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농성촌방문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냥 몹시 추웠던 11월 26일 월요일, ‘함께 살자! 농성촌’과 바로 마주보고 있는 재능농성장을 찾았습니다. 지난 11월 16일은 풍찬 거리농성 1800일이 되던 날, 같이희망행진을 하고 다시금 투쟁의 의지를 모았었지요. 그날 농성촌에서 함께 담근 생강차를 선물했는데요, 오늘로 투쟁 1803일째 제일 추울 거라는 이 겨울, 연대의 기운으로 잘 이겨낼 거라 생각합니다. 무작정 찾아갔는데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준 유명자 재능노조지부장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Q. 농성을 왜 하고 있는지?
A. 이명박씨가 당선되고 이틀 뒤였던 2007년 12월 21일 시작했던 거네요. 그러고보니 올해 대선날짜가 5년 전과 같네요. 그해 5월 임단협 갱신체결을 했는데 임금 부분이 개악되었거든요. 6월에 명세서를 받아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많이 삭감이 되었어요. 개정을 요구하니 회사는 이미 체결된 것이니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더군요. 반년 정도 현장의 조합원들과 이 문제에 대해 같이 얘기를 하는데, 이미 체결된 단협이고 개악내용을 노조가 체결해줬다, 어떻게 싸우겠냐 이런 패배감이 있었어요. 우리의 요구에 회사는 묵묵부답, 무시를 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겠다 싶어서 혜화에 있는 재능본사 앞에 천막을 치게 된 거에요. 오랫동안 그 앞에서 농성했는데, 그쪽길이 너무 외지고 이동인구도 별로 없어서 시민들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회사가 고용한 용역깡패들의 폭력도 심하고 그래서 재능투쟁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싶어서 사옥이 있는 지금의 농성장으로 이동하게 되었어요. 표면적으로 단협원상회복과 해고자 전원복직을 요구하고 있는데, 단협원상회복을 풀어 얘기하면 기존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단협을 회복해서 갱신체결하자는 거예요. 개악했던 수수료제도를 지네들도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1년 만에 스스로 바꿨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독소조항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거지요.
Q. 농성을 하면서 가장 힘을 받을 때는?
A. 사실 너무 오랫동안 투쟁하고 있어서 딱히 어떤 일 때문에 힘 받는다 이런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투쟁사업장끼리는 그 싸움이 내 싸움이다 이런 인식이 자연스레 있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 예상하지 못한 단위들이 지지와 연대를 해줄 때 기운을 얻는 것 같아요. 대한문에 쌍차분향소가 오고 나서 연대단위들이 보내준 것을 나눠 먹고 나눠 쓰면서 아랫집 윗집처럼 지내고 있는데, 문득문득 새록새록 느껴지는 동지애같은 게 있어요. 그런 힘들이 조금씩 쌓여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주 금요일 1800일 투쟁 때 우리 투쟁이 너무 오래되었고 날도 추워서 집회도, 저녁문화제도 사람들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뒷풀이 때 나눌 음식 준비를 하면서 몇 인분 준비해야 하나 고민되더라고요. 근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줬어요. 그래서 ‘아, 내가 동지들을 믿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장기화되면서 우리 투쟁이 잊혀지는 것 같아 어떻게 쟁점화 시키면서 투쟁을 이어갈지 고민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연대단위가 보여주는 지지와 격려 때문에 힘들 때마다 넘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협박도 해요. “우리가 장기농성을 할 수 있는 데는 버틸 수 있게 힘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무리하는 것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요. ^^
Q. 상상 못했을 1800이란 숫자와 마주하면서 든 생각은?
A. 이제는 정말 끝장을 내야겠다. 어느 정도 숫자가 지나가면 무감해지는 것 같아요. 투쟁 1000일 앞두고 1000이란 숫자를 맞이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저 스스로도 참 궁금했거든요. 초반에 투쟁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기륭노동자들이 1000일 망루투쟁하는 것을 보면서, 60일, 70일, 90일 단식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버틸 수 있는지, 난 도저히 못 할거야 그랬는데 막상 기륭투쟁 기록 갱신까지 90일 정도 남았네요. 장기투쟁을 하면서 날짜에 둔감해지고 우리 스스로 관성화되는 것도 문제고, 비정규직 투쟁은 승리하기 어렵다는 우리 스스로 갖는 패배감도 문제인 것 같아요. 여기에 정리해고 투쟁까지, 노동문제가 참 많은데 오죽하면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로 의제가 축소되었겠어요. 이 두 가지 의제로 싸우고 있으면서도 세상이 엎어지지 않으면 못바꾼다 생각하고, 쉽게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날짜에 둔감해지고. 그런 것이 한쪽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좁게는 투쟁하는 주체, 넓게는 노동운동진영 모두 긴장해야 하는데, 모든 게 반MB전선으로 가면서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투쟁으로 넘어서야 한다는 게 사라진 것 같아요. 절대 날짜에 둔감해져서는 안돼요.
그리고 투쟁사업장이 100일이 되었든 5년째가 되었든 힘든 것은 똑같아요. 골든브릿지노동자들이 200일 되었다 해서 안 힘든 것 아니거든요. 5년 한데도 있는데, 7년 한데도 있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돼요. 또 투쟁하는 주체들도 5년 투쟁한 동지들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냐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럼 안돼요.
Q.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는데?
A.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싸움을 시작했고 힘들지만 어떻든 간에 첫 번째 고비인 1년을 넘기게 되고 지금까지 온데는 연대단위들의 힘도 있지만, 시기마다 도저히 끝낼 수 없도록 자본의 공격이 들어왔던 것도 있어요. 노조가 인정된 상태에서 임단협을 체결했고 그 내용을 개정하자는 것이었는데 회사가 싸움을 확대해서 걸어온 거잖아요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단협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조합원들을 해고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회사의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안 싸울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아무리 재능교육자본이 극악하다고 해서 힘들어 그만둬도 먹고 살려면 다른 회사를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에서 주면 주는 대로, 착취하면 착취하는 대로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싸워서 바꿔야 하는 거면 여기서 시작했으니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울산에 평택에 아산에 끝장투쟁을 위해 올라간 동지들을 보면서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 고민이 되요. 그렇게 고강도 투쟁을 하는 것은 우리 투쟁 끝나지 않았다, 같이 해야 한다 그런 외침이잖아요. 그런 게 슬퍼요. 단식투쟁했던 전위원장이 휴유증으로 돌아가시면서 우린 단식 절대 안한다 했는데, 단식도 했었네요. 오랫동안 투쟁하면서 재능자본도 많은 것을 잃었다고 봐요. 버티고 버텨왔던 힘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 잘 이어가서 꼭 이겨야죠.
Q. 농성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A. 앞서도 얘기한 것처럼 투쟁사업장들이 장기화되는데는 우리문제도 있고 노동운동진영의 문제도 있고, 또 상급단체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투쟁을 더 지속하는 것에 대해 대놓고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조합원들이 힘드니까 이 정도의 안으로 현장에 들어가서 새롭게 하자 그렇게 얘기하는데 말이 안돼죠. 투쟁에 패배하고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뭘 도모할 수 있겠어요. 단협 잃고, 노조 불인정된 상태이고, 노동조건 현격히 저하 돼서 원점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싸운건데,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해고되었던 사람들이 복직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보는지,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 운동 내부에서 그런 거라 더 홧병이 치솟는 것 같아요. 간혹 우리보고 강성이니 꼴통이니 답 없는 투쟁을 언제까지 끌어안냐 그런 얘길 하는 게 건너 들리기도 해요. 당연히 함께 연대하고 지지해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떨어져나가는 게 화나기도 하지만, 뭐 시켜서 투쟁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선택했고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우리의 의지니까 우리 뜻대로 간다 생각해요.
Q. 농성촌 팟캐스트에 농성의 달인이라는 꼭지에서 엉따(엉덩이 따뜻해지는)의자를 소개했는데, 나누고 싶은 기술이 있다면? 그리고 다른 의제로 싸우고 있는 주변 농성촌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지금 여기 있는게 그거(엉따의자)에요. 우린 궁둥이라고 불러요. ^^ 서로 덜 춥도록 있는 것 나누는 것은 동지로서 당연히 하는 거고요. 함께 싸워서 이겼으면 좋겠어요. 각각의 의제로 투쟁하는 곳들이 너무 많아 연대하는 동지들도 언제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될 것 같아요. 각각의 의제가 있고 의제들이 다르지만 결국 우리들이 향하려고 하는 점은 똑같잖아요. 자본가정권. 항상 모여서 싸울 수는 없으니까 각각의 사업을 갖고 싸우고 일주일에 한 번 희망행진에서 도심을 누비면서 빡세게 함께 투쟁하고, 같이 시작했으니까 서로 그날만큼은 적극적으로 함께 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투쟁이 되면 좋겠어요.
Q. 못 다한 말이 있다면?
A. 대선 앞두고 또 야권단일화 이런 얘기에 휩쓸리고 있는데, 물론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고 장담도 못하지만 기대도 안 해요. 진보정당들이 사회를 바꾸고 체제를 변혁하는 것을 우선해야 하는데, 국회의원 만들어주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선 시기에 정리해고 비정규직 의제가 묻히지 않도록, 거리에서 몇 년 동안 장기투쟁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세상을 바꾸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건데 아무것도 안하니까 더 이상 기대지 말고 싸우면서 우리가 해보자 하는 거예요. 현장에서 투쟁했고 투쟁이 끝나고도 항상 연대해왔던 여성비정규노동자가 노동자대통령후보로 나서고 투쟁하는 노동자, 현장노동자들이 함께 하자는 거예요.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등록자금이 십시일반 모여 어제 후보등록을 했지요. 한 달 못 미치는 기간 동안 투쟁으로 완주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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