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 입양과 발정, 그리고 중성화 후 가족들과의 대면이 있었다. 땅꼬와 함께 한 첫 설에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언니집으로 땅꼬를 데려갔다. 땅꼬는 낯선 공간에서도 두려워 숨지 않고 특유의 우아함과 매너로 침착하게 처신했다. 소파나 벽을 긁지도 않았고 단 한번도 소리 내 울지 않았다. 화분들 사이를 우아하게 걸어다니다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가족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직도 어린티가 역력한 얄쌍한 몸매에 어여쁜 얼굴, 영리한 눈, 그리고 어딘지 품위 있는 땅꼬의 자태와 행동거지는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간의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천천히 다가와 차례차례 머리를 부비고 눈을 맞추고는 내어주는 설 음식, 특히 우리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한 반건조 후 쪄낸 민어, 열갱이, 명태를 냠냠, 갸웃거리며 감격에 겨워 삼키는 땅꼬한테 우리 형제들, 조카들은 반해버렸다. 심지어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언니조차 땅꼬를 만난 이후 동네 고양이를 챙기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 우리 어머니는 땅꼬를 질투했다. 살뜰하게 땅꼬를 챙기며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 태도가 어머니의 질투에 불을 질렀다. 힘들게 준비한 음식을 내어주는 일도 질색하고 조심조심 다가오는 땅꼬한테 호통을 쳐 쫓아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리사랑이라 하지 않는가. 나도 이 인지상정의 흐름에서 열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 후 언제나 가족 모임에 땅꼬는 환영을 받았고 꼭 데려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땅꼬는 가족들을 좋아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예외다.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눈치 빠른 고양이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어머니 곁엔 절대로 가까이 오지 않는다. 어머니와 단 둘이 있어야 할 경우 땅꼬는 옷장 안 깊숙히 숨어서 잠을 청한다. 불안해진 어머니가 땅꼬야.. 를 수 십 번 외쳐도 제 이름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쏜살같이 달려오던 땅꼬는 묵묵부답, 아랑곳 않는다. 내 원망이 걱정된 어머니는 땅꼬가 없어졌다고 기겁해서 전화를 걸어오곤 하는데 그럴 때면 둘 사이의 관계가 참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곤 했다. 어머니는 내 내리사랑을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 사람 아기를 입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루를 많은 가족들 틈에서 번잡하게 보내고 늦은 밤 땅꼬와 함께 집에 도착하면 땅꼬는 스크래처로 직행해서 참았던 긴장을 풀어냈다. 긁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참았을까? 함부로 소파나 벽을 긁으면 안된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땅꼬였기에 형제들 집을 방문할 때, 고향으로 어머니를 방문할 때도 나는 땅꼬를 대동하고 먼길을 함께 다녔다. 나만의 길동무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함께 다니면서 어머니들이 어린아이들을 대동하고 길을 나설 때의 안도감을 알게 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면서 바쁜 나날이 시작되었다. 새로 담당한 일이 바빠 야근이 잦아지면서 새벽에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동안 홀로 빈집을 지키고 있을 땅꼬가 맘에 걸려 함께 지낼 동생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한 마리를 들이는 일은 큰 결단이지만 한 마리를 더 들이는 일은 어쩐지 순리처럼 진행되곤 한다. 반려동물 입양사이트에서 다묘가정에서 분양하는 아기 고양이를 찾아보았다. 양평의 한 가정에서 여러마리 아기 고양이를 분양 중이었는데 왜 하필 치즈고양이를 선택했는지... 어디선가 치즈냥이들은 성격이 온유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때문이었는지 선택은 순식간에 사진 한 장만으로 이루어졌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면서 양평으로 차를 몰았다. 2층의 단독주택이었는데 지층 겸 1층의 공간은 고양이들에게 다 내주고 그 곳에 셀 수조차 없는 다양한 연령대의 고양이들이 모여살고 있었다. 중성화를 제 때하지 못한 결과라고 했다. 어미는 카오스냥이었다. 이른 나이에 어미가 되었다는데 그 중에서 선택했던 치즈냥이는 사진과 달라 조금 실망했다. 열어 둔 이동장 안으로 먼저 들어간 아기는 고등어냥이었다. 그 아이가 활달하고 더 예뻤지만 결정된 일이니 예정된 치즈 아기냥을 이동장에 넣었다. 어미냥이는 낯선 나를 경계하지도 않고 평온한 눈길을 보내며 생글거리는 듯 보인다. 그래서 왠지 더 짠해져 '미안해, 미안해~~~' 위로했지만 주인 아가씨는 '아무 생각 없을거예요.'라고 가볍게 응수했다. 차 뒷자석 발치에 치즈냥이를 넣은 이동장을 내려놓고 담요로 덮은 뒤 서울로 운전해 오는 밤길은 유난히 어두웠다. 아기는 계속 울어댔다.
당시 나는 합사라는 개념도 알지 못했고 합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땅꼬는 현명하니까, 그리고 아기 고양이니까 땅꼬라면 잘 대해줄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이동장을 열자 아기가 나와서 집안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제대로 찬찬히 새 가족이 된 아기냥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너무 긴 다리, 너무 가늘고 긴 꼬리, 너무 긴 몸. 너무 작은 머리, 긴 코 때문에 어쩐지 늙은이 같아 보이는 얼굴.... 아기냥이의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2개월도 안된 아이... 어쩐지 심란해졌다. 순전히 땅꼬를 위해 이루어진 선택, 저 아이에게 나는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이기적인 마음은 아닐까?
땅꼬는 낯선 새끼 고양이의 느닷없는 등장에 당황했다. 보자마자 다가가서 핥아주지 않을까했던 기대와 달리 땅꼬는 새끼를 등지고, 나도 등지고 돌아앉아버렸다. 오히려 아기가 땅꼬를 보자마자 다가갔다. 어미 생각이 났을까? 아기가 다가올 때마다 하악질을 하고 팩팩 돌아앉아버리는 땅꼬... 그럴 때마다 아기는 당황하고 기가 죽어 구석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공간 탐색도 시들해지고 땅꼬만 바라보면서 구석에 앉아있다.
예상치 못한 둘의 거리를 보고 난 또 당황했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침대에 오른 나와 땅꼬를 따라 온 아기는 땅꼬의 냉대에 침대에 오를 수 없었다. 침대 밑에 넣어둔 방석에 엎드려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을 불안하고 쓸쓸하게 맞이한 아기냥.
그렇게 우리는 셋이 되었다.