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날에나 비가 한줄금 했던가. 유월 중순부터 입초시에 오르내리던 장마는 꾀꾀로 장대비나
두들겨 놓고 갈 뿐, 금평저수지 황토 바닥이 피죽만 남은 채 쩍쩍 갈라지고 수초만 우무룩하도록
바람 한 점 없이 해만 말끔했다. 후터분하게 달궈대는 날 핑계대고 게으른 사람 낮잠자기 딱 좋은
날들이었다. 그예 이른 장마 들었던 예년만 한 줄 알고 낚시왔던 꾼들은 밤낚시나 바라고 죄다 한
숨씩 시들어 있었다. 볕 따가운 한낮엔 씨알 굵은 것들은 물 바닥으로 처박히고 피라미들이나 깝
죽거리는 통에 훗잠이나 미리 벌충해 둘 요량들이었다.그런데 우리 집 더퍼리 아들놈은 물가 뉘
집 시시덕이하고 입다심을 하느라고 여태 함흥차사단 말인가. 낚시꾼들 밥 채반만 들려 내보내
면 그러고 한눈팔고 앉았기 일쑤였다.
놈도 놈이지만 며느리년도 낯짝을 숨겨버렸다. 아무래도 이것들이 또 한바탕 싸움질을 한 모양
이다. 어젯밤 제 색시가 남자손들한테 한 잔씩 쳐준 것이 탈이 난 눈치였다.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붙었다 하면 놈이나 년이나 둘 다 생긴 것만으로 성깔이 곧이 곧이었다. 놈의 욱하는 성질도
고질이었지만 앙잘앙잘하는 년의 소가지도 볼만했다. 그러다 삐끗하면 밤도망을 놓고 도망간 년
못 잊어서 찾으러 다니는 꼴 들도 가관이었다. 이웃에 우세산다고 그렇게 주워 일러도 당최 쇠귀
에 경 읽기였다.
하루는 하도 징글징글해서 둘 다 내처버릴 작정을 하고 불러 앉혔는데, 작 것들 하고 앉았는 꼬락
서니를 보고 있자니 도시 짠한 마음만 앞서는 것이었다. 넓디나 넓고 훤하디 훤한 방에, 하필이면
등 그늘지고 각지고 구석진 곳을 골라 곱송그리고 앉았는가 말이다. 두 것들 다 제 태 묻은 자리
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들이었던 것이다. 아들놈은 강보에 싸여 버려진 업둥이였고 며느리년은
아들놈이 펄렁거리고 돌아다니다 눈맞아 데려온 년이었는데, 고아원에서 살았던가 보았다. 나
또한 전쟁통에 조실부모하고 일치감치 남편까지 앞세운 몸이었다. 해서 그날도 셋이 그러고 우
두커니 앉았다 말아버렸다.
이러나저러나 놈이 들어와야 쌀 말이나 싣고 절에 올라갈 게 아닌가. 아침부터 오늘이 백중날이
라고 노래를 했거늘 사내나 계집이나 저러고 딴 세상이었다. 스물 셋 먹고 다섯 먹은 아들 며느리
건사하기가 말귀 어둔 귀신 부리기보다 더 어렵다.
다행히 한낮 손님은 끊겼다. 삼복 더위 중에는 으레 그랬다. 매상이 뚝 떨어지는 철이었다. 그나
마를 낚시꾼들이 간간이 메워주는 셈인데 오늘은 숙박하는 꾼들이 두 팀이나 걸려 있었다. 장 경
위 패거리 전화질까지 치면 세 팀이나 되었다. 셋이 손만 맞아 돌아가면 더할 나위 없이 오달진
날이었다. 그런 만큼 부지런히 서둘러야 저녁밥 때 맞춰 불공을 드리고 올 터였다.
아이고! 우리 집 며느리 나왔다. 어느 결에 분도 새로 바르고 머리 손질도 하고 옷매무새도 다듬
고 나왔다. 어정뱅이 아들놈보다 두 살 더 먹은 며느리년이 그래도 나았다. 그러나 속은 아직도
덜 풀렸는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넋 놓고 앉아만 있다. 그러는 년이 어째 또 불안스럽다. 서
방한테는 퉁퉁거려도 시어매한테는 허분허분하던 년이었다.
“배는 안 고프다냐?”
대꾸가 없다. 멀거니 바라다보고 만다. 커피나 한 잔 타다 올릴 밖에는 달리 어째 볼 도리가 없다.
“그런게 니 서방놈이 마다허는 일은 허들 말어. 지 색시하고 넘의 남자허고 히히호호허는 꼴을
어떤 사내가 볼라고 허겄냐.”
커피로 가져가던 년의 눈이 샐쭉해진다.
"내가 뭐 달리 그러나. 장사잖아요."
년이 그리 말하니까 할 말이 없다. 년이 오고서부터 손님들 어지간한 비위쯤은 년의 손에서 오물
딱조물딱 다 맞춰지고 있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망구 웃음하고 낭창낭창한 년의 웃음하고는 견
줄 수가 없었다. 어린 깐에는 장사 물리가 빨리 트인 셈이었으나 어찌보면 애처롭기도 했다.
"아이고. 아직까정 장사는 이 시어매가 허네. 헌게 자네는 서방 비위나 잘 맞치셔이?"
웃음엣소리를 건네서야 년이 히물쩍 웃었다.
"저녁때막시 그 패거리놈들이 또 올 모냥여."
"고것들은 밤마다 화투치고 놀면서 집에는 언제 들어간대요?"
어젯밤에도 제 서방이 그것들하고 밤새 어울려 놀았던지라 탐탁치가 않는가 보다. 그도 그럴 것
이 밤새 그것들 수발 든다고 잠 한숨 못 자고 돈까지 잃고 들어오니 부아가 치밀 만도 했다. 노름
돈도 도장 박힌 돈인데 돈 잃어 좋다 할 년 있겠는가.
"오늘도 쏘가리로 먹겠대요? 빠가사리나 뭉텅 섞어 줄까보다."
"아서라. 고것들이 해꼬지 부리먼 장사 다 헌다."
"순전히 외상 달고 처먹을라면서. 나랏일 한다는 작자들이 순 공것만 좋아하고."
소주며 맥주가 서비스로 나가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으나 관줄 안 끼고 살아지는 세상이 아니었
다.
하이고! 우리 집 더퍼리 양반 돌아왔다. 정오 무렵에 점심 내가서 두 시 지나서 들어왔다. 장하게
술도 한 잔 하고 그 경황 중에도 빈 밥고리는 빠짐없이 챙겨 왔다. 얼근히 한 잔 걸친 김에 제 색
시한테 밥 먹었냐는 소리도 묻고 제 기분은 헐렁헐렁한 모양인데 나는 기가 찰 노릇이다. 놈 오토
바이 덕 좀 보고자 일껏 기다렸더니 모주망태가 되어 와서는 덜렁 평상 위에 드러눕고 만다. 공양
드리러 가는 길에 쌀 말이나 시주하려던 생각이 여지없이 틀어져버렸다. 괘씸했다. 요런 날이나
오토바이 사 준 재미를 한 번 봐야 할 게 아닌가. 도망간 색시년이나 발밭게 찾아다니라고 사준
줄 알면 천만의 말씀이다. 물가 손님들 밥수발도 들고 장도 보고 오늘 같은 날도 두루두루 써먹자
고 사 준 것이었다. 언제부터 내놓고 기다렸던 쌀자루를 놈 옆에다 탁 부려버렸다. 감실감실 잠이
들려다 말고 놈이 눈을 깜빡깜빡했다. 그제서야 에미 말이 아이쿠, 하고 떠올랐나보다. 한데 절간
에 올라가는 에미를 두고 한다는 소리가 넌떡 어깃장이다.
"아따 엄니. 천당가겄소. 뭔 놈의 쌀을 중 아가리다 다 처넣는다요?"
오살 놈. 저나 나나 물고기 밥 얻어 먹고 사는 주제에 백중날 쌀 말이나 아껴 잘코사니나 천당가
겠다.
"얀 눔아 빌어야 안 쓰겄냐? 오늘 같은 날 안 빌먼 은제 빌라냐?"
"그쇼. 메기 불 한나 쓰고 빌고, 쏘가리 불 한나 쓰고 빌고, 빠가 불 한나 쓰고 빌고, 가갖고 시 번
만 빌고 오쇼. 나는 잠서나 빌랑께."
하고 놈은 아예 자리잡고 누워버렸다. 평상에서도 자고 가겟방에서도 자고, 장정 일곱이 자빠져
누워 있었다. 택시로 왕복 할 동안만 안팎으로 저러고 있어 주면 저녁밥 때 시간은 충분했다.
년을 앞장세웠다. 쌀 말값이나 맞춰 시주봉투도 챙겼다. 장보는 것 빼고는 년과 첫 외출이었다.
년도 시어매 따라 절 구경 가는 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시키지 않았어도 긴 머리채도 틀어 올리
고 양산도 챙겨들고 조막조막 따라나선다. 이쁘다.
저녁때가 늦어버렸다. 년하고 스님방에 앉아 떡도 먹고 덕담도 듣다보니 시간이 금세 가버렸다.
장정 일곱이 죄다 깨어 평상에 차곡이 앉아 있었다. 11시 무렵에 이른 점심들을 먹고 누웠으니
딱 시장할 때였다. 더파리놈이 요령껏 마실 것 한잔씩은 돌려놓은 눈치였으나 입가심은 됐을 망
정 속은 허할 것이었다.
황망히 벗어 부치고 서두르기 시작했다. 들깨국물을 받쳐 삶은 시래기를 쩍쩍 찢어 넣고 탕을 안
치는 년의 손길이 쟀다. 일손도 쟀지만 탕맛도 얼추 맞춰낼 줄 알았다. 작년 겨울에 와서 올 봄에
몇 차례 도망질을 놓았다가 여름을 나고 있으니 몇 달 되지도 않은 솜씨였다. 그렇다고 붙들어 앉
혀 맛맛이 가르친 기억도 없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흉내내다 익힌 솜씨였다. 작년 겨울에야 저것
이 사람되랴 싶었다. 발탄강아지 같은 아들놈 못잖아 뵀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손속이 여
물었다. 얼굴도 모른다는 년의 어매가 음식 재간은 있었으리라 싶다. 간신히 고등학교나 마친 덜
렁쇠 같은 놈한테는 과한 년인지도 몰랐다.
그새를 못 참고 꾼들이 물가로 내려가버렸다. 해가 지기는커녕 볕도 스러지기 전이었다. 자리잡
을 욕심에 진즉부터 보채고 몸달아 하더니 몰려들 나가버렸다. 때 아니게 저녁밥부터 물가로 날
라야 했다. 내동 멀쩡하더니 급작스레 년이 배를 틀어쥐고 아프다는 통에 오토바이 뒤에 내가 올
라탔다. 중 짜로만 세 개가 되는 투가리에다 밥반찬에 물통, 밥통에 그릇들까지 잔뜩 싣고서다.
망구가 어설프게 매달려 가는 꼴이 볼만한지 예서제서들 웃어댔다.
밥보자기를 풀어 놓고 줄풀 마름따위 수초나부랑이들 새에 자리잡고 앉은 꾼들을 불러 모았다.
나무 그늘 밑이라고는 하나 뙤약볕에 하도 달궈놔서 풀밭이 따땃했다. 저녁으로 기울어진 시간
임에도 여전히 날도 밝고 물빛도 밝았다. 아직은 굵은 씨알이 걸릴 계제가 아니었다. 바람은 없어
도 탕도 식고 밥도 식는다. 후딱후딱 달라붙어 한술씩 떴으면 싶은데 물속만 들여다보고 있다. 뗏
장수초를 낫으로 쳐내고 앉은 사내는 낚싯대를 네 대나 펼쳐놓고 넋을 빼고 있었다. 불같이 밥을
재촉하던 때하고는 딴판으로 굴었다. 아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년을 보고 나온 참이라 마음
이 불안했다. 장 경위 패거리들도 하마 퇴근하고 들이닥칠 시간이었다. 별 수 없이 낚시터에선 금
기인 소리를 내질렀다.
"밥들 자셔."
그제서야 둘러들 앉아 밥숟갈을 뜨는데 정신은 옴팡 물가에다 빼놓고 온 것 같다. 낚싯대
끝이 어슷거리기만 해도 득달같이 달려가곤 했다. 사람 발소리에 놀라 자글거리던 개구리 소리
가 뚝뚝 끊어졌다. 개구리도 못 할 노릇이었다. 물빛이 점차로 가무스름해지고 있었다.
밥숟갈 놓기를 기다려 빈 그릇을 챙겨가려던 생각일랑 애당초에 말았어야 했다. 소주잔들이 나
눠지고 있었다. "사짜짜릴 위하여" 하는 것이 탕국물에 몇 잔씩들 걸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덤벼들
태세였다. 그 틈박이에 놈조차 곁다리로 끼어 냉큼 한잔 받고 따르고 했다. 퍽이나 속도 편한 놈
이었다. 제 색시가 지금쯤 어쩌고 있는가 궁금해서라도 부다다당 달려 갔을 법도 하건만. 마침맞
게 년한테서 놈에게로 핸드폰이 걸려왔다.
"엄니, 돈은 이따 받고 얼른 올라갑시다. 기다린단만요."
패거리놈들이 도착했는가 보았다. 반가울 것 하나 없는 놈들이지만 반기는 시늉이라도 내야 할
것들이었다.
해 넘어갔다. 여름 볕 길어도 넘어갈 땐 순간이다.
탕을 물린 놈들은 화투 패를 잡고 앉았다. 반죽 좋은 파출소 장 경위가 오늘도 선을 잡고 소방서
박 방위, 구청 노 과장, 법원 최 계장 순으로 둘러들 앉았다. 한데, 잘도 방위고 참말, 잘도 경위고
과장이다. 놈들 허풍에 깜빡 둘린 걸 생각하면 지금도 넌더리가 쳐진다. 작것들이 직급을 서로 두
어 계단 추켜세워 불러준 것을 모르고 지난 겨울 소방서에 덜컥 전화를 걸었다가 어찌나 학질을
떼었던지.
올 일 월이었다. 느닷없이 소방서와 구청 합동으로 소방 위생 안전 점검 단속이 나왔다. 무슨 재
주로 느닷없는 단속을 피해 가겠는가. 당연히 뚝딱 걸렸다. 그리고 한달 영업정지를 당했다. 하필
이면 한참 매상이 오를 일이 월 성수기에 그랬다.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었다. 억울하기도 했다.
즐비하게 늘어선 집들이 다 그런 불벼락을 맞은 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옆엣집도 내나 멀쩡했
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집들이나 우리 집이나 하등의 별다를 것도 없었다. 애옥살이 단층 한옥
에, 탕국물로 넘쳐나는 주방에, 무방비로 노출된 가스통에, 소방이고 위생이고 다들 고만고만했
다. 암만 생각해 봐도 단속 정보가 사전에 없고서야 그렇게 무사할 리가 없었다. 방위 경위는 아
니더라도 소방서 구청에 줄 대고 있는 집이 어디 우리뿐이었겠는가. 하나 이틀 전에도 박 방위가
다녀갔지만 귀띔은커녕 내색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느닷없는 단속일지라도 명색이 소방
파출소 대장이 사전에 몰랐을까 싶자 되게 서운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당한 것은 이미 당한
것이고 영업정지나 어떻게 서둘러 풀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러자니 손닿는 데가 밉든 곱든 박 방위
밖에 없었다. 해서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박 방위님을 찾았다. 한데 한참 아랫놈으로 여
겨지는 놈이 건방지게 누구요? 누구요? 소리만 되묻는 것이었다. 암만 박 방위님요, 박 방위님,
해도 귀머거리 마냥 소용도 없고, 갑갑하기는 놈이나 나나 매한가지라, 받아쓰기 시키듯 박, 방,
위, 님요, 하고 한 자 한 자 명토박아 불러줬더니 그제서야 알아듣는데, 그런 사람은 없고 김 방위
님만 계신다는 것이었다. 관내 소방서에 성이 박씨인 사람은 불꽃 세 개짜리 박 소방교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불꽃 세 개짜리 박 소방교가 시방 바지가랑이를 장딴지까지 걷어 부치고 노름에 정신이 팔린
박 방위님이시다. 알고 보니 장 경위도 노 과장도 맹탕 헛것이었다. 다들 도시 한복판에 있다 징
계를 받고 밀려난 것들에 불과했다. 그런들 어쩌랴. 그래도 관할 지역 까치새끼들이라고 가끔씩
은 제 몫을 하는데.
그나저나 오늘도 날밤을 세울 태센가. 놈들한테 방을 내주고 평상에 앉아 있자니 불쑥 울화가 치
민다. 생전 가야 저희들 먹은 밥값 외에는 더 붙여주는 것도 없고 귀찮게나 하는 것들이었다. 때
때로 옥수수도 삶아 내고 부침개도 부쳐 내고 수시로 탕국물도 데워 내건만, 시켜먹고 부려먹는
데에 이골이 난 것들이라선지 다랍게 인색했다. 그렇다고 삐쭉빼쭉 할 수도 없고, 좋은 낯색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차릴 만한데도 그랬다. 그러다 한번은 년한테 용코로 당한 적이 있었다. 년
은 놈들에게 선생님이나 사장님이라고도 안 했다.
"아저씨들 밤새 그러고 근무는 언제 하세요?"
처음엔 놈들도 나이 어린 처녀가 순박해서 묻는 줄 알고 순순히 나왔다.
"근무? 다 하지. 다 하는 수가 있다고. 껄껄."
놈들이 한 통속으로 껄껄거렸다.
"옴마. 안 졸리세요?"
"졸립지. 아가씬 잠 안 자면 안 졸리남?"
"어휴. 전 날새고 나면 자야지 암 것도 못해요."
"나도 그래. 나도 그런다구."
"그러면 졸면서 근무하겠네요?"
"아니. 자면서 근무하지. 껄껄."
년이 그러고도 월급 나와요? 월급 받아요? 했을 때야 놈들 중에 하나가 년을 째려봤다.
"아가씨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그 쯤해서 년을 밖으로 불러내려는 찰나, 다시금 년이 뜬구름 잡는 말로,
"치, 내가 모를 줄 알고?"
해서 놈들 정나미를 뚝 떼놓았다.
년은 지금 게보린 두 알을 먹고 잠들었다. 생리통이 년처럼 심한 년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아
랫배만 뭉근하다 마는 게 태반인데 년은 허리까지 끊어진다고 난리였다. 우리가 없는 새 울었던
가보았다. 울다 말고 놈들이 들이닥치자 군입거리도 내다주고 화투짝도 갖다주고 탕도 안치고
했던가보았다. 챙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 범벅 땀 범벅이 되어 훌쩍거리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허리· 배 아픈 생리통에는 닭 한 마리에다 흰 접시꽃나무 서너 뿌리 넣고 푹 고아 먹는 게 제일이
었다. 접시꽃나무야 경식이 할매네 울안에 가면 쉽게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쇠뿔도 단 김에 뺀다
고 할망구한테 전화를 넣고 그 망구 좋아하는 누룽지사탕도 챙기고 닭도 한 마리 더 꺼내놓았다.
그리고 가게를 맡기려고 보니 놈이 안 보였다. 제 색시 옆에도 없었다. 어느새 물가로 뽀르르 내
려가 꾼들 옆에 들러붙어 주둥이 놀리고 노는 모양이었다. 썪을 놈. 옘병헐 놈. 무정헌 놈. 할 수
없이 놈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나섰다. 보름으로 차 올라가는 달이 둥실했다.
"다 저녁에 뉘 멕일라고?"
뿌리가 얼마나 깊고 굵은지 두 망구 기운을 다 뽑아 놓는다. 나는 나지만 댓 살이나 더 먹은 망구
한테 미안했다.
"메누리."
"그 집 메누리 봤당가? 은제?"
결혼식도 안 시키고 데리고 산다고 흉보는 소리였다. 머쓱했다.
"웬간허먼 식 올려쥐뻔져. 넘보기 좋게."
간신히 뿌리가 빠졌다. 또 하나를 캐낼 엄두가 안 났다. 망구가 내처 옆 뿌리를 움켜잡았다.
"글 안혀도 글라고 혀. 가을이나."
"오랜만이 국시 먹겄네. 헐헐헐."
세 뿌리나 뽑았다. 망구 덕 봤다.
흙을 털고 뽀득뽀득 문대 씻어 안쳤다. 놈들은 누가 오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었다. 화투에 미치면
참말 뵈는 게 없는가 보았다.
우리 집 영감태기도 그랬다. 노름에 미쳐 떠돌다 필연코는 길거리 죽음을 당했다. 살았으면 칠순
을 쇤다 할 나이였다. 아이는 누가 어째 못 가졌는지 모르겠다. 생길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밭이 성글었는지도 모르겠다. 영감태기 죽고 나서 딴 사내 하나를 보았었다. 관상도 보고
묏자리도 살피던 풍수쟁이였다. 그도 본처를 두고도 밖으로 떠돌았다. 여덟 달이나 함께 살았지
만 그와의 사이에서도 아이는 점지되지 않았다. 그도 어느 날 훌쩍 떠나고 나니 그만이었다. 재물
은 모아도 마음 붙일 데가 없어 허덕일 때 놈이 업둥이로 들어왔다. 아무도 모르게 호적에 유복자
로 올리고 놈을 데리고 지금의 저수지 마을로 옮겨 앉은 게 이날 이태였다.
놈의 태부모는 소리장이거나 장구잡이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틀림없이 약장수였을 것이다. 공부
는 죽어라고 마다는 놈이 창가 부르고 장구 치고 까불까불 춤추고 노는 데에는 일등이었다. 인물
훤하고 말담 좋고 풍장을 놀아도 제일 흥지고 우뚝우뚝한지라 근동의 머슴애들을 휩쓸고 다녔
다. 그런데 그 것이 탈이었다. 깎은 선비 같은 놈들이 따랐겠는가. 순 쌈패, 껄렁패, 어중이떠중이
들로만 몰려 다니다 보니 패쌈도 하고 훔쳐다가도 먹고 쓰고 했던 모양이었다. 파출소하고 숫제
이웃하고 살다시피했다. 남들 절로 얻어지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어매가 비손해서 얻어다 논 것
이었다.
사방팔방이 다 어두컴컴한데 개 짖는 소리가 났다. 뭣이 급히 달려오는 것 같다. 겁이 덜컥 났다.
밤중에 사람 허둥거리는 모습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뉘기여?"
평상에서 오뚝 일어섰다.
"낚시 온 사람이에요."
"야아."
달려오느라고 얼굴은 벌건데 눈빛이 질려있다. 뭔가 무척 놀라고 당황한 눈빛이었다. 사람이라
도 빠진 걸까. 술 먹고 낚시를 하다 그런 낭패를 당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혹시 방에서 지갑 못 봤어요?"
"방에서라? 못 봤는디."
"집안에도 없구요?"
"야. 못 봤으라."
사내 표정이 우두망찰해졌다.
"물에다 빠친 것 아니다요? 수초를 치고 앉었든 분 같은디."
"다 찾아봤어요."
낚시는 하나도 못하고 여태껏 지갑만 찾고 다녔단다. 아들놈 같으면 간수 못해 저런다고 들입다
소리라도 내지를텐데 생판 남한테 그럴 수는 없고 난감했다.
"그 안에 뭣이 들었다요?
"돈하고 카드요. 밥값이며 경비며 일체 제가 다 갖고 있었거든요."
"클났소이."
"돈도 돈이지만 카드가 문제예요. 한번에 천구백 만원까지 쓸 수 있거든요."
"아이고, 클났소."
사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가 낮잠을 잤던 방은 지금 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방안에
다 기척을 넣었다.
"지갑을 잃어뻔졌다 안 허요?"
놈들이 건성으로, 들어와 찾아 보쇼, 하고는 판돈들을 담요 밑으로 집어넣었다. 방 안에도 없었
다. 사내가 코를 빠뜨리고 나왔다.
"없지라? 어쩐다요? 클났네."
"저, 할머니, 아드님하고 며느님한테 좀 물어 봐 주시겠어요?"
"시방 메누리 아퍼서 자는디. 우리 아들은 같이 안 있었소?"
"안 왔었는데요."
"그리라? 그럼 으디 갔으까?"
사내를 데리고 아파 누워있는 년한테로 갔다. 년도 못 봤다는 소리에 사내가 놈이 간 데를 대고
물었다. 년이 마지못한 듯 떠름하게 대답했다.
"아까 읍내 나갔어요."
요번엔 뭐 하러 갔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째 비위가 상하려고 한다. 년도 기분이 상한 눈치
다. 말투가 심드렁했다.
"몰라요. 하여간 금방 온댔어요."
언제 나갔냐, 뭐 타고 나갔냐, 한 시간이 넘었는데 왜 아직 안 오냐, 읍내에 국민은행이 있느냐,
듣자듣자 하니 사내 놈 하는 짓이 맞갖잖았다.
"예, 보쇼. 뭣 허는 짓이다요? 긍께 시방 우리 아들이 의심시럽다 고거 고만이요이?"
저 하는 짓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제가 언제 그래요?"
사내 놈 성내는 소리가 더 뭐했다. 심사가 왈칵 틀어진다.
"글먼, 뭣 땜시 고러고 묻소?"
하고 고깝게 묻는데 사내가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다. 순간 감정이 욱해졌다.
"발 달린 짐승새끼가 어딜 간들, 및 시에 들온들, 뭔 일로 간들, 당신이 뭔 상관여? 나가쇼. 나가.
나가랑께로."
기어코 사내 등짝을 떠밀어 몰아냈다. 칠칠치 못한 인사 같으니라고. 괜스레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받쳤다. 년도 못마땅해서 별일이야, 하고 쫑알거렸다. 그런데 년이 정말 모르는지 내숭을 떠
는지 분간이 안 갔다.
"뭣 허러 갔다냐?"
"그냥요."
어째 년이 몸을 사리는 눈치다. 갑작스레 벌떡증이 일었다.
"그냥 뭣이야?"
그래도 년이 그냥요, 그냥요, 하며 염장을 질렀다. 년 때문에 가슴이 더 쿵쾅거렸다. 년이고 놈이
고 징글징글했다. 소리칠 기운도 없이 맥이 빠져버렸다.
"후딱 핸드폰 안 치고 뭐 허냐?"
겨우 소리라고 목을 가르고 나오는 것이 빈 우물에 떨어지는 두레박 소리 같았다.
목이 탔다. 쫓겨난 사내놈은 장 경위 패거리들한테 가 있었다. 사내가 무엇이라 제 말을 세우는지
그 좋아하는 화투도 마다하고 놈들이 멍해서들 듣고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판이 깨졌다 싶은지
그 틈에서도 판돈들을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사내고 놈들이고 해코지 말만 해봐라 하고 잔뜩 벼
르고 있는데 불똥이 엉뚱하게도 놈들한테 옮겨 붙었다. 같은 방을 사용했다는 덤터기를 씌우는 모
양이었다. 어이가 없는지 놈들이 나를 바라보고 허허 웃었다.
"할매, 이 작자 이거 뭐 하자는 짓이야?"
"근게 말이요. 맥없는 사람을 의심하고 근당게요 시방."
사내가 세 불리를 느꼈는지 제 일행들에게 핸드폰을 넣었다. 그리고 제 짐작 가는 대로 지껄여댔
다. 말이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 했다. 장 경위 패들도 저희들끼리 말이 분주히 왔다 갔다 했다.
판도 깨지고 술맛도 달아난 판이라 일어서고 싶은 눈치들이 역력했다. 놈들 새에서도 장 경위가
특히 더 짜증스러워했다. 사내 뒤통수를 쏘아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건네오는 말투도 곱지 않
았다.
"할매 아들은 어디 간 거요?"
난감했다.
"읍내에 나갔다고는 허는디......"
일부러 말끝을 흐려버렸다. 장 경위가 눈치껏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데 되려 꿍
해지는 눈치였다. 혹시 년이라도 나와 있나 싶어 둘러봤으나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만 떡심이 딱
풀려버렸다. 별수없이 말이 둘러처졌다.
"아까막시 메누리가 겁나게 아펐단 말이요. 암치케도 약사러 간 모냥인디 여태 안 오요 안."
그래도 장 경위의 구겨진 인상이 펴지질 않았다. 뭔 놈의 날이 요리 바람 한 점 없을거나. 날도 날
도 징상스럽고만.
마침내 놈들이 일어섰다.
"할매, 갈라네. 얼마 나왔소?"
"밥값만 주고 가쇼. 미안들 허구만이라."
박 방위가 못내 미련이 남는지 께죽께죽했다.
"아직 초저녁인데 뭐 이래? 우리 마누라 놀래 자빠지는 거 아냐."
"자빠진 김에 눌러 주면 되겠구만 뭘 그래. 오랜만에 안부도 여쭙고."
"정 서운하면 비너스로 이차 가자구."
한데 사내가 놈들을 막고 나섰다. 제 일행들이 아마 파출소에 신고를 했을 것이란다. 그러니 잠시
만 기다려 달란다. 어처구니가 없는지 놈들이 대번에 막말을 뱉어냈다.
"이 작자 정신 나간 작자 아냐."
"지랄한다고 지갑을 물가에 갖고 나와? 갖고 나왔으면 간수를 똑바로 하든지."
태가 본데없어 그렇지 말이야 공자님 말씀이었다.
"이 작자들 뭣 모르고 혹시 112에 신고 넣는 거 아냐?"
장 경위가 조심스레 우려를 나타내자 그에 최가가 대뜸 나서, 경찰은 여기도 있수 하고 장 경위를
손가락질해 가리켰다. 아닌 듯이 지나치려던 장 경위가 못마땅한지,
"가만히 좀 계시구랴, 그래."
하고 버럭 역정을 냈다. 비번 날 귀찮은 소동에 휘말리게 생겼으니 성가실 만도 했다. 그러더니 제
성질껏 사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당신 뭐야, 찾어는 본 거요?"
"예."
"저수지도 다?"
"예."
"물 속도 들여다보고?"
"예."
"밤중인데 뭐가 봬?"
순간, 사내가 허를 찔린 듯 당혹스러워했다.
"낚시 랜턴으로 봤는데요."
"낚시 랜턴이라? 낚시, 랜턴."
장 경위가 피식 웃었다.
"요만큼 비추는 그 낚시랜턴?"
요만큼 이래야 인심사납게 고작 한 자도 못 되게 팔을 벌려놓고는,
"보름달이라 그만하면 다 뵐라나?"
하고 장 경위가 가살을 부리자 사내가 기분이 확 상했던지,
"그런데 왜 반말은 쓰고 그래요?"
아, 시팔, 재수가 없으려니까, 어쩌고 하는 것을 장 경위가 못 들은 척했다.
"당신 말이야, 우리가 손댔을 것 같어?"
"......"
"그럼 이 집 아들이 그랬을 것 같어?"
사내가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대답 똑바로 해야 돼. 맥없는 사람 의심하면 당신, 무고죄에 명예훼손이야."
"당신 여기 사람 아니지?"
"예."
"이 집 아들 그런 사람 아녀."
아이고! 관셈보살! 아이고! 관셈보살! 몇 번이고 장 경위에게 합장을 했다.
"아니던데요. 손짓이 좋지 않았다던데요."
사내가 물가에서 얻어들은 소리를 뭣이라 뭣이라 했다.
"옛날여. 옛날. 군대 가기 전에 학생 때."
장 경위가 명토박듯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어째 사건으로 접수할까?"
명색이 경찰이라는 사람이 대차게 나가니까 사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난처한지 눈만 끔뻑
끔뻑했다.
사내 일행들이 들이닥쳤다. 건성 인사를 던지는 자도 있고 아들놈부터 찾는 자도 있고 가지가지였
다. 사내가 제 일행들에게 장 경위를 소개시켰다. 장 경위를 소개받고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잘
됐다고 반가이 악수를 나누었다. 장 경위 패거리들까지 덩달아 나눴다. 명함을 주고받고 한참을
서로들 씨월거리더니 장 경위가 수첩을 꺼내들고 평상에 앉았다.
"그러니까 분명히 잠들기 전까지는 있었다? 잘 때 없어진 것 같다? 일어나 보니 이 집 아들 혼자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할매 아들 연락되면 빨리 오라고 해요."
하필이면 오늘사 말고 읍내는 나갈 게 뭣이란 말인가. 잠을 깨고도 년은 내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년 쪽을 향해 좀 나와 보라고 부산나게 소리를 쳤다.
년이 나왔다. 내키지 않는 듯 어정어정 걸어 나왔다. 걸음새가 마치 사내 아이 똥 싼 기저귀를 찬
것 같다. 마땅찮아 절로 눈이 흘겨졌다.
"왜들 그러는데요? 좀 있으면 올 거예요."
제 서방 일일진대 어찌 저리 시큰둥한가 싶어 꼴도 보기 싫었다. 말도 뚝뚝하게 나갔다.
"커피나 사람 수대로 내와라. 쪼까."
년이 또 어정어정 걸어갔다. 웃음거리가 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년을 얼른 좇아 들어가 다
그쳤다.
"걸음이 어째 그려?"
"많이 이상해요?"
년이 울상을 지었다.
"그게 없어서 그래요. 어머니."
맙소사. 생리대가 떨어져서 크리닉 티슈를 여러 겹 팬티 속에 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잇장
이라 생리대마냥 팬티 속에 찰싹 달라 붙는 게 아니라, 왔다리갔다리 하는 통에 허벅지를 붙이고
걷다보니 걸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고 작 것아. 얼척이 없었다. 냉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어
릴 적 제 서방 기저귀를 꺼내 길쭉하게 접어 줬다. 년이 못 볼 것이라도 본 듯이 질겁을 했다.
"깨끔하게 삶아 논 것여. 그깟 먼지 나는 종잇장에 비헐까."
년 대신 커피를 타들고 나와 죄 돌렸다. 사내도 고개를 까딱하고 한잔 집어갔다. 고맙다는 시늉이
라도 내는 걸 봐하니 생판 앞 뒤 모르는 인숭무레기는 아닌 듯 싶었다.
갑갑한 놈이 송사한다고 년을 시켜 방 안팍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나는 변소간이며 오가는 길목
을 손전등을 비추며 낱낱이 더듬었다. 없었다. 저수지 길도 더듬어 내려가 보고 싶었다. 장 경위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패거리놈들 몇이 꺼들꺼들 따라 붙었다.
"현금만 오십 만원인가 들었다며?"
"그러게 카드야 비밀번호 모르면 아무 소용없잖아. 분실 신고 넣어버리면 그만이고."
도와 줄 양이면 조용히나 따라 올 것이지 사내놈들이 무슨 입방정을 그리도 떨어대는지 자발맞기
그지없었다. 원조 매운탕집 망구가 내다보고 섰다가 제 집 손님들한테 뭐라고 쑥덕거렸다. 보나마
나 입초시질일 것이었다.
하늘도 땅도 온통 시꺼먼 길을 더듬어 내려갔다. 길은 길대로 풀숲은 풀숲대로 눕고 섰다, 손전등
이 스칠 때마다 소스라쳤다. 발부리에 걸리는 것을 죄다 만져보고 눌러보고 밟아보느라고 걸음이
더뎠다. 저수지에 다다르기까지 허방이었다. 이제 믿는 구석이라고는 사내가 뗏장수초를 치고 앉
았던 자리밖에 없었다. 낚시는 뒷전으로 두고 물가에 두엇두엇 모여 앉아 있던 나머지 일행들이
얼굴을 알아보고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없어요. 불 끄세요."
그 중 하나가 신경질을 부렸다. 저희들만 낚시를 온 게 아닌 탓에 주변에 미안하기도 했을 터였다.
"저 짝이나 한번 가볼란만요."
불빛을 낮추고 사내가 수초를 치고 앉았던 자리로 갔다. 잘라진 수초더미를 들춰보고 헤집어 봤
다. 점차로 가슴이 내려앉고 있었다. 사악, 손을 베었다. 비를 보지 못한 수초잎은 억세고 날카로
웠다. 손전등을 비추던 손으로 손가락을 감싸쥐고 물속도 들여다보았다. 빛살이 흩어져 어른어른
해서 오래 들여다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손전등을 끄고 사내들 옆으로 돌아왔다. 사내들은 지쳐
버린 듯했다. 어찌해야 좋을지 팍팍했다.
허탕을 치고 돌아가자니 발걸음이 자연 터덕거렸다. 삽시에 맥이 풀려버린 탓일까. 줄달음치듯 걷
는다고 걷는 것이 그랬다. 손전등마저 놈들 편에 들려 보내버리고 불빛 한 점 없이 컴컴하게 걷는
길이었다. 자식을 겉 낳지 속 낳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정말 그런 건가. 하물며 겉조차 낳지 못했
을진대. 북새통에 휘말려 있을 때는 몰랐던 불안감이었다. 덴가슴에 덧이라도 나는 걸까. 가뜩이
나 어수선하고 자글거리는 속에 묵은 내 나는 얘기마저 한사코 길동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 때가 경칩 무렵이었던가, 춘분 무렵이었던가. 년의 아이가 춘분 무렵에 갔으니 아마도 경칩 무
렵이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가게 금고가 살금살금 손을 타기 시작했다. 그날 그날의 매상에
따라 많을 때는 삼사 만원, 적을 때는 일이 만원씩, 하루 이틀 간격을 띄기도 하고 연달아 이어지
기도 하고, 하여간 영업을 마감하고 매상을 맞추면 돈이 비었다. 처음에야 예전 버릇처럼 놈이 용
돈 삼아 몇 푼 집어 가는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액수가 커지고 횟수가 잦아지자
마냥 두고만 볼 일이 아닌 듯 싶었다. 그렇다고 일손도 달리는 차에 무작정 금고를 지키고 앉아 있
을 수는 없고, 벼르고 벼르다 놈을 불러 앉혔다. 이러고 저러고 금고가 손을 타는데 아무래도 네
놈 짓 같다, 하고 대뜸 추궁을 하자 안그래도 성질 급한 놈이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났다.
"어떤 시팔 것이 금고는 손대놓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여 시방?"
"식구래야 나허고 너허고 쟈 뿐인디, 글먼 쟈가 그랬을 거나? 장 보고 남은 돈도 고스란히 갖다 주
던디? 아서라. 이 놈아."
그날 저녁 놈과 년이 소리 죽인 싸움질을 한바탕 하더니 급기야는 년이 오밤중에 달아나버렸다.
초저녁 잠결에 언뜻, 년이 참 서글피도 우는구나, 그러나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다음 날 놈조차 사라져버렸다. 통도 크게 일주일치 매상을 옴팍 들고서였다. 노여움에 앞서
도시 어리둥절할 노릇이었다. 필시 년을 좇아 나갔을 터였으나 그렇게 목돈을 들고 나가기는 처음
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여나 지났을까. 염치도 좋게 훤한 대낮에 놈 혼자 삐죽이 들어섰다. 설핏 보았음에
도 실한 잠을 못 잔 듯 눈자위가 움푹 꺼져 있었다. 괘씸한 마음에 가겟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걸 나 몰라라 했더니 그날로 또 다시 일주일치 매상을 들고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두 주가 속절없이 흘러 춘분 무렵이었다. 무덤에나 누워 있으면 딱 알맞을 송장 꼴을 해 가
지고 년하고 놈이 함께 돌아왔다. 하필이면 날도 다 저물고 말이 꽃샘 추위지 대한 추위 못지 않은
추위에 때아닌 눈발이 날리던 날이었다. 어떤 우여곡절 끝인지는 몰라도 그나마 만만한 게 제 집
구석이라고 찾아들긴 들은 모양인데, 사람종자 인두겁이라고 차마 안으로는 선뜻 들어서지 못하
고 문밖에서 반 죽어나는 시늉에 그저 처분만 바라고 서 있었다. 한데 참 모를 것이 사람 속이라더
니,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그러고 요망을 떨고 서 있는 것들이 도무지 밉지가 않은 것이었다. 눈
앞에 없을 때야 괘씸하고 분해서 모진 욕설로 입가심을 하고, 다신 내 집에 들이지 않으리라 단단
히 작심을 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고 나니 주책없이 눈물이 앞서 번성거리는 것이었다.
"이 작 것들, 이 망헐 것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안 나가? 안 나갈쳐? 아
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내 팔자야."
그날 밤 년의 울음이 퍽퍽퍽 쏟아졌다. 년의 가슴에 감춰뒀던 울음이 한꺼번에 몰아졌다.
하나 그날 밤 년의 울음은 내 나이 이미 이순을 훨씬 넘기고 저승으로 명부 올릴 순번임에도 감당
하기 어려운 울음이었다.
년이 놈을 만나기 전 함께 살던 남자가 있었다 한다. 지입 트럭에 생선 화물을 싣고 강원도 길을
오가던 남자였던가 보았다. 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아이도 낳고 그럭저럭 살았던가 본데, 작년에
남자가 그만 홍천 어디께에서 빙판 길 교통사고로 즉사를 하고 말았다고 한다. 제대로 격식 갖추
고 살았던 살림이 아니었던 탓에 남자가 죽고 나니 덜렁 빈손이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년 혼자 벌이로는 아이를 감당할 수가 없어 할수없이 아이를 남자 고향집 아이 할머니 손에
맡겼던가 보았다. 한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쩌자고 아이 팔자에 그런 몹쓸 병까지 얹어 주었는
지, 꼭 감기인 줄만 알았다지 않은가. 나중에서야 중한 줄 알고 서둘렀을 때는 이미 글러버린 상태
였다니 년의 가슴이 오죽했겠는가.
그날 밤새 복받치는 년의 울음을 뉘라서 말리겠는가. 넝마주이처럼 구멍나고 찢어지고 거덜난 가
슴을.
"작 것아, 아이고 이 작 것아, 글먼 말을 허제. 입은 뒀다 흉년에 밥 빌어 먹을라냐. 따른 것도 아니
고 애가 아퍼서 죽어가는디. 이 에미가 그리 무정해 븨더냐. 철딱서니가 하나도 없는 것들아. 아이
고 짠해서 어쩐다냐. 그 어린 것 짠해서 어쩐다냐. 그래, 그것 갖고 병원비는 안 모자르더냐. 아이
는 화장을 했고? 그려, 고생했다. 고생했다......"
오늘 년은 건성이었겠지만, 절 구경 가는 줄만 알고 좋아라 따라 나섰겠지만, 아무렴 물고기 불을
켜러 이 더운 백중날 절에 올랐을까. 속살로야 년의 죽은 아이를 위한 기도였던 것을. 옛날부터 백
중 영가 천도라 하지 않던가.
아직도 놈이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발소리에 인기척을 느끼고 얼른 돌아다보았던 장 경위
가 에이, 할매고만, 하더니 읍내가 천 리나 되는 갑네, 하고 구시렁거렸다.
"캄캄한데 뭐가 뵙디까?"
"그요. 밤이라 암 껏도 안 븹디다."
년한테 물 한 잔을 청해 마셨다. 옆엣집 손님들까지 죄 구경을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신분이 확
실한 장 경위 패들은 일치감치 혐의 선상에서 빠져버리고 만만한 아들놈만 덤터기를 쓰는가 싶자
울화통이 터지려 했다.
"낮에 물고기 불공도 드리고 왔담서 뭔 일이야 있겠소?"
내가 물가에 내려간 새 년을 불러다 낮의 일을 소상하게 물어본 모양이었다. 내 생각에도 손을 탔
으면 그 때나 탔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애가 닳았다.
넋 놓고 앉아 놈 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자니 복장이 터져 지레 죽을 노릇이었다. 하마 도착할 때가
됐다 싶은데도 조다지 더디기만 했다.
"야는 어째 안 온다냐?"
"거진 다 왔대요."
그 말에 귀신이 붙었던지 밑에서 부다당 하는 소리가 올라 왔다. 몹시 급하고 거칠었다. 성질이 났
다는 표시였다. 년이 여전히 어정거리는 걸음으로 좇아 나갔다. 평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두릿
두릿 일어났다.
"왜 그렇게 늦었어?"
년이 뭔가를 건네 받더니 대뜸 성질부터 냈다.
"뭔 일인디 그 난리여 시방?"
놈도 목소리가 울퉁불퉁했다. 장 경위에게나 겨우 아는 체를 하는 것이 잔뜩 흥분한 것 같았다.
"별 일은 아닌 게 요리 앉기부터 해."
장 경위가 놈을 끌어다 제 앞에다 앉히고 사내도 불러 들였다.
"많이 늦었네이?"
"읍내서 파이버 미착용으로 걸렸다는 거 아뇨. 한번만 봐달라고 고렇고 사정사정혀도 기어코 면허
증을 꺼내랍디다. 근데 얼른 댕겨올 생각으로 나갔는디 쯩이 있어야제. 그서 딱지떼고 오는 중이
요 시방. 아따 의경 새깽이 좆나 잘났더만. 언제부터 의경놈이 고러고 싸가지 없이 군다요? 겁나
서 어디 살겠습뎌?"
그새 또 읍내서 실랑이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안그래도 한사코 파이버를 내치고 다니는 꼴이 언
제 한번 된통 당할 날이 있을 것이다 했었다. 아이고 잘코사니다, 싶었다.
"자네가 겁나게 운이 없었구만. 할당에 걸린 것여, 할당에. 그런 것 있거든."
장 경위가 뭔가 짚이는 속내가 있는지 야지랑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근데 읍내엔 뭔 일로 갔어?"
"알아서 얻다 쓰게요?"
제 코가 지금 쉰 댓 자나 빠진 줄은 모르고 놈이 딴청을 부렸다.
"이 사람이 시방. 장난할 때 아녀. 자네는 시방 용의자여. 알어?"
"아요. 긍께 시방 뭣이 어쨌다고 그냔 말이요?"
놈도 핸드폰으로 들어 내막은 알고 있었던지,
"당신 말야, 내가 아니라는 게 증명만 되면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 각오해."
하고 사내에게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순간 사내가 움찔했다. 사내 일행들이 사내를 가만히
불러 그들 뒤편으로 돌려 세웠다.
"이 사람아 그건 나중 일이고."
"참 내. 이걸 말해야 쓰나 어째야 쓰나."
놈이 무시근하게 뜸을 들였다. 그걸 지켜보고 섰자니 다시금 벌떡증이 솟으려 했다.
"얀 눔아, 얼름 말 못혀."
"참 내. 아이구 참 내."
벙어리 냉가슴 앓는 놈하고 눈길이 마주치자 년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버렸다. 그러자 놈이,
"에이 씨, 우리 와이프 뭣 하나 사러 갔었소. 되았소?"
하고 사내를 와락 밀쳐버렸다. 장 경위가 놈을 다시 불러 앉히고 년을 불러 오라 했다. 년의 행차
가 더뎌지자 놈이 사다준 물건도 꼭 갖고 나와야 한다고 두벌 다짐을 놓았다.
드디어 년이 나왔다. 어정거리지 않고 반듯반듯 걸어 나왔다. 놈이 년의 손에서 비닐봉지를 와락
낚아채더니 장 경위 면전에 풀썩 내던졌다.
"이 사람이......? 거 성질 좀 못 죽여?"
"아저씨라면 성질 안 나게 생겼어요?"
말은 그리 데퉁맞게 내뱉으면서도 년이 장 경위 곁으로 바짝 붙어 섰다. 금방이라도 봉지를 낚아
채 갈 듯이 년의 손이 허둥거렸다. 그런 년이 괘꽝스러운지 장 경위가 정신없어 죽겠네, 하고 년을
물리치려 했다. 그래도 년이 꿈쩍달싹도 안 하자 장 경위가 뭔데 그런데, 하며 봉지 속을 막 들춰
본 찰나, 년이 비호같이 달라 들어 봉지를 낚아채 가버렸다. 그 바람에 장 경위가 얼핏 본 속 내용
물을 떠벌리는 꼴이 나고 말았다.
"위스퍼? 위스퍼가 뭐지?"
아이고 작 것들. 하여간 하는 짓들이라곤. 소곤소곤 말들이 퍼져 나갔다. 참을 수 없는 웃음들이
들들들 새어 나왔다. 내가
"여자 거시기지 뭐다요."
하자 죄다들 와글짝 웃어버렸다.
그새 년 약 국물이 졸아버렸다. 수시로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 탓이었다. 훗물
을 치고 다시 다리기 전에 년을 불러 한 대접 따라 주었다. 닭 국물을 싫어하는 년이라 단박에 인
상부터 썼다.
"들이마셔. 약여. 생리통엔 질여."
년이 눈을 깜빡거렸다.
"백숙 끓이는 것 아니었어요?"
"야 봐라. 뭣이 이쁘다고 고 놈들 백숙을 끓여야? 밥값 받아 낼 일도 꺽정이구만."
년이 간신히 한 모금을 넘기고는 치를 떨었다. 들척지근한 것이 내 맛도 니 맛도 아닐 터였다.
"싱거워요. 소금 좀 넣어 주세요."
"약에다 소금 처 달라는 년은 시상천지에 너 밲이 없을 거다. 그냥 마셔. 눈 딱 감고."
년을 지켜 섰다. 년이 마지못한 듯 눈을 꾹 감았다. 하나, 둘, 셋, 하고 꿀떡꿀떡 삼켜 넣기 시작했
다. 그런데 저러고 오만상을 찌푸려서야 원, 약이 될는지 모르겠다. (끝)
- 출처: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2001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