 프로듀서들이 사용하던 디앤비 장르의 공인된 제작 기법들의 원형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제네랄 레비(General Levy: 1971~ )가 1994년에 발표한 <인크레더블>(Incredible)을 그러한 변화의 키포인트로 여기고 있다. <인크레더블>은 라가의 영향을 받은 트랙으로서, 이 곡에는 제네랄 레비 자신이 "오리지날 정글리스트"(original junglist)라고 단번에 선언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 그는 "나는 정글을 달린다"(I run jungle)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그것은 디앤비 프로듀서들 중 가장 영향력 있고 강력한 이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그 결과 제네랄 레비는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아마도 디앤비 사운드가 라가 사운드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한 전환점이 됐을 것이다.(주7)(주27)(주28)
'정글'의 전반적인 꼬리표는 정말로 사악했다. 그리고 곧 언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난타를 했다. 우리는 그랬던 것 같다. 만일 우리가 하려는 것을 하려면 이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서 도살당하고 있었으니까. --- 파비오(Fabio: 1965~ )의 인터뷰 중에서.(주7)
(동영상) 제네랄 라비의 <인크레더블>.
'인텔리전트 드럼 앤 베이스'는 업템포(uptempo: 빠른 스피드)의 브레이크비트 퍼커션을 유지했지만, 보컬이나 샘플 부분들에서는 보다 분위기 있는 사운드와 따뜻하고 깊이 있는 베이스라인에 역점을 뒀다. 보컬이나 샘플 부분들은 종종 소울이나 재즈 음악에서 차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엘티제이 부켐은 이 스타일의 배후에서 가장 영향력을 지닌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엘티제이 부켐은 이 장르의 여타 핵심적인 프로듀서들과 마찬가지로 '인텔리전트 드럼 앤 베이스'라는 용어를 특히나 싫어하여 주목받았다. 그것은 "인텔리전트"(지적인)라는 말이 여타 형태의 '드럼 앤 베이스' 음악들을 "지적이지 않은 것"이란 의미로 이해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부터 디앤비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음악적 문화를 유지한 가운데 단결력을 보였다. 하지만 스타일 상의 영행력에서 경쟁력을 지닌 특징적 집단으로 남았다. 비록 '정글/디앤비' 장르의 많은 디제이들이 보다 구별되는 서브장르들로 전문화돼 나갔지만, 대다수 아티스트들은 소속 레코드 레이블들이나 이벤트, 혹은 라디오 쇼들을 통해 상호 유대를 이어나갔다. 많은 프로듀서들이 자신들의 트랙들을 제작할 때 디앤비의 여러 가지 서브장르들 중 최소 두 가지 이상으로 제작했다는 점을 주목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1995~1996년 무렵에 디앤비 분야에서는 일반적인 분화 현상이 나타났다. 모든 서브정르들이 '드럼 앤 베이스'라는 새로운 총칭 하에서 분류되긴 했지만, '정글'이나 '드럼 앤 베이스'라는 용어 모두에 반감이 있어서 서브장르의 명칭 그 자체만으로 지칭할 수도 있게 됐다. 그러한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로니 사이즈(Roni Size: 1969~ ), 크러스트(Krust: 1968~ ), 디제이 디(Dj Die)는 디앤비를 보다 주류적인 음악으로 만든 이들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점프-업"(jump-up)이란 용어의 등장으로 혼란은 가중됐다.이 말은 원래 사람들로 하여금 춤을 추고자 하는 욕구를 고취시키기 위해 드롭(drop: [역주] 프레임 전환 직전에 사운드를 겹쳐서 클라이막스로 고조시키는 부분)에 변화를 준 음악을 일컬었다. 디앤비 장르에서 새롭게 출현한 이 스타일은 처음에는 브레이크비트를 강하게 사용한 드롭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들은 거의 동시적으로 입합 스타일의 베이스라인에 사용하는 드롭을 가진 트랙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창기 트랙들은 드롭 부분에 '아멘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이 새로운 서브장르는 이후 "점프-업"으로 불리게 됐다. 이 부문의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로는 디제이 징크(DJ Zinc: 1972~ ), 디제이 하이프(DJ Hype), 딜린자(Dillinja: 1974~ ),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이 있다. '더 드림 팀'도 점프-업 트랙들을 발표했는데, 이 경우엔 '조커 레코드사'(Joker Records)에서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서버번 베이스 레코드사'에서 출시한 음악들과는 유사점도 있었지만 차이도 보여주었다.
또한 "점프 업 드럼 앤 베이스"(jump up drum and bass)라는 말보다는 "점프 업 정글"(jump up jungle)이란 용어가 일찍부터 사용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장르들을 표현하는 명칭은 너무도 빨리 변화되어, '점프-업' 역시 서브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럼 앤 베이스'라고 불리게 됐다.
(동영상) '점프-업 드럼 앤 베이스' 믹스의 한 예.
이 무렵의 디앤비는 BBC 방송의 주력 음악방송인 '라디오 원'(Radio One)에서 금요일 밤의 고정 프로그램을 배당받아 인기를 확고히 했다. 그것은 바로 전설적인 프로그램 "원 인 더 정글"(One in the jungle) 쇼였다. 엠씨 네비게이터(MC Navigator)가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일군의 정글 음악 전문가들을 교체로 출연시키다가, 결국에는 이 부문에서 가장 오랜 경력과 존경을 받고 있던 DJ들인 파비오(Fabio: 1965~ )와 그루브라이더(Grooverider: 1967~ )의 고정출연으로 정리됐다. 이 시기에는 해적 라디오 방송들에서 일하던 많은 DJ들이 합법적인 라디오 방송들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 시점까지 정글 음악에 관한 유일한 라디오 자원은 해적 방송국들 밖에 없었다. 특히 이 사운드의 발전과정에 쿨 에프엠(Kool FM)과 돈 에프엠(Don FM)의 공로는 결코 간과돼선 안 된다.(주7) 해적 라디오 방송국들이 없었다면 정글 음악이 과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정글'에서 '드럼 앤 베이스'로 장르명이 변화되는 과정은 바로 해적 라디오 방송들의 제도권 진입과 때를 같이했다.(주29)(주30)
디앤비의 발전과정에서 주목할만한 또 다른 측면은1994년에 제정된 <형사사법 및 공공질서법>(Criminal Justice and Public Order Act 1994)의 영향이다. 이 법률은 특히 불법적인 레이브(rave) 파티들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고, 정글 및 여타 일렉트로닉 뮤직 장르들의 제도권으로의 이동을 촉진시켰는데, 그 대부분의 귀착지는 나이트클럽들이었다.
오늘날 정글리스트 공동체에서 '정글'(=올드스쿨 정글[oldschool jungle])과 '드럼 앤 베이스' 사이의 차이점에 관한 논쟁은 매우 흔한 일이다. 두 용어의 구별에 관해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의미론적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정글"이란 말을 1990년대 전반기에 발표된 오래된 음악들과 관련시키기도 하는데, 때로는 "정글 테크노"(jungle techno)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은 '드럼 앤 베이스'를 본질적으로 '정글'에서 이어진 것으로 본다. 반면 다른 이들은 '정글'을 디앤비의 광범위한 영역 중에서 특정한 서브장르인 '라가 정글'(ragga jungle)의 약칭으로 보기도 한다. 아마도 런던의 디앤비 씬에서 가장 폭넓게 수용되는 관점은 '정글'과 '디앤비'가 단순한 동의어이며 상호 교환 가능하다는 것일 게다. 즉 '드럼 앤 베이스'가 바로 '정글'이며, '정글'이 곧 '드럼 앤 베이스'라는 것이다.
3. 테크스텝의 탄생과 "드럼 앤 베이스의 죽음"
보다 가벼운 사운드의 디앤비 음악이 주류 음악계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이자, 많은 프로듀서들이 음악적 스펙트럼의 또 다른 극단에 서서 작업하는 일을 지속했다. 그 결과 테크노(techno) 음악 및 SF 영화나 일방 영화의 사운드에 영향을 받아 보다 어둡고 테크니컬한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디앤비 음악들이 출시됐다. '이모티프'나 '노유턴 레코드사' 같은 레이블들과 디제이 트레이스, 에드 러시, 옵티컬(Optical: 1972~ ), 돔 앤 롤랜드(Dom & Roland) 같은 아티스트들이 이 스타일의 선두를 형성했다. 이들의 사운드는 공통적으로 테크스텝(techstep, 텍스텝)이라 불리다가, 이후 뉴로펑크(neurofunk) 서브장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테크스텝'은 스튜디오 제작기법에 강도높게 초점을 맞추면서, 이전의 정글 제작기법에 사운드 생성과 처리과정의 신기술을 적용시켰다. 테크스텝은 의식적으로 언더그라운드를 지향하면서 디앤비 내의 많은 여타 서브장르들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가운데, (컬트 영화에서 차용한 샘플들을 포함하여) 불길함(sinister)이나 SF적 주제들로 특징지워지는 대단히 대기적(atmospheric) 경향을 보였다. 테크스텝은 차갑고 복잡한 퍼커션 파트와 어두우면서도 '음을 찌그러뜨린'(distorted) 베이스라인을 사용했다. 이 사운드는 닥사이드 하드코어(Darkside Hardcore: 앞서 언급한 '닥코어'[darkcore])보다는 보다 확장된 일렉트로/테크노 성향을 강조하긴 했지만, 벨전 테크노(벨기에 테크노)와 닥코어로 의도적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었다.(주31)
또한 테크스텝 사운드는 디앤비 장르가 보다 배타적인 시기로 들어가면서, 여타 장르들보다는 자체 내에서 영감을 끌어내기 시작한 시기로 들어갔음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가정용 컴퓨터 장비들을 이용하면서 샘플러(sampler)의 중요성이 감소했고, 비트와 사운드가 전반적인 디앤비 트랙들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1990년대가 끝나갈 즈음, 디앤비는 주류 음악계의 흐름에서 물러나, 주류 라디오보다는 클럽에서 인기 있던 새롭고도 보다 불길한 느낌의 사운드에 집중했다. 그에 따라 '테크스텝'이 디앤비 장르의 주류로 부상했다. 컨플릭트(Konflict)와 배드 컴파니(Bad Company: BC) 같은 이들이 테크스텝의 주요한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보여주고 있다.
(동영상) 뉴로펑크 믹스 모음.
시간이 흐르면서 테크스텝은 보다 미니멀하고 어두운 톤을 증가시켰고, 로니 사이즈가 1997년에 보여줬던 펑키하고 상업적인 호소력은 감퇴했다. 이러한 특성은 클럽에 가는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의 비율 불균형이 증가하고, 보다 공격적이고 어두워진 클럽들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었다.(주32)(주33)
디앤비 장르가 주류에서 물러난 것은 그 자체 내에서 (프로그레시브하게 어두운) 고유한 사운드에 매료되는 경우가 증가한 결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투-스텝[2 step]과 포바이포 개러지[4x4 garage], 일명 ''[speed garage]로도 불리는) 유케이 개러지(UK garage: UKG) 장르가 갑작스레 탄생하여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케이 개러지'는 정글 장르의 강한 영향을 받아 그와 유사한 비트와 베이스라인을 사용했지만, 보다 느린 스피드와 (최소한 라디오 방송 친화적인 측면에서) 버다 우호적인 비트를 갖고 있었다.(주34)(주35) 디앤비는 갑작스레 인기를 상실한 자신을 발견했고, 기존의 디앤비 프로듀서들은 일반 대중들로부터 갑작스레 포기당했다는 소외감을 표현했다.(주36) 이러한 상황은 테크스텝 사운드가 보다 하드해지는 동인으로 작용했다.(주7)
그때 개러지가 나타났다. 그것은 '드럼 앤 베이스'의 종말을 알리는 전조였다. 그것은 새로운 '드럼 앤 베이스'였고, 그때가지 우리에게 가해진 최대의 타격이었다. 예~ 그들이 모든 여자 애들을 갖게 됐고, 정글 씬의 모든 여자 애들이 가버린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드럼 앤 베이스'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 --- 파비오(Fabio)의 인터뷰 중에서.(주7)
아마도 아이러니한 점은 언론이 "드럼앤베이스/정글은 죽었다"(drum and bass/jungle is dead)고 선언하고 개러지 음악이 디앤비를 압살하고 있었음에도, 디앤비가 고난의 시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다는 것일 게다. 새천년이 바뀔 즈음 "디앤비에서 즐거움을 되찾자"(bring the fun back into drum and bass)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앤디 씨(Andy C: 1976~ )와 시몬(Shimon)의 <바디 락>(Bodyrock) 및 샤이 에프엑스(Shy FX)와 티 파워의 <섀익 유어 바디>(Shake UR Body) 같은 싱글들이 영국 차트에 랭크되면서 부활의 전조를 알렸다.(주37)(주38)
(동영상) 샤이 FX와 티 파워가 프로듀싱한 <섀익 유어 바디>.
클럽들에서는 레이브 취향의 새로운 사운드들이 존재해쏘, 과거에 대한 향수와 음악적 기원에 관한 관심 때문에 고전적 정글 트랙들의 리믹스도 유행했다. 많은 이들은 디앤비 음악이 무시를 견뎌왔다고 느끼면서, 1990년대 말 "디앤비는 죽었다"고 선언했던 주류 매체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디앤비를 지지했다. 그리고 디앤비의 차트 성공이 부활한 것은 이 음악 스타일이 지나간 유행 그 이상임을 시사했다.(주39)
이후 '유케이 개러지'는 짧은 기간 동안 극도의 인기를 구가한 후 스스로 언더그라운드적 성향으로 돌입하자, 그 자리를 대부분 새로 출현한 그라임(grime: [역주] 디앤비, 유케이 개러지, 힙합, 댄스홀의 영향을 받은 장르) 장르가 대체했다. 디앤비의 생존은 런던 일렉트리시티(London Elektricity)나 스텝 써틴(Step 13) 같은 신세대 프로듀서들의 활력에도 힘입은 것이었지만, 디앤비 음악을 계속해서 고수했던 원조 프로듀서들과 아티스트들의 고집스러움도 반영된 것이었다.(주40)
(주35) "2-Steps closer to America, a new dance mausic crosses the Atlantic to the beat of MJ Cole", Artful Dodge and others article, Boston Globe, 2001-7-6.
(주39) "The Good Life, No Such Thing As Society", The Independent, 2003-7-23.
(주40) 골디(Goldie)는 2001년에 발표한 앨범 <골디 닷 씨오 닷 유케이>(Goldie.co.uk) 표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드럼 앤 베이스가 죽었다고? 지난 몇년간 나는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너무 많아서 언급조차 불가능하다. 맞지? 하지만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살펴봤나? 그것은 죽을 수 없어. 단지 진화만 할 수 있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